조선잡사 - ‘사농’ 말고 ‘공상’으로 보는 조선 시대 직업의 모든 것
강문종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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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사」, 말그대로 조선의 job(직업)을 소개하는 책이다.


우리는 사극이나 책을 보면서, 조선의 여러 직업들을 보았다. 궁궐 안에서 “즈은하, 아니되옵니다~~~”라고 하는 문무백관, 어진을 그리는 화원,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는 유생, 활인서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녀, 수랏간에서 음식을 만드는 숙수, 기방에서 일하는 기생 등등등. 이런 직업들은 사극에서 단골로 나오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직업들이 있었다. 조선의 일반 백성들이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들이지만, 당시 신분제 상에선 하찮은 백성들이 하는 일이기에 기억속에서 사라진, 그 누구도 중요하게 보지 않았던, 사극속에서는 만날수조차 없는 그런 직업군을 조명한게 바로 이 책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알려주는 직업군들을 보다보면, 이상하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들의 해결점이 보이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들이 생겨났다는 점도 보인다.

관청 소속 여종과 기생은 본연의 업무가 있으므로 사적인 일을 시키면 안된다. 바느질감이 있거든 ‘침비’나 ‘침가’에 맡겨야 한다. p 013

이 구절을 읽으며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다. 유퀴즈에 최연소 공무원 합격으로 출연했었던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최연소로 서울시 7급 공무원이 되었으나, 그녀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궁금했던 찰나에, 그녀의 업무분장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 업무분장은 가짜뉴스가 아니었고, 그녀가 몸담고 있던 기관의 홈페이지에 아주 당당하게 쓰여있었던 그녀의 업무분장이었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다른 공무원들과는 월등히 다른 업무분장. 심지어 젤 마지막에 있던 업무는 ‘기타 타직원에 속하지 않는 잡무’ 였다.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인천의 한 보건소에서는 44세 미만의 여성들에게만, 보건소장의 사무실을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게 하였다. 굳이 44세 미만 여성에게만 시킨 이유가 무엇이냐 물어보니, ‘여성’이 더 깔끔하게 청소를 할 거라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 보건소에서 일하던 여성 보건소 직원들의 업무는, 지자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각종 일을 하는 것일텐데, 전혀 다른 보건소장 사무실 청소라. 이 역시 기타 잡무를 시키고 있었던거다.

오백년전 조선은 관청 소속 여종에게 분담된 외의 일은 시키지 않았는데, 오백년 후 현재의 관공서는 직원들을 대함에 있어 조선보다 나은게 무엇인가?

망나니의 행패는 이뿐이 아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떼 지어 시장에 나타나 물건을 빼앗고 돈을 갈취했다. 쌀가게에 들어가서 큰 바가지로 쌀을 마구 퍼갔다. 주인은 감히 막지 못하고 손님은 더럽다며 가버렸다. 원성이 높아지자 보다 못한 원님이 나섰다. p 045

우리는 흔히 패악질을 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망나니’라고 칭한다. 하지만 망나니라는 이름은, 과거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던 직업군의 이름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모두가 기피하는 일인데, 그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망나니라는 직업이, 왜 지금은 불량한 사람들을 빗대어서 말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을까 싶었는데, 이거 참. 이게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부 망나니들은 사형을 집행하기 전, 사형수 가족들이 뇌물을 주면, 사형수가 단칼에(고통없이!!)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지만, 뇌물을 주지 않는 사형수들은 일부러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가게끔 한다고 한다. 음, 여기서부터 음.... 뭐, 지금도 LH사태다 뭐다 하면서, 공공기관에서조차 뇌물, 비리가 판치는데, 망나니의 저 정도 비리 쯤이야. 지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넘어가려 하였으나, 이거 참. 망나니들은 사형집행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 시장에 나타나 패악질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얼마나 패악질을 많이 부렸으면, 지금에 와서까지 ‘망나니’라는 말이, 패악질을 부리는 사람들을 빗대어 말하는 용어로 남아겠는가.

망나니라는 직업은 사라졌으나, 패악질을 부리는 그들의 행태만은 예나지금이나 똑같아서 ‘망나니’라는 단어가 살아남았으니, 참 신기할 일이다.

월천꾼은 섭수꾼이라고도 한다. 길손을 등에 업거나 목말을 태우고 시내를 건네준 뒤 품삯을 받았다. p 070

월천꾼은 조선과 중국, 일본에서도 널리 활용된 서민들의 발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객이 물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기록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종을 부리는 이들은 종에게 업혔으며, 위낙 흔한 일꾼을 특별히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p 073

가마꾼도 알고 뱃사공도 알고 인력거꾼도 아는데, ‘월천꾼’은 정말 초면이다.

손님을 목이나 등에 태우고 냇가를 건너는 사람들을 월천꾼이라 한다. 심지어 월천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보면 ‘越川 : 냇가를 건너다’ 이니, 그들은 조선 사람들의 발을 대신 했던것이다. 근데 정말 아무리봐도 새로운 직업이다. 왜 나는 이런 직업군을 처음 들어봤을까? 싶었는데, 책에 그 답이 있었다.

월천꾼들에게는 특별한 사고가 있지 않는 한 기록에 남을 일이 없었다고.

기록이 없다는 건 그만큼 사고가 없다는 이야기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기록에 없다는 건, 그런 직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조차도 알수 없게 하니 안타깝기도 하다. 분명 그 시공간에, 그들은 조선 사람들의 발이 되어가며, 냇가를 건넜을텐데도 말이다.

산삼이 많은 곳은 평안도와 함경도의 국경지대다. 국경을 넘으면 더 많지만 발각되면 사형이다. 몰래 잠입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 심마니다. 선단을 이루어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와 산삼을 캤는데 그 수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총과 활로 무장하고 수십 명씩 떼 지어 다녔다. 사냥을 겸한다는 핑계였지만 조선군과 전투를 벌이거나 민가를 약탈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으니 산적이나 다름없었다. p 076

조선의 삼이 유명하고, 조선의 삼이 중국에서 비싸게 팔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내가 배운건 산삼이 아니라 인삼, 그리고 인삼을 파는 ‘개성인삼 상인’ 정도 였다. 산삼이나 산삼을 캐는 심마니에 대해서는 뭐 크게 배운적도 없고,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그렇게 잊혀질뻔한 심마니이 삶이 이 책에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그 내용에 우리가 사는 동 시대에, 우리가 보는 뉴스에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내용들이 있는게 아닌가.

매해 봄이나 가을철이 되면 꼭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들이 있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나라 서해안에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어업을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제지하는 우리나라 해경들에게 작살질까지 하는 그런 사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조선시대에도 일어났었다는 것, 차이점이 있다면 현재 사건의 주 무대가 바다라면, 조선시대의 사건은 산이라는 것 정도?

매년 우리나라 어장을 침범하는 것도 그렇고, 매년 미세먼지를 미친들이 보내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코로나19로 전 세계를 초토화 만든 것도 그렇고. 진짜 중국놈들은 얘나지금이나 ‘짱깨’라고 불릴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구나.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네.

매골승의 업무가 급증하는 시기는 기근과 역병, 전쟁이 일어날 때다. 기근과 역병은 늘 함께 오는 친구였다. 기근이 발생하면 굶주린 이들은 희멀건 죽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도성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오랫동안 굶어 약해진 데다 먼 길을 걷느라 힘이 빠져 죽은 사람이 많은 탓에 도성과 그 근방에 시신이 쌓인다. 이들은 십중팔구 병을 앓았으니, 그로 인하여 역병도 창궐했던 것이다. p 084

세종 때 창설된 금화도감은 성문의 관리 업무를 추가로 맡아 수성금화사로 개편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필요 없는 비용과 인원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혁파되고 소방 업무는 한성부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1467년에 발생한 화재로 금화군을 50인으로 늘렸고, 1481년에 다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자 금화도감의 재설치를 논의했지만 후속조치는 없었다. p 095

이 책에서 내가 제일 놀랐던 직업은 바로 ‘매골승’이다.

간혹 TV 사극을 보면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 외세가 침략하여 백성들이 죽어나가거나, 이미 죽어있는 모습. 역병이 돌아 백성들이 죽어나가거나, 죽어있는 모습. 대 기근이 돌아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나가거나, 죽어있는 모습. 이런 장면들의 공통점은 카메라가 비추는 마을, 거리마다 시체들이 즐비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기한 사실은 그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이 하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이후다. 왕실에서 외세를 물리쳤다던지, 구휼미를 풀었다던지, 역병을 고치기 위해 의원들이 나타난다던지 뭐 이런 해결방법들이 나오고, 어느 순간 시신으로 가득찼던 마을에선, 시신은 온데간데 없고 마을이 그렇게 깨끗해질 수가 없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유교가 판치는 그 시절에, 도사가 나와서 도술을 부렸을리는 없을테고.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시신들은 싹 사라지고 깨끗한 마을이 나온다는 사실이.

전쟁, 역병, 기근등을 이유로 갑작스레 죽어가는 사람들이 급증했을때, 그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 그들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TV 사극에서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고, TV 사극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몰랐을 뿐이다.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 그들은 ‘매골승’이었다. ‘매골승’, 그들은 승려였다.

왜 이들은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들이 시신들을 치우는 행위는, 땅을 정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공기를 정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행적은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으며, 알려주지 않았고, 밝혀주지도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일이, 양반네들 입장에서는 더러운 일이라 치부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교사상이 팽배한 조선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 승려였기 때문일까? 이유가 어떠하든, 매골승이 하던 일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했던 일은 누가 뭐래도 숭고한 일이 틀림없다. 어쩌면 승려였기에 가능했을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으로 하여금 매골승을 비롯하여, 우리가 몰랐던 하지만, 일상에 꼭 필요했던 수 많은 직업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다 더 슬픈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을 따지는 이유는 이미 옛날부터 그런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런 인식 때문에 이렇게 많은 직업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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