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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도쿠가와 가문은 어떻게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는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식물에 빠져, 키우고 죽이고 한지 벌써 반년. 난 아직도 ‘초보’ 식집사다. 언제고 초보 딱지를 떼보나, 하는 생각에 심심하면 하나 둘 읽은 식물관련 책. 오늘 읽은 책은 식물 가드닝이라기보단, 식물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정확히는 일본의 가드닝 역사라고나 할까?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에도시대, 그러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된 그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에도)는 식물 친화적인 도시로 구성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이런 추측은 한 90%정도 맞았다. 이유인 즉, 이 책은 에도시대만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에도시대 바로 전 센고쿠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보는 일본사 흐름 센고쿠 시대(전국 다이묘들이 들고 일어남) → 아즈치(오다 노부나가)/모모야마 시대(도요토미 히데요시) → 에도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 |
지금의 번화한 도시 도쿄, 그 시작은 ‘쌀’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에도평야가 시작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무장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논 만들기를 장려했던 것일가. 이는 결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쌀’은 ‘화폐’나 마찬가지였다. 센고쿠 시대 다이묘에게 영지 내에 논이 있다는 것은 경제력을 갖춘 것을 의미하며, 이는 군사력으로 직결되었다. 지금으로치면, 쌀 생산이 가능한 논을 만드는 것은 ‘돈’을 찍어내는 것과 마찬거지 였기 때문에(중략). p 041 |
작금의 도쿄는 드넓은 도쿄 평야를 가지고 있다. 그 평야 위에 지금과같은 번화한 도시 도쿄가 생겨났고, 그 평야 위에서 넓디 넓은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평야가 옛날부터 생겨난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일본사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다.
과거 일본의 수도는 일왕이 살던 교토였고, 제일 번화한 도시 역시 교토였다. 이후 군사정권인 막부가 들어섰을 때에도 주요 도시는 역시나 교토였다. 반면 교토와 반대편에 있는 에도(도쿄)는, 교토와 멀리 떨어진 만큼 번화하지 못하였고, 틈만나면 수해가 일어나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다. 그런 땅을 지금의 광활한 평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당대에 ‘쌀’은 화폐와 다름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영지에 논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이묘의 위치가 달라졌다. 하지만 에도에는 논다운 논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곳에 터를 잡을 수 밖에 없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로써는, 에도 개발이 어쩔수 없는 숙명과 같았다. 그렇게 에도 개발에 착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결국엔 에도땅에 일본에서 제일가는 평야를 만들었다.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놨으면, 본인이 정권을 잡은 뒤에 교토로 이주하지 않고 계속 에도에 남아있었을까(도쿠가와 이전까지는 교토에서 정치를 하는게 당연했다).
거기다 도쿠가와가 정권을 다스린 후 부터는 일본 내에 전투가 사라져서, 더더욱 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에도에는 계속 논이 늘어나고, 논이 늘어났다는건 평야가 늘어났다는 이야기고, 그렇게 에도는 돈이 돌고도는 부자도시가 되고, 그 부와 평야를 기반으로 현재의 도쿄 도심이 탄생되었다는 이야기!
뭐, 여기까지가 현재 도쿄가 번화할 수 있게된 역사적인 흐름이라고나 할까?
일본 성 내에 소나무가 많이 심긴 이유는?
소나무는 수지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속에 하얗고 얇은 껍질이 있다. 이 얇은 껍질은 지방분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 껍질을 절구로 찧은 뒤 물에 담가 쓴맛을 빼고, 말려서 가루로 만든다. 이것에 쌀을 더해서 떡으로 만드니, 바로 송기떡이다. p 057 |
일본 성을 볼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사실 하나, 왜 일본 성에는 소나무가 많을까? 였다. 직접 가서 본 것도 그렇고, 일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렇고 꼭 일본 성 내에는 소나무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걸? 소나무가 군사용 비상식량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전투가 시작되면 성 하나를 둘러싸고 공성전이 벌어진다(뭐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공성전을 하게 되면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밖의 보급물자가 차단되기 때문에 식량의 유무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다. 보통은 성 내에 전투를 대비한 비상식량을 구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지 몰라서, 정말 완전 비상사태를 위해 준비한 비상식량이 바로 소나무였던 것이다.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소나무를 식량으로 쓴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라는 점!
이 책에 있는 내용은 아니나,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도 임진/정유재란 당시 굶주린 백성들이 송기떡을 해먹었다고 한다. 어라, 가만히 보니 시기가 임진/정유재란?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그 때다. 그러니까 도요토미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이다. 음... 그럼 송기떡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 병사들을 통해 건너온건가? 왠지 시기를 보니, 그런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든다......
닌자가 쓰는 화약의 정체는 쑥?
(생략) 그렇다면 닌자는 어떻게 화약을 만들었을까. 사실은 식물 쑥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석은 질산칼륨의 결정이다. 그래서 닌자는 쑥에 오줌을 뿌려 흙 속에 묻었다. 그렇게 비생물을 발효시킨다. 오줌 속의 암모니아와 쑥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칼륨을 반응시켜 질산칼륨을 만들었던 것이다. p 075 |
닌자가 사용한 화약이 쑥이라니!!!!!
적잖은 쇼크를 받은 부분이다. 뭔가 화약이 아니라 쑥을 사용한다는 대목에서, 범접할 수 없던 닌자가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아니 뭐 생각해보면 그렇다. 당시 일본은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초석이 없었고, 화약을 쓰려면 외국에서 수입을 했어야했으며, 수입한 화약은 부르는게 돈이었다. 거기다 화약에 일본에 수입된 건 끽해야 오다 노부나가 즈음의 시기인데, 닌자의 활동은 훨씬 전 부터 있었을 테니.
고로 닌자는 화약을 직접 만들어야 했고, 그 화약의 재료는 일본땅에서 나는 재료여만 했다. 아니 근데 성분들을 어떻게 알고, 저렇게 조합했을까. 닌자들은 진면모는 닌자가 아니라, 화학자였을까?
오다 노부나가가 사랑했던 꽃
뜻밖에도 노부나가가 사랑했던 것은 옥수수 꽃이었다고 한다. (중략) 옥수수 꽃은 어떤 꽃일까. 그나저나 옥수수에 꽃이 피기나 할까. p 112 |
우선 옥수수에 꽃이 있다는 사실에 1차 놀랐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옥수수라는 열매가 맺힐려면, 먼저 꽃이 피어야하긴 할테니, 꽃이 있는게 당연한건데도, 옥수수꽃을 본적이 없어서 ...그래서 놀랐다.
알고보니 옥수수에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고 한다. 옥수수 암꽃은 꽃잎이 달려있지는 않으나, 긴 암술을 늘어뜨린다. 흔히들 말하는 옥수수 수염이 바로 옥수수 암꽃이라 보면 된다. 이 암꽃의 암술에 수꽃의 꽃가루가 날라와 부비부비하면, 그제서야 우리가 아는 옥수수가 생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암술의 수염 하나하나가 옥수수 한 알 한 알과 이어져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2차 놀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일본에 옥수수가 들어왔을 때, 옥수수는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 작물이었다고 한다(옥수수의 맛을 몰랐던 과거의 일본인들, 가엾구려).
난 처음에 오다가 옥수수꽃을 좋아했다길래, 옥수수수염 각각이 옥수수 한알과 이어져있어서, 백성들의 굶주림을 달래주는 작황식물이라 좋아한 줄 알았는데 하하하. 옥수수가 관상용이었다니, 하 정말 충격적이다. 대체 왜 관상용이었을까 싶었는데, 옥수수수염이 갈색의 비단실과 같아서, 그래서 관상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다는 화려한 비단실을 품은 옥수수꽃을 좋아했다는 것. 허허허. 그럼 그렇지.
일본인은 왜 벚꽃을 좋아할까?
‘사쿠라’의 ‘쿠라’는 ‘신령이 나타날 때 그 매게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벚나무는 밭의 신이 내려오는 나무다. 즉 논농사가 시작되는 봄이 되면 밭의 신이 산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벚꽃을 피운다고 생각한 것이다. p 151 농민에게 멎꽃은 농업의 시작을 알리는 나무이지만 산에 피는 산벚나무는 나무에 따라 개화시기가 다르다. 그 때문에 벚꽃은 ‘씨 뿌릴 때’를 알리는 벚꽃으로 불리며 마을의 특별한 상징이 되었다. p 159 |
일본어를 꽤 하는 나이지만, ‘쿠라’라는 단어에 저런 뜻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심지어 일본 신화 관련해서도 다큐나 책을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처음 듣는 의미의 단어였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일본어를 습득. 하, 역시 배움엔 끝이 없군!
그러니까 결국 일본은 옛날부터, 농사의 신이 벗나무에 깃들어 꽃을 피우기 때문에, 그 벚꽃이 필때가 ‘씨 뿌릴 때’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벚꽃을 좋아했다는 이야기. 역시 농사를 짓는 나라는 이렇게 관련된 이야기가 없을 리가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농사와 관련되어 만들어진 날이기도 하니 말이다.
에도(도쿄) 강가에 벚꽃이 많은 이유는?
습지를 매워 만든 도시 에도에는 많은 하천이 흘러, 하천 범람으로 인한 수해가 자주 일어났다. 수해를 막기 위해서는 튼튼한 호인을 만들어야 했는데, 벚나무를 심으면 그 뿌리가 자라 둑이 튼튼해진다. 게다가 벚꽃놀이를 위해 강가를 찾는 사람들이 흙을 밟음으로써 둑은 더 탄탄해진다. 이렇게 사람을 모으기 위해 제방에 벚나무를 심은 것이다. p 160 |
그렇게 논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벚나무가, 뿌리도 탄탄해서 수해까지 막아준다. 거기다 꽃이 이쁘니, 사람들이 와서 구경도 한다. 즉 일본에서 벚꽃은 농사를 도와주고, 수해도 막아주고, 관광객도 불러와 관광수익까지 불러오는 1석 3조의 친구인셈!
이러니 일본 사람들이 벚꽃을 좋아할 수 밖에.... 이정도면 벚꽃사랑이 DNA에 각인되어 있을지도?
벚꽃의 퇴색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란 말이 유행했던 무사의 시대에 벚꽃은 이렇듯 아름답게 지지는 않았다. 질 때가 너무나도 선연한 왕벚나무의 이미지는 비참한 군국주의 시대의 와중에 ‘죽음의 미학’을 필요 이상으로 조장해버렸다. “피는 꽃이라면 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이 군가의 가사처럼 깨끗하게 죽는 것을 미화한 가치관은 일제히 피고 한꺼번에 지는 왕벚나무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p 165 |
그런데.. 그렇게 사랑받던 벚꽃을, 일본인 스스로 그 의미를 퇴색시켜 버렸다.
한때 제국을 표방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 주변국가를 침략한 일본은 자국민들이 사랑하는 ‘벚꽃’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을 벚꽃에 빗대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가는 것를 미화시켰다. 그렇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지네나라 국민들도 그랬겠지만, 강제 징병된 가엾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희생양이 되었다는 건 두말하면 입아프다.
내가 언급한 부분은 이 책의 빙산의 일각일 뿐. 실로 방대한 내용이 책이 실려있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개인의 약초원이 있었다던가. 전투가 사라진 뒤, 할 일이 사라진 무사들이 찾아낸 또 다른 직업이 원예사라던가 뭐. 그런거? 이렇게 읽고 보니, 새삼 우리나라 관련된 식물 역사책은 왜 없는가 싶어지기도 하고.....아니면 있는데 내가 모르는건가 싶고 ㅠㅠㅠ
뭐 여튼! 간만에 읽은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