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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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만 되면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떠났던 내게 2020년은 최악의 해였다. 해서 2021년을 기대했는데, 올해도 왠지 작년과 매우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은 두려운 예감이.. 결국 올해도 여행은.... 책으로만 떠난다. 그 첫번째가 바로 오늘 리뷰의 주인공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이 때, 여행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책이랄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책은 그렇고 그런 흔한 여행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선 뉴욕을, 일본에선 도쿄를, 프랑스에선 파리를 가봐야한다는 그런 흔한 여행지를 추천해주는 책도 아니다. 그러니 휘양찬란한 도시 여행기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를 잠시 접어야한다. 이 책은 아주 소박한 프랑스 시골을 다니는 여행기이자, 거기에 ‘미식’을 살짝 곁드린 책이다.



내 여행스타일은 대도시보다는 소도시, 도심보다는 시골이다. 대도시, 도심의 모습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소도시나 시골의 모습은 조금은 정겨운, 내가 평소에 보는 것과는 다른 풍광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의 저자도 세계 곳곳의 시골여행을 다녀서, 자타칭 ‘세계시골전문가’라고 한다. 책을 읽기도 전에 ‘시골’을 찾아다니는 이런 저자의 이력에 호감이 생기니, 책 자체도 좋게 볼 수밖에 없나보다ㅋㅋ.



거기다 내가 가본적 없는 나라 프랑스의 시골풍경이라니. 비행기값도 내지 않고, 여행계획을 짜기위한 시간도 소모하지않고, 이렇게 쉽게 프랑스 시골을 들여다볼 수 있다니. 특히나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지금,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같은 책이다.





 



프랑스가 선진국인 것은 GDP가 높아서가 아니라 시골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서다. 농담이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시골이 깨끗하다. 선진국의 대열에 끼지 못한 나라들은 아무리 그 수도와 대도시들이 번쩍이고 화려해도 시골에 가면 선진국이 아닌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p 025



프랑스의 시골은 우리 시골과 얼마나 다를까 궁금했다. 놀랍게도 이 책속에 나오는 프랑스 시골은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속에 나온 프랑스 시골은 동화속에서나 볼법한 시골의 모습이었다. 도심과 떨어진 시골이라는 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다를게 없는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고민을 해보니 역시 답은 하나다. 과거 정권들은 낙후된 시골을 개발시킨다는 미명하에 새마을 운동을 비롯한 지역사회개발운동등을 펼쳤는데, 이게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영향인 것이다.



남길건 남기고 발전시킬건 발전시켜야하는데 그냥 이것저것 죄다 바꿔버리니 각 지역별 시골 마을마을마다 그 특색을 잃어버렸다. 만약 우리가 그때 시골개발을 각 지역별 특색에 따라 했다면, 어쩌면 우리의 시골도 동화에 나올법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연과 함께 초가집이 어우러진 모습, 기와가 어우러진 모습, 그 속에 외양간에서 소가 우는 모습. 상상만해도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유럽 어딘가에 있는 시골보다 더 멋진 풍광을 자랑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시골마을은 ... 그런 운치있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프랑스 시골마을이 쓰레기 한점 없고, 깨끗하다고 해서 아름다운 건 아니다. 옛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기에, 그래서 깨끗하고 더 아름다워보이는 것이다.





 


 



이 책에는 프랑스 시골 여행기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안에는 시골에서 시작하여 도심까지 장악한 프랑스 ‘미식’의 세계가 담겨있다. 토종닭, 여러 와인들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건 단연 브레스 토종닭이었다. 



뛰어난 요리사이자 소믈리에인 블랑은, 어렸을 때 동네에서 기르던 브레스 토종닭이 정체모를 닭에 의해 대체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그때의 분노를 근간으로 조르주 블랑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프랑스 브레스 토종닭 생산자 협회의 협회장이 된 것이다. p 063



유전자 특성을 규정하는 품종부터 당연히 브레스 토종닭이어야 하고, 반드시 브레스 지역 내의 땅에서만 기를 수 있다. (중략) 사실 닭이 우유를 소화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예전의 방식을 고수한다. 그게 원칙이다. p 076



정체모를 닭이 밥상을 차지하면서, 브레스 토종닭이 점점 뒤로 밀리던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모른척 하던 어느 날! 이 상황을 바꾸고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유명한 요리사 블랑. 블랑은 브레스 토종닭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실제도 불도저처럼 앞으로 착착착 밀고나갔다. 그러자 정부조차도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브레스 토종닭은 다시 제 위치를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 



블랑과 브레스 토종닭 이야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과연 우리나라 토종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크기가 크고 비싼 닭, 닭백숙밖에 먹을 수 없는 닭, 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분명 대한민국은 닭이 점령한 나라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체모를 닭(또는 큰병아리)로 만든 치킨이 점령한 것을 뜻한다. 정체모를 닭들로 인해 우리나라 토종닭은 그 옛날 브레스 토종닭처럼 뒤로 밀려버린지가 한참이다. 



거세한 브레스 토종 암탉을 1.8kg까지 기르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중략) 그러니 비쌀 수밖에 없다. 육질과 육향이 다르거나 특별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시해야만 소비자들이 6만원을 지불할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소비자들은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하고 있다. p 078



본디 토종닭이란게 기르는 기간도 길고, 크기도 크고, 손이 많이 들다보니 정체모를 일반적인 닭보다 가격이 비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닭이 비싼건 용납하지 못하니, 점점더 토종닭은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저 저렴하고 싼 것만 찾는 습성이 빚어낸 상황이랄까? 반면에 프랑스를 보면, 프랑스 국민들은 브레스 토종닭을 소비하는데 한 점 고민이 없다. 즉 브레스 토종닭을 기르는데 들어간 비용을 인정하고, 충분히 그 비용을 내고 소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브레스 토종닭이 그만큼 맛있고, 토종닭요리 방법도 다양해서 ..라는 이유도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 국민들의 브레스 토종닭 소비가 꾸준하니, 생산자들은 브레스 토종닭에 더 심혈을 기울여 기르게 되고, 정부는 계속해서 브레스 토종닭을 보호하는 아름다운 선순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꼭 보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까? 블랑같은 유명한 사람이 나서지 않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국민들의 시선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걸까? 이유야 나열하면 많겠지만은, 그 중에서도 제일 문제는 정부의 관리문제가 아닐까.



양계농장의 닭이 소비자에게 오기까지 여러 유통업자들이 중간에 낀다. 이 유통업자들은 대체 뭘 하는진 모르겠는데, 그들은 항상 이익이 나고 양계농장은 대게 본전도 겨우이며, 소비자들은 비싼 값의 닭을 사게 된다.  비단 양계농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통업자의 중간 마진 문제는 여러 농,수산품에서 나타난다. 




 



프랑스는 와인을 만드는 포도에 대해서도 규제와 보호가 강하다. 각 포도밭을 기르는 농장주마다 포도에 대한 신념이 있고, 다른 포도 종자와는 섞이는걸 용서치 않으며, 포도밭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더 나은 와인을 위해 품종개발에도 힘을 기울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쌀만 봐도 그렇다. 어떤 품종인지, 어떤 맛인지 이런건 1도 고려하지 않고 오롯이 생산량만을 따진다. 이게 무슨 일제강점기적 생각인가? 벌써 백년이 흘렀는데도, 쌀 생산은 그때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다.



프랑스 내에서도 서루 다른 등급제를 가진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급제가 다르니 발전의 방향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대대손손 땅을 물려주는 성향이 강하고 면적이 넓지 않다는 측면에서 보르도보다는 부르고뉴와 닮아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정책이나 국가의 등급 관리는 크게 차이가 난다. 쌀을 예로 들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누가 더 농사를 잘 지었는지, 어떤 밭에서 어떤 품종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쌀을 모아서 도정하는 미곡처리센터에서는 지역의 여러농부들이 생산한 쌀을 한곳에 다 모아 섞어버리고, 정산은 무게로 해버린다. p 106



이런 나라에서 양계농장이 닭의 품질을 위해 얼마나 애를 쓸 것이며,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쌀 품질개량을 위해 얼마나 애를 쓸것인가? 그들이 품질이 좋은 토종닭, 쌀을 생산할지언정 나라는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며, 똑같이 유통업자들 배를 불리게 될 것이고, 국민들은 어김없이 값이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할텐데 말이다. 그러니 각 농장주들은 굳이 시간과 돈을 써가며 품질개량을 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다. 한마디로 왜 우리나라는 이베리코 돼지처럼 좋은 먹이를 주며 방목하여 키워, 품질 좋은 돼지고기를 생산하지 못하는지 백날 떠들어봤자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의 첫인상은 그저 미식을 곁들인 프랑스 시골여행기였다. 읽으면서는 사진속 동화같은 시골마을에 눈이 갔고, 각광받는 프랑스 토종닭과 프랑스 와인을 나도 한번 맛보고 싶다 느꼈다. 읽은 후에는 왜 우리나라는 프랑스처럼 자국의 농수산물을 발전을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지 씁쓸해졌다. 



우리나라 시골 곳곳에는 토종닭이 있고 토종 소가 있으며 토종 돼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 식탁 위에는 이름모를 닭이나 소, 돼지로 가득찼다. 언제쯤 우리 식탁위에도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 음식들이 가득찰까? 그런날이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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