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풍경들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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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되었다. 코로나19 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제하면, 삶의 질 혹은 삶의 방식이 정말 어마마하게 바뀌었다. 조금은 어렵고 불편했던 것들이, 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바뀌었다. 조금은 비싼 것들이 값싼 중국산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는 편리함과 저렴함에 둘러쌓인 삶을 살고있다.


내가 코흘리개 꼬꼬마시절, 외가와 친가, 양쪽 시골집은 정말 정겨운 옛날 집 그대로였다. 춘천에 있는 친가와 영광에 있는 외가는 전부 그 지방의 특색이 담겨있는 옛집이었다. 아궁이가 있었고, 광이 있었고, 화장실이 밖에 있었고, 온돌이 있었고, 마루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이든 부모를 위해, 자식들은 ‘편리’한 삶을 선물하였다.

기와가 올라가있던 옛집은 사라졌다. 마루도 없어졌고, 광도 없어졌고, 아궁이도 사라졌다. 많은 추억이 있던 내 시골집은 그렇게 사라졌다.

초가를 없애면서 서민의 주거문화, 세시풍속과 생활문화 또한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 p 017

내 어린 기억속의 시골집. 흡사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기와지붕을 얹은 우리 시골집엔 대청마루가 있었다. 마루 위에 앉아서 강아지들과 놀았고, 마루를 뛰어다니다 넘어지기도 하였다. 할머니가 아궁이를 때면 그 옆에서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부채질도 했었다. 집집마다 외양간에서 ‘음메-’하는 소리가 울렸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밤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너무 무서워서 항상 할머니, 엄마랑 같이 가곤 했다. 가끔은 요강을 쓰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집과는 전혀 다른 시골집 모습은 어린 나에게 신기한 별천지였다. 내 기억속의 시골집은 그랬다.

시멘트로 지어진 우리집과는 너무 다른 모습. 명절이나 가족행사가 있을 때만 내려갔었던 시골집이기에, 우리집과는 다른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신기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보는 물건이 많으니 매번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질문을 해대기도 했다. 우리집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할 경험이 가득하기에, 항상 신기했고, 재밌었고, 추억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골집은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내 기억속에 있는 시골집은 우리동네에서 볼법한, 시멘트로 지은 주택이 되어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가장 많이 쓰이는 시멘트는, 완전히 굳을 때까지 보통 30~50년쯤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오랜시간을 쉴 새 없이 독성물질을 내뿜고 있는 셈이다. 또 도시가 열을 머금어 더워지는 ‘열섬효과’와 빗물이 땅에 스미지 않고 낮은 지대로 쏠려 일어나는 ‘도시홍수’를 일으키는 것도 사실상은 콘크리트 건축이 가져온 피해나 다름없다. p 037

새로 지은 시골집에만 가면 난 항상 코를 훌쩍였다. 워낙에 호흡기관이 예민했던 나였기에, 그래서 그러려니 했다. 이런 현상은 몇년이나 지속되었더랬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 내가 시골집만 가면 코를 훌쩍였던 건 새로 지은 시멘트 건물이 내뿜는 안좋은 물질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연그대로의 재료로 만들었던 옛 시골집에선 편하게 잘수 있었는데, 새로 지은 시골집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시멘트로 지은 신식주택이 된 시골집. 신식주택으로 지은지도 벌써 십여년을 훌쩍 넘겼다. 신식주택에서는 옛 시골집에서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기가 어려워졌다. 대청마루, 아궁이, 맷돌 등 추억을 떠올리던 매개체가 사라졌다. 밖에 있던 화장실은 집 안으로 들어왔고, 심지어 한겨울에도 따듯하다.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바뀐 시골집. 내가 사는 집과 다를 바가 없어진 시골집에서의 추억은..... 더이상 없다.

항상 흙냄새, 나무냄새가 나던 시골집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어렸을적 옛 집에서 지냈던 경험이라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이런 옛 집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들에게 이런 옛 집과 옛 생활도구는 책이나 TV, 민속박물관이나 한옥마을을 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와집이 무엇이고, 너와집이 무엇이고, 초가집이 무엇인지는 책속으로 배울 뿐이다. 아궁이, 요강, 맷돌등도 ‘글자’로만 배운다. 엄연히 우리의 삶에 스며들었던 생활방식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에겐 그저 옛날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갖가지 보일러 시설과 난방기구가 화로를 대신하고 있다. 화로가 우리 곁을 떠나면서 올망졸망 모여 앉은 그 옛날 추억과 정감의 불씨도 더불어 꺼져가고 있다. 몸은 따뜻해졌을지언정 마음은 어쩐지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p 049

옛날 생활방식은 요즘에 비하면 확실히 불편한 점이 많다. 간단하지도 않을뿐더러, 시간도 오래걸린다. 하지만 그만큼 주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오랫동안 같이 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 옛날 생활방식이 그랬다. 그때 가족들의 모습은 오순도순, 복작복작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흐른 시간만큼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간단’하고 ‘편리’한 생활방식이 사회를 뒤엎었다. 지금 가족들의 모습은 ‘삭막’하고, 심지어 한 집에서 사는게 맞는지 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단절’되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콘크리트로 올린 아파트에, 스스로 갇혀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러하고, 우리 엄마도 그러하며, 내 친구들도 그렇다.

편리함만 쫓는 사회는 우리의 생활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사용하기 불편한 옛날 것이 최신식으로 바뀌면서 생활방식이 변화했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또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그 사라지고 생겨난 것들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지만, 이 다양한 것들에도 공통점이 있다. 새로 생겨난 것들은 대게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고, 값이 저렴하며, 대체로 중국산이 많다.

이렇게 다양하고 긴요한 쓰임새 때문에 옛날에는 바가지가 깨어져도 태우지 않는 금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쓸모가 많았던 바가지도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바가지와 일회용 그릇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점차 바가지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단출한 초가지붕에 박넝쿨이 얹혀 있는 정겨운 모습도 덩달아 볼 수 없게 되었다. p 117

더구나 최근에는 복조리마저 중국산이 판을 치고 있다. 산청군 중산리 복조리마을에서 만난 이정구 씨에 따르면, 요즘 중국산 복조리가 대량으로 수입되는 바람에 복조리 마을에서 만드는 전통 복조리 값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복조리까지 중국산이 들어와 점령할 줄은 이들도 생각조차 못한 일이다. p 123

그러나 이 두 옷감은 지금 삼베나 모시보다도 훨씬 만나기 어려운 귀한 옷감이 되고 말았다. 기계로 마구 짜내는 면사와 비단에 밀려 베틀에 걸어 짜내던 옛날 방식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무명은 전남 나주의 ‘샛골나이’란 이름과 경북 성주의 ‘두리실’이란 이름으로 그 명맥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p 153

문제는 요즘 죽부인조차 중국산이 점령했다는 것이다. 중국산은 국내산에 비해 절반 이상 싸게 팔지만, 품질은 몇 배나 떨어진다. 최근에는 비단 죽부인뿐만 아니라 부채나 소쿠리, 대자리까지 중국산이 판을 치고 있다. p 160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과 저렴함을 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불편한 옛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존재한다. 누군가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는 가업을 잇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편리한 삶이 힘겨워져서, 다들 갖가지 이유로 옛 생활방식을 고수한다. 하지만 이런 옛 생활방식은 지금에 와서는 반쪽짜리가 되었다.

옛 생활방식은 대부분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짚신, 면옷, 죽부인, 조롱바가지 그 모든 것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가성비를 쫓는 지금, 그 자리는 수 많은 중국산이 점령했다. 우리 손으로 만들면 워낙 오래걸리니, 제품가격이 비싸서 값싼 저품질의 중국산이 그 자리를 꿰찬것이다. 그렇게 우리 삶에는 수 많은 중국산이 점령했다. 끝까지 전통방식을 고수하던 사람들마저도 이 중국산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엄연히 따져보면, 아직 남아있는 종가집들 포함해도 우리의 옛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집은 없을 지도 모른다.

개발 앞에서는 모든 옛것이 진부한 것이 되었으며, 모든 자연이 거추장스러운 장애였다. 이런 현실은 지금껏 과거와 현재, 개발과 자연의 행복한 공존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사실상 해방 이후 우리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보수와 진보도 아닌 개발이었던 것이다. 개발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버튼 하나로 다 얻을 수는 없다. 그런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세상에 이토록 발전했는데도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건 바로 그때문이다. p 216

우리는 편하게 살기 위해 개발을 택하고, 전통을 져버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나라들이 전통을 지켜가며, 우리보다 더 사회를 발전시킨 모습을 보면, 정말 우리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내가 옛 전통방식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탄식하는 건 어쩌면 모순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흐릿해진 추억이지만, 아직까지도 옛 시골집 기억을 완전히 놓지 못했다. 시골집에 있었던 성주신, 철륭신, 측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하고, 마을을 지켜준 서낭신은 어디에 숨었는지 궁금해 한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어린 날 탔던 비료포대 썰매가 떠오르기도 하고, 빙판길을 보면 시골에서 논에 물을 가둬 빙상을 만들어 앉은뱅이 썰매를 탔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잊혀져가는 추억이 아닌, 다시금 내 앞에 현실로 펼쳐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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