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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 - 평범한 어른이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그 누구든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한번쯤은 회사 계단이든, 화장실이든, 출퇴근시간 차안에서든 최소 한 번 이상은 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난 가르쳐준대로 했는데 뭐가 이상한건지 혼나고, 내 잘못도 아닌데 또 혼나고. 나는 일하러 회사에 들어온건데, 혼나러 들어온건가 싶고. 나 역시 그랬다. 입사하고 2년이 채 안되었었나? 퇴근길에 차 안에서 펑펑. 뭐가 그리 억울했는지 참. 지금와서 보면 왜 울었는지 이유조차 떠오르지 않는 거 보니, 별볼일 없는 일이었던것 같기는 한데. 왜 그때는 그렇게 서럽고 억울했는지. 아,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달리 1n년이라는 회사짬밥이 더해졌기 때문에, 별볼일이라고 해도 대수롭지않게 넘길 수 있게 되어서 그런걸까?
불합리한 일은 여전히 많고 나는 여전히 나약한데 눈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p 022
맞다. 1n년동안 회사가 나에게 더 친절해졌거나, 내 업무가 줄어들었거나, 불합리한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는 늘어났다. 퇴사자가 생겨도 업무는 늘어났다.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업무는 늘어났다.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업무는 늘어났다.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내 성격도 변해갔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흔쾌히 들어주었던 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웃는 얼굴은 진심이 아니라, 가면이 되어갔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도 재보기 시작했다. ‘내가 이 부탁을 들어주는 만큼, 내 시간을 빼앗기는데 굳이 해줘야하나? 내가 이 부탁을 들어주면 저 사람은 나한테 뭘 해주지?’ 라고 말이다.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덩달아 감정도 죽어갔다. 조그만 일에도 일희일비하던, 감정이 풍부해서 내 나름대로는 좋아했던 내 성격은 온데간데 없다. 참 이상하기도 하다.
직장에서 인간은 ‘업무를 행하는 대상’이다. 서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일 처리의 대상으로 대한다.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포스트잇 떨어지듯 깔끔한 관계. 젊은 날에 일희일비하던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이제는 화르르 불타올랐다가도 금세 사라앉는다. 조금의 감정 소모도 아깝기 때문이다. p 080
분명 회사에 처음 입사한 1n년보다 지금이 오히려 불합리한일이 많다. 하지만 난 그때만큼 울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려려니 한다. 내가 여기서 울거나 화를 낸들,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소모로 인해 나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회사를 다니는 우리는 그저 회사에서 쓰고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회사에서 인간대우를 받는 방법은? 아쉽게도 없다. 그게 1n년간 회사에 근무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깨달은 유일한 사실이다.
일도 받은 만큼 한다. 월급 혹은 성취감만큼. 대부분의 회사는 매번 백 프로 최선을 다할 수 없을 만큼의 일을 준다. 기대에 부응하려 했다간 뼈가 녹는다. 그래서 백프로 최선을 다할 것과 아닐 것을 구분한다. p 017
회사의 소모품이란걸 인지하는 순간, 나는 회사에 대한 기대는 버렸다. 그저 받은 만큼만 일한다. 그리고 누가 지시했는지를 따져가며 일한다. 다른 회사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우리회사는 참 절차를 무시하고 다이렉트로 업무 지시를 하는 경향이 아~~~주 많다. 팀장이 지시하는 업무, 부장이 지시하는 업무, 본부장이 지시하는 업무, 심지어 타부서 팀장이 주는 업무까지. 일개 팀원한테 참 여기저기서 업무를 지시한다. 그것도 팀장을 건너뛰고, 다이렉트로.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 모든걸 다 할수 없고, 팀장도 굳이 끼려 하지 않고. 난 쏟아지는 업무에서 우선순위를 뽑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뭐든 본부장이 지시하는 업무가 제일 우선이 된다는 것. 내가 제일 높은 직책자가 지시하는 업무 때문에, 당신들이 지시하는 업무는 할 수가 없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아무리 자기들이 요청한 업무가 급하더라도, 직책/직급이 깡패지않나. 뭐 가끔은 이런걸 이용해서 잡다한 지시업무는 늑장부릴때도 있긴하다. ‘안주면 지들이 하겠지?’ 라는 마음?이야, 이런 잔머리도 굴리고, 많이컸다, 나도.
카톡, 카톡, 카톡. 추억의 msn 메신저 시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모바일이 아닌 PC메신저여서 그랬나(물론 그때도 메신저 로그인으로 출근 시간을 파악하는 상사가 있었다). 우리는 갈수록 초밀접 사회를 산다. 텍스트와 이모티콘, 짤이 온갖 틈을 옥죄어 온다. 그 무차별 폭격에 응대를 해야하는 노동자들. ‘네’는 약해 보이니 ‘넵’이라고 답하는 ‘넵무새’가 되고, 웃지 않는 얼굴로 ‘ㅋㅋㅋ’를 쓴다. p 031
‘급한 업무일때, 퇴근한 직장인에게 카톡을 보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열에 한 명만 분개할 뿐, “누군들 보내고 싶어서 그러겠냐”는 반응이 다수였다. 어라? 답변자가 모두 상사인가? 그들은 사회생활 융통성을 강조했고, 일이 터지고 난 뒤 수습하느니 차라리 지급 응답하겠다,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답했다. p 045
업무시간 외 카톡. 엄연히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슬프게도 업무시간 외 카톡이 완전 불법사항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정말 어쩌다 한번 업무시간 외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했다면 괜찮지만, 정말 수도없이, 주기적으로 업무시간 외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했다면 그건 직장 내 괴롭힘이다. 물론 이걸 판단하는 건 엄연히 사람이기에,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는 있지만 말이다. 더 슬픈 사실은 ‘업무시간 외 카톡금지법’이 발의가 되서 오래도록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급증하면서 이 법안은 유명무실해져버렸다. 채택은 커녕 곧 이런 법안의 발의되었다는 사실조차 잊혀질듯하다.
결국 우리는 업무시간 외 카톡을 받는 걸 당연시해야하고,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해야하며, 업무시간 외 카톡으로 인한 스트레스 감내는 우리 몫이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줄여야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회가, 업무시간 외 카톡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감내하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회사 스트레스로 결국 유산까지 했는데 말이다. 이조차도 나 혼자 감내해야할, 오롯이 내 몫이라는게 너무 슬플따름이다.
아, 기업이 직원을 소모품으로 대하는 건 어쩌면, 정부 기조에 따른걸지도?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나라 만큼 직장인을 봉으로 아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정말 그 어떤 정권이 정권을 잡든 직장인은 그저 봉이다. 어떤 정권이든 직장인보단 기업을 더 중요시 한다는 이야기다.
세금을 올려도 직장인 월급에서 떼가는 게 1순위다. 휴가사용은 또 어떤가. 직장인을 위하여, 기업들은 잔여연차에 관해서는 수당을 무조건 지급하라고 했다. 근데 여기에 예외사항을 두었다. 기업에서 ‘연차독려’를 할 경우, 잔여연차수당 지급을 하지않아도 된다. 혹은 기업이 원하는 날이 강제로 연차를 사용하게 하거나, 공휴일을 연차로 소진하게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뭐 나열하면 끝없다. 정부는 직장인들을 위한다며 이 법, 저 법 제정하지만, 실상 예외사항을 두어 기업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준다. 이런 상황은 작은 기업으로 갈 수록 더 심각하지만, 뭐 우리나라는 이 모든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봉이니까. 그래서 우린 업무시간 외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 내가 이래서 계속 로또에 매달리는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