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워낙 유명한 책이다. 인류와 문명사를 집대성한 책이다보니, 매번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섣불리 도전하기엔 그 두께가 완전 벽돌(!!!). 진짜 「코스모스」와 「총,균,쇠」 그리고 이 책 「사피엔스」 이 3대장은 책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도전심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섣불리 도전할 수 없는 오오라를 내뿜는 책이랄까. 하지만, 나에게는 이 책을 쉽게 읽는 치트키가 있었다. 흐름출판에서 출간된 「지식편의점」. 완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사피엔스」를 읽었다면 아마 중도 포기했겠지만, 「지식편의점」 덕분에 수월하게 읽었달까.
우리는 한국사(또는 세계사) 시간에 꼭 배우고 넘어가는 인류 최대의 혁명인 농업혁명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한다. 실제로 농업혁명 이전의 인류와 농업혁명 이후의 인류의 삶은 확실이 바뀌었다. 농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배고플 때가 되면 바다든, 산이든 나가서 필요한 만큼만 채집 또는 수렵을 하면 되었다. 정말 단순한 삶이다. 덕분들 그들은 걱정거리가 별로 없었고(물론 그들 나름의 걱정거리는 있었겠으나, 지금만큼은 아닌), 노동시간이 적으니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 그러니까 농업혁명 이전의 노동력은 딱 그정도였다. 하지만 농업혁명 이후의 인류는 농사라는 프로젝트로 인해 1년, 365일을 쉬지않고 일한다. 밭을 갈고, 씨 뿌리고, 물을 주고, 동물들이 농작물을 망칠까 감시하고, 농작물을 수확하고, 수확하고 남은 잉여 농작물은 창고에 쟁여두고, 그 잉여 농작물을 훔치러 오는 자가 있을까 또 감시하고. 노동력도 몇백배로 올랐고, 걱정거리도 몇백배로 올랐다.
뭐,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을까’ 라는..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딱 농업혁명이다. 여기까진 “인간” 삶에 대한 관점이다.
이번엔 “환경”이나 “사회”적인 관점이다. 수 많은 생명체의 멸종, 지구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 듯한 기후변화의 원인은 바로 인간이라는 점이다. 일부에선 이 모든게 인간의 삶을 윤택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정말 인간의 삶이 윤택해졌는지 바라보면 그것도 참 애매하다. 물론 어떤 인간 계층은 참 잘먹고 잘살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어떤 계층은 힘겹게 산다.
이 책에 요점은 결국 그거다. 언제나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예컨대 멸종이나 자연재해나 문명파괴등 그 뭐든 지 간에 그 문제의 중점에 있는 건 “인간”이라는 것. “인간”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 벽돌두께의 책으로 그 근거를 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소오름돋게도 나는 유발 하라리의 의견에 매우 동조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인간의 삶을 위해 여러 생명체를 멸종시키고, 심지어는 자연을 파괴하여 인간에게조차 좋지 않은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정말 인간이 하는 이 모든 행동들이,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정말 윤택하게 해주는 행동일까?
일부 학자들은 우리 종에 면죄부를 주고 싶어 한다. 이런 경우 전형적인 희생양인 기후변화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결백하다고 믿기는 어렵다. 기후변화의 누명을 약화시키고 우리 조상들을 호주의 대형동물 멸종과 연루시키는 세 가지 증거가 있다. p 106 - P106
이런 악순환은 수세기 수천 년 지속되면서 역사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질서에 불과한 상상의 위계질서를 지속시킬 수 있다. 부당한 차별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돈은 돈 있는 자에게 들어오고, 가난은 가난뱅이를 방문하는 법이다. 교육은 교육받은 자에게, 무지는 무지한 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한번 희생자가 된 이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p 211 - P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