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찰여행 - 인생에 쉼표가 필요하다면 산사로 가라
유철상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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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찰”여행이라니, 간만에 내 취향에 꼭 맞는 책이 나왔다. 역시 상상출판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듯.



나에게 여행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취미이고, 그 여행에서 사찰 역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내가 여행지를 수립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바로 사찰의 유무니까. 블로그에 있는 내 여행기만 봐도 사찰 답사기가 한가득이다. 그만큼 나에게 사찰여행은 내 여행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사찰여행관련 책으로 일전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산사순례』편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유홍준 교수의 책보다, 이 책이 훨씬 내 마음에 와닿았다. 왜일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찰의 수가 훨씬 많아서? 아니, 그렇지 않다. 그저 순전히 내 주관적으로 보자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산사순례』는 매우 딱딱하다. 고지식하다고 해야할까? 전문가가 썼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반면 이 책, 『아름다운 사찰여행』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불교 전문가도 아니고, 미술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문가 못지 않아서, 두 발로 뛰며 많은 문화유산을 만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속에는 저자의 그런 마음이 곳곳에 흐른다. 꼭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보는 그 시선으로 사찰을 바라본 느낌이랄까? 거기다 사찰이 품고 있는 속 이야기까지. 이 책은 박종인 기자님의 책과 함께, 꽤 오랫동안 내 여행의 또다른 길라잡이가 될 것같다.



여행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펼쳐진 자연을 단순히 느끼고 즐기기만 하는 여행과 여행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고 봐야 제대로 느끼는 여행. p 044



내 여행은 후자다. 단순히 자연을 느끼는 여행도 좋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여행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사전에 알아야만 하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 역시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라는 말에 오백프로 찬성. 그 덕분에 나는 사찰에 대한 공부도 조금은 했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일부러 사찰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한건 아니었다. 관광통역사 자격증을 딸 때 공부했던 것이, 어쩌다보니 사찰에 대한 부분도 조금 있었던 것 뿐이었다. 아니, 솔직히 꽤 많았다. 문화유산으로써의 사찰에 대한 것도 공부해야했고, 건축물로써의 사찰도 공부해야했다. 심지어 불교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그 결과, 취득한 관통사 자격증은 그저 취미로 딴 것이라 서랍속에 고이고이 넣어두었지만, 이 때 공부한 것들은 전부 내 여행의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덕분에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여행의 풍부함을 더해주는 가족 전담 여행 가이드가 되었달까?




과거 포스팅에서도 몇번 이야기한적이 있긴한데, 이 책 주체가 ‘사찰’여행이니만큼, 사찰을 가기 전에 이것 만큼은 알고 가면 좋겠다는 부분이 바로 법당 구분이다. 각 사찰마다 본존불로 모시는 부처님이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다 같은 부처님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각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들의 수인, 그러니까 손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선정인이나 항마촉지인을 맺고 계시는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천지인을 맺고 계시기도 한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지권인을 맺고 있으며, 아미나부처님은 아미타여래구품인인 9가지 종류의 수인을 맺고 계신다. 약사여래부처님은 약함을 들고 계신다.



각기 다른 이런 부처님들이 계신 불당은, 부처님에 맞게 이름이 다 다른데 그걸 구분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이게 다 관통사 공부로 인해 얻어진 지식들이랄까).



-적멸보궁: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불상이 없다. (5대 적멸보궁: 양산 통도사, 평창 상원사, 영월 법흥사, 인제 봉정암, 정선 정암사)


-대웅전: 주로 석가불을 모신다.


-대적광전/화엄전/비로전: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극락전/무량수전: 아미타불을 모신다.


-약사전/유리광전: 약사여래를 모신다.


-미륵전/용화전: 미륵불을 모신다.


-천불전: 천분의 부처를 모신다.



반면 절에는 부처님이 중심이 아닌 보살이나, 가르침, 제자, 토속신앙을 중심으로한 법당도 있다.


​1) 보살 중심의 법당


-관음전/원통전: 관세음 보살을 모신다.


-지장전/명부전: 미륵불이 오기 전, 이 세상을 제도하는 지장보살을 모신다.



2) 가르침과 제자 중심


-영산전: 석가불이 설법하는 모습을 재현한 곳으로 좌우에 깨달은 부처 제자인 아라한이 함께 한다.


-팔상전: 팔상도를 그린 그림을 모셨다. 영산전에 팔상도를 모시는 경우도 있다.


-응진전/나한전: 16나한, 500나한을 모신다. 역시나 영산전과 비슷하다.


-대장전/장경각: 부처님 가르침에 해당하는 경전을 모신다. 간혹 불당을 조성하여 중앙에 비로자나불 또는 석가불을 모시기도 한다.


-조사전: 훌륭한 스님을 모신다.



3) 토속신앙 관련 법당


-칠성각/북두각: 별신앙과 약사신앙을 결합한 법당으로 북극성(치성광여래), 북두칠성(칠여래)를 모신다.


-독성각/천태각: 천태산에서 수행하는 나한을 모신다.


-산신각/산령각: 사찰이 있는 산의 신, 즉 산신을 모신다.


-삼성각: 위의 세 분을 모두 모신다.



아주 간혹 이 법칙에 안맞는 불당들이 나오긴한다. 유홍준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조선후기 불가의 율법을 등한시한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라며. 그렇다고 한다. 아, 또 추가로 덧붙이면 사찰에는 3종류의 문이 있다(간혹 4종류가 될수도: 금강문이 있을 경우). 사찰의 정문인 일주문, 악귀를 막는 두번째 문인 (사)천왕문, 그리고 마지막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는 불이문. 불이문은 사찰에 따라 누각의 형태로 조성되기도 한다.




자 이제 책 본문으로 돌아와보면!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사찰들이 나온다. 내 나름대로는 정말 많은 사찰들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와! 난 정말 새발의 피였구나. 아직 내 발길이 닿지 않은 사찰이 이 땅에 이렇게나 많다니.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반면에, 내가 갔다온 사찰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어느 절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장엄한 풍광을 거느리고 기억속에서 깨어난다. p 038



2018년, 봄. 아침 새벽같이 집에서 출발해 경북 영주 부석사에 도착했다.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서서 풍광을 내려다보는데, 와. 진짜 책속의 문장 그대로 ‘장엄한 풍광’이 나를 반겼다.






아마 내 여행 인생을 통틀어서, 언제 또 이렇게 맑은 하늘에, 이렇게 녹음이 짙고, 이렇게 아름다운 연등이 수 놓인 풍광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 우리 하늘은 1년에 반 이상이 중국발 미세먼지로 뒤 덮인 잿빛이니까. 그뿐인가? 중국발 어마무시한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어 당장 집 앞에 있는 공원도 가기 거렵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책 속의 부석사편을 읽으며 그 날 보았던 부석사 풍광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렸다.




반면에 2017년 어느 겨울에 갔던 수덕사는 조금 달랐다. 수덕사에 가기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대웅전이 있다는 것과, 근/현대에 이르러 세 여성(일엽스님, 화가 나혜석, 박귀희 여사)의 굴곡진 삶이 담겨있다는 정도 였다. 다만 여기서, 고려와 근/현대의 간극에 대해서는 생각치 않았다. 그런데 왠걸? 수덕사에 도착하니, 그 입구부터 각종 상업시설로 얼룩덜룩. 적어도 수덕사 입구는 내가 생각한 고즈넉한 사찰이 아니라, 자본에 쩌든(?)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나마 수덕사 대웅전 만큼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모습이라, 나에게 조금 위안이 되었달까, 하하하. 



수덕사에 얽힌 전설도 재미있다. 백제시대에 창건헤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세월 동안 수덕사는 퇴락이 심해 중창 불사를 해야했으나 당시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 공양주를 하겠다고 청하였다. 여인의 미모가 워낙 뺴어나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인근에 소문이 퍼지면서 여인을 구경하러 온 이들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중략) p 106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수덕사에 얽힌 전설을 모르고 있었다. 수덕사는 부석사의 선묘낭자 처럼, 수덕각시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난 평생 몰랐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렇게 또 책을 읽다가 눈에 딱 걸리는 구절이 나왔다. 과거 모든 이의 수학여행지였던 경주 불국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불국사를 떠올리면 대부분 수학여행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여행 때 만난 불국사와 오로지 여행으로 찾은 불국사는 천지차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궁궐의 건축양식의 불국토의 이상향을 재현한 불국사는 정말 볼수록 신기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사찰이다. p 346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코흘리개 꼬마시절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 불국사. 솔직히 그때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졸업사진을 찍는 것? 나에게 경주 불국사는 그랬다. 하지만 그 이후, 꽤 오랜시간이 흘렀고 내 여행 취향이 어느정도 자리잡힌 뒤. 나는 경주 불국사를 다시 찾았다.






다시 찾은 불국사는 그 때와 달랐다. 장소는 동일한데, 왜 그 의미가 달랐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때와 머릿속에 든 지식차이와 사찰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게 첫번째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시간 만큼, 내가 느끼고 싶은 만큼 이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게 두번째 이유랄까? 이번 연말이나 그즈음, 역병이 조금 잠잠해지면 경주를 다시 가볼까 싶다. 5년 전이랑 지금, 내 머리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경험의 차이가 분명히 있을테니, 아마 이 차이가 불국사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으리라 생각해보면서.




그렇게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 나온 사찰이 화순 운주사였다. 운주사는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 사찰이었다.



운주사 일주문을 통과하면 미지의 세계에 온 것처럼 낮선 풍경들이 펼쳐진다. 아니 소박하면서도 독특하다고 해야 될까? 운주사의 돌부처들을 보면 세련된 불탑에서 보아 오던 근엄한 표정은 도무지 찾아볼 수 조차 없다. 이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매력이다. p 378



어렸을 때, 소설 『퇴마록』을 읽으면서 꼭 한번 가고 싶었던 장소가 되어버린, 천개의 부처님과 천개의 석탑이 있는 신비로운 사찰 운주사. 



  



그 운주사를 갔을 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부처님의 모습이 아닌, 전혀 생소한 부처님들이 즐비했으니까. 석탑도 익숙한 모양도 있는 반면, 생소한 모습의 석탑들도 있었다. 물론 전설과 기록 속에서 말한 천개의 부처님과, 천개의 석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정말 많은 부처님이 있었고, 많은 석탑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운주사를 처음 보았을 때, 그 감정을 잊지 못했다. 아마 그 어떤 사찰을 가도, 운주사에서 받은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는 없으리라.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금 내가 갔던 사찰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고즈넉함이 바로 떠오르는 사찰들도 있었고, 상업적이라 느껴진 사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즈넉한 사찰이든 상업적으로 느껴진 사찰이든,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싹 가라앉는다. 왜 불가에 귀의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이 리뷰를 쓰는 지금도, 창궐하는 역병만 아니었다면 아마 난 당장이라도 사찰로 달려나갔을거다.



언제쯤 마음 편히 가볼 수 있을까. 올해가 끝나기 전에는 못가본 사찰들을 다닐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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