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걸어봐 인생은 멋진 거니까 - 19살 단돈 50유로로 떠난 4년 6개월간의 여행이 알려준 것
크리스토퍼 샤흐트 지음, 최린 옮김 / 오후의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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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독일인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배낭여행을 한 이야기다. 이렇게 세계를 상대로 배낭여행에 대한 에세이는 꽤 읽었기에, 이 책도 그 범주에서 크게 다를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왠걸? 이 책은 그저그런 배낭여행과 조금은 달랐다. 여행의 방식이 달랐다. 여행을 대하는 여행자, 크리스토퍼의 마인드도 달랐다. 



“처음엔 엄청 반대하셨죠. 저를 앉혀놓고 제 이성에 호소하셨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거냐? 그래서 전 그럴 수도 있따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할 거라고 말했죠. 왜냐면 15년이 지난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서 ‘아, 그때 했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하느니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p 030



크리스토퍼가 세계여행을 한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을 때, 가족들은 반대했다. 대체 왜? 내 자식이 보다 넒은 세상을 경험해본다는데 왜 반대하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크리스토퍼 부모님이라도 아마 격렬하게 반대했을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여행이란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이든, 독일이든, 중국이든 한국 이외의 나라로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의 세계여행은 달랐다. 그의 여행경로를 보면, 본인이 속하는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 제도, 그리고 남아메리카에 남태평양 섬들,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 중동 그리고 다시 유럽이다. 어느 누가봐도 비행기를 수십번은 탔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가 이용한 교통수단은 튼튼한 두 다리, 혹은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차, 바다를 건너는 요트였다. 그러니까 지면(또는 해수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여행자금은 단돈 50유로였다.



50유로면 현재 기준으로 7만원도 안되는 돈인데, 이 돈으로 4년 6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 언뜻 보면 정말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타든, 요트를 얻어타든 분명 어느정도의 사례가 필요했을 건데 말이다.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노동’이다. 크리스토퍼는 누군가의 교통수단을 얻어 탈 때는, 정당한 ‘노동’을 제공했다. 화물차를 얻어탈 땐 화물 상하차등을 했고, 요트를 얻어탈 땐 요리사를 하거나, 항해를 하는 선원을 했다. 누군가는 돈주고 배워야할 수 많은 경험을, 크리스토퍼는 여행을 통하여 수십/수백개의 일자리를 경험했다. 



난 나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난 이미 (이런 조수자리를 찾는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58세 이탈리아인과 그의 아내와 함께 길이 13미터에 넓이 4미터짜리 멋진 요트를 타고 있었다. p 037



여행 중에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다. 심지어 내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은 이렇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p 048



헬리콥터를 ‘히치하이킹’해서 국경을 넘었고, 헬리콥터가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 한가운데에 착륙했기 때문에 여권에 국경을 통과했다는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베네수엘라 국경초소를 지나지 못했었다. (중략) 아무튼 나는 “좋아, 가!”라는 짧은 말과 함꼐 통과되었고 난 내 행운을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p082



크리스토퍼를 돕는 ‘운’도 한 몫했다. 요트의 선원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정말 넘쳐났는데, 그는 타이밍좋게 원하는 곳을 가는 요트 선장을 만날 수 있었다. 히치하이킹을 통하여 얻어탄 차로 국격을 넘을 때, 간혹 국경을 넘었다는 비자를 못 받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이 역시도 운 좋게 넘어갔다. 무엇보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대게 좋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직업 자체는 마약상 같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람 자체로 봤을 때는 적어도 여행객인 크리스토퍼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숙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뭐, 그렇다고 매일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화물차에 태워준다고 하여, 화물 상/하차를 도와주었더니, 빈 좌석이 없다고 하며 튀는 운전자도 있었다. 노숙을 하는 중에 들개들에게 둘러쌓여 목숨을 위협받은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어떻게든 지나갔다. 그것조차도 운인건지, 아니면 크리스토퍼가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좋게 마무리된 것 처럼 보이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크리스토퍼에겐 이 모든게 멋진 경험으로 남았다.



캐나다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도록 돕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 유용한 팁을 주거나, 중요한 만남을 주선하거나 그저 용기를 북돋우는 몇 마디 말을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p 134



웃기는 일이지만, 냉소적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근데 실제로 그게 도움이 되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의 내면에서 말이다. 내가 고통스럽게 선택한 말들이 천천히 나의 내면에 영향을 주는 걸 깨달았다. 어찌보면 간단한 일이다.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훨씬 쉽다. p 142



크리스토퍼는 이토록 멋진 생각을 하는 여행자였다. 나에게 사기를 친 사람들에게도 화를 내기보다는, 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랐다. 그가 마더 테레사 같은 성인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분노를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여행이 엉망이 될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시간을 그렇게 허투루 쓰고 싶이 않기 대문에 그는 좋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세상을 좋게 보려고 한 것이다. 



세계여행도 세계여행이지만, 크리스토퍼의 이런 점이 정말 부러웠다. 나는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곧이 곧대로 짜증을 내고, 짜증으로 인해 그 날 하루를 망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오늘을, 그렇게 망쳐버리는 것이다. 아, 세계여행 에세이를 읽다가, 삶에 대한 내 태도에 반성을 하게되다니!




  



크리스토퍼가 유럽, 카리브제도,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섬에서 있었던 수 많은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아무래도 먼- 나라라서 그런지, 어차피 내가 가볼 수 없는 나라라서 그런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사는 한국과는 너무 많이 달랐으니까. 여기서 다름의 의미는 언어, 문화, 사상등을 말한다. 그런데 크리스토퍼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로로 넘어온 순간부터 조금 달라졌다. 엄연히 내가 살고 있는 문화권이고, 내가 사는 나라와 인접한 문화권, 그러니까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문화권에 대한 이야기였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기서 조금 정말 놀랐던 사실은, 독일인이었던 크리스토퍼의 눈으로 본 아시아 여러나라의 특성이었다. 내가 본 아시아 국가의 특성이나, 독일인이 본 특성이나 어쩜 그리 다른게 하나도 없는지!



난 진짜로 한국에 있었다. 누가 상상이나 헀을까. 그 순간에야 비로소 지금까지 내가 여행했던 나라들과 한국이 비교되었다. 유럽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나는 다시 제1세계 국가에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안전해보였다. p 265



이런 무지런함만이 장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경쟁이 너무 심해서, 모든 고용주들은 관리자가 퇴근할 때까지 직원들이 무료로 초과근무를 하길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고되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다. 고등학교 졸업생이 상위 5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가족들이 너무 실망을 하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외에 다른 탈출구를 찾기 힘들어진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자살률에서 해마다 앞 순위에 있다고 한다. 극도의 부지런함은 그런 어두운 측면도 갖고 있다. p 283



크리스토퍼는 유럽을 떠난 뒤, 비교적 위험이 도사리고, 치안이 보장되지 않는(...) 남아메리카, 대서양, 태평양을 여행했다. 그러다가 다시 안전이 보장된 국가 한국에 왔다. 독일에 살았을 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토록 발전하고 안전이 보장된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텐데. 정말 우리나라만큼 야밤에 돌아다녀도 안전이 보장되고, 유럽처럼 날치기 위험도 없는, 자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돌아다니기 좋은 나라가 없을거다. 진짜 이것만큼은 자부심 뿜뿜이랄까? 



크리스토퍼가 바라본 한국은 그야말로 안전강국이었고, 경제대국이었다. 보통의 외국인 여행자라면 여기서 끝이겠지만, 크리스토퍼는 달랐다. 6개월간 한국을 여행하면서 우리말을 공부하고, 우리의 역사도 배웠다. 우리나라가 경제강국이 된 원인과 그림자도 아주 명확하게 분석했다.



독일인인 크리스토퍼에게 한국의 살인적인 근로시간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상위 5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기를 쓰는 상황이 놀라웠다. 근데 이건,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도 참 놀랍고 씁쓸한 현실이기는 하다. 상위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은 교육이나,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대기업 내지는 공무원에만 목숨거는 취업현실, 그리고 취업해서는 내 시간이라고는 없이 일만 해야하는 근무환경. 언제쯤 이렇게 획일화 된 교육/취업/근로환경이 바뀔까. 과연 바뀌긴 하려나. 아, 씁쓸하다.





입국 거부 이유는 내가 다른 나라로 가는 항공권이나 페리 티켓을 소지하지 않아서였다. 일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나라에 입국할 뿐 아니라,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그 나라를 떠나기를 확실히 보장받고 싶어했다. p 298



일본에는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려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주목을 받는다면 정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때뿐이다. p 301



한국을 떠나 일본땅에 들어선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이민국은 크리스토퍼의 입국을 금지하려고 했다. 제3의 국가로 간다는 항공권이나 승선권이 없다는 이유로. 그야말로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경우, 얄짤없이 거부하는 그들의 특성이 저 한 문장에서 확연히 들어난다. 거기다 독일인의 눈으로도 딱 보이는 주목받지 않으려는 문화까지(그래서 일본초딩들이 죄다 똑같은 란도셀을 멘다는 스아실ㅋㅋ)! 



중국 사람들의 호기심이 너무 큰 나머지 자제력을 잃어서인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소음도, 냄새도, 감금되어 사는 것도 그들에겐 장애물이 아닌 듯했다. p 309



인도는 엄청난 폐기물 문제를 안고 있다. 쓰레기를 처리한다는 생각 따위는 애당초 없는 듯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것은 빈곤뿐만 아니라 불행하게도 사회와 문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p 340



이란인 여자 친구가 나에게 그녀의 사촌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녀의 사촌은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녀의 사촌은 “난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용서할 거야. 그의 잘못이 아니거든. 그를 유혹한 여자가 잘못한 거야!” 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는 독일과는 아주 먼 것처럼 느껴진다. 물리적 관점에서 보면 난 유럽을 코앞에 두고 있었고. p 376



거기다 중국, 인도, 이란에서 그들을 바라본 크리스토퍼의 시각은 아주 놀랍게도, 나의 시각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인종은 달라도 보는 눈은 다 같은가보다.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주변에 가족과 친구가 있어서 의지할 수 있고 불행한 시기에도 함께할 수 있으며, 그 자신도 가족과 친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다. p 352



내게 세계여행은 나만의 교육과정이었다. 사실 난 4년간 인턴십을 한 것이다. 정원사, 수습 선원, 투어 가이드, 주유소의 직원, 배관공, 배우, 요리사, 모델 … 이 목록에 계속 추가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에서 수많은 귀중한 보물을 발견했고, 더 이상 내게 부족한건 없다. 다른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걸 배웠다. 나를 위해 새로 발견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새로 발견했다. 내게 새로운 강인함과 무의식적인 나약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숙한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를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가능하다는 걸 알지 못했던 완전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신을 알게 되었다. p 385



본디 여행이란 좁디 좁은 나만의 생활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만 갖혀있던 내 시야가, 타 지역을 방문함으로써 넓어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경험은 돈 주고는 살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들은 ‘나’를 보다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시간적 여유가 안되서, 금전적 여유가 안되서 여행을 갈수가 없다고 한다면, 독서가 그 대체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틀에 박힌 사고를 하거나, 변화를 싫어하고, 꽉 막힌 사람이 되는 경향이 높다(뭐 소위 말하는 꼰대의 일종일 수도).



 장장 4년 6개월에 걸친 긴긴 세계여행을 끝낸 크리스토퍼는 여행 전과 매우 달라졌다. 시야가 넓어졌고,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성장했다고 해야하나?그저 책으로만 만난 크리스토퍼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크리스토퍼는 모두가 존경할 수있는 정말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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