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은 조선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많은 조선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참으로 불합리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을 이해하고, 사랑했다. 특히 게일은 사랑한 조선의 모습은 다름아닌, 조선에서 찬하다고 칭해지는 ‘상놈’의 일상이었다.


게일에게 조선의 상놈은 신비한 존재였다. 그리고 놀라운 존재였다. 그저 평온해보이다가도,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는 상놈을 보면 한 사람이 화가 저렇게 크게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싸움이 끝나자 다시 평온하게 돌아오는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무엇보다 상놈은 아무것도 안하는, 게으른 양반과는 달리 땀방울을 흘리며 노동을 하고 하루하루를 열씸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양반에 비하면 배운게 없는 상놈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안에서 움직였으며,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 대해 신의를 지켰다.


게일에겐 이렇게 여러 얼굴을 가진 상놈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웠고, 존경스러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게으름 피우는 양반과는 달리 그들이 없으면 조선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상놈은 제일 대단한 존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조선 사람들의 삶과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독특하고 예스러운 민족과 약 9년간의 친밀한 교제 후에 나는 이들에 대한 단상을 여기에 모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를, 그리고 우리 앵글로색슨족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랜기간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우리를 조선이라는 왕국에 사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인도할 수 있기를!

조선에 사는 외국인에게 상놈들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또 있을까? 그들만이 오랜 기간 유교 문화가 지워버린 한민족 고유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우기 시작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고유의 특성을 잃고 매우 인위적으로 변해갔다. 이들은 그러한 스스로를 극복하려고도, 또 새롭게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고대의 유령같았다. 하지만 상놈들은 그러한 속박에서 자유로웠고, 어떤 면에서는 이 땅,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특징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 P66

조선에는 짐수레같이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가축조차 짐을 지고 갈 수 없는 길이 많아서 결국 나라의 모든 힘쓰는 일은 상놈의 두 어깨가 담당했다. - P76

조선에서 오랜 시간 고생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데, 이왕이면 빨리 인내심을 기르는 편이 확실히 자신에게 좋다. 조선에서 여행을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선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내버려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재촉하고 닦달해봤자 아무런 변화 없이 느린 그대로일 것이며, 그들이 당신을 덜 사랑하게 할 뿐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렇게까지 느려터진 나라가 빨리 하라는 의미의 말은 엄청많다는 것이다. Ossa, quippe, ullin, soki, balli, patpi, chiksi, chankam, soupki, nalli, nankum(원문표현; 어서, 급해, 얼른, 속히, 빨리, 바삐, 즉시, 잠깐, 쉽게, 날래, 냉큼)등은 우리가 매일 듣고 말하는 수 많은 말들 중 일부일 뿐이었다. - P102

조선의 옷가지들 중 가장 황당한 것은 바로 바지였는데, 입고 있을 때는 뭐 그렇게까지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빨아 넣어놓은 그 바지의 라인을 보고 있노라면 그 거대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조선 사람들이 입는 이 평범한 바지의 폭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극동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불상을 덮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속옷으로 입혀도 될 정도였다. - P171

연날리기는 조선사람들이 특히 뛰어나게 잘하는 놀이인데, 새해 무렵 서울의 위쪽 하늘에서 떼를 이뤄 경쾌하게 춤을 추거나, 신기할 정도로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연들로 생기가 넘쳤다. 이들의 연은 날개나 꼬리 없이 네모난 조그마한 것이었는데, 날아가는 모양을 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다. - P210

저녁이 되면 조선 사람들은 Angwangi(원문표현; 야광귀)라고 부르는 산타클로스를 막기 위해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 양광이는 저 하늘 위에 살면서 새해 선물을 가져간다는 늙은이다. 동방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조선 사람들은 신발을 문 밖에 벗어두는데, 새해로 넘어가는 그믐날 밤 양광이가 내려와 자기가 다녀간다는 기념으로 신발을 신고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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