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시간의 힘을 빌어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잊혀졌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잊어버렸을까?
내가 잊어버린 그 이름들이, 그때의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이름들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다.

저는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호명하려다 끝내 잘못 부른 이름도 적지 않고요.
이 책에는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실패한 시간과
드물가 만난 눈부신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그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여기 적습니다.
지금도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들으면, 열다섯,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잔뜩 난 내 얼굴과 교실 바닥을 비질하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이따금 내 뒤에 다가와 제 키를 재어보고 좋아했던, 이제는 피곤한 얼굴의 도시 노동자가 되어 있을 한 남자아이도. 그 애도 이제는 나처럼 예전보다 모든 일에 재미를 덜 느끼고 또 덜 놀라는 어른이 돼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 시절 행복했니? 물으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라고 대답할 것맡 같지만. - P23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기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 P133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 P252
우리가 본 것과 같은 걸 아이들이 봤다. 배 안에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걸. 다투어 생명을 지켜야 할 시간에 권리를 외치고 이익을 도모한 모습을. 그 ‘도모’를 가능하게 한 이 세계의 끔찍한 논리를. 아이들‘도’ 봤다. 어른들이 있는데서도, 없는 데서도. 그리고 자신들의 본 것의 의미를 알았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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