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난 그 어떤 사학자, 교수님들보다 박종인 기자님의 기록들이 더 맘에 와닿는다. 그리고 나의 여행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 역사가 담겨있는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으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역사, 그 지명이 남아있는 유래, 이 땅에서 살았던 촌부들의 이야기...... 겉으로 나와 있는 역사가 아닌, 속에 감춰져있는 역사를 이렇게 알려준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찬란한 5000년 역사만 알고 있는 우리를 위해 책을 썼다. 역사는 입체적이어서, 찬란하지만도 않고 추잡하지만도 않다. 그 빛과 어둠이 합쳐서 만든 역사 위에 우리가 산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런 역사를 만들 것이다.

위대한 배달민족이 남긴 찬란한 역사만을 알고 있는 분들은 심호흡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기 바란다. 소인배의 행태에 분노하다가 대인들이 행한 덕행에 위로받기 바란다. 역사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다. 이 땅에는 그 역사가 온전하게 남아있다. 땅의 역사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신채호 <1925/1/2 동아일보 - 낭객의 신년만필>

※1910년 10월 일본에 의해 조선의 귀족 된 양반※



1. 후작: 이재완, 이재각, 이해창, 이해승, 윤택영, 박영효

2. 백작: 이지용, 민영린, 이완용(을사오적)

3. 자작: 이완용(위와 동명이인), 이기용, 박제순, 고영희, 조증응 등등

당신들은 조선에서 13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조선에서 잡초제거, 뗄감 베어오기, 양반집 구경거리,

그리고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것이 전부였소

그냥 관광객 모으려고 근사하게 나제통문이라고

내가 이름 붙인거지. (중략)

그런데 역사로 기록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군청에 가서 이야기했지, 이건 잘못된거라고

그랬더니 이러더라고 ?

알지만 관광이에요. 여기가 경상도에서는 수학여행길이에요.

백제를 평정할때 김유신이 여기로 지나갔다고 해야지요.

여기를 1925년도에 뚫었다고 하면 안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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