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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인턴
나카야마 유지로 지음, 오승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평점 :
요새 유일하게 본방사수 하는 드라마는 tvN에서 방영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동갑내기 5인방, 99즈도 참 매력넘치고 좋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들 밑에 있는 전공의들에게 눈길이 갔다. 간담췌웨과의 장겨울, 흉부외과의 도재학, 산부인과의 추민하, 신경외과의 용석민/안치홍/허선빈. 이 여섯명의 전공의들의 생활을 보면서, 이들이야 말로 정말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었다. 헌데 꼭 이들의 뒷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바로 이 리뷰의 주인공인 「울지마 인턴」.
그동안 읽었던 의학관련 책이라고는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밖에 없었다. 슬의의 99즈처럼 초보 의사가 아닌, 숙련된 의사였던 이국종 교수님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보의사의 이야기는 슬의를 보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한 정도랄까? 그랬는데, 이 책 덕분에 모든 의사들은 초보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들이 진정한 의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고 성장통을 겪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가고시마에서 태어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아메노 류지.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진학했고, 의사면허를 취득하여, 도쿄에 있는 종합병원에 들어가 이제 겨우 외과 인턴 1년차였다. 매번 병원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언제나 당직당직당직. 피곤할게 자명한 일인데도, 그는 ‘의사’라는 직업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고, 하루 빨리 ‘진짜 의사’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류지는 의사를 선망하던 사람들이 한번 쯤은 생각해봤을, 그런 관념? 정의감? 에 투철한 초보 의사였다.
그러니까 그의 생존은 종료되어도 된다? 의료비가 전액 무료인 기초생활수급과 관련이 있는걸까? 아니, 수술을 하면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테고 적어도 입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는 될것이다. 전혀 수를 쓰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수술을 하는게 옳은지, 안 하는게 옳은지. 단지 수명을 연장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수술하는 게 맞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본다면 어떨까. 수술을 해서 그의 생명이 연장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회 전체로 보면 부담만 증가할뿐일까. p 065
가족이 없는 94세 치매에 걸린 암환자였다. 류지는 이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병원 차원에서는 수술이 아닌 완화의료를 하는 걸로 결정했다. 류지는 이런 결정을 한 병원이 환자를 꼭 돈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정말 못마땅했다. 하지만 조금 숙련된 의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환자는 오래 살 만큼 살았고, 지병까지 앓고 있는 상태라 수술자체가 위험하며, 입원비랑 수술비 몇십만 엔을 세금으로 부담하면서까지 치료를 해야하는가. 더군다나 수술로 생명을 연장시킨다면 본인과 가족이 행복해야하는데, 이 노인이 수술을 받아 생명이 연장된다면 대체 누가 행복해지는가?
의사라고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류지는 의사라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사였다. 하지만 병원측은 류지와 달랐고, 류지는 이러한 병원측 의견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끝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류지의 말도 맞지만, 숙련된 의사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뭐라고 해야할까? 의사는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다. 살려낸 환자가 행복하리란 보장도 없다. 의사가 신은 아니니까. 어쩌면 류지의 생각은 초보의사들이 겪은 흔한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아니, 무엇보다 이런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나중에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환자를 위한 좋은 의사가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류지가 맡은 또 다른 환자,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아이 다쿠마가 있다.
의학적으로 얕은 진정상태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류지도 그건 알고 있엇다. 그럼에도 류지는 아이에게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꼈다. 류지 혼자서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 작은 인간을 류지는 어떻게든 살려내고 싶었다. p 035
의학드라마를 보다보면, 의사들이 의사가 된 동기 대부분은 과거에 환자의 가족이었던 경우가 태반이었다. 류지 역시 그랬다. 어린시절 갑자기 쓰러진 형을 보았고, 그렇게 형을 떠나보냈다. 본인은 기억하지 않으려 했겠지만, 류지는 의대에 진학했고 의사가 되었다. 그런 류지 앞에 나타난, 혼수상태에 빠진 다쿠마는 류지에겐 특별했다. 류지는 다쿠마를 통해서 어린시절의 형을 보았다. 형은 떠나보냈지만, 이번 만큼은 살려내려고 했고, 그래서 다쿠마의 병실을 매일매일 찾아갔다. 인턴이 해야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류지에게 다쿠마는 특별한 환자였다.
‘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
그런 생각이 들자 류지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 그런 감사의 말을 들을 만한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하루라도 빨리, 빨리, 빨리. 의사로서 성장해야만 한다. p 084
다쿠마의 응급 수술 때, 류지는 제2 어시스트로 참여했다. 수술 집도는 다른 숙련된 의사가 했지만, 적어도 류지는 다쿠마의 수술을 끝까지 지켜봤고 도왔다. 그리고 하루 24시간, 발이 닳도록 다쿠마 병실을 드나들었다. 그럼에도 다쿠마의 아버지에게 감사인사를 듣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적어도 류지는 경험은 부족한 초보 의사지만, 마음가짐 만큼은 이미 숙련된 의사 그 자체라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의사로 일하고 있다. 틀림없이 난 이 심야의 도시를, 지친 몸으로 쓰러지듯 잠들어버린 어른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지키고 있다. 과연 잘 해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고 아는 것도 없지만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이 배워서 인턴 생활을 잘 완수해내고 말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상관없다. 사토 선배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더 친절한 의사가 되고 말것이다. p 118
지난 몇 달간 인턴 생활을 하면서 류지 내면에는 주어진 일을 100% 지시대로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p 142
그저 인턴이었던 류지는, 어린 환자 다쿠마를 통해 트라우마로 남았던 형의 죽음을 이겨냈다. 죽음을 기다리는 치매노인을 만나고, 동갑 내기 말기암 환자를 만나면서 ‘의사로서’ 또 한뼘 성장했다.

환자의 눈 높이에 맞추고, 오롯이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 아직은 초보의사지만 류지는 이미 ‘진짜 의사’다. 세상 모든 의사들이 류지와 같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