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빵빵한 날들
민승지 지음 / 레몬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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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조금은 무거운 책들만 읽다가, 오랜만에 손 가볍고 마음 가볍게 에세이를 ☆PICK ★ 


다만....다만.... 손 가볍고, 마음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왜 내 위장은 무거워졌나! 마성의 펭수빵에 사로잡혔다가 겨우 빠져나왔는데 흑흑흑. 이 책 덕분에 다시 빵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표지부터 빵집이라 ‘달달한 에세이’라는 것을 각오하고, 책장을 넘겼는데. 왠걸! 차례부터 빵이라니! 심지어 종류별로 ? 거기다 맛있어보여!!


잠시 빵순이를 내려놨던 내 자신을 혼내고 싶을 정도로 빵 천국이라서, 나는 오늘도 빵을 먹어버렸다.......햄버거로 데헷★


그런데 뭐라고 해야할까, 이 책은 그저 달달한 에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보다. 작가의 말에서도 나와있듯,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전부 빵집에서 만난 빵을 보며 사람사는 달콤쌉싸름은 향을 맡은 작가가, 빵을 또 다른 ‘나’로 빗대어 한편한편 담담하게 써내린 글이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해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빵 쪼가리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더 이상 말랑거리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요즘에서야 깨닫는다. p 029



‘더 이상 말랑거리지 않는다’완전 극공감인 문장이다. 분명 난 남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했다. 조금만 슬퍼도 울고, 조금만 웃겨도 웃고, 가끔은 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감정변화가 격했다. 아? 이건 감수성과는 다른 장르인가(...) 뭐 여튼! 꽃밭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꽃 선물을 받고싶고, 감성있는 카페도 가고 싶고 막 그랬었다. 그런데 왠걸, 지금의 나를 보면 음...뭐랄까, 많이 메말랐다. 말랑말랑했던 마음이 딱딱해졌다.


요즘은 신랑한테도, 엄마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넌 감성이 너무 없어!’ 라고. 그도 그럴것이 꽃다발을 보면 ‘왜 저런데 돈낭비를?’이라거나, 인스타감성에 젖은 카페들을 보면 ‘저렇게 외관에 신경쓸 시간이 커피나 더 맛있게 내리지’ 라거나. 아, 내가 생각해도 조금 메말라보이긴 한다. 분명 예전엔 자타공인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였는데! 언제부터 내 감수성이 이렇게 메마르고, 말랑말랑 했던 마음이 딱딱해졌을까.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10여년에 걸친 사회생활 때문인가. 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말랑말랑한 마음은 언제나 이용당하고, 호구가 되기 쉽상이었다. 그래서 나를 보호하기위해 조금씩 조금씩 나를 다잡는 연습을 했는데, 왠걸. 나를 보호하려고 한 행동이, 내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었나보다. 아..... 가엾은 내 마음.



-언니와 아빠는 사실 많이 닮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굽히지 않는 점, 

무언가 일을 시작할 때 굉장히 요란하다는 점, 생김새 등등. 

사실 ‘닮은 그 부분’이 발단이 되어 서로 부딪힌다. p 084



나는 엄마와 참 많이 닮았다. 나는 아빠와 참 많이 닮았다. 외형은 엄마 판박이고, 내형은 아빠 판박이다(내 동생은 외형이 아빠 판박이고, 내형이 엄마 판박이다 ㅋㅋ). 누가 뭐래도, 어딜봐도, 외국에 던져놔도 엄마아빠의 딸이다. 정말 너무 많이 닮았기에, 참 부딪히는 부분도 많긴 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내지르면 엄마, 아빠가 참아주는 편이었지만. 특히 아빠는 본인이 나서면 더욱 일이 커질 거라는 걸 알았기에 더 참으셨을 것이다.


중학생때였나? 아빠랑 정말 크게 부딪혔던 적이 있다. 그리고 장장 일주일이었나, 한달이었나 서로 대화를 안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불같은 아빠성미나, 아빠를 똑 닮은 불같은 내 성미나 도찐개찐이었다(정말 똑같은 부녀!). 얼마나 똑같았으면, 한 집에 살면서 대화를 안하는 지경까지? 그 사이에 있던 우리 엄마는 얼마나 맘 고생했을지, 에휴. 지금이야 내가 아빠 성격과 아주 똑같다는 사실을 아는지라, 서로 반대되는 생각을 갖는 주제는 아예 대화에 꺼내지 않는다. 예컨데 정치같은 것(경험상...가족끼리라도 정치/종교는 건들면 안된다)! 그 외의 대화라면 아빠와 내 의견은 언제나 일치. 가끔은 아빠랑 편먹기도 하고. 


난 아빠랑 닮았기 때문에, 이 험난한 세상을 나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내가 되었다고 언제나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포켓몬 빵이 한창 유행을 했었다. 

빵보다도 빵 안에 든 포켓 몬스터 스티커 띠부띠부실을 모으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띠부띠부실을 종류별로 수집해서 많이 모을수록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래서 같은 스티커가 나오면 꽤 실망을 하며 빵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p 117



와, 이 책의 저자는 나와 동년배인가보다ㅋㅋㅋㅋ. 포켓몬 띠부띠부씰이라니!!! 이 책을 몇달 전에 읽었다면, ‘와 정말 추억돋는다’라고 했을텐데, 아주 소름돋게도 지금 나에게 이 상황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가 되었다. 펭수 띠부띠부실이 있는 펭수빵이 나오기 전까지만해도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콧물 질질흘리며 초등학교를 다닐 때 였다. 너나할것없이 포켓몬 띠부띠부실을 모으기 위해 매일 슈퍼에 발도장을 찍었다. 당시 선호하던 포켓몬 빵은 (아마도 저렇게 고오스가 그려져있던)초코롤이었다. 그 외 포켓몬 빵은 내 입에는 완전 별로! 하지만 띠부띠부실을 모아야 한다는 특명아래 안먹는 포켓몬빵까지 매일매일 쓸어왔다. 포켓몬빵 출시 초기에는 비닐을 쫙쫙 잡아당겨서, 어떤 띠부띠부실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사기도 했었는데! 이런 꼼수는 금방 들통나고, 띠부띠부실과 빵포장은 더욱 철저해졌다. 진짜 포켓몬 빵을 얼마나 많이 샀는지! 그 많은 포켓몬 빵 중 내가 직접 먹은건 반도 안되겠지만ㅋㅋ. 초코롤을 제외한 나머지 빵은 반 친구들 주거나, 가족들 주거나. 진짜 그때만큼은 내가 정말 모든걸 다 퍼주는 착한 사람이구나 했다ㅋㅋㅋ. 정말 생각만해도 즐거운 추억이었는데.



하.....그런데, 이 짓을 지금 또 하고있다. 심지어 이번에는 펭수 띠부띠부실도 모으면서, 빵도 사는 족족 먹고 있다. 나이들며 내 입맛이 달라진건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맛없던 공장빵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덕분에 펭수빵을 종류별로 다 먹고, 펭수 띠부띠부실을 모은다고 또 먹고, 계속 먹고 미친듯이 먹고 그러다가 펭수몸매가 되고, 하...ㅠㅠㅠㅠㅠㅠㅠ 



기술이 발전한건지, 요새는 공장빵도 정말 맛있게 잘 나와서 입은 행복한데, 내 위장은 슬..프....다.........ㅠ0ㅠ



와, 그저 가볍고 달콤한 에세이를 읽는거라 생각했는데! 읽고보니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내가 살아온 삶은, 아니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은 달콤쌉사름한 빵같은 삶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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