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은 모섬이 없어 각각의 독립적인 섬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그래서 여행자들도 신안에 왔지만 대체 어디가 신안인 지 알수 없다. 신안에 왔으나 신안니 아니라 압해도나 암태도 흑산도나 홍도, 증도 같은 개별 섬들과 마주하게 된다. 신안의 실체는 대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여행자들은 신안을 다녀간 뒤에도 신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저 가거도, 임자, 하의도 같은 고유한 섬들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신안이 아니라 개별 섬에 다녀 온 것이다. 신안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안 여행자는 물론이가 신안 주민들조차도 신안을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 P3

신안의 모태인 압해도는 그 이름처럼 바다를 재패한 섬이었다. 압해도 해상 세력의 수장은 후삼국시대에 고려 왕건과 끝까지 맞섰던 능창 장군이다. 후삼국시대 서남해 해상을 재패했던 능창은 수전에 능해 수달장군으로 불렸다. 신라시대 말 동아시아의 해상황 장보고의 암살 후 해상세력은 소멸된 듯 보였다. 하지만 50여 년 뒤 능창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장보고 암살 후에도 해상 세력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P 026 - P26

조선시대에는 동서남대 배부분의 섬에서 거주를 금하는 공도정책을 시행했다. 섬에 들어가 사는 이들은 반역의 죄로 다스렸으니, 섬에 사는 사람이 죄인인 시대였다. 이 무렵 신안의 섬들도 사람의 거주가 금지됐다. 신안 섬에 거주가 다시 허락된 것은 임진왜란 무렵이다. (중략) 공도정책이 섬의 역사마저 단절시켰다. P 030 - P30

특혜커녕 오히려 하의도 사람들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재직 시절 하의도를 위해 해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의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새삼 김대중 대통령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어난 고향이라고 특혜를 주지도 않고 또 고향이 아니라 해서 차별하지도 않은 공명정대함. 대통령은 결코 어느 특정 지역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기에 당연한 이야기다. P 104 - P104

유명세를 가장 크게 탄 곳은 드라마 ‘봄의 왈츠’촬영지였던 하누넘 해변이다.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하트해변으로도 불리는데 연인이나 부부가 하누넘에 가면 헤어지지 않고 ‘영원히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P 147 - P147

흑산도는 홍어의 섬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삭힌 홍어는 흑산도 고유의 음식이 아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는 삭힌 홍어를 팔지만 흑산도 사람들은 정작 삭힌 홍어를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싱싱하고 찰진 생홍어를 주로 먹는다. 『자산어보』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나주 영산포가 삭힌홍어의 원류다. P 190 - P190

흑산도는 잠깐 들렀다 가기는 아까운 섬이다. 적어도 『자산어보』의 산실인 사리마을 사촌성당에서 하루쯤 소요하거나 걸어서 여행해야 흑산도의 깊은 맛을 알 수 있다. 사촌성당은 흑산도 유배살이 중이던 손암 정약전이 아이들을 훈육하기 위해 설립한 성당이자 조선시대 최고의 어류 도감인 『자산어보』의 산실이다. P 192 - P192

나는 어보를 만들려는 생각으로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보았다. 그러나 사람마다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창대라는 소년을 만났다. 차대는 즐 집안에 틀어박혀 손님들을 거절하면서 고서를 탐독했다. 나는 마침내 이 소년을 맞아들여 함꼐 묵으며 물고기 연구를 시작했다. - 정약전 『자산어보』 서문에서, P 245 - P245

신안 대둔도에는 창대의 묘지도 남아있고 그의 후손들도 살고 있다. P 247 - P247

두사춘으로도 불리는 두사충은 실존인물이다. 물론 자은도에 전해지는 이야기 속 두사충과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건너왔다는 점에서는 같은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중략) 우연히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읽다가 그 실마리를 찾았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한음 이덕형의 묏자리를 두사충이 점지했다는 대목이었다. P 052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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