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큰 사고 없이 잘 살아가는게 효도라고 생각하는 못난 딸이다. 그저 내 할 몫을 다하고, 엄마 아빠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20대 중후반 언저리에 급 결혼한다고 부모님께 이야기 했었다. 거의 통보나 다름 없었다. 거기다 내 결혼에 대해 일체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내 돈으로만 진행할 거라고 통보했다. 난 내일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는 것이 당연히 효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애교넘치는 성격도 못되었고, 낯간지러운 말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엄마에게,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아직까지도 말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내 모습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냥...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곳을 갈 때 엄마, 아빠와 같이 가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이런 일상을 조금 더 많이, 그리고 같이 보내야지.

"엄마와 내가 병실에서 계속 기다려온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경험이었습니다." - P5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부모와 이별하는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내 경우엔 서른세 살때였습니다.

우리 엄마만큼은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그날이 올 때 까지도 굳게 믿었지만…

엄마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 P12

"아직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이 지는데도

꽤 오래전에 해지한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아직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이면 참 자주 전화하셨었는데 ….



이제는 압니다.

한밤중에 계속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늦게까지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도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그런 엄마의 번호이기에

나는 평생 지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 - P17

"지뢰 같은 추억"

내가 자란 이 동네에는

여기저기에 지뢰처럼 추억이 묻혀있는데,

그건 가까운 마트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 지뢰는 가차 없이 나를 덮쳐왔습니다.

건강하던 시절의 엄마 곁에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어린 내가 있었습니다.

그때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앞으로 다시 찾아오는 일이 있을까요.

"1주기"

엄마의 1주기는 남겨진 사람들이

제각기 1년이라는 ‘세월의 약’의 효과를

확인하는 자리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1주기는

엄마가 추억이 되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 P1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