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김효진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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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일본은 어려서부터 친숙했고, 일본어도 꽤 익숙하게 할 정도로 친근한 나라다. 하지만 친근해질수록, 그들의 뉴스를 보고, 그들의 책을 볼수록 나는 그만큼 일본을 미워한다. 어려서부터 일본문화에 친숙했던 만큼, 난 우리나라 역사도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내 마음속에는.. 뭐라고 해야할까? 일본이란 나라는, 나에게 애증 그 자체였다.




일본 만화를 좋아했고, 일본 성우를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그릇된 역사관이 담긴 일본 만화를 보면 정말 욕이란 욕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 만화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싫었고, 그 만화에서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들이 싫었다. 하지만 제일 싫은 건 그러면서도 그걸 보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이렇게, 내 학창시절부터 일본에 대한 상반된 마음은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꽤 오랫동안 이어졌더랬다. 그러다 내 취미생활이 완전 바뀌면서, 일본 문화에서 떨어져나오면서 그나마 마음의 무게를 덜었달까?




1) 대중문화편:오타쿠로 들여다보는 일본의 마음

2) 사상편:반일과 혐한의 뿌리를 해결할 실마리

3) 미디어편:보수화하는 사회와, 이에 대항하는 시민들

4) 역사편:복잡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5) 정치편:우경화되는 일본과 헌법의 상관관계

6) 문학편:가와바타 야스나리로 본 일본의 미와 전쟁



이 책은 총 6가지의 주제로, 6명의 저자가 글을 썼다.



이 6가지 주제, 나에게 그리 먼 주제는 아니다. 어려서부터 꽤 오랫동안 일본 대중문화를 접했다. 일본문학은 지금까지도 꽤 자주 읽는다. 우리집 책장에 일본 원서가, 그것도 꽤 많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거기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정확히는 한국사지만), 일본사도 일반인보다는 나름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이래뵈도 일본학을 전공했었으니까. 거기다 지금까지도 일본 tv채널 NHK에서 다큐와 뉴스는 꾸준히 보고 있기도 하고(보는 내내 욕하는게 다반사지만).



-오타쿠를 보면 현대 일본이 보인다.

우선 1960년대생이 중심인 오타쿠 1세대는 일반적으로 에스에프테 관심이 많고 당시 성장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향유한 세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주전함 야마토》와 《마징가Z》등을 들 수 있다. 1970년대생이 주축인 오타쿠 2세대는 1980년대 거품경제의 수혜를 받은 출판업계와 관련 연상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 등장한 사람들이다.《기동전사 건담》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전뿐 아니라 이 당시 발전한 게임기와 게임산업을 향유했고,《주간 소년 점프》등 일본만화의 전성기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1980년대생이 주류인 오타쿠 3세대는 거품경제의 붕괴를 청소년기에 직접 겪은 세대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상징하는 암울한 미래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상실한 오타쿠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사회, 문화 비평의 대상이 되는 등, 주류사회에서 오타쿠 문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P 036 ~ 037



일본정부는 기존의 전통문화 중심의 이미지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세계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오타쿠 콘텐츠 및 캐릭터 산업을 일본의 대외전략 및 산업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런 흐름의 결과, 일본을 대표하는 오래된 만화 캐릭터인 도라에몽이 명예 외교대사로 임명되는 등, 현재까지 쿨재팬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P 044




과거 ‘오타쿠’라는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각종 대중매체에서 이들을 표현한 모습은 대체로 부정적이었기에.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사회성 제로의 인간,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사로잡힌 인간, 말투가 이상한 인간, 대중매체에서 그린 오타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일본은 정상에서 벗어나는 범주, 그러니까 자기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 배척을 한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오타쿠 역시 그들이 말하는 정상인 기준에서는 벗어났기에, 일본에서 오타쿠는 그저 사회 부적응자였다. 그런데, 달라졌다. 그렇게 오타쿠를 배척하던 일본이 달라졌다.



거품경제가 무너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바로 이때 일본은 오타쿠 문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타쿠 문화가 일본의 경제를 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은 변했다. 그동안 배척했던 오타쿠들을 포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전략적으로 오타쿠 문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 국민의 오타쿠화랄까? 2D 애니메이션을 각종 산업정책과 콜라보하여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오, 지역 아이돌을 만들어 아이돌 오타쿠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일명 쿨재팬이다. 영국의 쿨브리타니아를 모방한 쿨재팬. 사족이지만, 여기서조차 영국을 선망하는 일본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은 일본보다는 조금 늦긴 했지만, 한일교류가 시작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타쿠’가 생겨났다. 초기 일본에서도 그렇듯, 우리나라도 오타쿠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변했다. 지금 한국에는 오타쿠가 없다. 어덕행덕을 지향하는 ‘오덕후’가 있을 뿐이다.



분명 오타쿠 문화는 일본에서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의 오타쿠와 한국의 오덕후는 다르다. 한국의 오덕후는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만 빠진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장르불문하고 어느 한 장르에 푹 빠져서, 그에 대해 준전문가가 된 사람들을 지칭하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뮤덕,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밀덕, 역사를 좋아하는 역덕 등등등. 어떤 하나의 일을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하는 행위를 덕질이라 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덕업일치’라는 말이 등장했을까. 이제는 덕질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덕질은 인생의 활력소가 되었다.



-난감한 이웃 일본, 증오의 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순

반일과 혐한은 서로를 ‘상식과 도덕’이 결여한 집단, 소통이 불가능한 무뢰한으로 취급하지만, 서로를 미워하는 에너지는 같은 주파수에서 나온다. 그들 모두가 정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국가/국민/민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이기심과 편파적인 의견을 숭고한 애국심으로 포장한다. P 096



역사인식 부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 보수정치인들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 넷우익이나 재특회 등 우리가 ‘일본시민사회’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개 우경화하는 일본정치를 직접 투영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언론 탓만도 아니다 .이러한 정치영역과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우경화 경향에 비판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사회의 대응은 일본 주류 미디어에서도 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P 107



실제로 일본의 사회운동단체와 지식인은 정치인의 망언이나 보수정권의 미디어 장악 시도, 극우단체의 혐오발언과 혐오범죄를 규탄하고 시정을 욕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공중파 방송에서 이들의 요구나 활동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방송은 사회적 파급력이 크고 즉각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여타 매체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P 120



사상&미디어편을 읽으면서 참으로 조소가 일었다. 일본의 언론통제,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유사민주주의) 등등 전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문자로 읽으니 뭐라고 해야할지. 참 얘들도 답이 없구나 싶었다. 물론 걔중에는 한국에 남아있는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과 연대하여 사회운동을 하고,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사회운동을 하는 깨어있는 일본 지식인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주류 방송에서는 아무리 봐도 찾아볼 수가 없고, 끽해야 한국에서 만든 다큐정도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의 언론통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일본 NHK뉴스만 봐도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 뉴스와 비교하면 더욱 그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뉴스라면 공중파든 종편이든, 각종 정치권의 이야기를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암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국민이라도, 어느 당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망언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고, 어느 당에서 어떤 사람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고,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뉴스는 그런게 없다. 그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를 알리는데 급급하다. 더욱 놀라운건 어떤 사건, 사고의 용의자가 특정된 경우 그 용의자의 초등학교 동창까지 찾아내어 인터뷰 한 것을 보여준다는 점. 이런 사건, 사고 다음으로 뉴스에서 자주 내보내는게 바로 북한 이야기다. 예전엔 우리나라 자칭 보수인 사람들을 보면서 북한 없었으면 저들은 뭘로 정치했을까 싶었는데, 요 몇년간 일본 뉴스를 보면서 느낀건. 일본이야말로 북한이 없으면 정치가 안돌아가는 나라였다. 우리나라 자칭 보수보다 북한을 사랑하는게 일본이 아닌가 싶을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의 자칭보수들이 만들어난 가짜뉴스를 진짜인마냥 일본 뉴스에서 보여준다는 점이랄까 ^^..



이런 일본 뉴스를 보자면, 아 일본국민들이 왜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TV를 틀었을 때, 국회에서 몸싸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니. 일본 국민들은 지네 정치인들이 정치를 못하면, 욕을 할 수 있는 권리조차 빼앗긴거나 마찬가지였다. 뭐 물론, 그런 권리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긴 하다. 우리나라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진짜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일본은 지들이 전쟁을 일으켜 발광하다가, 미국에게 원자폭탄 맞고 깨갱한 상태에서 미국에게 받은 (유사)민주주의일 뿐이니까.



아니 근데 또 일본 국민에게 정치 무지를 주도하는 일본 정부만 비난할 수도 없는게, 우리나라 역시 언론이 통제되던 군사독재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들고 일어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학살되면서도 계속 투쟁했다. 그렇다는 건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정치를 알려고 하지 않은 일본 국민도 문제가 있는 건 매한가지라는 사실.



여담이지만 일본 극우보수이자 대표적으로 혐한을 외치는 넷우익은 오롯이 자국이 위대하다는 입장하에 혐한을 외치기에, 비슷한 의미로 본다면 우리나라 넷우익이 반일을 외치며 우리나라 정부가 위대하다고 해야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넷우익은 자국을 욕하고 친일을 외친다는점. 참 이상할따름..




-이토록 낯선 일본의 역사

대게 하나의 왕조는 200년에서 300년에 한 번씩 바뀐다든가, 사서오경을 열심히 공부한 지식인들이 권력을 쥐고 통치하는 등, 우리 역사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일본역사에서는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년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린다든가, 지식인이 아닌 칼을 찬 무사가 다스리는 시대를 상상하기 쉽지 않고, 그러한 존재들로 이루어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당연히 더더욱 쉽지 않다. P 146



센고쿠시대란 종래의 중앙권력이 약화되어 붕괴해가자, 전국각지에 통치를 위임받고 있던 지방 영주들이 각자 세력을 키워가며 서로 충돌했던,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에 이르는 약 150년 동안의 시기다. P 148



막부로서는 250여 개의 번 사이에 평화를 위한 세력균형이 꺠지는 일이 없도록, 혹은 막부의 권위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고안된 법이 바로 무가제법도, 즉 다이묘를 포함한 무사들이 지켜야 할 내용을 규정한 법이었다. P 165



근대 이래 끊임없이 서양과 비교하고 서양을 따라잡으려 했던 열등감과 욕망, 모든 어려움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이웃침략으로 해결하려던 이기적인 선택등이 이어져, 근대 일본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P 188



내 개인적으로 일본 역사는 한,일이 교류했던 고대사가 제일 좋다. 마음도 편하고 말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뭐, 일본의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건 아무래도 전국시대가 아닐까 싶다. 무로마치 막부가 무너지고(무너졌다고 하는게 맞긴 맞나...), 각 지역에서 여러 장수들이 나타나 서로 땅따먹기를 하던 그 때. 오나 노부다가가 나타나 전국시대를 평정할.....뻔 했으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죽자 재빠르게 오다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나타난 도요토미 히데요시. 하지만 도요토미의 잘못된 선택, 임진왜란으로 인해 도요토미 병력도 거의 죽거나 사라졌고. 결국 마지막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지 않았던, 에도에 있던 인대의 대명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재패(TMI, 요새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읽는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 즉 임진왜란을 일으킬 생각만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일본의 전국시대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삼국지나 초한지처럼 흥미로운 영웅들이 이야깃거리로 읽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요토미는 조선 정벌을 선택했고,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심지어 당시 조선의 왕은 자기 안위만 생각하던 쓰레기, 휴. 이순신 장군님이 아니었으면 어휴. 이래저래 참 박자가 안맞아도 너무 안맞았다. 도요토미가 일본 내에서 병력을 안정시키고, 외교 등을 통해 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한일역사관계가 조금은 변했을지도.



일본이 임진왜란/정유재란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조선을 초토화시켰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근데 또 점령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근대 일본에서 ‘정한론’이 대두되기 쉬웠던게 아닐까? 잘못된 선택 하나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결국 작금의 한일관계는 잘못된 선택들이 끊임없이 맞물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가 백날 일본을 욕한다 한들, 일본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이 백날 한국을 욕한다 한들 일본 역시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로가 반일, 혐한을 앞세워 날을 세울 수도 없다. 그래도 이 관계를 풀려고 한다면, 역시나 일본의 자세가 관건이 아닐까?



과거에 자국민을 등지면서까지, 일본에 많은 명분을 퍼주었던 전직 부녀대통령 정권, 그 때 일본이 받은 만큼 뭔가를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일본을 욕하는 경지까지 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동일본대지진이 터졌을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많은 기부금을 보내줬을 때도 일본은 쌩깠다. 뉴스에서도 감사의 말한마디가 없었다. 100년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이 조선인 수백만명 학살을 했음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일본을 돕고자 그 많은 기부금을 보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더이상 우리가 일본을 상대로 무언가를 퍼주거나 하는 건 절대 원하지 않는다. 이제 한일관계가 풀어지는 방법은 단 하나, 일본이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오직 그거 하나 뿐이다. 일본이 자국의 학생들에게, 동아시아 침략사를 A to Z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그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근대화유산이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민들을 강제동원해서 운영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그 뿐이다.



언제쯤 그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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