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내 머릿 속에 떠오른 페미니즘은 적어도 이 책에서 나온 여성들이 외치는 그런 부분은 아닌 듯하다. 서로 간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태도, 그러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진짜 페미니즘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라고 생겨난 단어는 아닐진데 말이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속에서 정리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었다.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휴머니즘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사회 말이다.

세연은 진경을 보며, 정말 남자라는 족속은 왜 이렇게 내 친구를 피곤하게 할까, 생각했다. 너희들 때문에 진경이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잖아. 그리고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왜 저렇게 남자가 없으면 못사는거야, 창피하게. 언젠가부터 세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중략) 하지만 세연은 진경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섭섭하고 무시당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진경을 좋아했고, 경외심을 품고 진경이 읽는 책들과 쓰는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중략) 세연은 진경을 동경하면서 남몰래 미워했다. P 134~137 - P134

네가 전에 말했었잖아. 여자들 사이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너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너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놀랐어. 그날 집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들을 찾아보았어. 그 말들에 대해 내가 반발심이나 슬픔이나 분노나, 혹은 어떤 사람들처럼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너는 놀았을지도 모르겠어. 그것에 대해 무엇을 느낄 만한 자리 자체가 내 삶에 없다는 걸 네가 이애하게 되면 더 놀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도 도저히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P065 - P65

때로는 내가 아주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단지 수천 수만개의 비뚤어진 잣대들을 뭉쳐놓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말을 잘 못하곘어, 진경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삶을 사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겁이나서,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그립고, 기분지 좋으면서 두려워. 내가 너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는데. P 164 - P164

작가는 그렇게 나이 든 페미니스트와 젊은 페미니스트를 각각 ‘영악한 여자 꼰대/분노하는 천방지축 어린애’로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문제삼는다. 그 프레임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중략) 그리고 이러한 ‘늙은 여성/젊은 여성’으로 대변되는 페미니즘 이분법의 프레임은 선악의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전화하면서 페미니즘을 ‘좋은 페미니즘/나쁜 페미니즘’. ‘진짜 페미니즘/가짜 페미니즘’으로 나누는 진풍명품쇼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도대체 좋은, 진짜 페미니즘은 어디에 있나. P 189~190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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