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호러소설’이지만, 호러소설이 아니다. 이 책의 장르나, 표지만 보고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분명 무서움을 조성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 책에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의 아픔’을 담담히 감내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내가 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는, 그 무언가를 마음 속에 남게 한 책이었다.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만날 수 없었던 것들 …….

심령현상에 시달리는 부부의 애달픈 ‘영혼 보고서’, 머리를 잃은 닭과 아름다운 소녀의 잔혹동화,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에게 찾아온 기묘한 이불,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저주에 빠진 세 여자, 잡음 사이로 띄엄띄엄 새어 나오는 그리운 목소리.

"모든 죽은 자들이 별처럼 반짝이며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 「아이의 얼굴」.



요시나가 가오루에게.

오랜만이야, 나 기억나? 고등학교 때 자주 같이 놀았던 유키에야 (중략) 하지만 네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쓰기로 했어. 꼭 알리고 싶은 게 있거든. 한편으로 너는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해. 만약 그렇다면 모르는 편이 낫겠지. 우리는 이쿠타메 요리코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어. 하지만 넌 조금 거리를 두었잖아.(중략) 내 아이를 죽인 후에야 두 사람도 그랬다는 걸 알았어. 요리코가 우리에게 복수하는 거겠지. 너희는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을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거야. 너도 우리랑 똑같은 일을 당할지도 몰라. 그럴까봐 걱정돼서 편지를 보낸다. - 후지야마 유키에



유키에는 내게 이렇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아기를 낳지마. 우리처럼 될지도 모르니까."

고개를 돌리자 고령자 운전 마크가 붙은 경승용차가 심상치 않은 속도로 후진하여 다가왔다. 타이어가 연석을 풀쩍 넘었다. 경승용차 뒤범퍼가 딸과 충돌하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며 딸을 밀쳐냈다. 병원에서 눈을 떳을 때 여기가 어디며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사고가 난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간호사를 불러 딸이 무사한지 물었다. 딸에게는 긁힌 상처 하나 없다는 설명을 듣고 안도했다. 그리고 안도감이 솟았다는 사실에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울었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네가 안 다쳐서 다행이야, 정말로."



"요리코"

그렇게 부르자 딸은 고개를 갸웃했다.

"평생 네게 애정을 쏟을게. 가엽게도 다른 세 사람은 그러지 못했지만 내가 걔들 몫까지 널 사랑할게"

딸은 놀란듯한 표정을 지엇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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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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