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4
전석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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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을 좋아한다. 그냥 여행이 아닌, 그 땅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여행을 좋아한다. 해서 내 여행에는 언제나 그 땅의 역사를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있었다. 때로는 책이 길라잡이가 되었고, 때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박종인 기자님이 그랬으며, TV에서 방영해주는 역사 다큐가 그랬다. 그런 나에게 또 하나의 길라잡이가 생겼다. 바로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춘천편 이다.



나에게 춘천은 많은 추억이 있는 도시다. 내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며, 우리 아빠가 태어난 도시이고, 우리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도시다. 뿐만아니라 주민등록초본에서 떡하니 보이는, 내 본적, 그 본적이 바로 여기, ‘춘천’이다(하지만 서울 태생이라는게 함정). 그래서 춘천은 나에게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가는, 그런 애틋한 도시다. 


춘천에 가면 어느 겨울에는 논에다 조성한 얼음 썰매장에서 아빠랑 동생이랑 신나게 놀았고, 어느 봄에는 큰아빠와 아빠 손을 잡고 동생과 함께 육림랜드를 갔다. 어느 여름 날에는 아빠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었고, 어느 가을 날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춘천인형극제를 보러 가기도 했다. 내 어린시절, 춘천은 이토록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다(물론 아픈 추억들도 있지만).


내 어린날을 가득 채운 춘천이었으나, 커가면서 점점 멀어졌다. 의식적으로 가지 않게된 것도 있었다. 분명 그 곳에는 할머니가 계시지만, 말 못할 가족사도 있고 하다보니 점점 발길이 닿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춘천이었다. 그랬었는데, 이 책 덕분에 저 밑바닥에 있던 춘천이 뭍으로 나왔다. 온갖 추억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어린날 내 추억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던 아빠의 추억도 같이 떠올랐다.


춘천이라는 도시는 나보다 우리 아빠에게 더욱 각인되어 있는 곳이다. 춘천은 여전히 아빠의 고향이면서, 아빠의 엄마가 살고 있다. 아빠를 힘들게 한 형제들도 그곳에 있으며, 아빠의 친구들도 춘천에 있다. 무엇보다 젊은 날 아빠가 모진 고생을 했던 그 곳 역시도 춘천이다.


오래전부터 닭갈비는 서민과 가까운 음식으로 싸고 푸짐했다. 1970년대 닭갈비는 1인분씩 팔지 않고 1대씩 팔았다. 닭갈비 1대 가격은 100원이었따. 1978년 삼양라면과 초코파이가 50원 이었고, 1979년 서울 지하철요금이 60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닭갈비는 갈비라는 이름치곤 무척 저렴한 편이었다. P 075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00m 남짓한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은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한자리에 있던 닭갈비집이 수두룩하다. 어지간하면 50년 전통이고 2대째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곳도 많다. P 079


아빠가 젊을 적 친구들과 자주 갔었다는 명동 닭갈비 골목. 수중에 돈이 별로 없어도, 닭갈비 만큼은 저렴하여 친구들과 함께 소주한잔을 하며 고된 하루를 달랬다고 했다. 물론 그 때와 조금은 달라진 모습인 명동 골목이지만,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명동 닭갈비 골목은 청춘들을 반겨준다. 


호반의 도시 춘천 답게 춘천에는 여러 댐이 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소양강변에 건립된 소양강 처녀상도 그렇고, 소양댐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댐 건설 이면에, 수 많은 마을들이 수몰되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암댐)수몰된 마을 중에는 우리 아빠가 나고 자란 곳도 있었다. 난 할머니 집이 있는 유포리가 아빠가 나고 자란 곳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댐의 크기만큼이나 수몰 규모도 컸다. 춘천시를 비롯한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수몰 지역이 생겼다. 6개 면, 38개리가 잠기는 바람에 이주한 주민만 해도 1만 8,000여 명에 이르렀고 수몰된 집과 건물도 4만 5,000여 채에 달했다. P 041


꽤 많은 곳을 놀러다니면서 의도치않게 댐공사로 인한 수몰지역도 갔었는데, 정작 아빠가 어릴적 살던 집이 수몰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그 마음이 참 미묘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저 강 바닥에 가라앉았을까? 하지만 가라앉은 추억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지금도 소양댐, 의암댐, 춘천댐 등 곳곳에서 새로운 추억이 피어나고 있다.


콧구멍다리 아래는 소양강댐의 차가운 물이 보여있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래서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겨울에는 빙어를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콧구멍다리를 찾았다. P 220


콧구멍 다리는 철거를 앞두고 있다. 낡은 다리 대신 소양7교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P 221


아빠의 어린날 추억이 저 강 아래에 있다면, 어린날 내 추억도 곧 사라질 듯 하다. 춘천 갈 때마다 아빠가 대려가줬던 콧구멍 다리, 겨울만 되면 빙어잡는 낚시꾼들이 즐비했던 그 다리가 철거된다고 한다. 이 곳에서 빙어를 처음 먹어봤었는데. 이렇게 어린 날의 내 추억이 어린 곳이 또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의 목적은 춘천을 알리기 위함도 있겠지만, 나처럼 사라져가는 추억을 대신 붙잡아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시기를 잘 맞추면 청평사로 들어서난 내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낙엽에 걸음마저 무뎌진다. P 245


1,000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청평사는 명승 제70호로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에 영현선사가 세운 백암선원으로 시작되었다. P 247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청평사. 내 기억 속에서 제일 어렸을 적 찾은 사찰이 바로 청평사다. 당시 청평사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꽤 오랜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사찰을 찾아다닌다. 산속에 있는 사찰을 찾으면, 언제고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런 기억과 달리, 그 어릴적 청평사를 방문한 이유는 참으로 슬픈 이유였다. 청평사는 나의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장소였다.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기에, 어린 내 눈으로 본 청평사는 그저 너무 멋졌고, 구송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았고, 공주굴에 얽힌 상사뱀 전설이 놀라웠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할머니댁으로 돌아온 뒤, 어른들 모두가 침울해 있는데 나 혼자만 멋진곳을 다녀왔다고 그림을 끄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한참 지나서야, 그날 그곳 청평사에서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나에게 그곳은 조금은 슬픈 장소가 되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청평사, 조만간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한번 찾아가야겠다.




이 책은 꽤 오랜시간 잊고 있었던 춘천, 그리고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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