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소설을 받았을 땐 조금 당황했다. 다름 아닌 조금, 아니 많이 특이한 0ZERO제목 때문에. 보통 제목을 보면 소설의 장르가 유추가 되는데, 이 책은 제목만 보았을 때는 대체 무슨 장르인가, 약간 해멨다. 숫자 0, 제로.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다는 뜻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유추가 안되서 책장을 넘겼다.

 

첫 장에 나온 문구는 프랑스 시인 랭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뮤지컬 랭보를 봤어야 했을까 ㅠㅠ. 책 첫 장에 나오는 시는 분명 이 책을 관통하는 그 무언가를 담고 있을 건데, 난 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아, 뭔가 철학적이고 이 책에서 말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읽기 전에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유추하는 건 내 능력 밖인지라,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소설이다. 오롯이 책 속 주인공 의 관점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는 한마디로 영악하다. 타인의 행동을, 분위기를 재빠르게 읽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알게 모르게 조정한다. 오로지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재물로 사용하는 거다. 가족, 친구, 애인, 동료모든 사람들의 의 재물이었다.

 

또한 는 본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기의 강점이 무엇인지,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한다. 그 강점을 부각 시키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을 하는 를 나는 비난할 수 없다. 그녀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 쯤 생각해보았을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_P 046

 

누군가 나에게 성공한 식인종으로서, 예비 식인종들에게 해줄 말, 나누어줄 지혜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하하! 솔직히, 사람을 잡아먹는 데 지혜 따위 필요 없죠. 그리고 식인종이 뭐 특출난 종족이 아니다.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무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_P 055

 

주인공 는 주변인물들을 잡아먹으며 자기 세상을 공고히 했다. 특히 소설 1부에서는 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묘하게 자기 생각에 거슬리는 그 누군가를 타겟으로 정한다. 그리고 살금살금, 타겟이 알아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씩 그들을 좀먹는다. 그런식으로 는 자기 세상을, 자기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하지만 이 모습을 우리는 욕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밟고 올라왔는지 생각을 해보자. 본인은 더할나위 없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살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파멸시켰다거나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하다못해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시기/질투 하고, 그 아이가 잘 못 되기를 바란적은 없는지 그저 그런 나쁜 생각들 말이다. 우리는 그저 이런 나쁜 생각들을 그저 생각으로 머무르게 했다면, 주인공 는 이러한 생각을 그저 실행한거다. 자기의 강점을 보다 드러내고, 약점을 보완하며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내 말은, 아돌프 히틀러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부자나 카사노바가 되라는 뜻도 아니다. 그저 아주 평범한 수준에서, 아주, 소박한 수준에서의 삶의 안락함과 편리함, 매일매일의 안전과 기쁨에 대해서 나는 말하고 있다. 알다시피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별다른 큰 욕심도, 대단한 야심도 없다. 나는 오직 지금과 같은 수준의 안락함,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삶, 그 안의 행복을 바란다. 그것이 나쁜 바람인가? ?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요구다. 바로 그런 상식적인 수준의 인생을 위해서 이따금 타인들을 사용하는 것을 겁내지 말라는 것이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_P 101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_P 120

 

2부에서는 에게 잡아먹힌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묻는다, 나에게 왜 그랬느냐고. ‘에게 잡아먹힌 의 엄마는 이런 말을 한다. 네가 아주 위험한 짐승이란걸 알았지만, 내 딸이라서 받아들일 수 없었노라고. 결국 그들은 척발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본인보다 강했던 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용한 장기 말중 하나에 그쳤다. ‘에게 그들은 관계로써 연결된 게 아닌, 이 척박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소모품이었다.

 

나는 앞으로 아주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내 인생은 앞으로도 잘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하여, 세간의 소문과 달리 인생에 교훈 따위 없다는 것.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있다. _ P 187

 


주인공 가 살아가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매일 매일 뒤에서 누군가를 욕하고, 앞에서는 웃는 세상. 나에게 그 어떤 부정적인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온라인 세계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악플을 달고 욕하는 세상.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수 많은 타인을, 재물로써 밟고 올라서야 하는 폭력적인 세상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찜찜하다. 우리들이 한번 쯤은 했을 법한 나쁜 생각들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를 보며,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살아가는 를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영악하게 살지 못하고 호구처럼 살지?라고 반문하는 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슬펐다. 이렇게 살아야만, 세상에서 살아남는 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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