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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구입한 지는 좀 되었더랬다. 여름휴가를 북캉스로 보내려고 구입한 책 중 한 권. 그래서 일부로 안 읽고 기다렸는데, 회사서 여름휴가가 없는 걸로 결정되었기에..ㅎ....ㅎ... (아 또 눙물..) 그래서 막 읽기 시작했는데, 하필 읽은 시기가 반일감정이 격해진 바로 지금이다. 사자 마자 읽었으면 이런 걱정도 안했을 건데!!!!!! 이게 다 여름휴가 쉰다,만다 오랫동안 질질 끈 회사때문ㅠㅠㅠㅠㅠㅠ이라고 책임전가중이다.
못 쉬는 것도 서러운데 책 읽고 리뷰 올리는 것 마저 눈치를 봐야하는 이런 서글픈... 그래도, 이 책이 일본소설이라 할지라도 .. 이 책을 출판한 곳은 한국출판사고, 나는 내 돈내고 우리나라 인터넷서점에서 제 돈 주고 산거니까!! 라는 자기합리화하는 마음으로 리뷰를 올린다.
두부와 함께 ㅋㅋㅋㅋㅋ

제목부터 독특했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이라니. 두부에 어떻게 머리를 부딪히지? 아니 그전에 두부가 먼저 빠개질건데?!
제목도 독특하고 표지도 독특해서 냉큼 구매했다. 물론 박대리님 영업도 한 몫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새는 자주 안 읽었으나, 나름 일본 미스테리 소설을 자주 읽었다. 물론 일부 작가에 한정이라는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내가 자주 읽었던 일본소설은 카미나가 마나부, 시마다 소지, 교고쿠 나츠히코 정도 였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나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도 간간히 읽어보긴 했지만 뭐 즐겨 읽는 정도는 아닌 ?
개인적으로는 카미나가 마나부, 시마다 소지 같은 작가들이 쓰는 미스테리 스릴러/추리물을 좋아한다. 뭔까 깔끔하게 끝나는 편이니까!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본 미스테리 소설은 대게 음습하거나 기괴하고, 기묘하고 찝찝한 호러물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토준지식 공포물이 되고(..)
뭐 그렇다고 안 본건 아니지만 ㅠㅠ.. 알면서도 보고 나서 겁나 찝찝해 하지만ㅠㅠㅠㅠ...
이 책의 저자 구라치 준이라는 작가는 좀 생소했다. 사전 지식도 없었을 뿐더러, 어떤 류의 미스테리 소설을 쓰는 지도 감이 안왔다. 제목만 봤을 때는 ‘약간 시마다 소지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라고 추측하는 정도? 어짜피 읽기 전까지는 내용이 어떤지 모르니, 바로 책을 펴봤다. 난 막연히 이 책은 한 에피소드의 이야기 인 줄 알았는데, 왠걸? 6편의 미스테리/호러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 소설집이었다.
「ABC살인」 …… 사람을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죽이고 싶다.
이 단편은 우리가 사는 현재를, 그것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어그러진 일상을 아주 대놓고 보여준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공포소설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회 부적응자들이 어떤 식으로 현재를 바라보는지, 어떻게 자기합리화 하는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서 ‘묻지마 살인사건’이다.
누군가가 살인사건으로 죽었을 때, 그 사건을 대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부 어그러진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죽은자를 비난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런 어그러진 삶에서 더 나아가 본인의 이익을 위해 또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인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내’가, ‘내 이익’을 위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을 죽였고, 내가 죽였다는 흔적도 없다. 하지만 일은 이상하게 흘러간다. 어쩌면 본인이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이 에피소드는 미스테리? 아니다. 추리? 역시 아니다. 무섭지도 않다. 다만 찝찝하다. 이 이야기가 소설에 국한되지 않을 거라는 점, ‘묻지마 살인사건’은 우리가 사는 현대에서도 중대한 범죄라는 걸 알기 땜누에, 그래서 미묘하게 찝찝한거다.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언제든 ‘내’가 될 수 있다.
「밤을 보는 고양이」 …… 밤의 정적에 귀를 기울이듯, 어둠을 바라본다. 어쩐지 이상하다는 얼굴로, 가만히.
내가 좋아하는 류의 미스테리 소설이다.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추리물에 가깝다. 기괴하거나 찝찝하지도 않다. 살짝 따지자면 조금은 기묘한가? 싶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깔끔하게 끝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는 현대의 인간관계, 회사생활에 지쳐 휴가를 내고 할머니 집에 왔다. 할머니 집에는 ‘미코’라는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내가 할머니집에 올때 미코가 마중나왔고, 계속 나의 곁에 머물며 나를 위로해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밤만 되면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는 고양이 ‘미코’. 나는 미코가 왜 그러는지 알기 위해 추리한다. 미신적인 방법도 아니고 나름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며 찾아낸 사실은 이웃집 시신유기.
우리는 으레 개나 고양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 ‘나’의 할머니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비합리적인 이야기는 믿지 않고, 본인 스스로 납득이 될 만한 근거로 추리를 하고 기어이 맞췄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는 고양이 이상행동, 이웃집 시신유기 만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현재가 들어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은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할머니 이웃집도 전부 고령. 이들의 소득이라고는 연금밖에 없다. 이웃집에는 고령의 할머니와 나이가 많은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아들이 엄마가 죽자 시신을 그대로 유기한 것이다. 유기한 이유는 사망신고를 하면 연금수급이 끊어진다는 이유 였다.
직업이 없는 이 아들에게 소득이라고는 고령의 엄마 이름으로 나오는 연금뿐이었을 테니. 연금의 부정수급. 비단 바다 건너 일본이라는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근데... 왜 맨날 고양이는 나만 없나..ㅠㅠㅠㅠㅠ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버려라” 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 같으니 !
제일 기대한 에피소드다. 무려 책의 타이틀롤을 책임진 이야기였으니까.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년 12월 초순. 제국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_P157
충격적이게도 이 에피소드의 배경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한 실험실이었다. 하필 이런 미묘한 시기에 태평양 전쟁....이라서 책을 덮을까 고민했지마뉴ㅠㅠㅠ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학생인 ‘나’는 태평양 전쟁을 이길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강제동원에 의해 군으로 징집되었다. 하지만 전쟁터로 나가는게 아닌 이상한 실험실로 옮겨진다. 그리고 매일매일 자전거처럼 생긴 기기에서 폐달질만 하고 있다. 이 실험실에는 실험을 주도하는 박사 한명, 실험실을 관리하는 대위 한명, 그리고 열씸히 페달질을 해야하는 ‘나’와 나머지 까까머리 학군 2명이다. 실험을 주도하는 박사가 3명의 학군에게 자주 하는 말이 바로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버려라!” 였다. 근데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약간 시마다 소지의 미스테리 소설과 진행이 흡사한 기분이 든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는데 알고 보면 아니, 조금 비틀어보면 그 속에는 틈이 있고 그 틈으로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뭐 그렇다고 이 에피소드가 그런 식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군 소속이라는 장소와 추리를 하는 ‘나’는 그저 학군이기에 맘 속으로 생각하고 끝날 뿐이었으니까.
이 책은 위에서 언급했었던 미스테리, 추리를 포함하여 기묘하고 찝찝한 이야기가 전부 있었다. 약갼 “뭘 좋아할 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같은 느낌?
깔끔하니 딱 좋았다. 기묘하고 찝찝한 이야기는 어느 선을 넘어가면 정말 그로테스크한 호러로 바뀔 수 있는데, 그 전에 안전하게 멈춘 느낌이랄까?
특히 내 취향에 맞는 에피소드도 반 이상이나 있으니, 이정도면 완전 선빵이다.
개인적으로 「밤을 보는 고양이」,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같은 장르의 이야기가 제일 좋았는데, 알고보니 네코마루는 저자의 자연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인 것 같고. 이렇게 된거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는 한번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