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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은 에세이, 아니 산문. 요즘은 너무 당연하게 이런 수필을 ‘에세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데, 이 책은 ‘산문’이라고 했다. 그저 영어와 한글의 차이일 뿐인데 묘하게 ‘산문’이라고 칭해서 좋았다. 저자가 단어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까? 읽기도 전인데 그냥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일기 혹은 그 날의 기분을 끄적였던 메모,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배열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부른 이름’,‘너와 부른 이름’,‘우릴 부른 이름들’ 이라는 큰 주제로 묶여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이름’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난 그 의미부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들으면, 열다섯,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잔뜩 난 내 얼굴과 교실 바닥을 비질하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이따금 내 뒤에 다가와 제 키를 재어보고 좋아했던, 이제는 피곤한 얼굴의 도시 노동자가 되어 있을 한 남자아이도. 그 애도 이제는 나처럼 예전보다 모든 일에 재미를 덜 느끼고 또 덜 놀라는 어른이 돼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 시절 행복했니? 물으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라고 대답할 것맡 같지만. _ P 023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나던 그 시절 들었던 그 노래. 듣기만 하면 그 시절이 눈 앞에 자동재생 되는 그런 노래. 나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tv에서 그 노래를 부르던 가수를 보면, 그 때가 생각난다. 뭣모르고 철 없던 나와 내 친구 A,B. 나는 신화를 좋아했고 A는 GOD를 좋아했고, B는 클릭비를 좋아했다. B는 당시 학교 방송반이기도 했기에, 매 점심시간 마다 노래를 틀어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게 나름의 권력이었을까? B는 자기가 좋아하는 클릭비 노래, 내가 좋아하는 신화, B가 좋아하는 GOD 노래를 매일 매일 번갈아 가면서 틀어 주었다. 지금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내가 그 가수를 좋아했다는 감정마저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때의 노래를 들으면 철없던 그 때가 떠오른다.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며 들떴고, 점심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했던 그 때가.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기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_P133
내 자취가 남아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사라진 그 모습을 본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이 공간이 사라질 거라고 미리 알았더라면, 그 곳에 있을 때 조금 더 소중히 여겼을텐데. 내가 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여러 기록을 남겼을 텐데. 하지만 이건 뒤 늦은 후회일 뿐이다. 그 때의 나는 이 공간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 당연히 이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은 평생 내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한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오만일 뿐. 사람은 어떤식으로든 헤어진다. 살아가는 중에 헤어질 수 도 있고, 죽음으로 헤어질 수 도 있다. 그러니 이 사람은 항상 내 옆에 있을 거라 당연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변함 없어서 지루할지도 모르는 이 일상이, 이 공간에서 이 사람과 보내는 이 시간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니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_P252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렵다. 나는 이 사람을 이해한다고 했는데, 정작 이 사람은 나의 그런 이해를 되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만큼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 역시도 나를 이해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어느 면에서 나를 이해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투성이니까. 온전히 그 사람이 되지 않고 서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이해’라는 말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2014년 4월 어느 날이었다. 난 그 날도 회사에 있었다. 그날 오후 우연히 실검에 떠있던 ‘세월호’라는 단어를 보았고,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바다 한 가운데 커다란 배 한척이 고꾸라져 있었다. 그 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탑승해있었고, 심지어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전부 구조 되었겠지? 라는 생각은 필요가 없었다. 뉴스에서는 “탑승객 전원 구조”라고 대문짝 만하게 발표를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비뚤어져있던 당시 정권에 잘 보이려는 거짓말이었다. 처음엔 ‘전원’이었던 구조 인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 사이 배는 계속 가라 앉았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우리 정부는 사고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리가 본 것과 같은 걸 아이들이 봤다. 배 안에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걸. 다투어 생명을 지켜야 할 시간에 권리를 외치고 이익을 도모한 모습을. 그 ‘도모’를 가능하게 한 이 세계의 끔찍한 논리를. 아이들‘도’ 봤다. 어른들이 있는데서도, 없는 데서도. 그리고 자신들의 본 것의 의미를 알았다. _P260
이 사건은 ‘해양사고’로 다뤄지는게 아닌, ‘정치사건’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누구의 의도였을까?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이 사고는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되었고, 심지어는 희생자들을, 희생자 유가족들을 희화화 하기 시작했다. ‘해양사고’, ‘구조’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었을 이 사건은 이상하게 변질되어 갔다. 그리고 이 역시 잊혀져 갔다.
이런 식으로 시간의 힘을 빌어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잊혀졌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잊어버렸을까?
내가 잊어버린 그 이름들이, 그때의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이름들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