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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정면돌파한 여성 100인
나탈리 코프만 켈리파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7월
평점 :
우연치 않게 좋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그렇지 않아도 읽고 싶었던 책이 었다. 내 독서 취향이라면 취향이랄까,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정확히는 한, 중, 일 역사 속의 인물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책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읽고 싶었는데!! 특히나 내 눈길을 끌었던 제일 큰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역사 주류에 서 있는 남성이 아닌, 언제나 역사 뒷편에 있었던 여성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물론 아닌 나라도 꽤 많지만) 과거에 비하면 정말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여성의 권리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그저 남편의 대를 이어주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던 그런 역할에 그쳤다면, 지금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여성의 정치 참여는 상상도 못할 일이 었다면, 지금은 여성이 나라의 수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러한 세상이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었을까?’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희생된 그녀들 덕분에 나는 이런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텐데..
목차를 찬찬히 살펴보니, 책에 실린 100인의 여성은 대부분이 서양인이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인인 저자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양보다는, 본인이 살고 있는 유럽을 포함한 서양 역사에 접근하는게 훨씬 편했을 테니. 나만해도 동양,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고 있는 반면 서양 역사 속 여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않나. 그런 저자가 우리 역사 속 인물인 선덕여왕을 이 책에 실었다는 것은 실로 놀랍기 그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역사 속 인물이 더 소개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선덕여왕 말고도 최악이든, 최초든 이 책에 실릴 만한 여성들이 많이 있는데 말이다 ㅠㅠ
뭐 아쉬운건 아쉬운거고! 내가 과연 얼마나 많은 인물을 알고 있나 세어봤더니 이게 왠 걸! 고작 7명이다. 선덕여왕을 포함하여 아라곤의 캐서린, 서태후, 마리 퀴리, 아가사 크리스티, 마릴린 먼로, 미셸 오바마. 이렇게 딱 7명.
서태후는 청나라 멸망사에서는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여인이기에, 그녀와 관련된 책도 여러번 읽은 적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에서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하고, 나 역시 학창 시절 아가사 소설을 진짜 미친듯이 읽기도 했다. 마리 퀴리는 노벨상으로, 마릴린 먼로는 한 시대를 대표한 섹시 심벌이기에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이들에 대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 나름 알고 있었다.
반면 아라곤의 캐서린이나 미셸 오바마는 오롯이 그녀들에 대해 알려고 한게 아니라, 그녀들의 남편 때문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그녀의 남편 헨리 8세의 미친 결혼력(...) 때문에 알게 되었고, 미셸 오바마는 당연히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그녀의 남편 버락 오바마 때문이었다. 그나마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아닌, 그녀들의 남편이 워낙 유명해서 곁가지(?)로 알게 된 것이었다. 참 뭐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반성이 되는 부분이었다.
1.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를 선언하다: 올랭프 드 구주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책 앞장에 나왔다. ‘올랭프 드 구주’라는 여성이 발표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였다. 이 모든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여성은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였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대혁명은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성공을 이뤘지만, 혁명 세력은 권력을 잡자마자 온갖 수단을 동원해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냈다. 루이 16세를 베르사유궁에서 끌어내 파리로 데려온 것도 파리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프랑스 대혁명에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내 실망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보편적 인권을 내세운 대혁명이었지만, 정치영역에서는 여성을 완전히 제외시킨 것이다. _P089
프랑스 대혁명을 담은 소설 ‘레미제라블’에서도 혁명군에서 여러 역할을 하는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겐 프랑스 대혁명은 딱 거기까지 였다. 이후에는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있었고, 로베스 피에르는 본인이 만든 단두대에서 본인이 죽었다. 이정도?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메인 줄기로 만들어진 소설이나 만화가 많았기에, 딱 그런 것들 위주로만 봐서 그 뒤에 가려진 여성의 이야기는 솔직히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막연하게 그 당시에 많은 인권 신장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낙담하지 않았던 올랭프 드 구주는 오히려 더욱 목소리를 높여 여성의 권리선언을 발표를 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여성이 권리 신장을 보지 못했다. 로베스 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그녀는 이 땅에 없지만, 그녀가 바라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2. 최초로 왕의 공식적인 정부라는 지위를 부여 받은 여인 : 아녜스 소렐
프랑스 땅에서 진행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백년 전쟁. 이때 샤를 6세는 자기 아들에게서 왕위 계승권을 빼앗았다. 샤를 왕세자는 그렇게 한 순간에 계승권을 박탈당한 비운의 왕자가 되어버렸다. 삶의 의지가 사라진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런 샤를 왕세자가 아녜스 소렐이라는 여인을 만나고 변했다. 아녜스를 만나고 샤를 왕세자는 한 사람의 남자로써, 그리고 당당히 샤를 7세로 왕위에 올랐다.
샤를 7세의 총애를 받았으며 지성 또한 갖췄던 아녜스는 왕의 총애라는 영향력을 행사해 왕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도왔다. 이리하여 광기에 빠진 샤를 6세의 폐위된 아들은 ‘충성받은 왕’, ‘승리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_P054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아녜스는 실의에 빠졌던 한 남자를 모두가 우러러 보는 왕으로 바꾼 여자라 칭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닥 부각되지 않았던, 아녜스로 인해 피눈물을 흘린 여성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녜스는 왕비가 아니라 ‘정부’다. 국어사전에서 정부를 검색하면 ‘아내가 아니면서 정을 깊이 두고 사귀는 여자’라는 사전적 의미가 나온다. 말 그대로 내연녀라는 점! 물론 이건 불법은 아니었다. 중세 유럽, 이 시기의 왕들은 이상하게도 정부를 참 많이 뒀다.(그 유명한 마담 퐁파두르도 루이15세의 정부이기도 했고) 뭐 여튼! 아녜스도 정식 왕비가 아닌, 샤를 7세의 정부였다. 샤를 7세를 제대로 된 왕으로 만들었다는 공로는 그녀의 권력이 되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아녜스 뒤에서 눈물을 삼킨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는 샤를7세의 부인, 마리 왕비다.
마리왕비만 있는게 아니다. 샤를 7세가 왕에 오를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백년전쟁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했던 영웅, 잔다르크의 존재였다. 하지만 잔다르크는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불 길 속에서 그 명을 달리했다. 물론 잔다르크의 죽음에 아녜스가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 7세가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하고, 아녜스가 그 권력을 누리는 데 못해도 왕비 마리와 잔다르크라는 두 여성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녜스는 ‘최초’로 왕의 정부라는 지위를 인정 받았으며, 샤를 7세라는 왕을 만든 ‘최고’의 여성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승자의 관점에서 일 뿐, 적어도 마리 왕비나 잔다르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최악’의 여성일 지도 모른다.
3. 그리고..
이 책은 ‘출현의 시대, 주장의 시대, 요구의 시대, 용기의 시대, 참여의 시대, 희망의 시대’ 총 6 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100인의 여성에 대해 기술한다. 시대 구분으로 보자면 고대 ~ 현대까지의 시대를 세분화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요구의 시대 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읽으면서 그녀들의 희생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대가 올라가면서 어느새 1800년대 후반을 지나 1900년대 초반의 여성들이 나타났고, 이 즈음부터 책을 읽는 내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로 구분하자면 아주 정확하게 ‘조선 말기 ~ 일제강점기’ 였기 때문이다.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랄까? 다시 요구의 시대로 넘어와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곱씹고 보니 이미 이때부터 서양의 제국주의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영토를 확장한다며 여러 나라에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는 그 시기였던 거다. 그들의 제국주의는 아시아까지 넘어왔으며 어떤 나라는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또 어떤 나라는 그들의 제국주의를 자기들 방식으로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웃나라를 침범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들먹이며 조선을 침략했고, 그렇게 이 땅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때 우리나라는 여성의 인권을 울부짖기는 커녕, 한 사람으로써의 인권조차 없었다. 즉, 책 속에 나와 있는 당대 서양의 여성들은 여권을 신장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사람이 되는 동안, 동시간대 우리나라는 여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국민들이 서양에서 만든 제국주의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뭔가, 책을 읽기 전에는 역사 속에 가려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는데, 정작 읽으면서는 이 여성들이 활동하던 그 시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 시대 우리나라는 어땠지?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고대 ~ 중세까지는 가볍게 읽었다면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 부터는 가볍게 읽을 래야 가볍게 읽히지가 않았다. 특히 우리가 그런 암흑기에 이르게 된 제일 큰 이유가 ‘일본’이라는 건 빼도 박도 못하는 제일 큰 이유지만, 그 저변에는 서양의 제국주의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에 나온 모든 이들을 부정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그녀들이 위대한 영웅이 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수 많은 참극이 떠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