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무대로 한반도 고대사의 원형 찾기
이종기 지음 / 책장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서성이던 중 내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나에게 가야란 한국 역사 속에서 통합된 고대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던, 그런 안타까운 연맹국가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지만 다른 고대국가에 비해 그 흔적이 적고, 미스테리에 둘러싼 나라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야 건국신화 속에는 여타 건국신화와는 달리 왕비가 바다 건너 외국,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라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여기까지, 나에게 있어서 가야는 뛰어난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변국가를 비롯하여 일본에도 철을 수출했다정도 였다. 그 이상, 이하도 없이 딱 이 정도였다. 이후 일본 여행을 하며 한일 고대사 및 도래인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꽤 많은 가야인들의 흔적을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난 지금 일본 일왕가 및 일본 역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도래인은 당연히 백제 계열이라 생각했다. 고대 백제와 일왕가는 사이가 워낙 끈끈하기도 했고, 백제 관련 지명도 곳곳에 남아 있었으며, 아키히토 일왕은 자기의 뿌리는 백제라고 인정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게 왠일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규슈 전 지역을 비롯하여 꽤 많은 곳에서 가야와 관련된 수 많은 지명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가야는 일본에 철기 문화만 수출한 게 아닌 걸까? 전방위적으로 가야와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는 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가야인이 일본으로 왔고 꽤 힘이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너무 궁금했던 이 타이밍에 이런 책 제목은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김수로왕의 딸이 일본으로 건너 갔고, 일본사에서 배우는 야마타이국 히미코 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론을 읽고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을 하긴 했다.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너무 궁금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 멀리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자는 정통 사학자도 아니었으니까. 살까 말까 계속 고민을 하던 중, 책을 얼핏 보니 이 책은 그저 허무맹랑한 내용을 저술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저자는 해외여행이 어렵던 1970년대에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직접 일본, 인도, 중국 등을 직접 찾아 다녔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역사기행 혹은 답사기였다. 누군가처럼 책상머리에 앉아서 허무맹랑하게 음모론, 떡밥만 던지고 지껄이는 게 아니었다. 저자는 해외를 넘나들며 자기의 주장을 뒷바침 할 증거를 찾으려 했고 증명하려 했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그리고 그의 부인인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 그 둘 사이에서 난 딸이 일본으로 넘어가 히미코 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한국과 일본, 인도 등을 오갔다. 그가 답사를 하기 위해 끈임없이 참고한 문헌은 진수의 삼국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고려 때 편찬한 가락국기, 당나라 때 편찬한 수서, 인도의 성전 베다이렇게 다섯 가지다. 이렇게 오래전에 나온 문헌들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그 주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게 큰 함정이지만, 여튼 저자는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본인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고자 했다.

 

이 책은 시작이 조금 불친절하다. 시작부터 가야공주가 히미코여왕이라고 주장은 했는데, 대체 왜 어떠한 근거로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지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저렇게 주장하고 나서, 갑작스레 수로왕의 부인이자 아유타국 공주였던 허왕후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뭐 여튼... 결과적으로 가야공주가 왜 히미코 여왕인지에 대한 근거는 책 중반 이후에나 나왔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늦게 나왔어도 책을 그냥 덮었을 지도. 한국와 인도를 오가며 쓴 내용 중 일부는 조금은 과한 추측이 아닐까 싶었던 부분도 분명히 있긴 했다.

 

일문(日文)으로 적은 문장은 한문을 풀이한 번역이 아니라, 한문의 위치를 그들이 창안한 법칙에 따라 바꾸면서 군데군데 가나를 박아서 읽은 일본식 한문읽기이다. 더 설명할 것 없이 어계가 다르고 구문법이 다른 한족의 글을 여지없이 일본어로 둔갑시켜 읽은 절묘한 기교를 그들 일본인은 긴 세월 끝에 만들어 낸 것이다. P085 (일본식 한문 읽기의 함정)

 

완전 뼈를 때리는 저자의 일침에 박수치고 싶었다. ,,일 분명 같은 한자를 쓰는 데 유독 일본은 같은 한자임에도 다르게 읽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진짜 나도 일본어를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정말 일본식 한문읽기는 너무 고역이다. 단적인 예로 JLPTJPT 등의 일본어 어학 시험을 보게 되면, 청해 부분은 거의 만점을 받는데 반해, 독해는 정말 개판 오브 개판의 점수가 나오니까 ㅠㅠ 한자를 지들 맘대로 멋대로 해석하고 있으니, 우리를 분노케 하는 역사왜곡도 하는 거겠지?

 

깡마른 체구에 곧추세운 허리가 유난히 꼿꼿해 보이는 미노다씨는 내가 야쓰시로에 온 내력을 듣더니 작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자신이 쓴 야쓰시로시의 역사라는 책자 두권을 선물로 주었다. 국판 462쪽의 두꺼운 책으로 책장을 넘기니 삽화가 많이 들어 있어 무엇보다 반가웠다.

 

우선 눈길이 간 것은 최초의 야쓰시로 성이라는 설명이 붙은 그림이었다. 해발 376m의 핫초야마 북쪽 비탈의 작은 봉우리마다 옛 성터가 표시되어 있는데 묘견궁을 향해 8개의 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삥 둘러 있었다. 그랬구나, 야쓰시로는 여덟개의 성이었구나! - P110

 

야쓰시로. 현재 야쓰시로의 한자풀이는 八代(팔대) 이다.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이면 순간 갸우뚱하게 할 수도 있는 일본식 한자 독음. 저자는 일본인에게 받은 책 덕분에 야쓰시로의 내력에 대해 알았고, 야쓰시로의 시로가 원래는 시로()가 아니라, 성을 뜻하는 시로()였을 거라는 추측을 하였다. 이 곳을 부르는 이름인 야쓰시로는 그대로 전승되었으나, 성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글자를 바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성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이 곳의 역사를 감추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의 역사를 잘 모른다면, 과한 추측이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추측은 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꽤 많은 지명을 바꾸었다.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지명을. 그들 입장에서는 한반도 역사를 깔봐야 했으며, 식민지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고대 한반도에서 문물을 들여왔다는 내용은 싸그리 없어져야만 했으니까. 혹은 해석을 달리하여 일선동조론의 근거로 보기도 했고. (물론 일부 도시에서는 몇 십년이 흐른 뒤, 옛 지명 쿠다라등을 다시 사용하는 곳도 나오기 시작했다)

 

여왕의 궁터를 찾는 일은 또 하나의 가설로부터 출발했다. (중략) “, 고미도상 말인가요? 묘켄님과 함께 온 신이지요.” 말하자면 고미도상은 방위를 담당한 신으로서 그는 묘켄을 모셨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묘켄상으로 불리는 일본 왕조의 첫 왕 비미호가 거북을 타고 뱀을 앞세워 상륙해서 70여 년간의 정착을 거쳐 신으로 받을리는데 이 묘켄상이 받드는 신, 레이후님이라는 신을 모신 사당은 일본국 최초의 신사였다. - P128

 

저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비미호(히미코 여왕)이 가야공주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 규슈 야쓰시로에서 받드는 신인 묘켄상은 히미코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였다. 일본이 도래인 역사를 지워가는 과정에서 야마타이국 여왕 히미코는 사라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남은게 바로 묘켄상이라는 것. 뭔가 뒷받침하는 근거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너무 당연하게 이런 결과 도출을 하신 지라....읽으면서도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 역시나 저자가 이렇게 말한 근거는 책 후반에 나왔다는게 함정이다. 히미코 여왕이 왜 가야공주인지에 대한 근거가 후반에 나온 것 처럼. 이 책은 정말 읽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불친절한 책일지도 모른다.

 

언렴의 아들 신무(진무)가 즉위하여 다시 텐노로 칭호를 바꾸고 야마토주로 옮겨 다스렸다이는 여왕 비미호 33세 손의 본격적인 일본 열도 개척에 관한 신당서의 증언이다. 즉 당시 왕인 진무가 즉위하면서 텐노(천황)’이라 호칭을 바꾸고, 큐슈의 쓰쿠시를 더나 지금은 혼슈라 부르는 대화주로 왕도를 옮긴 사실을 밝히고 있다. 결국 진무는 일본의 역사가 최초로 받드는 천황이 됐다. 또한 그의 등장은 야마이의 시대가 끝이 나고 이른바 야마토 조정의 시작을 의미하며, 이로코 미모토의 칭호는 사라지고 텐노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분명 일본인의 역사다. 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삶의 뿌리를 좇아 해매던 나의 왜국 탐사도 이쯤에서 마감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 인줄 안다. -P234

 

어떤 사람들은 저자를 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야공주의 흔적을 찾기 위한 저자의 답사는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히미코 여왕=수로왕의 딸, 가야공주라는 주장이 아직까지 받여들여지는건 아니나, 적어도 야츠시로를 비롯하여 갓파(가랏파), 레이후 신사, 에비야 고원, 선견왕자 이야기, 오레오레 데리이다 축제 등 저자가 가야와 연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은 현재 가야계 도래인 집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고 관련 서적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저자가 주장한 가설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고대사는 지금도 수 많은 미스테리에 쌓여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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