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집쟁이들
박종인 글.사진 / 나무생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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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혹시나 하고 검색했던 박종인 기자님의 책, 한국의 고집쟁이들. 놀랍게도 재고가 있었다. (이 책 말고도 1권 더 있는뎅, 그건 나중에!)


 

이 책은 2008년에 출간된 책이다. 그렇다보니 책의 상태는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왠걸. 내가 생각한 것보다 책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대체 책을 왜 이딴식으로 관리하는 지 참.. 화가 난다 화가나 ㅠㅠㅠ 평소같으면 이렇게 보관하는 책은 절대 안사는데, 책이 없으니까.. 눈물을 머금고 샀다 ㅠㅠ

 

이 책 속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집쟁이다. 심지어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대체 왜 이런 삶을 사는 가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자기만의 길을 고집했다. 누군가는 장애를 앓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난에 몸부림 치면서도 끝까지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그제서야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불꽃처럼 살다 간 채규철

채규철, 그는 대안학교 교사였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온 몸의 절반을 화마(火魔)에 빼앗겼다. 6개월간 고된 수술 끝에 사람의 얼굴을 조금씩 찾아가기는 했지만, 결코 평범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십원짜리 인생이야.

아니, 화폐 가치가 절하되어 '백원 짜리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다방이나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담이나 종업원들이 다가와 숨 돌릴 틈도 없이

잽싸게 십 원 짜리 동전 한 닢을 주고는 제발 나가달라며 몸을 마구 밀어내.

내 모습이 다른 손님에게 혐오감과 불안감을 준다는 것이지. P 23

 

그렇게 배척당하는 삶이었지만 그는 결국 딛고 일어섰다. 경기도 가평에 '두밀리 자연학교'를 열었다. 대안학교이자, 자연을 배우는 생태학교다. 그는 이 곳의 교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를 이미 타 버린 할아버지, ET 할아버지라 부르며 이 곳에서 자연을 배웠고 진짜 인생을 배웠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진짜 인생을 말이다.

 

우리가 사는데 F가 두개 필요해.

Forget (잊어버리라), Forgive (용서하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딨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 받는거야 . P25

 

나는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살았다. 외모나 권력이 아닌 사람 자체로 판단하고 있다고 내 스스로 생각했다. 물론 나 편하자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조금만 돌아보면, 불과 몇 시간 전 내 모습만 떠올려도 바로 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편견이 가득한 눈이었다는 것을.

 

만약에 살아계신 채규철 선생님을 내 눈으로 보았다면 난, 편견 없이 바라 볼 수 있었을까? 범인(凡人)은 상상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고, 남은 인생을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인데. 나는 정말 편견 없이 그 사람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채규철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지금, 그가 자신을 향한 편견에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지금. 난 지금까지 살아온, 짧다면 짧은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끼고 있던 색안경을 바로 벗어던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색안경을 벗어 던지는 삶을 살고자 노력이라도 해봐야 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구두를 만드는 남궁정부

남궁정부, 그는 구두장인이다. 다만 그에게는 오른팔이 없다. 역시나 불의의 사고였다. 구두장이에게 오른팔이 없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을 건데, 그는 달랐다. 이 악물고 말로는 다하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냈다. 그렇게 고통을 참아내며 다시 구두를 만들었다. 다만 예전에 만들던 구두와는 조금은 다른 그런 구두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구두, 장애인을 위한 구두였다.

 

"참을 인자 세번이면 왜 살인도 면할 수 있는지 알았어요. 그만큼 그 고통을 참는게 어려웠지." P44

 

어느 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로 곤궁해졌을 때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십시일반으로 모은 3천만 원 짜리 통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당신 없으면 우리가 걷지를 못하니, 당신은 꼭 돈을 벌어라" 하며

막무가내로 통장을 내밀더라고 했다. P46

 

세상이 많이 발전했다고, 삶이 많이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살기 불편한 나라다. 왼팔의 구두장인 남궁정부에게도 대한민국은 살기에는 불편한 나라다. 하지만 그는 그 불편함을 알고 있기에, 다른 불편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두를 만든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인 구두를.

 

책을 읽다보면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저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이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 같은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지금만해도 딱 그렇지 않은가? 두 팔, 두 다리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도, 난 오로지 내 자신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도..이제라도, 조금씩 내 마음가짐을 바꿔보고자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나름 위안이 된다. 내 자신만 생각 할게 아니라, 오로지 남으로써 타인을 바라볼게 아니라, 또 다른 시선에서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보는 것. 어렵겠지만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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