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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지
김안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2월
평점 :
나에게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주로 작가, 장르, 시놉시스를 보지만 아주 간혹 표지에 끌려서 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경우는 시놉시스 + 표지 디자인 이었다. 아닌가? 표지의 디자인 + 시놉시스 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표지 디자인이 제목인 <만월지>와 너무나도 어울렸고, 표지 자체가 보름달이 뜬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는 듯 했다. 정말 표지 만으로 책을 읽고 싶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이 책은 표지 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표지 디자인 한 사람 칭찬해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07/pimg_7440571782166885.jpg)
이 책의 배경은 이렇다. 과학이 발전한 22세기의 어느 국가. 그 국가에는 천하(天下)와 태상(太常)이라는 두 지역이 존재한다. 천하는 천민들(피지배층)이 사는 지역이고, 태상은 지배층(양반, 중인, 상민)이 사는 지역이다. 천하에 사는 사람들은 전통복장을 입으며, 자동차보다는 물 위에 배를 띄워 이동하는 등 옛 조선시대의 삶을 보인다. 태상에 사는 사람들은 IT시대에 걸맞는 현대적인 삶을 살고 있다. 태상지역은 양반이 사는 왕남지구, 중인이 사는 왕서지구, 상민이 사는 왕동지구로 세분화 되어 있다.
천하와 태상지역에는 각각 만월지라는 연못이 있다. 태상 지역의 사람들은 소원을 담은 금화를 만월지에 던지면, 만월지를 관장하는 만월왕자가 3명을 선택하여 염원을 이룰 수 있는 능력 80%를 내려준다. 천하지역 사람들은 만월지에 소원을 담은 조개껍질을 던진다. 하지만 천하지역 만월지를 관장하는 왕자는 염원을 잘 안이뤄주는..듯..ㅋㅋ
<시놉시스>
조선 시대 신분 의식이 남아 있는 인공 지능의 22세기.
보름달이 뜨는 매달 15일, 30일의 밤에 비로소 궁(宮)의 모습을 드러내는 연못 '만월지(滿月池)'.
이곳에 양반은 금화, 천민은 조개껍질 등을 던져 염원을 하면 만월지를 수호하는 왕자가 이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3명을 선발하여 염원을 성공하게 해 줄 능력 80%를 준다. 이는 보름마다 보이는 궁(宮)의 기둥과 단청이 되어 궁을 유지하는데, 인간의 염원은 필연이다.
과학자 벡터는 염원을 이뤄 주는 인공 지능을 개발하던 중 그의 애인 등불 시인 매화의 '시(詩)'가 죽은 눈알을 움직여 심장 뿌리를 파생하는 글자의 힘을 보게 된다. 그는 과학적 증명을 위해 그녀의 양반 신분과 죽음을 이용하여 글자의 힘을 밝혀내기 위해 만월지로 향한다.
그러는 동안 인간 현세의 흐름과 현명한 염원자를 선별하기 위해 과학자 생활을 하는 왕자는 매화의 시(詩)에 반하여 왕자의 가치관 속에 있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만월궁이 등불 시인에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왕자는 등불시(詩)를 볼 때마다 천만년의 삶에서 첫 연정을 느낀다.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다. 그렇다고 용이 날라다니거나 마법을 쓰거나 그런 서양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이 그토록 바라던 염원의 본질을 찾아내는
사랑보다 청렴한 시(詩)의 본연과
그 본연에 이끌린 일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서정미학과 과학적 상상력의 창작된 '판타지 소설입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옮겨온 저자의 표현. 일단 내용은 둘째치고 문장만 보았을 땐, 처음에는 실수인 줄 알았다. 검수를 하다가 놓쳤거나 혹은 오타이거나. 하지만 아니었다ㅠㅠ 분명 읽어지긴 하는데,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읽긴 했는데, 무슨 말이지? 싶은 문장들이 꽤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위에 있는 저자의 표현을 비롯해서 소설을 이루는 문장을 전체적으로 손 봐야 될 것 같은....그런 느낌이다 ㅠㅠㅠ...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07/pimg_7440571782166886.jpg)
양반들이 사는 태상지역과 만월지를 관장하는 문월왕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뭐랄까 지금의 현실. 상류층들이 사는 세계를 빗대어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였다. 반면 천하지역에 대한 내용은 고려시대 거주지의 자유가 없었던 향/소/부곡민을 보는 것 같았다. 묘하게 현실을 풍자한 느낌?
거기다 태상지역의 만월지를 관장하는 문월왕자, 염원을 이뤄줄 대상 3명을 고를 때도 본인 인맥 기준으로 선정하는 것을 보고 확실해졌다.
태상지역과 천하지역 구분, 상류층과 그 이하 사람들의 구분, 현재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 이었다.
천하지역 출신인 과학자 벡터는 더 높은, 태상지역으로 올라가고 싶지만 천하인이라는 신분에 가로 막혀있다. 그래서 그런지 본인 스스로도 태상지역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또 자기 입으로 '내 사랑'이라고 말하는 매화한테 하는 행동을 보면, 본인 스스로가 경멸하는 태상지역 사람들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뭔가 너무 모순덩어리 랄까. 뭐 현대인의 모습을 비춰보면 싱크로율 딱 100% 이긴 하다만..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주요인물을 꼽자면 등불시인 매화, 과학자 백터와 한스, 태상 만월지를 관장하는 만월왕자, 천하 만월지를 관장하는 곡예사, 만월왕자의 내시 수보, 태상 만월지에 살고 있는 삼월신 그 외 기타 등등. 책을 읽기 전에 시놉시스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꽤 기대를 했더랬다. 너무 독특한 주제였으니까.
첨단 과학시대 + 조선과 같은 신분제 사회 + 시인 (詩의 힘) + 인공지능 . 전혀 연관이 없는 주제들이 어우러진다는 것 자체가, 누가 쓰느냐에 따라 망작이 될 수도, 엄청난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으니까 !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시점에서,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 주제 자체는 너무 신선했다. 그 누구도 생각치 못할 그런 조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주제를, 저자 본인이 말하는 스토리로 연결하는 것이 너무 엉성했다.
저자가 말한 과학적인 부분과 서정적인 부문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둘을 매끄럽게 연결시키지 못헀다. 한 문장, 문장을 읽으면 머리속에 이미지가 떠올라야 하는데 떠오르지가 않았다. 또 어떤 면에서는 설명이 너무 부족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전혀 쓸모 없는 설명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제일 중요한 건 책 초반에 적혀있던 내용과 후반부에 적힌 내용이 서로 모순되어, 스스로 세계관을 부셔버린 부분이었다. 너무 아쉬웠다. 이런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소설은 탄탄한 뼈대를 가지고 잔가지를 쳐가며 소설을 써야하는데, 그 과정이 빠진 느낌? 혹은 소설을 쓰면서 계속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판타지 소설이면서 로맨스를 가미한 복합장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와장창 무너졌다. 장르파괴물이 이런 걸까 싶기도 하고. 로맨스가 보여야 할 장면에서는 뭔가 어설픈, 처음 인터넷 소설을 쓰는 듯한 문장들이 보였다. 또 어떤 면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있었다. 근데 또 그런 부분은 머리속으로 이미지화가 잘 되서 더 당황스러웠다. 차라리 로맨스물이나 일상물이 아닌 SF쪽으로 밀고 나갔으면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너무 많은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 밀어 넣으려고 하다보니,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아참, 그리고 문체도 손을 봐야 할 부분이 많아 보였다. 아무 지식없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작가 한명이 썼다는 생각을 안했을지도. 롤링페이퍼 마냥 여러 사람이 꼬리를 물며 연재하는 느낌이 드는, 너무 통일성이 없는 문체였다. 그러다보니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체 역시 일관적이지 않았다.
워낙 독특한 주제였고 방대한 세계관이라 기대치가 더 높았나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러한 독특한 주제를 선택한 저자에게는 정말 박수를 치고 싶다. 모름지기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도전정신은 필수니까! 그저 아쉬운 건 소설을 탈고 했을 때, 여러 사람에게 읽어보게 하고 의견을 들었으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이랄까?
예전 박종인 기자님 책에 나왔던 부분이 있었다. 내 글을 처음으로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다는 내용.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글을 세상에 내 놓기전에 첫 번째 독자에게 먼저 보여 주고 괜찮은지 아닌지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의 저자에게 그런 첫 번째 독자가 있었는지, 없었는 지는 잘 모르지만.. 이 소설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기회를 놓친 게 아닐까 생각하니, 독자로써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소설이 아니라, 조금 더 손 봐서 웹툰 형식으로 내보인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