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루하루 교토 (꽃길 에디션)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3월
평점 :
요 근래 회사 일이 너무 바빴다. 주말도 출근해서 몇일 째 야근. 나름 워라밸을 꾸준히 지켜왔기에, 이렇게 갑자기 라이프 밸런스가 무너지면 몸이 적응을 못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피곤해지면 괜시리 이 곳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기 적절하게 여행 에세이 「하루하루 교토」 를 읽게 되었다. 딱 이틀 동안 출근 후 20분, 그리고 점심 식사 시간. 이 시간에만 읽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 식사 시간에도 읽고 싶었지만, 여기저기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방해를 받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 아침 20분, 점심 식사시간이 유일했으니까.
이 책을 읽고 있는 시간 만큼은 난 바쁜 일상이 아닌 교토에 있었다.
제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분홍 분홍한 표지 때문이었는지 어쩌면 둘 다 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보자마자 느낀 건 교토의 봄 이었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은 폭죽 터지듯 벚꽃이 피어있는 교토에 있었다.
“교토에서의 한 달은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따스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이런 날씨에 교토라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교토는 일본 여러 도시 중에서도 나에게는 정말 특별한 도시다. 나의 첫 해외 여행지 였으며, 나의 베스트 프렌드와, 나의 부모님과, 나의 신랑과 찾았던 곳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교토가 좋냐고 물어본다면 콕 집어서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년 교토를 찾았고, 앞으로도 계속 방문하고 싶은 도시다. 그런 교토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것. 나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시간적 여건만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 교토로 떠날 수 있는 꼭 이뤄보고 싶은 꿈.
주아현 작가는 나의 이러한 꿈을 대신 실행해주기라도 하듯 교토에서 한 달을 살았다. 한달 동안 차곡차곡 일기를 써내려 갔고, 그 일기는 지금 내 손에 있는 바로 이 책이다. 즉, 이 책은 교토 여행 에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교토여행을 기록한 일기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걸었던 교토의 한적한 골목길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교토는 관광객이 많아서 번잡하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갔었던 교토는 한적했다. 아니지, 교토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교토가 참 번잡했었다. 두 번째 방문 했을 때 부터 교토가 참으로 한적했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교토의 구석구석을 만나다.”
처음 교토에 방문했을 때는 일명 라쿠버스라 불리우는 100번 버스가 지나다니는 곳만 방문했다. 금각사, 기온거리 등등 교토 명소 of 명소만 지나다니는 그 버스는, 수많은 관광객이 탑승하기 때문에 언제나 만원이다. 나에게 교토는 초면이었기에, 100번 버스를 타고 번잡한 교토만 보다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그래서 두 번째 교토 여행을 계획했고 그때서야 한적한 교토, 교토의 진 면목을 보기 시작했다.
느린 여행, 여행지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교토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는 나에게는 그저 꿈일 뿐인 여행.
대한민국의 직장인이 여행을 할 수 있는 평균적인 기간은 연차 하루를 사용하여 주말포함 2박 3일. 그나마 연차 사용에 눈치를 주는 회사의 경우 오로지 주말 이틀 뿐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행운아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2박 3일 이다. 아주 간혹 연차 이틀을 사용해서 3박 4일 까지도 가능하긴 하다. 다만 눈치를 엄청나게 봐야하고, 안 좋은 소리 듣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나의 교토 여행은 언제나 빠르게 빠르게 였다. 가고 싶은 장소는 많은데 시간적 여유는 없으니까. 한적한 교토를 느끼고 싶다면서 정작 나 자신은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방문한 그 장소는 언제나 한적했고, 사람들도 여유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나는 속으로 계속 빨리빨리를 외쳤다. 이 얼마나 모순된 여행인가.
(TMI - 여유있는 여행을 해보겠다며 도쿄 6박 7일 여행을 한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여유는 없었고 그때도 빠르게 빠르게 였다ㅠㅠ)
교토의 봄은 벚꽃과 함께 시작한다. 4월 초 쯤이 되면 교토 곳곳에서 분홍 폭죽이 터진다. 내가 본 교토는 언제나 여름 여름한 초록빛 교토, 가을 가을한 오색빛 교토다. 올해는 꼭 분홍 분홍한 봄의 교토를 봐야지 ! 싶다가도 시간적 여건이 안되어서 교토 여행을 포기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언제즘 분홍 분홍한 봄의 교토를 만날 수 있을까?
교토의 골목을 걷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 있다. 생각치도 못 한, 교토를 한 껏 담고 있는 카페를 만나는 것 이다.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교토 에이칸도 부근의 골목을 걷다가 만났던 카페 아사노. 노부부가 운영하던 그 카페에는 배 부른 사람조차 배고프게 만드는 달콤한 카레향이 났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카레를 주문하게 만들었던 마성의 카레향, 평생 잊지 못하겠지.
저자 주아현님의 교토 한 달 살기 위시리스트
아무 계획 없이 동네 산책하기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아침 해먹기
여행에서 만는 사람과 친구가 되기
몇 가지는 내 위시리스트와도 똑 닮아서 놀랍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위시리스트를 이루고 온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앞으로의 나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한 달이라는 공백을 갖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꼭 하나 말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투자해서 온 한달간의 살아보기는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의 큰 보물이 되었다고“
나에게 용기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교토 한 달 살기에 도전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교토에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용기가 부족하다. 직장인에게 타지에서 한 달 살기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용기를 낼 수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취직을 하지 않은, 혹은 공부중인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부럽다. 그들에게도 교토에서 한 달 살기는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직장에 얽매여 있는 사람보다는 덜 할 테니.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굳이 교토가 아닐지라도 용기를 내어 외지에서 한 달만 살아보라고.평생 이루지 못하는 꿈이라 생각하며, 왜 진작에 하지 못했을까 라고 후회하기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