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동경
정다원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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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부하는 것이 있다. 다독을 하는 사람에 비하면 터무니 없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이 정도면 나는 책을 꽤 많이 읽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해 하며 책장을 보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책을 편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사는 집의 책장과 친정 집의 책장의 8할이 역사 관련 서적이었다. 나머지 2할은 장르소설이나 만화책, 취미실용서 정도였다. 정말 편식을 해도 너무 편식을 한 것이다. 다른 장르의 책을 읽어볼까 싶어도 워낙에 읽어본 적이 없기에 어떤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던 어느 날, 상상출판 표지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한 권 받았다. 그 책이 바로 여행 에세이 #소소동경 이었다. 내 인생 첫 에세이였다.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도쿄라는 도시의 매력을.


이 책의 저자, 정다원 님은 도쿄에서 4년을 살았다. 그리고 도쿄를 떠나 여러 나라에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도쿄에서 보낸 4년 간을 잊지 못하여 도쿄 여행을 자주 한다. 도쿄에 살아본 적은 없는 나지만, 나 역시 도쿄에 첫 방문하였을 때 그 느낌을 잊지 못하였다. 심지어 6박 7일, 장기라면 충분히 장기적은 해외여행은 도쿄가 처음이기도 했다. 두 발로 도쿄 땅을 밝으며 이 곳 저 곳을 다녔고, 그 추억이 자꾸 맴돌아서 해마다 찾아갔던 도쿄였다.


아무리 도쿄를 자주 방문하였더라도 그 곳의 현지인이 아닌 이상은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단골집이다. 저자가 말하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에서는 손님이 주인장을 마스터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누가 봐도 처음 오는 손님이 아닌 단골집 주인과 손님의 관계. 손님이 가게에 오면 마스터는 한결 같은 표정으로 손님이 항상 먹던 음식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손님은 마스터에게 미주알 고주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는 어땠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스터는 항상 그 이야기를 들어준다.


요즘같은 현대 사회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 까?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세상이 너무나 각박해졌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는 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마스터 만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왜냐고 묻지도 않고 그저 들어준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유가 될테니까.


저자는 마츠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마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공동체 의식, 서로 돕고 산다는 연대감을 일깨워 주었다 고. 헌데 마츠리에 대해 이해를 한다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일본의 마츠리는 공동체 의식이 빛나는 마을 축제라기 보다 더 무거운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타공인 신도(신토)를 믿는 국가다. 일본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십, 수백, 수천의 신이 있다. 그 신들을 위해 작게는 마을 단위에서 도시 단위로 많은 신사가 있다. 마을 골목 골목에 보이는 아주 자그마한 신사 '호코라',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신사(진쟈)가 바로 그것이다. 덧붙이자면 신사도 세세하게는 여러 등급으로 나뉜다. 신궁과 대사(타이샤), 궁(구)과 대신궁(다이진구) 그리고 일반적인 신사이다.


보통 마츠리는 이러한 신사에 모셔져 있는 신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행위이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기도한다. 또한 가족과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 후자의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은 한국의 제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행위이지만, 전자인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라는 행위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한국인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자손을 이롭게 해주는 신령스러운 존재이지만, 일본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일본은 사람이 죽어서 귀신(원령)이 되면, 언제든 자신들을 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寃: 원의 개념). 하여 귀신들이 자신을 해하지 않도록 달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  일본 가정집 내부에 조그마한 제단이 있는 것도 아마 일맥상통한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제사 행위, 즉 마츠리가 마을 단위로 점점 커지면서 우리가 아는 일본의 마츠리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덕분에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지탱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등굣길의 초등학생들이 하나 같이 똑같은 가방을 메고 있는 사실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일본을 갈 때마다 보았던 모습이었고, 저자와 똑같이 궁금했다. 대체 이 학생들은 왜 불편해 보이는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걸까? 하고. 그리고는 그 때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또 같은 의문이 들었지만, 뭐 학교에서 정해줬겠지 싶었다. 헌데 왠걸 !! 책에서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주었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튈까 봐 …


일본에서는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이 폐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던 그런 민폐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민폐행위에 더해서 일본의 집단주의 정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집단주의 정서를 이들이 말하는 폐에 대입해보면 이렇다.


공동체의 이익과 안정을 우선시 하며, 이를 깨뜨리는 돌출된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폐를 끼친다는 의미가 너무 넓다고 해야할까, 이해가 안된다고 해야할까. 나름 일본문화를 많이 접했다고 자부했고, 그만큼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내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도쿄 여행 에세이라고 내세웠고 실제도 도쿄의 여러 지역을 소개해주었다. 저자 역시 본인의 책은 '도쿄 졸업 일기' 혹은 '졸업 논문' 이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이 책은 도쿄만 소개한 것이 아니다. 도쿄의 생활이었지만 실제로는 도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일본의 문화와 생각, 생활을 보여주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이제라도 알게 해준 이 책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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