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일본편1권을 읽어보았고 한참 뒤 일본편3권을 읽어보았더랬다. 그리고 느꼈던 사실은 TV에서 강의를 하는 유홍준 작가님과 책으로 만나는 유홍준 작가님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TV에서 유홍준 작가님이 강의를 하시는 것을 볼 때 귀에 쏙쏙 들어와서, 책 역시도 그럴 것이라 믿었던 것이 함정이었나 보다. 


나는 한일관계사에 관련해서는 역사서를 위주로 읽었다. 해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같은 맥락으로 읽으려 했던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답사기 라고 표방한 책이다. 일반 역사서처럼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이 책의 기본은 답사기(혹은 여행기?) 인 것이다. 즉 개인의 주관적인 의사가 팍팍팍 반영된 책인 것이다. 물론 주관적인 책이라고 해도 저자와 이 책을 읽는 나의 생각이 비슷하다면 좋겠지만, 이게 또.. 그것은 아닌 듯하여.. 그래서 더욱 읽는 것이 고되었다. 그럼에도 읽었던 이유는 한일 고대사에 대한 역사가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고, 해당 시리즈를 읽었기 때문에...!! 일단 한번 읽으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65p에 나오는 다카마쓰 고분. 고구려의 고분 벽화의 영향을 받은 고분이며 이에 대해서는 한일교류 관련하여 국사시간에서 배우기도 한다. 다카마쓰 고분은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고분이며, 그 안에는 사신도, 별자리, 여인행렬도 같은 벽화가 남아있다. 벽화의 그림을 자세히 보게 되면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듯한 그림도 있지만,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듯한 그림도 있다. 더군다나 벽화의 제작연도는 710년 무렵으로 밝혀졌는데, 이때에는 고구려가 멸망한지 약 40여 년이 흐른 뒤다. 즉 다카마쓰 고분이 순전히 고구려의 영향만 받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달까 뭐랄까.. 특히 이 시기에는 일본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사신도나 별자리 벽화 등은 고구려에서 보이는 벽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일본 벽화라고만 배운다.


​"주요한 성씨는 아야 씨, 후미 씨, 하타 씨, 소가 씨 등이다.

아야 씨는 백제 아지사주의 후손, 후미 씨는 왕인박사의 후손, 하타 씨는 신라인 진하승의 후손,

소가 씨는 분명하지 않지만 백제 목만치의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2 - 77p


한일 고대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도래인에 대한 기록이다. 아지사주나 진하승을 비롯하여 궁월군 등은 도래인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 대표적으로 나오는 이름이다. 특히 진하승은 견해에 따라서 신라계 혹은 가야계로 갈리기도 한다. 신라계열로 보았을 때는 정통 신라 계열이 아닌, 신라 장군 이사부(^^)가 점령했던 지금의 삼척/울진 땅에 있던 소국가(파단국)의 유민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신도 모른다. 이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나 신찬성씨록 등에서만 나오기 때문에ㅠㅠㅠ 내가 나랑 맞지 않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혹시라도 도래인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있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아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학자들 논문, 역사서를 더 읽어보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신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오죽하면 팔백만 신의 나라라고 불리겠는가. 일본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을 보게 되면 정말 이게 신이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별별 신이 다 나온다. 심지어는 조선의 성웅인 이순신 장군조차도 일본에서는 신으로써 받들고 있으니 말 다 했다. 근데 또 이 신교가 독특한 것이 다른 종교의 신도 그대로 흡수하여 자기네 식으로 모신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불교이다. 불교를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불교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기네들의 신교에 불교를 흡수를 하는 방식이다. 이를 신불습합(神佛習合) 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통 A라는 지역에 B 신사를 조성할 때 B 절을 같이 조성하기도 하였다. 그 반대로 C 절을 조성할 때 C 신사를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교토의 유명한 관광지 야사카 신사이다. 야사카 신사에서 산넨자카로 내려오다 야사카 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야사카 탑은 과거 야사카사(寺)에 있었던 오중탑이다. (지금은 법관사 오중탑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야사카사와 야사카신사는 고구려 도래인 이리지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이리지가 천황에게 하사받은 이름이 '야사카노 미야쓰코' 였기 때문에, 신사와 절의 이름이 야사카 인 것이다. 신교와 불교가 자유로이 공존했던 일본이었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그 모습은 180도 변한다. 


​"메이지 정부는 신도에 의한 국가 통합을 이루어 천황제를 확립하고자 신불분리령을 포고하고 하루아침에 불교를 배척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2 - 210p


메이지 정부는 절이란 절은 죄다 파괴했다. 불상도 파괴했고 승려들은 환속 시킨다. (즉 지금 유명한 대부분의 절은 근대 들어서 복원^^) 흡사 조선의 불교 탄압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지나쳤던 것 같다. 오죽하면 "사찰이 장례업자로 전락했다"라는 말까지 돌았을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나 역시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고, 읽어보지 못했기에 이 책을 읽고 조금 아니 꽤 많이 놀랐다. 


책의 내용을 다 떠나서, 이 책의 교훈은 "나랑 안맞는 책이라 하더라도 일단 끝까지 읽어보자" 읽다보면 필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본 리뷰는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도 등록되었습니다.

"주요한 성씨는 아야 씨, 후미 씨, 하타 씨, 소가 씨 등이다.

아야 씨는 백제 아지사주의 후손, 후미 씨는 왕인박사의 후손, 하타 씨는 신라인 진하승의 후손,

소가 씨는 분명하지 않지만 백제 목만치의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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