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1. 요즘은 사실 이웃이나 동네라는 개념의 친밀한 관계의 형성이 쉽지 않죠, 대다수가 아파트문화에 적응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잘 모르고 몇년을 살다 또 이사가고 하는 뭐랄까요, 정착의 개념이 그렇게 와닿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도시를 조금 벗어난 곳이나 제가 어릴때만 하더라도 이런 정착의 느낌은 상당히 중요한 문화의 일부분이었죠, 지금도 시골에서는 누구네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좋은 일, 굳은 일 서로 도와가며 살곤 하죠, 과거에 우리네 삶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누군가에게 안좋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동네 사람들은 쉬쉬하면서 뒷담화를 그렇게 해대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가정에 불화가 있는 집의 경우에는 특히나 심했죠, 술을 먹고 폭력을 행사하는 어른들이 그시절에도 그렇게 많았습니다.. 밤마다 동네 입구 대포집에서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가 아버지를 데리러 나온 딸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면 얼마안가 비명과 함께 세간살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동네 어른들은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안하셨죠, 아니 몇번은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당시만해도 저집 사정은 저집에서 해결해야된다는 생각을 하셨는 지는 몰라도 늘 변함없이 그 어른의 폭력은 한번씩 동네를 시끄럽게 했습니다.. 몰래 도망나온 아이들은 옆집 아주머니집에서 울다 지쳐 잠이 들고 무서운 아버지가 잠들고 나서야 집으로 가서 가방을 들고 학교를 가곤 했습니다.. 그 시절은 그러했습니다.. 늘 맞고 사는 엄마는 어느날 말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아이들은 결국 시골에서 올라오신 노년의 할머니가 키울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동네 사람들은 원인제공을 한 폭력 아부지를 욕하기보다 그 폭력을 못참고 떠난 아이들의 엄마를 욕하더군요, 그 여자아이는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는데 중학교를 올라가면서 저도 이사를 가고 그 친구는 계속 그곳에서 살았던 것 같은데 얼마전 초등학교 모임 밴드에 그 친구가 보여서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2. 표정만으로는 그 친구가 견뎌내야한 삶의 아픔이 어떠했는 지 전혀 알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진으로 보여지는 친구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또래의 중년의 나이에 예쁜 아이 두명과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으로 반갑게 친구를 찾는 느낌이 좋아서 당장 가입을 해놓고 아직까지 만나보진 못했지만 그시절 우리는 왜 그렇게 무식하게 살았는 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우리의 삶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죠, 어느나라건 가부장적이고 자기위주적인 대단히 폐쇄된 곳에서 자신들의 삶에만 집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은 듯 합니다.. 스웨덴같은 선진국에서도 소규모의 시골 동네에선 제가 경험한 삶보다 더 극단적인 이야기를 소설의 내용으로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물론 소설의 자극적 설정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없는 사실을 지어낼 이유는 없을테고 이번에 읽은 소설 "드라이"(죽음을 질투한 사람들)이라는 호주 작품도 그러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키와라라는 지역의 삶 역시 대단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는 곳이죠, 그리고 수년째 비가 오지 않아 가뭄에 모든 사람이 지쳐있는 곳이라면 그 배타적 감성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한 가족이 살해된 사건인데 살인범이 그 집의 가정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가장의 친구인 경찰이 그곳으로 돌아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3. 호주의 남부의 메마른 땅 키와라지역이 한 농장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죽음을 알리는 파리의 모습으로 농장의 살인사건의 참상이 보여지죠, 그리고 살아남은 한 어린아이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로 그 서막을 엽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거행되는 곳에 에런 포크가 왔습니다.. 에런은 자신의 친구인 루크와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을 한 것이죠, 20년만에 고향을 찾은 에런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자신을 다시 이곳으로 이끈 루크의 아버지의 한마디 때문입니다.. 20년전 포크가 키와라를 떠날때 자살한 엘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루크와 자신의 알리바이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한 루크의 참혹한 살인사건에 대해 루크의 부모님은 에런으로 하여금 아무리 비관적이라도 루크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 살해할 이유가 없다며 에런에게 사건의 진실을 조사해주길 원합니다.. 여전히 키와라는 에런에게 냉대하고 과거 벌어진 엘리의 자살이 에런과 그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소문을 진실처럼 여기고 있는 지독히도 폐쇄된 곳이기도 합니다.. 에런 포크는 두번다시 이 땅을 밟지 않으리라 여겼지만, 그리고 지금이라도 바로 멜버른으로 떠나고자 하지만 자신에게 어머니와 같았던 루크의 어머니 바브의 부탁으로 지역 수사관 라코와 함께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 지 조금씩 찾아나가려고 하죠, 그가 조금씩 사건속으로 들어설수록 주변의 인물들은 그와 과거 엘리 디컨과의 관계와 여전히 살아남아 그를 괴롭히는 엘리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조카 그랜트 다우의 협박을 견뎌내며 루크가 어떻게 살아오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4. 승질나는 작품입니다.. 재미있어서 승질이 나고, 빌어먹을 동네 사람들 때문에 승질이 나고, 그것을 감내하며 진실을 밝혀내려는 주인공의 아픔을 보면서 승질이 나고 무엇보다 뒤늦게 밝혀지는 진실과 또다른 반전때문에 정말 승질이 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척이나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아주 메마른 가뭄이 극에 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모든 것이 메마르죠, 감성과 상황과 인간들 할 것 없이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퍽퍽하기 그지 없습니다.. 조금나 건드려도 파사삭거리며 부스러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끝없이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자연이 주는 최악의 메마름은 인간을 편헙하게 만들 수 밖에 없죠, 특히나 자신이 가진 것들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그곳에서만 살아온 정착민의 경우에는 쉽게 자신이 만들어온 땅을 포기하지 못하고 힘들고 괴로워도 여전히 지켜나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그들 내부의 고립된 세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어야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단죄하는 역할을 뻔뻔스럽게도 자처하고 나서도 누구하나 거부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외면하고 모른척하며 개인이 어떠하더라도 전체의 의견을 따라가면 스스로 문제될 이유는 없으니까요, 또 그런 합리화가 결국은 진실처럼 여겨져 자기들 끼리 뭉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너네들이 뭘 알어, 여긴 우리 땅이야, 꺼져,, 뭐 이런 식입니다..


    5. 그곳에 떡하니 과거 문제가 있어 야반도주를 했던 사람이 돌아왔으니 동네가 발칵 뒤집히는게 정상이겠죠, 하지만 이 아이는 현재 경찰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한 루크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것이죠, 과거와 현실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이야기는 에런 포크라는 주인공이라는 존재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가 성장하고 자아를 찾았던 곳은 키와라이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내쳐졌습니다.. 20년만에 돌아온 곳에서는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살인을 저지른 아이로 기억하고 편견과 분노와 배척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냅니다.. 진실과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단두대를 만들어 놓은 곳이죠, 그리고 그곳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과거 자신의 친구인 루크와 그레첸을 통해 그가 알지 못했던 진실을 하나둘씩 끄집어내게 됩니다.. 작가는 이렇게 벌어지는 진행과정상의 모습들을 아주 밀도있게 보여줍니다.. 에런이라는 인물을 통한 키와라의 가려진 이면을 하나씩 끄집어내는 것이죠, 이는 대단히 불쾌하면서도 그 어느것도 확신할 수 없는 궁금증을 함께 독자들에게 던져놓으며 진실을 찾아나가기 시작합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는데 구성력이나 상황적 흐름에 대한 방법론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사건의 시점을 그려나가는 추리적 방법론도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사실 하나의 사건에 과거를 접목시키고 또한 지역적 감성을 제대로 묶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작가는 무난하고 오히려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고로 상황적 분노가 자아내는 서스펜스의 감성은 상당히 뛰어납니다..


    6. 이 작품은 아주 진지하고 소설의 감성에 걸맞게 뜨거운 한여름의 열기가 넘쳐 흘러 언제 터져버릴 지 모르는 분노를 몇년동안 비 한방울도 오지 않아 메말라버린 지역적 감성에 숨겨서 차곡차곡 독자의 마음속에 쌓아갑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터져버립니다.. 한 인간이 평생동안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분노한 자신의 고향의 모든 것을 털어버리는거죠, 그속에는 그에게 주어진 억측같은 편견과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자신이 선택한 외면에 대한 회환, 그리고 여전히 가시지않는 분노와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선의라는 가면속에 늘 악의와 욕망에서 비롯된 죄책감등을 감추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죠, 이 작품은 인간의 이면을 대단히 날카롭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하나씩은 있다는 인간 관계의 진리를 이 작품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그대로의 모든 것이 아닌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은 밝혀질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이 작품은 차분하면서 집중할 수있는 즐거운 독서를 주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또한 스릴러소설로서의 매력이 아주 대단해서 감성과 여운과 재미를 모두 안겨주는 괜찮은 작품인 듯 싶습니다.. 남부는 여전히 비가 안와서 가물었는데 오늘 시원하게 비가 제대로 내려주네요, 이제 여름도 이렇게 가는건가,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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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왓치 ㅣ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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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 연말 송구영신을 하면서 혼자 생각하기를 내년에도 내가 살아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희한하게 신년 소원을 비는데 내가 만약 살아있다면이라는 전제로 소원을 빌게 되더군요, 스스로도 생각 같잖은 아주 빌어먹을 염세적 희망인지라 스스로 이게 미쳤나라는 생각과 함께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고민을 여즉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내가 없다면 우리 가족은, 내 주변은, 뭐 이런 정말 빌어먹을 생각이 수시로 머리속에 잠입되는 것이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일단 제 나이가 있을 것이고,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희망찬란한 미래의 청사진만 보이는게 아닌 아픔과 고통과 죽음의 불안함을 알게모르게 공감하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정정하신 부모님의 모습속에서도 말로 드러내진 않지만 스스로 불안한 걱정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시절 그 거대한 몸으로 저를 내려다보시는 아버지의 지금의 야윈 모습과 허전해진 머리숱을 볼때마다, 너무 걸음이 빨라 도저히 따라가질 못해 늘 엄마에게 불평을 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저에게 조금만 앉았다 일어나도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는 모습을 볼때마다, 그런 모습들이 부모님의 건강의 걱정보다는 나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염세적 방식으로 머리속에 인식되는게 아닌가하는 뭐 그런 것이지요, 누군가가 머리속에 이런 생각을 집어넣진 않았겠지만 혹시라도 이런 생각을 빼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한번 박힌 생각이 쉽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혼자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곤 합니다..


    2.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번 머리속에서 안좋은 생각을 하게되면 이것을 떨쳐버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원래 인간의 심리나 본성이 연약해서 그런 것인 지, 저 자체가 성품 자체가 겅정적 마인드보다는 부정적 염세관에 더 치우쳐져 있는 것이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쉽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중년의 뚱땡이 아저씨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생각을 잊기위해 즐겁고 재미진 대중소설을 읽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보는 작품들의 성향이나 소설속의 설정 및 소재나 주제들이 사회상이나 현실적 이해관계와 크게 다르지않다보니 늘 좋고 나쁜 생각들과 함께 독서를 하는 편이 되어버리네요, 이럴때는 뭔가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스러운 일반적이지 않은 작품을 읽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래서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엔드 오브 왓치"를 행복한 마음으로 펼쳤는데 웬걸, 개인적으로 여즉 떨쳐내지 못한 염세적 생각이 떡하니 이 작품에서 버젓이 등장하니 짜릿짜릿하더이다. 이 시리즈의 이전 두작품은 기존의 스티븐 킹 할배의 작품들과는 조금 느낌이 다른 작품이었죠, 추리적 기법으로 탐정소설의 영역을 노크했던 전작이었다고 보시면 될텐데,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연쇄 살인범을 다루었고 "파인더스 키퍼스"는 천재작가의 유작과 관련하여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범죄에서 스핀오프격인 상황으로다가 이야기를 이어갔죠,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꿈틀거리는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연쇄살인마 브래드 하츠필드의 부활과 관련한 거대한 떡밥을 던져놓으셨는데 이번 "엔드 오브 왓치"에서는 그 떡밥을 거둬들이려고 합니다.. 이것으로 임무 종료하는 것이죠, 제목인 "엔드 오브 와치"가 그런 뜻이랍니다..


    3. 이 빌어먹을 브래드 하츠필드는 미스터 메르세데스라는 별명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해하고 몸을 망가트려 놓고도 콘서트장에서 테러를 저지르려다가 빌과 홀리, 제롬에게 저지당하고 홀리가 가격한 베어링양말에 머리가 보깨져버렸죠, 이 자식은 여전히 정신병동에서 무뇌의 상태로 입원해 있는 듯 하나 우린 전작에서 뭔가 브래드의 부활에 대한 낌새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딱히 문제없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빌은 이제 7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근래들어 살이 빠지고 몸이 여전처럼 말을 듣지 않나 봅니다.. 파트너인 홀리의 걱정이 많죠, 그러던 와중에 과거 브래드의 범죄로 인해 전신마비가 되어버린 마틴 스토버와 그녀의 노년의 어머니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전 빌 호지스의 경찰 파트너였던 피트가 정황상황이나 그들과 관련이 있는 빌과 홀리에게서 사건의 참고인격으로 현장으로 부릅니다.. 그곳에서 홀리와 빌은 이 사건이 단순한 자살사건이 아님을 인식하고 현장에 있었던 휴대용 게임기인 재핏을 몰래 들고 나와서 이 단서와 관련된 연관성을 알아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와 동시에 뇌를 다친 브래드 하츠필드는 과거 어느순간부터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감지하고 꾸준히 자신의 초능력을 다듬기 시작합니다.. 안그래도 미친 놈인 브래드 하츠필드의 머리속에 일반적이지 않은 능력이 자리잡고 또 그 능력을 중심으로 그가 집착하는 자살적 범죄의 방법을 하나씩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능력을 알아채기에는 주변사람들이 아직 여력이 없네요, 심지어 빌 호지스는 말기 췌장암이랍니다.. 이런 젠장,


    4. 이 시리즈의 마지막편은 전작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기존의 스티븐 킹 특유의 비현실적인 판타지식의 방법적 현실론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추리적 기법으로 현실적 세계의 일반적인 범죄와 삶의 이면을 다룬 전작 두편과는 아주 다른 이질적인 스토리로 진행이 되는 마지막편입죠, 물론 기존의 킹쌤의 다른 작품들과는 일맥상통하는 킹쌤 특유의 소재적 특성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염력이나 최면적 조종 능력을 중심으로 타인의 뇌와 마음을 파고드는 능력을 게임기라는 매개체로 인해 만들어내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판타지적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잘 알다시피 킹쌤은 이러한 영역적 배경을 우리가 사는 현실의 그대로 둔 상태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실제 이런 사람들이 없다고는 또 말 못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린 혹하고 이런 작품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겁니다.. 게다가 전작에서 확실히 마무리 되지 않은 사건의 결말을 제목에서부터 버젓이 끝내주겠다고 제시하고 진행하니 독자들은 어떻게 끝을 낼까 궁금하기 그지 없죠, 또 게다가 젠장맞을 설정이란게 우리의 늙다리 영웅 빌 호지스가 췌장암 말기래잖습니까, 이 작품의 전작들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홀리라는 여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나 빌의 주변의 상황을 충분히 아실테니 뭔가 짜안한 감성이 들 수 밖에 없죠,


    5. 말씀드렸다시피 전작들과 그 설정이나 소재가 조금 다르다보니 이 작품만의 단독적인 특성만으로도 이 작품은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전작들을 다 살펴보고 보는게 좋긴하지만 울 착하신 킹샘은 굳이 전작 두편을 읽지 않고 이 작품만 읽어도 딱히 뭔가 빠진듯한 느낌은 들지 않게끔 나름 많은 배려를 해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구성이 오히려 사건의 긴장감이나 흐름의 문맥을 조금씩 끊게되는 안타까움은 있더군요, 전반적인 재미는 나쁘지않지만 이 소재들이 주는 특유의 긴장감이나 긴박한 서스펜스등의 판타지적 호러의 킹샘 특유의 느낌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연배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빌과 킹샘이 동질적 감성으로다가 짜안한 노년의 삶의 안타까움을 조금 더 두드러지게 그려놓으신 듯하고 무엇보다 브래드라는 장르적으로는 대단히 매력적인 연쇄살인마의 미친 사고방식의 흐름과 능력에 대해서 너무 배려깊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맞춰주신 듯 해서 제목의 느낌처럼 깔끔한 마무리와 구성은 그럭저럭, 재미도 있지만 그렇다고 뭔가 남는 그런 독후적 감상은 없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라꼬 할 수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이 전해주는 중심 주제인 '자살'이라는 개념적 방법론이 안겨주는 위협감은 상당히 오랫동안 머리속에 남습니다.. 물론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자살을 유도하는 이야기지만 현실세계에서 자살율 1위를 버젓이 드러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 소설이 주는 위기감은 상당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긍정적이고 희망에 찬 미래를 담보해야하지만 우리의 아이들과 청소년, 젊은이들은 그런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무서운거죠, 그리고 이러한 자살적 반응은 홀로 생각해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주변의 상황이나 불안적 심리에 동조되는 심약한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 깨진 유리같은 영역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6. 빌 호지스 3부작의 각 편들마다 그 소재나 감성이나 장르가 다 달라서 읽는 재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추리적 기법으로 퇴직경찰과의 대립적 성향이 두드러진 긴장감이 넘쳤다면 두번째 작품인 "파인더스 키퍼스"는 탐정소설이라는 의도를 잘 살린 멋진 장르소설의 즐거움이 다분했다면 마지막 이 작품 "엔드 오브 왓치"는 킹쌤 특유의 감성이 적절히 살아있는 현실적 판타지의 킹쌤표의 호러적 느낌으로다가 독자들의 입맛을 다시게 해주는 즐거움이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거지요, 게다가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해주시니 이 3부작만으로도 배부른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아무래도 각권의 느낌이 따로 시간차로 읽다보니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지 모르지만 혹여라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3부작을 연속적으로 읽어보신다면 그 시너지가 상당히 크지 않을까하는 짐작도 해봅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 그려놓은 허구적 이야기는 차지하더라도 그 배경이나 현실적 모습은 우리네 삶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혹여라도 이런 설정이 아니라도 어떤 정신나간 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테러를 저지르거나 자살을 부추기거나 이로 인해 주변의 누군가는 평생의 고통을 당하고 살아가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안될 것 같아요, 이 소설이 보여주는 중심은 단순한 범죄나 범행의 캐릭터의 설정이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후유증을 3부작에서 변함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러 점에서 이 작품은 대중적 재미와 현실적 문제를 나름 잘 잡아낸 작품인 듯 해요, 물론 킹샘이 주는 재미는 언제나 나쁘지 않습니다.. 나도 이제 날씨 좀 사그러들면 퇴근하고 동네 몇바퀴 꾸준히 돌아야겠다.. 운동해야쥐, 씰데없는 생각 집어치우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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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ㅣ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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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린 흔히 밥줄이라 일컫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동아줄과 같은 것이죠, 월급쟁이란 누군가가 내려준 동아줄을 부여잡고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제대로 된 동아줄을 잡고 천천히 힘을 아껴가며 위로 올라가면 마지막 도착지는 안락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죠, 하지만 이 동아줄이 가지각색이다보니 중간에 끊어지는 줄도 있고 위태위태하게 흔들린 체 매달려 어쩔줄을 모르고 마냥 바라만본 체 끊어질 날만 기다리는 줄도 있고 썩은 줄인지도 모르고 잡았다가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고 정말 잘 묶여진 동아줄인 줄 알고 굳건히 위만 바라보고 올라가다가 옆에 있는 줄을 끊다가 자기 줄까지 끊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밥줄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줄을 만들어보지만 평생 남의 줄만 잡다가 내 줄 만들기가 그렇게 쉽지않은 모냥입니다.. 줄 만들기를 몇번 실패하고 나면 끊어져서 버려진 줄이나 모아서 파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서민 코스프레하느라 맨날 사회에 불만만 많은 것 같아서 이번에는 웬만하면 좋은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고 나를 위해 세상이 주는 헤택을 챙겨보니 이렇게도 많았나라는, 뭔가 긍정적이면서도 희망적인 세상살이에 대한 첫단락 주절거림을 해보고 싶었으나 여전히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은 사회는 참 문제가 많아, 돈 없고 능력 없고 연줄도 없으면 참말로 지랄맞은 양보와 희생의 발현을 본능적으로 이끌어내야하는 서러운 처지에 놓인다는 사실을 일깨우게 됩니다.. 책을 읽지 말까,


    2. 자급자족의 사회에서 시장경제가 발생하여 댓가를 중심으로 한 타인의 돈을 받고 사는 세상으로 역사가 이어져오면서 이 세상의 대다수의 인간의 삶은 늘 기득권에 대항하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가진 자, 있는 자들의 영역에서 내 밥줄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만들어내야되는 것이죠, 뭐 제대로 대우와 인정을 해준다면 나쁠게 없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세상은 여전히 갑과 을의 세상이고 을은 늘 갑의 횡포에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오늘 당장 뉴스를 보더라도 갑질하는 빌어먹을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대두되는 사회문제이기도 하죠, 노동법과 최저임금, 구조조정, 청년백수등 세상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에서 여전히 그 역할을 부여하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시장경제의 불안은 늘 사회적 경제의 문제로 우리의 삶에 가장 큰 불안요소이기도 하죠,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는 그런 사회적 불안에 휩싸인 한 구조조정당한 중년의 남자의 심리를 "액스"라는 스릴러소설을 통해 대단히 날카롭게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액스'란 말 그대로 도끼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도끼로 이마까라상할때 그 도끼의 의미가 아닌 일종의 구조조정등의 정리해고의 뜻으로 쉽게 말해서 회사에서 짤린 남자의 이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남자가 새로운 직장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벌여나가나는 지 함 살펴봅시다..


    3. 제지회사에서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버크 데보레는 회사 경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캐나다의 기업에 인수합병됨에 따라 구조조정을 당합니다.. 그리고 벌써 2년동안 제대로된 일자리를 찾질 못하고 있죠, 그런 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존 경력을 살린 제대로 된 제지회사에 경력으로 재취업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자신만 구조조정 당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경제상황에 따라 사회의 경제적 활동에서 낙오되어버린 것이죠, 자신보다 월등한 능력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경쟁자로 나서는 상황에서 버크는 여전히 자신의 끊어진 줄을 이을 수가 없다는 판단하에 그들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자신과 같은 경력을 가진 이력의 인물들을 경쟁에서 탈락시킴으로서 자신이 새로운 줄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인거죠, 그렇게 그가 정한 7명의 경쟁자를 파악한 후 하나씩 그들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곤 그들을 살해하기 시작하죠, 첫번쨰는 아주 쉬웠습니다.. 허버트 에벌리라는 사람은 버크의 아버지가 2차대전에서 획득한 루거권총으로 에벌리의 집앞에서 그냥 총을 간단하게 쏴죽여버립니다.. 모든 일이 쉬워보이지만 이제부터 버크에게 닥쳐올 주변의 상황과 남은 경쟁자의 제거는 에벌리만큼 쉬운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버크는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도덕과 법규와 규정을 지키며 살아왔지만 한순간 사회의 나락으로 내몰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최악의 결정으로 연쇄살인을 벌이게 되는 과정을 우린 그의 세상속에서 가만히 한번 지켜봐야겠습니다..


    4. 일단 황당합니다.. 이 작품이 아마 97년경에 집필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IMF의 경제위기입죠,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여러 경제적 불안으로 인한 기업의 위기를 겪던 시기였다봅니다.. 그런 사회적 불안심리를 도널드 서쪽호수옹께서 이런 황당스러운 상황적 설정으로 시대적 불안을 대단히 매력적인 하드보일드한 스릴러소설로 탈바꿈시켜놓으신거죠, 어떻게 자신의 이력의 장점을 획득하기 위해서 경쟁자들을 제거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평생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온 적이 단 한번도 없는 매우 평범한 중산층의 중년 남자가 말이죠, 이 소설의 캐릭터는 대단히 많은 이미지적 투영을 보여줍니다.. 시대의 대표하는 외면당한 중년 남자의 면모와 사회적 불안을 모두 떠안고 살아가는 불안한 심리로 자기방어 기제가 대단히 강한 그래서 자신의 가족과 삶을 위해 타인에 대한 공격적 파괴를 서슴지않는 사회적 분노에 대한 자신의 방법론은 합리화시키는 극단적인 인간의 반대급부적 성향을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인물의 설정이기도 하거니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그동안 전혀 사회적 문제 없이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한 남자가 어려운 현실속에서는 과거 그가 누렸던 경제적 여유와 삶의 편안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연쇄살인을 벌인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극단적인 상상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주는 반향이 더욱 강한 임팩트로 다가오는 것이죠,


    5. 소설은 버크라는 인물이 차례로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흐름으로 이어져 나갑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회적으로 아주 평범하고 누구나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 인물이기에 그는 자신이 행하는 극단적 파괴행위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일 것입니다.. 소설에서는 그런 그의 심리를 대단히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들, 특히 부인인 머저리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가 자신이 행하는 범죄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나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삶을 위해 타인의 삶과 세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 사회적 분노로 합리화하는 부분은 단순한 풍자적 기준에서도 한참 벗어난 강렬함을 전달해주죠, 전 이 소설은 대단히 악한 기운이 강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매나 도덕적인 삶을 살기에 그렁가할 수 있지만 만약 자신의 경력입사를 위해 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쉽게 적응되지 못하는 것이죠, 전 솔직히 이 소설이 이어나가는 서사적 방법에서 버크가 내보이는 심리적 표현을 단 한순간도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습니다.. 작가도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 소설은 도발적 감정과 사회적 공감을 이어주지 못하는 극단적인 사회비판적 스릴러소설이죠, 그렇기에 이 작품의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몰감정적 이해를 이끌어내는 파격적 설정이 주는 임팩트가 이 소설을 만든 의도가 아닐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6. 도널드 서쪽호수옹은 독자가 뭘 생각할 지를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작품은 대중적 독자의 의도에 맞춰진 감성이나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작가의 의도와 상황이 주는 사회적 비판의 스릴러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나갑니다.. 그래서 오히려 독자들은 충격을 받고 더욱 이 소설이 드러내는 대단히 이중적이고 비틀린 인간의 연약한 욕망에 대해 환호하고 작가가 의도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시대가 지날수록 이러한 사회적 부적응자는 수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년전의 작품입니다.. 그 당시의 사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러한 인물의 설정과 극단적 방법론을 택한 사회파 스릴러소설은 전무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지금 이 작품이 대중에서 선보였다고 하더라도 파격적인 설정과 서사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이 작품은 대단히 단순한 반사회적 범죄행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그 속에 담겨진 반사회적 인물의 모든 것을 하나씩 드러냄에 따라 시대의 자화상을 직접적으로 득춰내고 과연 우리가 바라보는 이 반사회적 인물이 왜 한순간에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렸는 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던져줍니다.. 그러면서 이 인물과 다르지 않는 저의 삶과 앞으로의 미래의 불안에 대해서 나 역시 버크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겠지만 그가 가진  심리적 분노와 그렇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거지요, 게다가 난 버크보다 얘가 둘이나 더 많은데,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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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미 배드 미 ㅣ 미드나잇 스릴러
알리 랜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1.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이란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주 기본적인 성향이나 바탕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나가야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든 부모들의 책임이고 역할인 것이죠, 사실 부모라는 역할이 얼마나 힘든 지 스스로 깨닫곤 합니다..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하며 부모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은 아이들이다보니 부모로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곤 하지만 늘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질 못합니다.. 짜증나고 힘들고 간혹 얘네들이 없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아이가 많다보니 이제는 어느정도 큰 중학생의 아이는 필요할때만 부모를 찾곤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뭔가를 하지 못해뵈고 초딩 고학년인 아들은 또 여전히 아이티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구요, 그래도 어느정도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듯해서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힘듬이 덜하죠,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의 똥닦기 신세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근데 헉,소리나는 초딩 1학년들이 버젓이 버티고 잠들때까지 엄마아빠를 수천번씩 불러대며 하루죙일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고자질과 거부반응을 보이는 행동에 딱히 요가를 하지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부처의 영역까지 열반할 수도 있을 것 같더군요,


    2. 하지만 세상에는 저처럼, 우리처럼, 대부분의 세상의 부모들처럼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부모만 있는게 아니라는게 현실이죠, 부모같지도 않은, 부모의 자격도 없는, 부모이기를 포기한 그런 파렴치한 인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을 학대하고 자신의 이기적 욕심과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같은 행동거지로 아이를 세상의 밑바닥으로 던져버리는 행위도 합디다.. 특히나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 그 부모라는 족속들이 행하는 뉴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아동범죄의 모습들은 정말 무섭고 두렵고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가슴속에, 마음속에 무엇보다 아직 스스로 존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아이의 정신에 얼마나 큰 상처와 생채기를 만들어 그 아이가 그만의 세상에 홀로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될 지 우린 정말 상상조차 하기가 어렵네요, 여기에 그런 상처를 안고 자신의 엄마가 저지른 범죄를 고발하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단히 잔혹한 범죄의 진실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알리 랜드라는 작가의 데뷔작인 모냥입니다.. "굿 미 배드 미"라는 제목은 언듯 굿캅 배드캅같은 역할론적 이야기가 떠오르는 느낌이긴 하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냄새로 봐서는 심리스릴러의 영역에 치중하는 느낌이 들긴합디다..


    3. 아직 열여섯살이 채 되지 못한 애니라는 여자아이는 자신의 엄마를 신고합니다.. 어린 아이들 아홉 명을 살해한 죄목으로 자신의 엄마를 신고한 것이죠, 애니의 엄마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서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여 자신의 집에 만들어놓은 그녀만의 놀이방에 아이들을 가둔 후 살해를 합니다.. 어린 애니는 오랫동안 그런 엄마의 모습과 엄마의 병적 취향을 감내하며 살았지만 오랫동안 자신이 경험한 비정상적 삶에 대한 반동으로 자신을 찾기 위해 엄마를 신고하지만 여전히 그는 엄마에게 갇힌 삶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애니는 엄마가 구속된 후 자신이 신고한 범죄사실을 증인보호 시스템을 통해 재판 과정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 현재는 밀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의 임시보호자인 정신심리학자 마이크의 집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하죠, 재판이 끝날때까지 마이크는 밀리의 모든 것에 대해 보호하고 심리적 안정과 사건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시켜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마이크의 집에는 밀리와 같은 또래의 피비라는 아이가 있죠, 이 피비는 자신의 부모가 늘 자신보다 밀리와도 같은 뜨내기 임시 입양아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피비는 밀리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같은 학교에서부터 밀리를 왕따시키기 시작하죠, 하지만 밀리는 자신이 그동안 경험한 엄마의 죄악과 범죄에 대해 스스로 엄마와 다르지 않을것이라는 죄책감과 같은 두렵고 불안한 심리로 인해 하루하루 홀로 힘겹게 견뎌나가고 있죠, 여전히 밀리는 그런 자신의 존재적 부정으로 늘 외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밀리에게 재판이 끝나고나면 자신은 피비의 가족의 일원으로 그대로 머물러있지 못하고 결국 홀로 남겨질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 계속 자리잡고 있죠, 그러던 와중에 자신을 그토록 옭아매던 엄마의 재판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은,


    4. 대단히 무섭고 짜증스러운 범죄행각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엄청 자극적인 시작점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냅니다.. 아직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정확하게 확립하지 못한 15세의 어린 여자아이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사이코패스 엄마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니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엄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밀리라는 아이가 엄마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그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자아의 가치를 하나씩  찾아나가려는, 불안하고 이중적인 자신의 심리를 통해 때로는 엄마의 사이코패스적 동질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또 한편으로는 또래의 아이들의 일반적인 사춘기적인 정신적 불안을 나름대로 적응하며 스스로를 지켜내고자하는 존재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대단히 자극적인 범죄의 배경을 바탕으로 둔 체 그것을 경험한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가 또래의 세상에서 어떻게 견뎌내고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지에 대한 청소년의 불안하고 두려운 심리에 대해 이 소설은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 소설은 상당히 불편한 현실적 세상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래의 아이들에게서 어쩔 수 없이 배척당하고 부모로부터 일반적이지 않은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오랫동안 당한 아이가 자존감을 확립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방황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독자는 그런 밀리라는 아이의 심리에 동화되어 이야기속에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5. 제목이 주는 느낌이 소설속에서 그대로 전달됩니다.. '굿 미'로서의 밀리의 삶과 현실속에서의 그녀의 생활과 '배드 미'로서의 애니의 삶과 현실속에서 그녀가 감내하며 감춰어야 할 삶의 이면이 제대로 그려지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소설속의 여주인공은 15세의 여학생으로서의 학교에서의 일반적인 인생을 원하는 삶과 누구나 외면할 정신병적인 연쇄살인마로서의 엄마의 삶에서 그녀에 또다른 자아로서 살아왔던 인물이 그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삶이 번갈아 보여집니다.. 이 두가지의 삶은 결국 하나이지만 우린 밀리를 통해 현실에서 이 두가지의 삶은 공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자신이 받지 못했던 관심과 보호를 받게 되지만 언제나 이 관심과 보호의 울타리라는 행복은 어느순간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현실적 불안감이 그녀를 잠식하죠, 그녀는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아니 피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일반적인 사랑과 관심을 자기도 받길 원하죠, 소설은 끝없이 이러한 밀리의 불안한 심리적 변화를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엄마의 범죄와 사회적 반향을 배경으로 보여줍니다.. 밀리가 숨기고 싶은, 절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이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인 엄마이지만 그 사실이 현실에서 없어지지는않기 때문에 이 여주인공은 극단적인 10대의 사춘기적 불안의 혼란스럽고 이중적인 심리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적 심리가 이 스릴러소설의 장르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6. 솔직히 가족을 다루는 스릴러소설은 개인적으로 재미집니다.. 대단히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임에도 이 소설이 보여주는 10대의 아이가 감당하는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과 상처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동안 상당히 불안한 마음과 짜증스러운 공감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짙죠, 어떤 이에게는 대단히 불쾌한 소설로 여겨질 지도 모를 그런 아픔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들어서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특히나 그러하죠, 밀리가 자신의 엄마에 대한 범죄사실을 드러내기 위홰 법정 증언을 하는 상황에서 밝혀지는 여러가지 정신적 상처와 범죄적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상상으로는 감히 그려볼 수도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반전의 진실과 현실적 괴리에서 오는 지독함 파멸의 감성은 이 작품이 어떤 의도로 집필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인식시켜주며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작가는 정신 의학을 전공하여 오랫동안 청소년들의 정신적 문제에 대한 치료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사람인 듯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잘 살려 조금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모습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외면된 10대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사춘기적 감성의 아픔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하튼 아이들은 제대로된 부모의 영역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나간다는 불멸의 진리를 다시한번 깨우쳐봅니다.. 난 앞으로 한 10년만 고생하면 공중부양도 가능한 도사가 될 지도 몰라,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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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 : 주사위는 던져졌다 ㅣ 레오나 시리즈 The Leona Series
제니 롱느뷔 지음, 박여명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1. 근래들어 뉴스를 볼때마다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범죄자의 성향을 눈여겨보다보면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모습이 많이 보여집디다.. 과거에도 이런 범죄자의 모습은 여전했을 법하지만 공동체 사회의 구성속에서 개인적 생활의 범위가 확대되어짐에 따라 인격형성의 성향이 보다 이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르죠, 제가 과거에는 뉴스를 통 안보고 살았으니 뭐 그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사회의 모습과 우리의 현실을 나름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의 주변의 모습은 정말 자극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가학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범죄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에는 여러 종류의 성향이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제가 인식하는 것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인격장애의 사회적 모습입니다.. 수많은 인격체들이 자신만의 성향으로 살아가는 공간속에 있는 우리는 그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판단할 수 밖에요, 그러니 내가 모르는,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삶의 어두움을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알아낼 수 없는 것이죠, 특히 사이코패스의 경우는 생각만해도 무섭습니다..


    2. 아직까지도 집사람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구분을 잘 못하더군요, 똑똑치 못한 저라고 딱히 알일이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그동안 장르소설을 읽은 경험으로 아는 척 한번 했습니다.. 일반적으로다가 감정을 제어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자신의 성향을 어느순간 폭발시켜버리는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정신질환자이죠, 이들은 평상시에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에서 사람들속에 녹아나기 때문에 알아채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감정적 죄책감이나 반사회적 행동에 따른 극단적 성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거죠, 하지만 실제 이러한 사이코패스가 증가추세이긴해도 딱히 사회적 현실에 두드러지지는 않아 보입디다.. 그리고 이들의 정신적 인격장애는 태생적으로 결여된 정신체계가 있는 듯 하구요, 근데 여기에서 소시오패스에 대해서는 정말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소시오패스 역시 감정적 결함이나 죄책감의 공감적 결여등과 자기 위주의 사회성 결여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띕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성공한 사람들이나 어린시절 겪은 사회성 차단으로 인해 벌어지는 경험적 인격장애가 주를 이루죠,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정적 연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중증의 소시오패스도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에 이르러 소시오패스의 증가율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아니 땐 굴뚝에서 했나 싶기도 한데, 그 굴뚝에서 하는 말이 현재 인구 20명중 3~4명이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사회적 불만이 커질수록 그 반사회적 인격의 장애의 발현율은 더 늘어나겠죠, 그리고 이 소시오패스는 자신이 어떤 인물인 지 자각하고 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3. 갑질하는 인간들이나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상대방에 배려가 전혀 없는 사회적 기득권자나 권력자들에게서 이런 성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죠, 그리고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자신만의 합리화와 판단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에 가둬두기도 하죠, 이런 인간들은 수시로 우리의 눈에 띕니다.. 가능하면 가까이 안하면 좋겠는데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돈 있는 놈들이나 기득권층에 있는 인간들이 자신의 욕심과 만족을 위해 타인을 깔아뭉개는 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극단적인 편견을 가진 것일 수도 있지만 제가 겪어본 그들의 모습은 그러합디다.. 여하튼 소시오패스라는 인격장애는 어린시절 후천적 애정결핍이나 사회적 공감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니 대다수의 세상의 중심인 우리네 착하고 규범을 준수하는 늘 당하고만 사는 서민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소시오패스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만들 가능성이 적죠, 늘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니 말입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스웨덴 출신의 작가님의 데뷔작인 모냥입니다.. 제니 롱느뷔라는 여성작가님이신데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레오나"라는 작품을 선보여 주십니다.. 여기에서 "레오나"는 스톡홀름의 강력범죄수사팀의 형사입니다.. 그녀가 담당하는 은행털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4. 몸 전체에 피범벅이 된 어린 여자아이가 은행으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져온 카세트 테이프를 틀죠, 테이프에서는 은행을 털기 위한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은행직원은 돈을 담은 가방을 아이에게 전달하고 아이는 피범벅이 된 체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레오나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12년의 베테랑 형사이죠, 그리고 기혼에 두아이를 둔 힘겹게 살아가는 맞벌이하는 워킹맘이기도 합니다.. 북유럽의 선진국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 곳도 경찰의 삶은 빡빡하긴 마찬가지인가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범죄사건으로 인해 담당 형사에게 할당되는 사건 역시 넘쳐나는 모냥입니다.. 그녀에게 할당된 이 은행털이 사건은 어린 아이를 이용한 파렴치한 범죄로 분류되어 언론과 경찰내 관심이 높은 상황으로 수사 능력이 뛰어난 레오나가 맡게 된 것이죠, 이제부터 이 사건과 관련하여 레오나의 경찰 업무가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남자가 등장하죠, 기자인 크리스테르 스코그라는 인물인데 이 인물이 쥐고있는 단서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초반을 조금 넘어서면 대단한 반전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흐름으로 소설은 이어지죠,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도 모릅니다..


    5. 대단히 독특한 인물적 설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제목과 같이 모든 시점이나 흐름의 중심에는 레오나라는 여형사의 심리와 상황을 중심으로 이어져나가죠, 북유럽 소설, 특히나 스웨덴 소설을 읽을때면 많이 느끼는 감정적 공감중에 하나가 서구의 선진국다운 사회적 배경이 아닌 우리 동양적 사고나 가부장적 가치관과 비슷한 강압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회적 이면이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소재의 소설만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범죄와 사회적 문제를 다룬 스웨덴의 작품들이 이러한 가정내 문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 소설 역시 그렇습니다.. 시작점의 설정 자체가 아직 유아의 티도 벗어나지 못한 7살 가량의 어린 여자아이가 몸 전체에 피범벅이 된 체 은행을 털면서 시작되니까요, 그리곤 대단히 무감각적이고 매마른 형사적 느낌이 강한 하드보일드한 비도덕적 상황의 연이어 벌어지면서 독자들을 현혹시킵니다.. 그 중심에 레오나라는 캐릭터가 주는 감정적 인식은 뭔가 현실적이면서도 거부감을 들게 만듭니다.. 짜증스러울 정도로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끝까지 이어지죠, 하지만 이 캐릭터의 이중적 감성의 반향이 독자들을 소설의 이야기속에서 놓아주질 않습니다..


    6. 여기까지 읽어보셨다면 "레오나"라는 인물이 어떻기에 그런가 싶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의 흐름에 따라 이 주인공의 시점이나 심리적 연결도 불안하지만 변화되어갑니다.. 상황이 더욱더 어려워짐에 따라 레오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의 감정선도 따라서 심리적 변화가 심화되어지죠, 이런 구성이 뭔가 흥미롭고 책의 이야기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질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분명 이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의 사회적 통념의 규범적 해석에서 벗어나는 작법인지라 무엇보다 인물적 독특함에 독자들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감정적 이입이 그닥 동화되어 다가오진 않았지만 이야기의 구성이나 인물의 심리적 흐름등은 스릴러소설이 갖춰어야할 긴장감과 장르적 느낌이 제대로 살아있다고 봐도 될 듯 싶습니다.. 특히나 중후반부에 꼬일대로 꼬인 이야기의 흐름이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급박하게 이어져나가는 아슬아슬한 해결적 방법론은 뜻밖의 해답을 제시하면서 끝을 맺는 듯 하였으나 역시나 부제의 문구처럼 던져진 주사위의 향방을 어떻게 맞춰나갈지에 대한 또다른 대형 떡밥을 제시한 체 독자들에게 다음편을 기다리게 만들어줍니다..


    7. 일반적인 소설의 룰을 파괴하고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인물적 설정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대단히 새롭습니다.. 이 소설은 대중소설의 줄거리적 흥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물이 주는 일반적이지 않은 매력에 흠뻑 빠질 수도 있는 독특한 스타일의 스릴러소설이라고 보시면 될 듯 싶습니다.. 이야기가 이어짐에 따라 긴장감 역시 인물이 주는 비범함에 맞춰 상당히 긴박하게 흘러가는 즐거움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독자들은 아마 뭐지, 이상한데, 그래서 어떻게 할려고 저러나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끊임없이 다음 페이지로 손을 넘겨갈게 뻔한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동화되진 못하지만 그런 인물의 특성이 누구보다 이해가 또 가는 설정인데다가 범죄사건의 연결고리 역시 급박하게 이어지는 상황에 맞춰 독자들이 집중하게끔 잘 이어나가는 방법론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범죄의 세상에서 나홀로 고군분투하는 형사의 열정과 도덕적 연결 방법론은 이 작품에서는 일단 제쳐두시고 다가가서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마지막 작가가 던져놓은 떡밥의 무게가 가볍지 않기에 전 여전히 레오나가 다음편에서 이미 던져진 주사위의 결정을 어떻게 바꿔나갈 지 궁금하군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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