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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평점 :
1. 나이가 들어가면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이야기를 독후감에서 제법 지껄인 적도 있었구요,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디다... 내가 죽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은 없지만 누군가에게서 어느순간 잊혀져버리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그 현실적 상황이 주는 서글픔 같은 것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나고 나라는 존재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할 것이라는 그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해져오면서 꽉 막힌것처럼 숨을 못쉬겠더군요, 이렇게 잊혀져가는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제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잊어버렸던 그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시다보니 외할머니가 항상 저의 집에서 저를 챙겨주셨죠, 그런 할머니가 어느날 돌아가셨어요, 고2때였죠, 어린시절 함께 잠들고 저를 깨워주시고 밥도 먹이고 세수도 시켜주셨던 할머니가 감기로 힘들어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근데 그때는 잘 몰랐어요, 그렇게 슬퍼지도 않았구요, 그냥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항상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덩요, 엄마한테도 눈물이 안난다고, 그냥 할머니가 항상 날 지켜줄 것 같아서 그런 지 실감이 안난다고 했죠, 근데 한참이 지나서도 그랬습니다.. 그냥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시고 어디에선가 날 지켜주실거라는 믿음 말이죠,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습니다.. 힘들때마다 고개들어 할머니한테 인사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더랬습니다.. 제법 오랫동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유치합니까, 뭐 그냥 그랬다는겁니다..
2.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가슴이 꽉 막힌 것 처럼 답답하면서 꿈에서 깨어 한참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먼저 할머니가 떠오른 것은 아닙니다.. 꿈속에서 제가 죽고 아이들이 절 잊혀가는 상황을 떠올리는 뭐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마침 깰때여서 새벽녘 밖을 쳐다보면서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아, 어느순간 나조차 할머니를 잊어버렸구나,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아이들이나 가족들에게서 잊혀져가는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숨이 막힐 듯 답답해져 오더라구요, 나이가 들어서 주책이죠,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일겝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주는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삶이 있는 한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날 수는 있지만 죽음은 더이상 서로를 바라볼 수 없는 공간속에 놓이는 것이니 참 답답하고 아쉽고 슬프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듭디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도 그러할테니까요, 그리고 이기적으로 그렇게 잊혀지는 것에 대한 슬픔이 온몸을 휘감더이다.. 조금이라도 그 안타까움이 덜하게 사랑하는 이들이 죽음을 대하는 시간적 여유 정도는 주면 좋겠다는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전혀 뜬금없는 작품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긴 하지만요, 죽어서도 다시 돌아온 이들을 반겨주면 좋겠는데, 현실은 죽어서 다시 살아난 이들을 흔히 '좀비'라 부릅니다.. 올바른 존재가 아니죠, 안타까운 존재의 소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원하는 인간들의 미련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결국 현실에서는 생존을 택합니다.. 어쩔 수 없죠, 내가 먼저 살고봐야지... 안그래요, 그런 이야기들은 고전작품의 이야기속에 담아 새롭게 엮었나 봅니다.. 좀비에 대한 앤솔러지 "좀비 썰록"입니다..
3. 좀비물 좋아라합니다.. 아무리 흔하고 전형적이라도 읽다보면 항상 재미집니다.. 장르소설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확장되는 캐릭터이기도 하구요, 전형적인 종말론적 세계관속의 인간의 생존에 국한된 서사에서 장르적 확장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근래 들어서는 보다 유쾌하고 인간적인 의도의 독창성이 두드러지는 캐릭터성이 부여되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요, 뭐 저는 그랬습니다.. 이 작품은 썰록이라는 제목처럼 좀비와 관련된 이야기 다섯편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과서에서나 챙겨봤던 국내문학 다섯편의 내용에 좀비를 살짝 들이밀었습니다.. 중졸 이상의 학력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작품들인지라 그 흥미가 더 와닿더군요, 하나씩 함 살펴봅시다.. 읽다가 시험 나올만한 부분은 밑줄 쫙, 먼저 김성희 작가의 '관동행'이라는 작품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비롯된 모냥입니다.. 사실 관동별곡 잘 모르죠, 그냥 정철이 강원도의 산수를 찬양한 조선 최고의 가사중 하나라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관찰사(요즘이면 강원도지사)로 부임하던 상황과 관련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린 건 작품때문입니다.. 원래 교과서에서 나온 작품은 휘발성이 더 강합니다.. 역사상 정철이라는 위인은 임진왜란 전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 '관동행'이라는 작품에서는 정철의 캐릭터성이나 식속에 대한 가벼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행의 내용처럼 관동까지 가는 길에 벌어지는 좀비와의 생존혈투를 다루고 있죠, 조금은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편안한 좀비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난한 느낌의,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좀비 바이러스의 항원과 항체도 우린 만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라도 깊이 R&D를 해야될 검토대상인 듯 합니다.. 진지하게,
4. 두번째 작품은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한편인 '만복사 저포기'를 차용한 정명섭작가의 "만복사 좀비기"입니다.. 관동별곡과 함께 국어 시험에 꼭 등장하는 작품입죠, 중요도 최상의 교과서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좀비를 접목시켰습니다.. 내용인즉슨 양생이라는 총각이 만복사라는 절에서 부처님과 주사위 도박을 펼친 이야기죠, 타짜인 양생은 부처님을 이기고 꿈에도 그리던 여인을 만납니다.. 허나 갸가 갸가 아닌것이었죠, 결국 안될 놈은 끝끝내 안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쉬움을 남기고 만 이야기입니다만 정명섭 작가의 작품속 양생도 좀비가 창궐한 역사속 세상속에서도 참 힘든 인생을 삽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양생은 자신을 못알아보는 어머니를 뒤로한 체 마을을 떠나 만복사로 들어섭니다.. 그곳은 이미 피난을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죠, 힘겹게 살아남은 양생은 달이 밝게 뜬날 어머니가 원했던 자신의 장가를 기원하며 부처님과 게임을 하죠,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온 여인을 만납니다.. 좀비인 지 아닌지도 모를 여인을 숨겨주며 주위사람들의 압박을 받던 양생은 몰래 만복사를 빠져나간 여인을 쫓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김시습의 오리지널 버전을 크게 벗어나질 않는 범위에서 좀비와 주변의 상황을 엮어냅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이루어지죠, 독자들에 따라서는 상당히 재미있을 작품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디다..
5. 세번째 작품은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차용한 전건우 작가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원작은 주요섭의 시대적 사회의 윤리적 문제와 여성적 지위와 애정에 대한 파격적 내용이었습니다.. 주요섭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갖혀버린 사회적 약자와 그 대상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옥희의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죠, 아시다시피 주요섭은 미국물을 드신 지식층인 관계로 그 시대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상황과 사회적 불안과 신분적 부조리 속에 갇혀버린 인간의 인간다움을 그려내는 뭐 그런 작가 비스므리하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왜, 여성은 남편도 없는데 사랑하면 안돼, 왜 안돼, 뭐 이런 뉘앙스죠, 그런 작품을 전건우 작가는 아주 파격적으로 창조해냈습니다.. 전반적인 설정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아직 죽지않은 남편이 있죠, 그리고 밉쌍 시어머니도 있습니다.. 삯바느질이다 뭐다 하면서 병든 남편, 어린 딸 먹여살리기에 자기 한몸 제대로 챙기지도 몬하고 인생 고통스러운데 되려 돌아오는 건 여자 잘못 들여서 이 고생을 한다는 시댁의 타박뿐이죠, 젠장, 그래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다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사랑방에 손님이 들어오죠, 옥희는 사랑방 손님에게서 뭔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지만 6살 아이의 머리는 돌아서면 세상은 여전히 따사롭죠, 단지 누렁이만 위험을 감지합니다.. 어떨땐 개가 인간보다 나을따개 많죠, 그러던 어느날 누렁이가 죽고 일이 벌어집니다....언제나 엄마는 엄마일때 가장 강합니다.. 아주 재미집니다.. 원작이 주는 기억도 있거니와 후반부 벌어지는 반전과 함께 대단히 역동적인 상황의 전개는 매우 즐겁습니다.. 울 엄마 앞에서 깔짝대면 다주그쓰...
6. 네번째 작품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차용안 조영주 작가의 "운수 좋은 날"입니다.. 원작의 상황적 반어에 대한 비극적 구성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 우린 교과서에서 배웠습니다.. 아주 재미지고 비극적인 결말임에도 우린 작품이 주는 따스함과 김첨지의 하루에 대한 뿌듯함을 머리속에 기억하죠, 그리고 아픔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조영주 작가는 다른 작가와는 조금 다르게 현실적 이야기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작품의 내용과 연결되지 않는 새로운 창작물이라고 봐야될 듯 싶습니다.. 현실의 이야기속에서 좀비와 과거의 허구가 하나가 됩니다.. 또한 극중 인물의 캐릭터에 작가의 예명등을 차용하고 현실감을 자아내죠, 게디가 상당히 독창적인 좀비적 캐릭터가 구축됩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크게 다가오질 않습니다만 상황이나 캐릭터의 창조 및 설정의 즐거움을 가득합니다.. 채식과 육식과 사랑과 배신과 허구와 환상과 진실의 경계를 대단히 가볍고 유쾌하며 매력적으로 설정한 방식은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더군요, 그리고 그사람이 그사람일 수 밖에 없는 역사적 허구의 진실의 구라가 웃겼습니다.. 재미있었구요, 마 그정도...
7.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아무리 책을 안 읽는 학생이라도 이 작품의 감성과 인식을 머리속에서 지울 수없는 한국 근대단편소설의 최고봉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가 아닌 '소나기'의 패러디인 차무진 작가의 "피, 소나기"입니다.. 아시다시피 원작 소나기가 주는 어린시절 첫사랑의 감각적인 이미지와 문장은 머리속에서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로 시작하는 아련한 감성과 마지막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로 끝나는 애잔한 안타까움을 잊을 수가 없죠, 혹시 기억 안나는 사람을 지금이라도 일단 읽어봐.. 금새 읽거덩, 하여튼 그러한 잊지못할 위대한 순사랑의 아련함을 차무진 작가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탈바꿈 시켜놨다고 봐야겠습니다.. 처음과 끝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원작의 감성과 장르적 비릿함이 아주 적절하게 혼합되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특히나 좀비인 듯 좀비가 아닌 상황속에서도 순수한 이들의 사랑이 보여주는 아련함은 대단히 감각적이고 좋습니다.. 특히나 소년의 심리와 감성을 적절한 표현과 주변의 상황속에서 그려낸 작가의 의도는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만족스럽죠, 그리고 죽었지만 다시 돌아온 존재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과 대중적 혼란과 더불어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 돌아왔음에 대한 이들의 감정을 아주 깊이있게 그려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특히나 소년과 하나뿐인 증손녀에 대한 윤초시의 감정같은 것 말이죠, 특히나 후반부의 모든 이의 눈돌림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소녀에게 다가간 이미지는 많이 짠했습니다.. 사람 뇌를 닮은 호두알 맛이라도 한번 보여주고 보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여튼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8. 각각의 작품들이 나름의 색채를 띄고 좀비를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류의 작품 앤솔러지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재미지고 매력적인 설정들이라 금새 읽고 입맛을 다셨습니다.. 좀비가 피맛을 즐기듯이 먹고 먹고 또 먹고 자꾸 먹어도 계속 먹고 싶은 그런 허기짐을 만났다고나할까요, 아무리 좀비라는 캐릭터가 확장성을 가지고 장르를 만들어나간하도 하더라도 그 좀비적 개념이 주는 전형적 의도는 쉽게 바뀌질 못하죠, 이럴때 기존 작품들에게서 인지된 수많은 인식들에 대한 좀비적 상상력이 투영되는 즐거움이 무척이나 좋아서 쩝쩝거리는겁니다.. 혹여라도 고전작품, 유명작품에 대한 모욕이니 홀대니, 거부감이니, 이런 유치스러운 감정같은거 좀 던져두시고 누구라도 즐기고 쉽게 다가갈 수있는 요런 좋은 장르소설들이 많이 좀 펼쳐지면 좋겠다누,,, 봐바... 이렇게 이 작품을 안 읽었으면 언제 다시 고전들의 내용을 되짚어 보겠냐고, 송강 정철이랑 정철 영어의 정철이랑 헷갈리지 않으라는 보장이 어디있냐고, 민복사 저포기를 만복사 저팔계로 잘못 알지도 모르잖아.. 또는 사랑방 손님이 뉴스상의 성접대문화에 대한 사회 르포소설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잖아, 또 운수 좋은 날이 경마신문의 한 꼭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소나기속 주인공의 할어버지 윤초시가 독 짓는 늙은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거라고 누가 그래, 그러니 이런건 좋은거야.. 난 그렇게 봐쓰..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