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더 백 요다 픽션 Yoda Fiction 1
차무진 지음 / 요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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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빠, 왜 인간들이 다 죽는거야..라고 아이가 묻습니다..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때문입니다.. 설명합니다.. 인간이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는 지, 인간이 스스로에게 어떠한 죽음의 미래를 안겨주는 지에 대해서 말이죠, 구구절절 영화 속 이야기와 미래상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초3인 아이는 다 듣고선 간단하게 한마디 합니다.. '그럼 그렇게 안하면 되잖아' 아주 간단하죠, 아이의 입장에서는 왜 자기 죽을 짓을 하는 지 의아해할 수 밖에요, 여기서 또 이런저런 말을 해야되는게 맞는 것 같지만 남들 보다 조금 더 많은 아이를 키워본 경험으로 저 또한 간단하게 아이에게 맞장구를 쳐줍니다.. '그러게, 바보같다, 저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인간은 바보같습니다.. 자기 죽을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죠, 근데 과연 인간이 자기 죽을 짓을 하는 걸까요, 멀리서 보면 그러할진데 가까이서는 자기 목적과 이기적 욕망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인간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무엇보다 인간만이 이 세상을 소유하고 있는다는 같잖은 소유욕때문에 말이죠,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를 죽음의 미래로 몰아가고 있는 모냥입니다.. 그렇다보니 희망적이고 밝은 미래의 세상은 근래들어서 더욱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소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항상 디스토피아의 종말적 세계관이 팽배하고 또 대다수의 이야기속에서 제노사이드의 말살적 발상과 사그러져가는 인간의 세상의 암울함을 그리고 있죠, 인간 스스로도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이 알기 쉬운 흥미로운 미디어적 발상등으로 말이죠, 그래서 우린 좀비를 사랑합니다.. 암요,


    2.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어쩔 수 없는 힘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하지만 야생이고 자연의 품속에서 자연이 주는 흐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죠, 인간들만의 세상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신들이 사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힘을 과시하고 권력을 유지하고 세상을 지배하려듭니다.. 돌연변이죠, 자연의 돌연변이인 인간들은 역사를 통해 자연에 반하는 세상을 만들어오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구와 이 세상의 역사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상은 기껏해야 몇천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그 짧은 시간동안에 급속도로 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몇세기만에 이 세상의 틀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것 또한 우린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우리들 스스로를 비토하고 세상을 파멸로 몰아가는 세력과 권력과 힘을 거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대다수의 인간의 두려움은 세상을 이끄는 몇몇의 병신들 손에서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에 맞춰 선동되고 세뇌당하며 당장의 삶에만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기에 똑똑한 저와 머리좋은 작가들 같은 뛰어난 인간들은 끊임없이 경고와 알람을 우리들의 삶 곳곳에 배치하여 비상벨을 울려주려고 하는 것이죠, '느네들, 자꾸 이러면 곤난해, 종말이 되면 느그가 느그 팔,다리를 먹어야될 시대가 올지도 몰라'.. 뭐 이런 종말적 세계관들 말입니다..  설마하지 마세요, 교과서에서 배웠죠,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차무진 작가의 종말적 세상의 암울함을 대단히 극적 드라마로 그려낸 "인더백"입니다.. 가방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3. 공습이 시작되기전 서울을 벗어나려고 집을 나선 동민의 가족은 11시의 공습전에 대교를 건너 서울을 벗어나 대구로 갈 준비를 서두릅니다.. 하지만 예고한 공습 시간인 11시가 아닌 10시에 쏟아져내리는 미사일로 동민은 아내 지연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하죠,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6살의 아들 한결이는 공습과 함께 다리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죽어버린 아내의 사체를 부여잡고 혼란스러워하는 동민은 이내 아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심하게 상처를 입은 아들을 발견하죠, 그렇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들을 이곳에서 벗어나 재난이 닥치지 않은 고향 대구로 데려가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순식간에 세상은 무너져내리죠, 백두산의 화산폭발과 함께 북한의 정권이 붕괴되기 직전 한번도의 죽음이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북한의 의도로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공습을 남한에 쏟아부었다고 알게 되죠, 그리고 그 미사일 속에는 수많은 식인 전염 바이러스가 탑재된 체 한반도 전체에 살포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현장에서 힘겹게 생존을 한 동민과 아들 한결은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 대구까지 탈출하려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지옥의 나락으로 변해버린 것이죠, 순식간에 살아남고 생존한 사람들은 바이러스로 인해 식인을 하게 되고 살아남은 인간은 또다른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고 먹히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인간들을 군인들은 소탕하는 중이구요, 누가 식인인 지, 일반인인 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세상속에서 아들만은 지켜내고자하는 동민은 커다란 백속에 우겨넣듯 아이를 감춘 체 남쪽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의 발자국 곳곳은 모두 죽음이 세상을 지배하는 곳이니 과연 이들 부자가 세상의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4.  어익후, 괴물같은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좀비소설이나 종말론적 세계관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전형적인 미래소설과는 다릅니다.. 아주 현실적이고 대단히 파괴적인 종말론을 다룬 소설입죠, 인간의 극단적 이중성과 내면의 극악이 생존속에서 어떻게 변질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장르소설입니다.. 거칠고 비릿한 피내음이 가득한 실질적 종말의 세상을 극렬하게 보여줍니다.. 소설임에도 활자가 그려내는 사실적 묘사에 거부감이 들 정도입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비이성적인 세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작품속의 주인공인 부자의 모습은 대단한 휴머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끈질기게 살아남고 생존하며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욕망 -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지켜내고자하는 - 을 이야기하고 있죠,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야만과 탐욕속에서 누군가를 지켜내려는 또다른 반대적 인간의 이성과 본성을 자연스럽게 도출해내는 것이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서 스스로가 인간임을 끝까지 고수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가 만들어가는 생존의 길 아래에서 독자들이 숨죽이고 그 여정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소설은 동민이라는 인물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의 모습은 자의든 타의든 세상이 저질러놓은 파멸의 공간속에서 적응하고 극악하게 변질되어 버리죠, 그렇게 세상이 무너져내리기전 죽음을 만난 동민은 아내가 그에게 던져놓은 물음과 삶의 의도를 지켜나가려고 하죠, 약물의 힘을 빌어 환상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않으려 노력하죠, 생존한 인간들은 스스로 인간이길 거부했지만 동민은 살이 찢어지고 고통이 온몸을 휘감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이의 세상과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해 자신을 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는 그만의 세상속에서 버텨나갈 힘을 죽음으로부터 끌어냅니다..


    5. 솔직히 종말론적 세계관을 다룬 많은 작품들에게서 등장하는 설정들이 이 작품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같은 가족의 생존의 여정을 다룬 이야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의 전형처럼 느껴지죠,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상의 극악함과 인간의 잔인함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장르적 차용은 언제나 편리합니다.. 좋은 본보기들이 많죠, 하지만 이러한 차용이 누구나와 같다면 큰 반향이나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자체의 독창성과 무게감을 갖지 못하면 독자들은 쉬이 외면해버리기 일쑤입니다..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죠, 더도 덜도 말고 딱 그수준이라면 굳이 새로운 작품에 눈을 돌리지 않을겝니다.. 하지만 이 작품 "인더백"은 좀 다릅니다.. 아주 거칠고 잔인한 세상의 종말을 눈으로 봐라보는 듯한 입체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아버지로서 느끼는 감정선에 대한 공감도 있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가장 공통된 질문속에서 쏟아내는 인간의 인간적이지 못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행위들에 대한 동조적 투영성 또한 느끼게 되죠, 쉽게 말해서 참 인간은 복잡다단하면서도 생존이라는 절대절명의 대원칙속에서 자연스럽게 어떻게해서든 생존의 방식을 깨닫는다는 것 말입니다.. 이 작품속에서는 많은 부수적 배경과 종말론과 관련된 주변의 모습들이 들어가있지만 모든 이야기의 중심은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모습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냅니다.. 그것이 인간적이든 비인간적이든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각자의 의도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벌어지는 반전과 극대화된 상황적 처참함은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도된 반전보다는 보다 현실적 종말론의 세상속에서 그것이 절망이든 희망이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득하니 이끌고 나갔으면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죽음과 야만으로 가득차버린 세상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임을 지켜나가는 부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말그대로 고군분투의 생존의 여정속에서 끝까지 자신들을 지키며 지옥속에서 또다른 희망의 빛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끝없은 생존의 법칙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전형적이고 흔한 클리세의 종말소설이라도 저로서는 무척이나 즐겁고 매력적으로 읽혔습니다.. 소설은 종말이랍시고 과하게 국가를 들먹거리고 세상을 들먹거리고 세계관을 들이밀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남은 인간들과 그와중에서도 끝까지 인간이길 원하는 또다른 인간들의 각각의 심리적 내면을 드러내고 그 모습속에서 뭔가를 보여주려고만 하죠, 개인적으론 이런 의도가 좋습니다.. 물론 소설속의 조금은 과격하고 파괴적 느낌의 직설적인 문장과 식인적 세상의 인간들의 이미지가 머리속에 그려지고 눈에 보일 듯 하면 저도 모르게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세상속의 이야기를 한다는데 뭔 독자들의 거부감을 고려할까 싶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또한 조금은 단순한 흐름과 진행방향으로 이어지는 서사인지라 반복적인 생존의 이야기에 국한된 구성은 제가 전작인 "모크샤 혹은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에서 느꼈던 구성적 매력에 비해 다소 아쉽기도 했지만 종말적 세상의 상황적 묘사와 심리적 압박과 혼란으로 리얼하게 그려낸 작가의 장르적 감성만으로 본다면 충분한 즐거움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소설속에서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중소설이라하면 많은 대중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흔한 편안함이 작가에겐 쉬운 선택일진데 차무진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장르소설작가로서 대단히 용감한 선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누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을 이렇게 직설적이고 리얼하게 그려내겠습니까, 아무나 이리 몬해, 난 그렇게 봐.. 느네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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