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새 스토리콜렉터 78
수재나 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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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 때문이야, 니가 그랬잖아, 너만 아니면 벌어지지도 않았을 일인데, 왜 나서서 니가 일을 어렵게 만들어... 하여튼 니는 뭘하면 안돼, 앞으로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죠, 사람은 그렇습니다.. 누구나 탓을 합니다.. 그 대상이 누가 되었던 탓을 하게 됩니다.. 가능하면 자신의 잘못이 적은 방향으로 탓을 돌리죠, 자신에게 돌아오는 탓은 자책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임을 알기에 인간은 가능하면 타인에게 어떠한 일의 결과중 나쁜 것에 대한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탓을 어릴때부터 듣고 자란 아이들은 어떨까요, 단순한 부모의 잔소리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아이의 이모가 아이랑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나 봅니다.. 아이가 집중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이모가 칭찬을 합니다.. 너무 잘하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이죠, 아이에게 힘이되고 즐거운 칭찬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말을 듣고선 아니에요, 전 잘 못해요, 전 잘하는게 별로 없어요라고 무덤덤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이모는 아이의 엄마에게 신중하게 전달을 합니다.. 보통의 아이와는 조금 다른 반응이다보니 걱정이 앞선 부분이 있을겝니다.. 아이의 엄마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래의 아이들은 칭찬을 하면 보통은 으쓱거리며 더 잘할 수있다는 의도의 자신감을 내비치거나 더 칭찬을 받기 위해 자신을 드려내기 일쑨데 그렇지 않다는 점은 아이의 자존감이 너무 낮은게 아닌가하는 걱정인것이죠, 고민이 많았나 봅니다.. 그리곤 부모로서의 자신의 행동과 아이에 대한 훈육방식에 대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2. 아이가 사랑스러운 말썽꾸러기입니다.. 그래서 항상 혼이 먼저 나죠, 조금만 눈을 돌리고 있으면 항상 어질러진 공간에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다른 형제들보다 조금 더 혼이 나는 편입니다.. 근데 그런 잔소리가 아이에게는 자존감에 있어 정서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고민을 부모로서 하게 되더군요, 솔직히 전 아이의 엄마와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동일한 기준에서 충분한 칭찬과 훈육이 나름의 밸런스를 맞추고 아이에게 전달되는 훈육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물론 아이의 특성과 성향에 따라 그 반응을 고민하고 맞추어야되는 것도 맞구요, 누군가의 비교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아이의 상황에 대한 훈육은 자존감에 대한 상처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전 아이가 자신이 잘하고 못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인식을 하고 판단을 빨리 했다고 생각을 헀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낮게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거덩요, 또래의 남아들처럼 제 아이도 그림이나 음악적 재능, 글쓰기, 수학같은 공부보다는 게임이나 동영상이나 어떠한 상황을 파악하고 기억해내는 것은 뛰어나다고 아이 스스로가 말합디다... 하지만 엄마가 받아들인 자존감과 같은 불안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를 해봄이 맞겠죠, 어린시절 아이탓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흔한 상황에서 자란 아이는 심각한 자존감의 저하로 인한 자책이나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하고 주변에 대한 의지와 집착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을겝니다.. 그리고 항상 그러한 아이의 내면은 외롭고 두려운 자신의 자아에 대한 정체성으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죠, '루시 플라이'도 그런 여성이었던 모냥입니다.. 수재나 존스의 데뷔작 "지진 새"에서 루시는 일곱명의 오빠가 있음에도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영역과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이죠, 그리고 그녀는 지금 일본에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화된 작품입니다.. 지금 영화도 절찬리에 상영중이라 보실 수 있는 멋진 작품 줄거리 함 봅시다..


    3. 머나먼 영국의 요크셔를 떠나 일본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루시 플라이는 과거를 지우고 싶어합니다.. 어린시절 일곱명의 오빠와 함께 살아온 루시의 삶은 지옥과 다르지 않았죠, 부모는 일곱의 아들을 두고 딸이 태어났지만 아들이 아님에 낙심하고 방치합니다.. 제대로된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빠들은 그런 루시를 괴롭히죠, 그러던 어느날 루시를 괴롭히던 오빠중 한명이 루시로 인해 죽게 되죠, 이후로 루시는 자신으로 인해 죽음을 당한 노아 오빠에게서 벗어나질 못한 체 가족에게서 벗어나고자 어린시절부터 다짐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자신이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시기가 되자 곧바로 자신의 가족이 모르는 일본으로 향합니다.. 그런 루시에게 일본은 제2의 고향과도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녀 자신의 고향일 수도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루시가 아닌 오롯이 자신만의 루시로서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곳에서 루시는 새로 태어난 것이죠, 그런 일본에서의 삶에서 루시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길거리에서 도로의 고인 물 사진을 찍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가진 데이지라는 남자에게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강력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나서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죠, 사랑하는 이를 만난 루시에게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곤 릴리 브리지스가 나타납니다.. 자신과 같은 고향 출신의 릴리는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왔죠, 루시는 그녀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조금씩 그녀에 대해 문을 열게 됩니다..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길 거부했던 루시에게 릴리는 불안한 기시감을 선사하는 존재였죠, 그런 릴리가 사라지고 어느날 발견된 후 루시는 경찰에 연행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과연 루시는 릴리를 죽였을까요,


    4.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로 보입니다.. 시작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한 용의자로 심문을 받는 루시에게 있어서의 과거와 그녀의 개인적 이야기가 그녀의 시점에서 그녀의 이야기로 진행이 됩니다.. 소설은 '나'라는 존재와 '루시'라는 3인칭의 존재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합니다.. 미스터리한 사건의 내막을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속에서 드러내면서 루시 플라이의 삶과 '나'의 심리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상황을 끄집어내죠, 작가는 작품의 이야기와 구성을 그렇게 길게 이어가지 않습니다.. 각 챕터의 길이도 그렇게 길지 않게 적용하면서 루시의 과거와 릴리와 데이지의 관계를 번갈아가며 루시의 인생과 그녀의 모든 것을 드러내려 합니다.. 우린 루시라는 여성이 가져온 삶의 무게를 그녀의 심리와 시선속에서 공감해나가게 됩니다.. 소설속의 '나'라는 존재가 보여주는 감성은 대단히 시니컬하면서도 열정적인 감성이 혼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루시의 데이지를 향한 감정의 문장들이 보여주는 강렬함과 함께 그를 제외한 그녀의 삶의 메마름은 대단히 큰 비교가 됩니다.. 독자들 또한 이러한 감정선의 혼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그녀가 가진 심리적 불안과 극단적 성향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나가게 되죠, 나름의 혼재된 심리임에도 자신만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루시에게 있어 릴리라는 존재는 영역속에서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죠,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와 '루시'라는 3인칭의 동일한 존재를 스스로 비교해나가는 방식은 상당히 새로운 방법이었습니다.. 장르소설을 읽어온 독자의 어설픈 짐작으로 처음에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겪는 주인공인가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오히려 자아라는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객관화를 시켜나가는 주인공임을 깨달았습니다..


    5. 루시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서 시작과 끝으로 이어집니다.. 한 여성의 삶에 대한 주변의 모습과 자신이 이끌어나가는 개인적 존재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인물의 내면의 자아와 상황으로 인해 벌어진 상실, 외로움, 관계적 불균형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있는 그대로의 서양인으로서의 동양속에서의 삶을 대단히 리얼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영국인의 이야기가 그림처럼 그려집디다.. 물론 "지진 새"라는 제목의 동물이 주는 감성적 의도와 그 내면의 이야기를 살펴볼작시면 지진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일본에 있어서 그 징후전 후에 들려오는 '지진 새'라는 존재는 일종의 혼란적인 상황이나 불안한 심리의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 그려내기에 적합한 소재인 것 같기도 합니다.. 두렵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혼란과 흔들림이 끝나고 들려오는 조용한 새의 울음은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한 진실의 끝자락을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소설은 장르소설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로맨스소설입죠, 대단히 미스터리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긴장감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내면이 주는 충격적 결말의 반전을 생각하더라도 이 소설은 심리스릴러로 묶을 것이 아니라 사랑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아픔을 간직한 한 여성의 성장소설로 바라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소설의 전반적인 미스터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한 여성의 시선과 시점에 깃대어 그의 이야기에 국한된 상황에 이끌리다보니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조금 지리함이 생기더라구요, 보일듯 말듯하면서 벌어질듯 말듯하면서 알듯 말듯하면서도 제대로 그 내막이 뒤로 자꾸 밀려나가는 상황들이 아쉬음이 좀 남습니다..


    6. 사실 이 작품은 오래된 작품이더군요, 작가의 데뷔작으로 2001년도에 집필된 작품입니다..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장르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더군요, 전반적인 서사의 흐름이나 연결구도는 미스터리를 접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 상황을 끊임없이 긴장케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작품의 성향은 사랑과 성장에 관련된 순문학에 대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후반부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의도한 미스터리한 진실의 내막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독자로서 기대감이 클 수 밖에 없었지만 후반부의 결론에 이르러 작가가 독자에게 던져놓은 진실의 화두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내면과 사랑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의 개방적 반전의 진실이 큰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을테고 또는 그러려니하면서 조금은 허탈한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무척이나 재미진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루시라는 여성의 시선과 심리에 따라 이어지는 이야기가 대단히 찰지고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을 확실합니다.. 사실 남자로서, 그것도 중년의 무덤함한 돼지 아저씨로서 느껴지는 감성이 일반 여성적 관점의 이 작품의 독후감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여성분들의 감성과 공감이 더 크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겝니다.. 그런 공감이 지배적인 이야기구도이기도 하구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지금 이 작품이 넷플릭스라는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절찬리로 상영중이라고 합디다.. 혹시 회원이신 분들은 감상을 해보셔도 되실 듯, 근데 주인공인 루시의 이미지는 좀 달라보입디다.. 소설 속 루시는 그렇게 아리따운 외모의 여성은 아닌데(하지만 그녀의 눈만은 사람을 끌어들이죠) 영화에서는 알리시아 비칸데르라는 여성인데 전직이 대저택을 소유한 대단히 활동적이고 글로벌적인 재벌가의 여성이라서 그런가봅니다.. 게다가 덩치가 소설의 이미지보다 너무 작아요, 근데 또 책 표지는 또 비칸데르를 닮은 듯, 하기사 뭐, 저예산 영화도 아닌데 주인공의 외모가 중요하긴 하지.. 기회되면 루시를 얼매나 잘 그려냈는 지 함 봐야그쓰...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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