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볼 때 글자를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는 활자는 알 수 없는 기호로밖에 보이지 않겠지요. 그러니 그것에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아름다운 그림의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에 금방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반면 어른들은 어떨까요? 글자를 읽는 어른들은 글자를 먼저 읽기 시작하며 글자를 통해서 내용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림을 보기는 합니다만 대단히 대범하게 봅니다.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림에 집중하는 것은 어른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화면의 구석구석까지 세세한 것도 주의를 기울이는가 하면 작은 소도구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저의 아이가 어렸을 적의 일입니다. 오토모 야스오미의 '꾸러기 깐돌이 시리즈'를 읽어 줄 때였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거기서 깐돌이가 친구를 만나서 아주 즐거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깐돌이의 기분이 좋았는지 다른 그림과는 달리 꼬리가 살짝 꼬부라진 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얼른 그것을 발견하고 "꼬리가 올라갔다. 친
구 만나서 그러나봐."그러더라구요. 저는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부분이었는데 말이지요. 순간 아이들은 그림을 대단히 세밀하게 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준 적이 있는 분은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금방 알아냅니다. 화면을 계속해서 따라가면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겠지요.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도 알 수 있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의 변화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린이의 첼㈀茱?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림책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조금 짚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그림책의 그림 하면 어른들이 떠올리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밝고 예쁜 색, 귀여운 모양의 그림' 하는 것들이지요.

색과 모양과 우리 눈의 관계를 한 번 생각해보면 색은 그 자체로 우리 눈에 뛰어드는 것이지만, 모양은 우리 눈이 주목하고 이해하고 해석해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쉬운 예로 아주 고운 단풍이 눈앞에 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온 산을 불태우듯이 현란하게 펼쳐 있는 단풍을 보고는 대체로
작가의 흔들리지 않는 세계를 힘있게 표현한 그림책, 인간과 자연을 꿰뚫는 눈으로 진실을 표현한 그림책은 오히려 이 귀여운 이미지와 멀리 있기 쉽답니다. 귀여운 이미지에 너무 현혹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림책은 그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문장입니다.
이야기를 제대로 잘 전달하려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서 어찌 되었다.' 하는 것이 순서있게 명확하게 나타나 있어야 하고, 언제(시간) 어디서(장소)누가(인물)의 세 가지 요소가 이야기의 발단 부분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이야기에서 "옛날 (언제) 어떤 마을에(어디서) 아주 힘센 장사가(누가)가 살았거든... "하고 시작하는 것이 그 전형적이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글일수록 이야기가 성큼성큼 진행되어야 합니다.

어떤 작가가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를 판단해보려면, 작품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영상처럼 훤히 떠오르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특히 그림책의 경우는 그 문장을 눈으로 읽지 말고 귀로 들어보는 것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읽어 주고 자신이 귀로 들어보아서 차례차례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그 문장은 매우 알기 쉬운 문장이고 그림책의 문장으로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장은 눈으로 읽는 것과 귀로 듣는 것에 따라 인상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림책의 문장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귀로 듣는 문장. 귀로 들어서 잘 알 수 있는 말, 즐거운 말, 드라마틱한 말, 명확한 말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림책의 문장이 잘 되었는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가장 소박하지만 중요한 기준은 '귀로 들어보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다정한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그 그림책의 세계를 생생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갑니다. 귀를 통한 풍부한 체험이 있음으로 해서 장래의 독서의 기초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귀로 들어보아서 또렷이 알 수 있는 문장, 이것이 그림책의 문장이 갖추어야 으뜸 조건입니다.

자 조금 정리해 볼까요?
1) 그림책의 그림은 색보다 모양이 중요하다. 현란한 색은 서점에서 고객을 유혹하는 방법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그림책의 삽화의 조건은 아니다.
2) 귀여운 그림은 어른들의 취향일 뿐 어린이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다. 오히려 든든한 작가의 세계를 표현한 그림들은 귀여운 것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3) 그림책의 문장은 눈으로 읽기보다는 귀로 들어서 알기 쉽게 쓰여 있어야 한다.
하는 정도로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 이가령<해야해야>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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