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만나는 그림책  

 

어린이가 만나는 첫 책은 대부분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때때로 어른들은 당황합니다. 쏟아져 나와 있는 그림책 가운데 지금 우리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어야 할까요? 모두들 좋다고 하는 그림책인데 왜 우리아이가 집중해서 듣지 않는 걸까요? 이 같은 질문의 대부분은 아이의 연령에 따른 발달과 그림책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합니다. 그만큼 연령에 따른 유아기의 발달특성은 그림책 선택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될 부분입니다.

유아들은 자신의 연령에 맞는 그림책일 때 흥미를 보입니다. 연령이 높아 너무 어려울 때는 잘 몰라서 재미없고 자신의 연령보다 낮은 단계일 때는 흥미를 보이지 않거나 한두 번쯤 보더라도 되풀이해 읽어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유아들 개개인의 차이도 있고 세밀하게 나누어 일반화시키는 과정에서 예외가 많을 수 있지만 어린이의 발달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책과 견주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독서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질 것입니다.

1. 태아기와 신생아기 - 이제 막 태어났어요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엄마는 온통 아기에게 집중합니다. 아기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엄마와 아기는 뱃속에서부터 연결되어있고 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엄마는 사랑과 관심으로 아기를 돌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 엄마의 감정에 영향을 받으며 불안감과 행복감을 모두 느낀다는 사실, 엄마가 먹는 것을 그대로 맛보며 미래의 음식취향까지 만들면서 태어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림책을 읽어주어야 할까요?”하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촛점 맞추기가 되고 어른의 도움을 받아 앉아있기도 하는 7개월부터”이지만 나의 대답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입니다. 이때 아기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든가 옛날 말 노래를 들려주면 뱃속 아기가 안정되고 즐거워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이 때 리듬감이 강한 아기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도 아기의 정서에 안정감을 주겠지요. 처음 태어난 아기들은 눈 보호를 위해 조명조차 어둡게 해주는 것이 좋으니 뭔가를 보여주려 애쓰기보다 ‘들려주기’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지요. 태어나서 4개월까지는 하루 14시간이상 잠을 자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깨어있을 때는 아픔과 두려움, 불편함과 외로움을 호소하기 위해 자주 울기도 합니다. 곁에서 엄마가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걸어 위로해주고 안정시켜 주는 것이 중요한 때죠. 뱃속에서부터 익히 들어 익숙해진 리듬감 있는 말과 노래로 아이를 안심시켜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엄마가 직접 옛날 말 노래를 들려주거나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지만 어려울 경우에는 CD보다는 테이프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때 전자음으로 반주를 한 동요는 피하는 것이 좋겠지요.

 

2. 2개월에서 6개월까지 -보고 관찰하기를 좋아해요

보통 학자들은 생후 약 2개월부터 두 돌까지를 영아기로 분류합니다. 걷기와 언어발달, 수유가 이루어지는 때로 가장 큰 특징은 오감을 사용하여 학습한다는 것입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빨고 냄새 맡으며 세상에 대해 배워나갑니다. 영아를 위한 그림책에는 잠자기와 배변, 먹기 들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아기가 먹고, 자고, 싸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시기라는 것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아기들은 깨어있는 동안 그저 누워있지만은 않습니다. 끊임없이 뭔가 보고 관찰하며 함께 놀기를 원합니다. 아직 기어 다니지 못하는 아기들은 뭔가 더 새로운 것을 보기위해 자꾸 안아 달라 보챕니다. 옛날에는 버릇이 나빠진다며 자주 안아주지 말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많이 안아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의 두뇌가 가장 활발하게 형성되는 시기에 더 많이 자극을 주고 관심을 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와 발달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기가 3,4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그림책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누워서 두 팔을 흔드는 모습이 “뭔가 보여주세요, 안아주세요”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누워있는 아기에게 그림책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아기를 안아서 내 책꽂이 앞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경시켜주고 그림책을 빼내어 보여주곤 했습니다. 자장가도 많이 들려주었지만 옛날 말노래책을 찾아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아기는 즐거움과 위로받은 마음을 미소와 옹알이로 표현했고 나는 수많은 자장가와 말노래, 그림책들이 이미 세상에 준비되어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3. 8개월부터 12개월까지 - 그림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요.

이제 아기는 기어 다니고 뭔가를 잡고 혼자 서기도 합니다. 입과 손가락으로 탐색하기를 즐기고 “엄마”“아빠”하고 처음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지요. 아기가 어른의 가슴에 등을 대고 앉아 본격적으로 그림책을 보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림책은 언어발달과 인지력에 크게 도움이 되지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접촉과 따뜻한 관계를 통해 기본적인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아기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가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아기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는 시기입니다.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빨강, 초록, 흰색의 구별이 가능하고 2-3개월부터 사람의 얼굴을 오래 응시합니다. 대조적인 색 패턴을 좋아해서 배경과 대조되는 단순하고 밝은 색깔의 그림책을 즐기지요. 배경이 어수선하거나 파스텔조의 그림보다는 흰색 바탕에 까만 글씨같은 대조를 좋아합니다. 하야시 아키코의 <달님 안녕>은 아기들의 이같은 특징과 잘 들어맞는 대표적인 아기그림책입니다. 하얀 바탕에 청색을 띈 짙은 하늘, 밝고 둥근 달의 얼굴이 아기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듯합니다. 아기들이 둘레의 사람얼굴을 둟어져라 살피는 것은 얼굴에 대한 변별력을 통해 안전에 대한 욕구를 채우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내게 안전할까? 나를 보호해주고 내 요구를 들어줄까?’ 따지듯 바라보곤 하지요. <달님 안녕>에 등장하는 달의 얼굴을 마치 엄마의 얼굴처럼 밝고 편안한 느낌으로 아기에게 다가갑니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구름아저씨의 등장으로 드라마틱한 사건까지 일어나고 결국은 달님의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끝나 아기들은 안심하고 그림책을 즐깁니다. 실루엣으로 처리된 지붕위의 고양이나 밤 마실 나온 엄마와 아기는 그림에 변화와 움직임을 주면서 아기를 즐겁게 합니다.

아기는 돌이 되면서 <달님 안녕>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 달라 요구하고 그림책을 보여줄 때마다 얼굴에 손을 갖다 대고 소리를 지르며 즐거움을 표시하자 그림책을 읽어주는 나의 기쁨도 커졌습니다. 산책을 나가 하늘에 뜬 달을 보여주면 “안녕”하고 말하는 듯 아기는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아기는 자신만의 첫 책을 갖게 된 것이고 책 속에 담긴 이야기와 이미지가 세상을 보여주고 있음도 알고 느끼는 것입니다.

 

4. 12개월부터 두돌까지 - 좀 더 다양하게 보고 몇 권은 반복해서 즐겨요.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책꽂이에서 책을 빼내 읽어달라는 듯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때 아기 그림책만 모아 아이의 손길이 닿은 곳에 아기만의 책꽂이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겠지요. 이런 저런 그림책에 관심을 보이지만 연령이 높은 그림책은 표지나 처음 몇 장만 보고 덮어버리고 저쪽으로 밀어버리기까지 합니다. 또 좋아하는 책은 몇 번씩 반복해서 즐기기도 합니다. 이때에도 그림책은 책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장난감으로서의 의미가 큽니다. 또 책 읽어주는 사람과의 교감이 더 중요하지요. 그러니 부모의 요구보다는 아기의 요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좋습니다. 책꽂이는 아기에게 가장 좋은 그림책으로 채워놓되 아기가 원하는 만큼만 읽어주고 아기가 원하면 계속 읽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두 돌까지의 영아들은 아직은 기승전결이 강한 이야기를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리듬감 있는 언어와 반복 구성의 단순한 그림책이 좋겠지요. 한 펼침 면에 여러 장면이 있는 경우도 영아들에게는 부담이 됩니다. 아기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 나오는 사물그림책이나 까꿍 놀이, 잠자고 먹고 싸는 이야기 등 아이의 일상이 담긴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영아들은 저와 닮은 아기가 나오는 그림책이나 자신의 곁에 있는 사물들, 곰 인형이나 나무 자동차의 등장에도 큰 반응을 보입니다. 또 아직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토끼나 호랑이처럼 특징이 강한 동물들에 대해서도 정감을 갖고 봅니다. 까꿍놀이를 특히 즐기는 이 시기에 맞추어 시중에는 까꿍놀이를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책이 나와있기도 합니다. 기고 걷고 곤지곤지 잼잼 놀이를 즐기는 이 시기에는 몸놀이도 활발해져서 <꼬마야 꼬마야>같은 몸놀이 책을 읽어주면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며 성취감을 만끽합니다.

태어나서 두 돌까지는 평생토록 이어질 취향과 습관이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음식을 먹는 습관이나 배변습관, 잠자는 습관처럼 독서습관도 영아기에 이미 형성됩니다.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아기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만 엄마는 더욱 그렇습니다. 변화가 급격한 만큼 스트레스도 많고 힘이 들지요. 엄마들은 출산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그만큼 아기의 요구대로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이 만만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기가 제 마음에 드는 좋은 그림책을 만난다는 것은 평생 간직할 좋은 책 경험과 독서 습관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아빠나 가족들 모두가 그림책 읽어주기에 함께 힘쓰면 좋겠습니다.

 

추천도서

달님안녕(한림출판사/달님안녕시리즈)

나랑 놀자(웅진주니어/잼잼곰시리즈)

누구야 누구(보리)

잘자요,달님(시공주니어)

까꿍! 찾았다(아이세움/옹알옹알 아기그림책시리즈)

꼬마야꼬마야(다섯수레/쑥쑥 몸놀이시리즈)

무엇이 있을까요?(시공주니어/알록달록 아기 그림책 시리즈)

열두띠 동물 까꿍놀이(보림 /나비잠 시리즈)

사과가 쿵(보림)

새로 다듬고 엮은 전래동요(보림)

아기 어르고 재우는 자장노래(파랑새어린이)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보리/ 어린이노래마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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