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아주 가까이서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녀는 날 주의깊게 바라보지 않았고 내게 관심을 두는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냥 앉아 있었다. 그 어떤 것에도 눈길을 주지않은 채. 그것이 내가 작가 공선옥을 본 첫 장면이다.

내가 사는 '여수'에 유명작가가 이사를 왔다고 누군가 알려줬다. 그리고 몇일후 난 늘 들르곤하던 커피숍 내자리에 앉아있었고 그녀가 불쑥 나타나 내 맞은편자리에 턱하니 앉았다. 물론, 내 옆에 있던 그집 주인하고 친분이 있었다. 덕분에 난 아무런 부담없이 그들의 대화를 엿볼 기회를 가졌다. 그때까지만해도 난 공선옥이란 작가를 알지못했다. '피어라 수선화' 정도의 단편을 읽은게 전부였다. 유명작가인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그녀의 근황이 들려왔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작품과 그녀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결코 녹녹치않았을 법 한 작가약력과 그 뒤로도 몇번의 마주침을 하며 그녀의 곁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녀를 짐작하긴 쉽지않았다. 좀체 어떤 표정을 보이는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 그녀의 책 몇권을 읽었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수수밭으로 오세요' '붉은포대기' 등. 커피숍에 올때 그녀는 거의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였는데 그녀의 책 속에서도 늘 아이들이 많이 나왔다. 그동안의 소설속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은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엔 버거운 생각이 들었었다. 그녀의 책 속엔 그녀가 들어있었다. 내가 그녀를 좀처럼 알수없다고 느꼈던 것처럼 그녀의 책 또한 온전히 받아들이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우선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내 주변에 일단 마흔의 나이를 짊어진 여자들이 많고, 그 마흔의 여자들이 길을 떠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제목의 느낌처럼 책의 내용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녀의 글은 많이 편해졌고 이해하기 어렵지않았으며 전처럼 무표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글속에 살아있어서 남의일처럼 생각되지도 않았다. '말'지 기자의 탁월한 사진실력도 한몫했고 그녀만이 할수있는 질펀한 삶의 넋두리를 '짠'하게 쏟아내어 놓았다.

그사이 나는 여수를 떠났고 책의 중간부분에서 그녀도 여수를 떠났다. 나는 이곳에있고 그녀는 그곳에 있지만 그녀는 어느새 내겐 가까운 사람이 되어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글속에 이제 그녀의 표정이 보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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