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비용
아룬다티 로이 지음, 최인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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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생존의 비용은 국민과 자연이다

09 0416 아룬다티 로이 / 최인숙 <생존의 비용> 문지 2003 ****

<9월이여, 오라>에 이어 그녀의 두번째 책을 읽었다. 시간상으론 <생존의 비용>이 더 앞선다. 그녀의 말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으며 그녀의 눈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다. 책은 인도댐 건설을 고발한 “공공의 더 큰 이익”과 반핵에 대해 성토한 “상상력의 종말” 두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 2MB의 대운하 삽질과 용산참사가 있다면 인도에게는 댐 건설이 있다. 권력자의 입장은 여기든 인도든 붕어빵처럼 똑같고, 민중과 자연의 일방적인 패배와 피해 역시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하다. 세계은행의 돈으로 댐 건설을 진행하면서 논의 참새를 쫓아내듯 마을 사람들을 무참히 아웃시켜 놓고 재정착엔 무관심하다. 고개 들면 맞고 고개 숙이면 마을은 영원히 물 속에 잠긴다. 용산참사의 세입자들과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역시 세계는 하나, 글로벌 그리고 위 아더 월드다.

비폭력 무저항 간디의 나라 인도는 최고폭력 핵무기의 나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로이는 절망하며 외친다.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상대는 중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지구라고. 하늘, 공기, 땅, 바람 그리고 물과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고 그 복수는 참혹할 것이라 말한다.(154쪽)

“인간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다면, 그런 것이 눈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리라.”(153쪽)

명문이다. 우리도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2MB 집권 이후 민주주의가 남아있다면, 그런 것이 눈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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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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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 대한 호들갑에 눈살 찌푸리다

09 0416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4 ***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한 호들갑이 경망스러울 정도다. 짜증난다. 책의 구성도 중구난방, 개념이 없고, 5장까지 나뉘어져 있는데 변죽만 요란할 뿐이다. 굳이 중국기행을 자랑하려면 기행순으로 열하일기를 재배치하든지, 아니면 철저하게 열하일기 순으로 기행을 하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오히려 보론으로 실린 연암과 다산의 비교 부문이 괜찮았다. 변화구 투수와 정통파 투수의 차이랄까. 명문가 출신이지만 과거를 거부한 연암과 별 볼일 없는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중앙권력에 진출한 다산. 다양한 비유와 돌려치기로 전복을 꿈꾸는 연암과 사실 그대로를 냉정하게 드러내는 다산. 흥미로웠다.

가장 연암스럽다고 생각되는 대목은 다음 같은 표현이다
“…큰 상을 받고 예쁜 계집 수백 명이 모시고 있는 즐거움이 있다 하더라도,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아니한 구들목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베개를 베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불을 덮고, 깊지도 얕지도 않은 술잔을 받으면서, 장주도 호접도 아닌 꿈나라로 노니는 그 재미와는 결코 바꾸지 않으리라”
저자는 이를 ‘사이의 은유’라 했는데 그건 너무 단순한 말 같다. 저런 경지는 말 그대로 경지에 오른 자만이 할 수 있는 소리다. 저자를 거치지 않고 열하일기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호들갑과 경망스러움이 저자의 스타일이라면 자제하기 바란다. 자신의 능력이 지금보단 더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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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보낸 3주일
장정일 지음 / 청하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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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책을 구해 읽다

09 0410 장정일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청하 1988 *****

절판된 이 책을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택배비를 물고도 비싸지 않게 구매했다. 운이 좋았다. 재미있는 시들이 많다. 가령 이런 것들-

집 안에 떠도는/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는/나에게 시가 무엇인지/가르쳐 준다.
보이지도/잡히지도 않는/저 즐거운 공기 너머에/생선이 실재한다./삶이 실재한다.
(“즐거운 공기” 中)

왜 푸른하늘 흰구름을 보며 휘파람을 부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호수의 비단잉어에게 도시락을 덜어 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Job 뉴스” 中)

가금 포르노를 보러 여관엘 가요. 물론 혼자서지요.(…)누군가의 부름으로 내가 이 방으로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아님, 내가 누굴 부를 수도 있겠죠.
(“프로이트식 치료를 받는 여고사 9” 中)

소수의 설탕독점자와/살인자들에게/훈장을 수여하는 것/그것이/인간의 역사다
누가 말했다/암닭은 한 달걀이 다른 달걀을 낳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그것이/인간들이 자랑하는/선거제도이다
(“촌충 9” 中)

장정일의 절판된 시집들 중 없는 게 많다. 언젠가는 다 가질 수 있겠지. 절판된 책을 헌책으로 구할 때의 매력은 안된다고 정해진 것을 전복시키는 쾌감에 있다. 만질 수 없는 여자의 다리를 만지게 되면 이처럼 즐거울까. 하물며 그 다리가 아주 늘씬하고 섹시하다면 무얼 더 바랄진저.
정말 쉽게 시를 쓰는 그의 필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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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탄 2009-12-2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월의 이틀' 독자평을 보고 이 자리까지 따라 왔습니다.
날카로운 서평에 단번의 님의 실력을 알아봤달까... 아무튼 반갑습니다. ^^
장정일씨의 말처럼 어느 순간부터 그는 시를 쓰는 방법을 진실로 잃어 버렸나봅니다. 아울러 가난한 은행원이 자신에게 딸린 식구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좌절하던 그 태생적 아픔도 함께 잊은듯도 하구요... 막힌 글을 쥐어짜내주던 싸구려 위스키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어진 걸까 두렵기마져 합니다.

그를 너무 아끼던 광팬으로 오랜 시간을 살았는데 '구월의 이틀'을 읽고 너무나 큰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하다가, 오늘 필요한 책을 사는 길에 문득 나와는 다른 이들의 서평을 듣고 싶어 장정일씨 작품의 언저리를 기웃 거리다 괜한 푸념 몇자 적고 갑니다.
정말 오랜 시간 제 마음의 고삐였던 장정일씨를 이젠 놓아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삼중당 문고'를 복사해 항시 지갑속에 넣고 다니며, 아직도 처음 그 시를 접했던 설레임에 두근거리는 독자가 있다는 걸, 그에게 다시 한 번 조용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ㅠㅠ
 
중국에서 온 편지 - 작가정신 소설향 10 작가정신 소설향 10
장정일 지음 / 작가정신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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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개죽음의 퍼레이드

09 0315 장정일 <중국에서 온 편지> 1999 작가정신 ****

바로 이거다. 이게 장정일이다. 이런 게 장정일식 글쓰기다. 하하.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다. “소설도 아니고 평전도 아니고 역사는 더더욱 아닐 것”이라는 그의 <중국에서 온 편지>는 “겨우 읽을거리나 될까요”라는 자조와 함께 “일인극의 독백이거나, 정신과 의원의 치료실 의자에 드러누워 내뱉는 자기 고백이거나 할 겁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편지라고 하지요. 그렇게 되면, 하하하, 아버님 전상서인가요?”라면서 진시황제의 장남 부소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썼다가 다시 읽고 아래와 같이 바꾸다

09 0411
수십 명이나 되는 진시황의 아들 중 장남 부소가 “전쟁기계 진나라”의 천하 통일 이후 “통일과 집중이라는 진시황-이사 시스템의 원리”를 증언하는 것이 앞 단락, 아버지에게 쫓겨나 북방을 지키며 만리장성을 쌓고 있던 대장군 몽염장군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죽기까지의 부소의 행적을 그린 것이 뒷 단락 되겠다.

각각 “진나라의 카리스마”와 “진나라의 브레인”이었던 진시황과 이사가 만들어갔던 진국은 “백성의 자발적이고 내면적인 지지가 아닌 외형적이고 전제적인 법과 형벌에만 의지하는 국가”로서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순행 중이던 진시황이 낭야에서 승하하자 “3년 만에 진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장작가의 재미있는 표현처럼, 누가 누굴 죽이고 또 죽이고 죽게 되는 “개죽음의 퍼레이드”가 역사이듯이, 내 생각엔 환관 조고의 유서 조작 사건이 아니더라도 제 2의 환관 조고가 당연히 등장해 더 피비린내를 풍겼을 것임은 자명하다. 요즘 읽고 있는 <고유영의 십팔사략>도 읽다 보면 죽인 자와 죽는 자가 흘린 피가 메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는 역사에 구토가 날 지경이다.

떠나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눈이 멀게 되는 장면과, 자결하라-는 아버지의 유서-환관 조고가 조작한-를 받고 두 눈을 파내는 장면은 장작가스러운 상상력의 발현이라 재미있는데 “나는 양성(兩性)입니다”란 부소의 고백은 장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는 성(性)의 극단을 재탕 삼탕한 것 같아 새롭지는 않다.

그에게서 ‘황제’가 시작됐고, 최초의 통일 국가란 명예도 얻었으며, 아직도 발굴 중인 그의 무덤이 말해주듯 절대 권력의 상징, 진시황! 하지만 객지에서 그가 붕어하면서 남긴 “군대는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에 와서 나의 영구를 맞아 장사 지내라”라는 간단한 유서는 장남에게 “자결하라”란 사형 통보로 조작되어 부소는 자결하게 되고, 그의 붕어를 숨기려는 환관 조고와 그에게 넘어간 호해 공자와 승상 이사 등에 의해 진시황의 시신은 함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시신이 썩는 냄새를 숨기기 위해 소금에 절인 생선과 함께 오게 된다. 아, 절대 권력의 상징이던 황제가 고작 소금에 절인 생선과 함께 있다니! 그런데 이런 일은 요즘도 흔하다. 우리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퇴임 후를 잘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지자 봉화마을 노무현이 콩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권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만큼 허무한 게 있으랴!

역사는 개죽음의 퍼레이드라던 장작가의 말이 참 따끈따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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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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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은 말들의 풍경들

09 0408 김현 <행복한 책읽기> 문지 1992 *****

솔직히 좀 놀랐다. 그의 사유가 이 정도로 넓고 깊었나. 대학 때 사실 문지 쪽 글은 잘 읽지 않았다. 관념적이고 비민중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땐 거의 창비였다. 김현도 문지 쪽이었기에 그의 유명세에 비한다면 따 당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책을 처음으로 정독한 결과, 그가 왜 최고의 평론가였는지, 그를 왜 평론이란 개념을 한국에 정립시켰다고 추켜세워 주는지 알 수 있었다.

그저 독서일기를 읽은 것뿐인데 10년치 생각거리를 같이 나눈 느낌이다. 김현식으로 말하자면-‘독서’의 범주에선 대부분이 읽어보지 못한 책들과의 미팅이란 점, ‘일기’의 영역에선 독서, 등산, 영화, 사유 등 독서에 한정되지 않은 그의 생각이 일기란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특별하게 살찌우고 있다. 곱씹어 봐야 할 글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1) 혹독한 작품평
별 재미가 없다./진부하고 지겹다./재미있는 시집이다./…에 실린 시들의 수준은 고르고, 시인들의 키도 고르다. 이것은 칭찬이며 욕이다./…은 너무 많이 쓴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추한 느낌은 들지 않으나, 놀람을 주지도 않는다./자라지 않는 비평가를 보는 것은 나이든 난쟁이를 보는 것처럼 괴롭다./그녀의 재치가 더 세련되거나 더 신중해졌으면 좋겠다. 더 세련되면, 이상처럼 비-상식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더 신중해지면, 김수영처럼 풍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관념의 체조같기도 하다.

2) 사유의 깊이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165쪽)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으니까 권위 있다!(178쪽)
내 눈에 들어오는, 예를 들어, 이쁜 여자의 젖 궁둥이, 내 코에 들어오는, 최루탄 냄새-오, 이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벌써 맵다-물비린내, 내 입에 들어오는, 맛있는 과일, 단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욕망이다.(…)나는 백전백패다.(114쪽)

3) 등산과 벗
내가 내 육체의 주인이 아니라, 내 육체가 내 주인이라는 생각에 갈수록 깊게 사로잡힌다.(269쪽)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54쪽)

4)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홍성원과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봤다. 화면은 아름다웠고 대사도 거칠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문학적인 영화이다.(…)아름다운 서정시를 두 시간 이십 분으로 늘려논 영화라고 할까.

5) 죽음에 관하여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25쪽)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282쪽)

김현의 <말들의 풍경>과 <책 읽기의 괴로움>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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