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온 편지 - 작가정신 소설향 10 작가정신 소설향 10
장정일 지음 / 작가정신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개죽음의 퍼레이드

09 0315 장정일 <중국에서 온 편지> 1999 작가정신 ****

바로 이거다. 이게 장정일이다. 이런 게 장정일식 글쓰기다. 하하.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다. “소설도 아니고 평전도 아니고 역사는 더더욱 아닐 것”이라는 그의 <중국에서 온 편지>는 “겨우 읽을거리나 될까요”라는 자조와 함께 “일인극의 독백이거나, 정신과 의원의 치료실 의자에 드러누워 내뱉는 자기 고백이거나 할 겁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편지라고 하지요. 그렇게 되면, 하하하, 아버님 전상서인가요?”라면서 진시황제의 장남 부소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썼다가 다시 읽고 아래와 같이 바꾸다

09 0411
수십 명이나 되는 진시황의 아들 중 장남 부소가 “전쟁기계 진나라”의 천하 통일 이후 “통일과 집중이라는 진시황-이사 시스템의 원리”를 증언하는 것이 앞 단락, 아버지에게 쫓겨나 북방을 지키며 만리장성을 쌓고 있던 대장군 몽염장군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죽기까지의 부소의 행적을 그린 것이 뒷 단락 되겠다.

각각 “진나라의 카리스마”와 “진나라의 브레인”이었던 진시황과 이사가 만들어갔던 진국은 “백성의 자발적이고 내면적인 지지가 아닌 외형적이고 전제적인 법과 형벌에만 의지하는 국가”로서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순행 중이던 진시황이 낭야에서 승하하자 “3년 만에 진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장작가의 재미있는 표현처럼, 누가 누굴 죽이고 또 죽이고 죽게 되는 “개죽음의 퍼레이드”가 역사이듯이, 내 생각엔 환관 조고의 유서 조작 사건이 아니더라도 제 2의 환관 조고가 당연히 등장해 더 피비린내를 풍겼을 것임은 자명하다. 요즘 읽고 있는 <고유영의 십팔사략>도 읽다 보면 죽인 자와 죽는 자가 흘린 피가 메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는 역사에 구토가 날 지경이다.

떠나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눈이 멀게 되는 장면과, 자결하라-는 아버지의 유서-환관 조고가 조작한-를 받고 두 눈을 파내는 장면은 장작가스러운 상상력의 발현이라 재미있는데 “나는 양성(兩性)입니다”란 부소의 고백은 장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는 성(性)의 극단을 재탕 삼탕한 것 같아 새롭지는 않다.

그에게서 ‘황제’가 시작됐고, 최초의 통일 국가란 명예도 얻었으며, 아직도 발굴 중인 그의 무덤이 말해주듯 절대 권력의 상징, 진시황! 하지만 객지에서 그가 붕어하면서 남긴 “군대는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에 와서 나의 영구를 맞아 장사 지내라”라는 간단한 유서는 장남에게 “자결하라”란 사형 통보로 조작되어 부소는 자결하게 되고, 그의 붕어를 숨기려는 환관 조고와 그에게 넘어간 호해 공자와 승상 이사 등에 의해 진시황의 시신은 함양으로 돌아올 때까지 시신이 썩는 냄새를 숨기기 위해 소금에 절인 생선과 함께 오게 된다. 아, 절대 권력의 상징이던 황제가 고작 소금에 절인 생선과 함께 있다니! 그런데 이런 일은 요즘도 흔하다. 우리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퇴임 후를 잘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지자 봉화마을 노무현이 콩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권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만큼 허무한 게 있으랴!

역사는 개죽음의 퍼레이드라던 장작가의 말이 참 따끈따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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