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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민주주의는 창녀가 됐다, 돈만 있으면 산다
09 0122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 오라> 녹색평론사 2004 *****
인도에선 댐 건설로 수천만 명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겨났고, 한국에선 재개발로 수많은 철거민들이 길거리로 내쳐졌다. 인도에선 경찰의 총에 맞은 시위군중들이 무장폭도라고 불려졌고, 한국에선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사망한 철거민들이 도시 테러리스트 내지는 불법 폭력시위 가담자로 불려지고 있다. 간디를 배출한 평화의 나라 인도는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됐으며, 전두환을 내쫓은 민주의 나라 한국은 다시 이명박이란 괴물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저자가 제기하는 일련의 진실과 주장이 어쩜 그렇게 한국의 그것과 유사한지 신기할 정도다. 인도든 한국이든, 자본의 위력에 우리의 일상은 무장해제된지 오래이며, 거대한 국가 개발 프로젝트에 의해 일반 서민들은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으며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곧바로 국익의 반역자로 취급되는 일이고, 형님 미국의 나와바리 안에서 귀염 받기 위해 갖은 아양을 떨고 있는 형태까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문제는, 일단 그것을 본 다음에는 안 본 것으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그것을 본 뒤에는, 침묵을 지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기에 대해 발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 됩니다. 순수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느쪽으로든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녀는 부드럽지만 날카롭고, 쉽게 말하면서도 행간의 뜻이 깊다.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면서도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어 작가들이,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한다.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상식적인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사건들간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사람들은 작가, 시인, 예술가, 가수, 영화제작자들입니다.”
BBK 동영상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진실이 가려지고, 국제 엠네스티가 당황할 정도로 경찰들은 촛불집회를 폭력진압하고, 대통령은 미국 소고기 수출업체가 판타스틱하게 느낄 정도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올인하고, 시간 나는 대로 강부자들의 똥꾸녁을 쉴 새 없이 핥아주고, 자기 편이라면 나라를 절단 내든 말든 무조건 챙겨주고, 철거민쯤은 옥상에 특공대를 투입해서 죽여서라도 제압해버리는 이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상의 퍼레이드! 저자는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한듯 이렇게 말한다.
“이제 민주주의란, 내용물이나 의미는 모두 사라진 그저 예쁜 조개껍데기, 공허한 단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무엇으로든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자유세계의 창녀가 되어 시키는 대로 기꺼이 옷을 걸치거나 벗기도 하며, 또 기꺼이 모든 취향을 만족시키고, 그리고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되고 욕보여도 괜찮은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창녀가 되었다. 돈만 내면 순간의 욕정을 충분히 채워주는 창녀가 되었다. 혹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지갑을 꺼내라. 그리고 수표를 그녀의 가슴골에 쥐어 주어라. 그러면 그녀는, 아니 민주주의는 원래 자신이 어떠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체위로 끝까지 만족시켜 줄 것이니!
국가의 공권력이 무참히 시민을 살해하고서도 사과 한 마디 없이 뻔뻔할 수 있는 나라,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그 작전을 승인한 자가 버젓이 고개를 쳐들고 배회할 수 있는 나라, 철거민들의 사망이라는 충격에서 불법 폭력 시위의 문제점으로 여론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청와대가 말하는 나라, 이런 위대한 민주주의의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라크 해방작전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지금부터 달리기 시합을 하자, 그러나 먼저 당신의 다리부터 분질러 놓고 하자, 는 작전이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차리리 지금부터 개에게나 줘버리자, 그러나 그러면 사람들이 놀랄 테니 개밥그릇이 아닌 국민밥그릇 위에 놓여져 있다고 치자, 는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