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단톡방 - 미디어 윤리 인성학교 마음교과서 6
방미진 지음, 국민지 그림, 신나민 감수 / 상상의집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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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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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즘 미디어가 일상이 된 아이들 사이에서 새롭게 나오고 있는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13일의 단톡방이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해요 제목이 13일의 단톡방이어서 흔히 생각하는 13일의 금요일과 같이 특정 날짜에 단톡방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단톡방에서의 13일간의 이야기였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주인공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책 표지의 이야기만으로도 대강 짐작이 되었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휴대전화가 있어 서로간의 SNS 를 활용한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만일 아이가 있다면 꼭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아이에게 어려운 책을 주면서 읽으라고 한다면 싫어하겠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편집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어보라고 권해줄수 있을 것 같아요

글속에 등장하는 루킹과 민서는 서로의 복잡한 상황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요 사실 모든 일에 피해자이기만 하고 가해자이기만 한 경우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피해자이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했던 잘못이 돌아오는 것일 수 있다는것... 하지만 그 돌아오는 피해가 너무나도 크다면 그것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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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친구들이 갑자기 단톡방에서 자기가 말하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삐딱하게 공격을 하기 시작하자 민서는 너무 당황스럽고 힘들어져요 정말 아무일도 없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 장난도 쳐보고 말도 걸어보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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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킹은 비밀에 쌓인 인물인데 여기저기 단톡방에서 유령처럼 있다가 누군가의 비밀을 캡쳐해서 폭로해버리는 아주 나쁜 녀석이죠 물론 잘못을 폭로해서 망신을 주면 통쾌하긴 하겠지만 글쎄요.. 그 것이 옳은 일이라고 볼수 있을까요? 몰래 잠입해있다가 내가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사실을 소문내버리다니!!!


민서는 이번 일이 자신도 모르게 어디선가 했던 행동을 루킹이 친구들에게 보내버려서 자신을 따돌리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루킹을 욕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루킹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며 진상을 밝혀주겠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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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킹은 반 아이들의 익명 단톡방과 개인톡을 이용해서 정보를 수집해요 그리고 친구들이 왜 그러는지를 알아내게 된답니다 원인은 민서에게 있었어요 자신이 제일 이쁘게 나온 사질을 프로필사진으로 해두었는데 같이 찍힌 친구들 중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친구가 있었던 거예요 그 친구는 그 프로필 사진을 볼떄마다 기분이 안좋았는데 다른 친구들이 그 일을 알고 민서를 따돌리기 시작한것...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이건 자기만 이쁘게 보이면 되는 앱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게된 민서는 이제 단톡방에서 무슨 말을 해도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루킹은 말하죠 "그들에게 먹이를 주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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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는 이유를 알게 되고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프로필사진도 바꾸었는데 친구들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자기를 따돌렸고 먹이를 주지않기 위해 가만히 있는 민서가 이제는 쉬워보이는지 건드리기 까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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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기초에 지석이라는 친구가 비슷한 일로 전학까지 갔던 것을 기억하는 민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힘들고 어려워해요 꿈속에서 친구들에게 용서받고 모두 몰래카메라라며 다시 친해지는 꿈을 꾸고 울며 일어나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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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민서를 계속 해서 괴롭히는 걸까요? 이미 사과도 했는데.. 왜 친구들은 예전과 같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오히려 더 민서를 괴롭히고 말이예요 민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는 이 비밀을 안고 점점 힘들어해요 


아.. 우리아이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도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어떻게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까지 잔인한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우리때라고 뭐가 달랐나 싶기도 하구요 꼭 어린애들의 이야기도 아니기에 이야기속의 이 아이들이 자라서 또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이 사회가 참 답답하고 또 답답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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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민서를 위해서 루킹은 복수를 제안합니다 일단 사태를 수습하는 것을 시도해보고 안되면 복수라도 하자는 것이죠 사실 이제 민서도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요 뭐든 해봐야하는 상황인거죠 계속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는 루킹과 함께 이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민서도 용기를 내요


민서가 대화를 시도하면 아이들은 모두 공격하거나 피해버리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루킹은 아니죠 유령처럼 단톡방에 스며들어 아이들의 말들을 캡쳐해서 모으기 시작하고 또 한명한명 접근해서 제일 파고들기 좋은 아이를 찾아요 그리고 물었죠 왜 본인이 피해를 당한 것도 아니고 이미 해결이 되었는데요 계속 해서 민서를 괴롭히고 있냐구요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은 모두 자기는 괴롭힌 적이 없고 단지 괜히 엮였다가 피해를 볼까봐 가만히 있는 것 뿐이라는 태도였어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억울함.. 민서가 과연 그렇게까지 잘못한 것인지? 


민서는 드디어 공격을 시작해요 친구들에게 그간의 일을 캡쳐한 이미지를 올려요 친구들은 당황하지만 곧 화를 내죠 이게 뭐냐며, 이것으로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민서는 잘못을 했으니 아무도 민서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구요 그리고 본인들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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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는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학부모회, 선생님, 학폭위에 신고하겠다고 말하지만 다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왕따인 것을 소문내는 거니 분명 못할거라고 오히려 공격을 해요


그런데 갑자기 한 친구가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충분히 증거가 되고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증거로 사용될수 있다고요 요즘 유명인이나 연예인들 폭로사건 보지 않았냐며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합니다 사실 어쩌면 이 이유가 가장 현실적이고 아이들이 피부로 느낄수 있는 이유가 되겠죠 왜 내가 그런 짓을 하면 안돼는지!


단톡방에서는 조용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문자를 보내기 시작해요 모두 자신은 가만히 있었으니 잘못이 없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문자들이었죠 민서는 이 아이들 또한 다 밉고 나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그 뒤로 아이들은 민서에게 함부로 대하지않았지만 그렇다고 다가오지도 않았어요 처음에는 자기가 엮기고 싶지 않았던게 이유였지만 이제는 민서가 무서워져서 그런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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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후 선생님이 민서를 따로 부르셨어요 누군가가 익명의 쪽지로 이 모든 사실을 선생님께 알렸나봅니다 그동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선생님이 미안하다며 이 일은 반드시 바로잡아야한다며 민서를 위로하고 사과하셨어요


그동안 함께했던 루킹.. 이제 대화를 나눌 사람이 루킹 밖에 없었는데 이제 루킹이 없어진데요 일이 끝나면 모든 기록을 없애고 사라진다는 루킹.. 분명 학교 학생일거라고 생각한 민서는 수소문해서 루킹을 찾게되고 사실은 따돌림을 당했던 몸이 약한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결국 병원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가버린.. 


​자신을 지켜주던 루킹을 도와줄수 없는 민서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지만 루킹은 오히려 자신의 슬픈 과거를 민서에게서 봤는데 본인이 해결해줄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네요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미 사건은 끝이 나고 아이들과 민서는 다시 어울릴수 없게되어버렸는데 말이예요 그 열쇠는 선생님이 쥐고 계셨어요 "왕따체험" 이라는 솔루션을 가지고 오셨거든요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책을 통해서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의 대처가 아주 멋지고 현명했다고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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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작가실록 2 : 수필 - 작가로 보는 조선 고전 조선작가실록 2
박정란.서재인 지음, 조윤주 그림 / 상상의집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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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만나본 소설과는 달리 수필은 조금더 릴리에게 부담을 주는 제목들입니다 ㅎㅎ 제목이 익숙치 않아서 그런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 와중에 엄마의 눈에 딱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어요 바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난중일기

한중록 v

열하일기

서유견문

백범일지

계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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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혜경궁 홍씨(헌경 왕후)는 사도 세자의 아내와 영조 며느리, 정조의 어머니, 순조의 할머니로써 더 알려진 여인이죠? 이 중에도 사도 세자의 아내라는 위치는 아주 역사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영화로도 제작된 그 스토리에서 저는 아내보다 엄마로써의 혜경궁 홍씨를 기억해요 정조를 지키기 위한 어머니로써의 마지막 모습은 사도 세자를 져버릴수 밖에 없었는데요 아.. 그녀의 그 기구한 삶을 수필로 옮긴 한중록.. 꼭 어떻게 풀어내는지 제일 먼너 만나보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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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 살. 사도 세자와 혼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사도 세자는 지혜롭고 총명했다. 하지만 영조 앞에만 서면 두려움으로 작아졌다.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사도 세자의 마음은 자라고 자라, 큰 병이 되었다. 영조가 대리청정을 선언하였다. 사도 세자는 최선을 다했으나, 영조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1752년, 정조를 낳았다. 영조와 사도 세자 사이에서 불안해하던 내게 찾아온 소중한 아기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말은 거짓인가 보다. 영조는 자식을 차별했고, 사도 세자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이었다 마음의 병 때문인가? 사도 세자의 기행은 점점 심각해졌다. 옷을 입지 못하는 의대병에 걸리고, 사람을 ... 해치기까지 했다. 나경언의 상소로 영조와 사도 세자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그리고 사도 세자가 역모를 계획한다는 몹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도 세자의 어머니 선희궁은 정조와 나를 살리기 위해 영조에게 사도 세자의 목숨을 거두라 빌었다 영조는 사도 세자를 폐하고, 뒤주에 들어가라 명했다. 사도 세자가 무사하기를 눈물로 기도했다 하지만 끝내 ... 사도 세자는 뒤주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지아비를 그리 보냈어도, 나는 환갑까지 죽지 않고 살았다. 후손들이 사도 세자를 그릇되게 기억하지 않도록,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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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은 혜경궁 홍씨의 회고록이예요 환갑이 된 후 10여년간 4편으로 한중록을 썼는데 1편은 어린시절과 세자빈으로써의 삶, 2~4편은 사도 세자의 죽음등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집안이 받은 오해를 해명하는 글이죠 사실상 몰락한 그녀의 집안을 일으키고자하는 의도가 담긴 수필이라고 볼수 있어요


글의 내용에는 영조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도 세자의 상황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경모궁이 열다섯 살 되던 해, 영조는 갑자기 대리청정을 선언하셨다. 경모궁은 나랏일을 보며 중요한 상소가 올라오면 영조께 여쭈었다. 그때마다 영조는 크게 꾸중하셨다

"그 정도 일을 혼자 판단하지 못해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나랏일을 대신 맡긴 보람이 없다."

그래서 여쭙지 않고 처리했더니 중요한 일을 묻지 않고 혼자 결정했다며 나무라셨다. 

​어떤 행동을 해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사도 세자와 그를 지켜보는 혜경궁 홍씨의 마음이 왠지 짠하고 안타까웠어요 영조는 왜 이렇게 사도 세자의 마음을 아프고 허하게 했을까요? 이런 행동들은 사도 세자로하여금 더 불안증이 들게하고 외롭고 자존감을 가질수 없게 만들었을 것 같아요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구나. 비가 오지 않은 건 세자가 덕이 없기 때문이다."

영조는 가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에도 경모궁의 탓을 하며 꾸짖으셨다 이에 경모궁은 하루가 다르게 마음의 병을 키우셨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모두 사도 세자의 잘못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영조의 마음은 더 힘들지 않았을까해요 그래도 그들의 사이를 좋게해 줄 세손(정조)을 낳은 혜경궁 홍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의 사이는 더 나빠져갔다고 해요 


1757년은 경모궁이 옷을 잘 입지 못하는 의대병에 걸렸으며,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해이기 떄문이다. 너무나 놀라 선히궁에게 사실을 고하였더니, 선희궁께서는 음식을 끊고 누워 눈물만 흘리셨다. 

아마 좁디좁은 궁에서 선희궁은 혜경궁의 아주 큰 비빌 언덕이지 않았을까해요 영조와는 다르게 그래도 사도 세자의 어머니로써 자리를 지켜주던 선희궁마져도 사람을 죽인 아들을 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여러 번 아랫사람을 해쳤다 들었다.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을 거둔 이유가 무엇이냐?"

"마음이... 상하여 그렇습니다. 언제나 꾸중만 하시니 무섭고 그것이 화가 되어 그런 것 같사옵니다"

"음... 내 이제는 그리하지 않겠노라"

이런 대화가 오가고 아마도 혜경궁 홍씨는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지 않았을까해요 그런데 실제로 너무나도 슬프게도 사도 세자는 영조를 믿지 않았고 영조 또한 변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미 너무나도 마음이 틀어져버린 것일까요? 혜경궁 홍씨는 또 다시 슬픔과 무너짐을 느꼈을 것 같아요 


영조가 경모궁을 데리고 정성 왕후의 묘에 행차하셨는데 큰비가 쏟아졌다. 그러자 영조는 경모궁을 데려와서 비가 온 것이라 화를 내시며, 경모궁을 궁으로 돌려보내셨다.

영조는 정성왕후 사이에는 후사가 없었고 후궁 정빈이씨 사이에서 효장세자를 낳아 세자로 책봉하지만 10살때 죽고말았어요 이후에 후궁 영빈이씨의 사도세자가 태어나게 된 것인데요 정성왕후가 죽기 전 사도 세자를 많이 아꼈다고 해요 후궁의 아들이 아닌 정성왕후의 의붓아들로써 어쩌면 친아버지인 영조에게보다 훨씬 사랑을 받은 사도 세자는 정성왕후가 죽고 난 후 참으로 슬퍼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 정성왕후의 묘에 가는 날 갑자기 쏟아진 비에 영조는 사도 세자를 탓하며 다시 돌아가라 했으니.. 사도 세자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세손이 영조와 경모궁이 계신 곳으로 뛰쳐나가 울며 고하였다.

"아비를 살려 주십시오!"

"나가거라!"

영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경모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못했습니다. 이제는 글도 읽고 하라시는 대로 할 테니 이리하지 마소서."

경모궁의 애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간과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지고, 눈앞이 막막했다.

"뒤주 안으로 들어가거라."

아.. 아들이 보는 앞에서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아버지가 죽게 된 상황을 혜경궁 홍씨는 어떻게 엄마의 모습으로 지킬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혜경궁 홍씨는 이미 남편인 사도 세자가 아니라 아들인 정조를 택했고 선희궁에게 가서 "어머니의 아들(사도 세자)이 아닌 저의 아들(정조)을 살려주세요" 라며 정조를 살려줄 것을 애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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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속 가장 큰 비극인 임오화변


영조는 왜 이토록 잔인하게 아들의 목숨을 거우었던 걸까요? 역사학자들은 두가지 정도로 그 이유를 추측한다고 해요 

첫째,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에서 밝힌 것처럼 사도 세자가 병을 앓았기 때문이에요

둘째, 권력을 쥐고 있던 노론 세력에 의해 사도 세자가 죽었다는 것이지요


사도 세자가 앓은 병은 의대증 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등 주변에서 사도 세자의 흠을 잡고 트집을 만들어 끌어내리기에 충분한 구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요 노론 세력들도 그런 점을 이용해서 작은 실수나 작은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영조와 사도 세자의 사이를 더 멀게하고 역모라는 무서운 죄를 뒤집어 씌울수 있었던 거겠죠


하지만 영조가 그렇게 나쁜 사람만은 아니었다고 해요 자식을 편애하고 사도 세자를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 매정한 아버지의 모습 말고도 탕평책을 도입한 어진 임금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기도 했으니말이예요

영조는 좋아하는 화평 옹주와 화완 옹주에게는 사랑을 아끼지 않았지만 사도 세자와 화협 옹주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은 뒤에는 물로 귀를 씻고 화협옹주가 머무는 집으로 물을 버릴 정도였다고 해요 임금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탕평책을 도입하고 백성들이 내야할 세금을 줄여주며 서얼들이 벼슬에 나설수있게 법을 바꾸는 등의 업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한중록에서는 혜경궁 홍씨의 집안을 살리기 위한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모두 사실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많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눈에 영조의 모습은 어쩌면 사도 세자의 모습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숙종은 왕비와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 못했고 장희빈과 사이에서 경종을 낳고 숙빈 최씨와의 사이에서 영조를 낳았어요 장희빈이 사약을 받아 죽고 경종이 왕위를 물려받으면 엄마를 죽인 자신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 노론은 경종 대신 영조가 왕위를 이어받기를 원했어요

노론은 영조를 왕위에 앉혔지만 영조는 고루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도입하는 등 붕당 간 권력 싸움을 없애려고 했어요 자신을 반대했던 소론도 내치지 않았지만 그 싸움은 줄어들지 않았지요


한중록은 인현왕후전, 계축일기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궁중 문학으로 손꼽히는데 허구가 아닌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쉽게 알수 없는 궁중문화와 생활모습이 담겨 있어 역사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해요 하지만 한중록의 경우는 혜경궁 홍씨가 정순왕후(영조의 두번째 황후) 집안과 예로부터 사이가 좋지 않고 탄압을 받게 되자 순조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록을 남긴 것이라고 해요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다보니 "사실" 만을 쓴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올수 밖에 없긴 한 것 같아요


정조는 사도 세자의 사건을 바로 잡고 억울한 오해를 풀기위해서 노력했고 왕에 즉위할때도 당당하게 본인은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왕에 즉위되면서 다른 신하들이 죄인의 아들이라며 문제 삼고 정조를 휘두를 수도 있었는데도 정조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나봐요


정조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었지만 귀주에 갖힌 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 혜경궁 홍씨와 함께 아비의 장례를 치르는 중에 그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효장 세자의 양자가 되었어요 어쩌면 영조의 배려가 정조와 혜경궁 홍씨를 살리긴 했으나 그것이 제대로 된 도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혜경궁 홍씨의 입장에서는 정조를 살리고 본인이 목숨을 부지하여 많은 나이에 한중록까지 쓰게 해주었으니 감사할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로써 사도 세자를 포기하고 자식을 택했을 그때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정해진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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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작가실록 1 : 소설 - 작가로 보는 조선 고전 조선작가실록 1
박정란.서재인 지음, 유영근 그림 / 상상의집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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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조선고전들을 만나볼수 있는 책이라 어떤 것을 골라서 먼저 읽어볼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답니다 책의 표지에 나오는 그림들을 보면 모두다 하나같이 읽고 싶어져서 호기심이 막 생겨나더라구요 ㅎㅎ 만복사저포기는 엄마도 처음 보는 제목이라 시간이 있을 때 여유롭게 읽어보기로 했고 흥부전은 너무 많이 읽어서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ㅎㅎ 이런이런 ㅎㅎ 어떤 것을 먼저 읽어볼까?



만복사저포기

홍길동전 v

사씨남정기

양반전

박씨전

흥부전



사실 조선시대에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더 많은 문학적 작품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유는 조선시대의 왕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서민들까지도 글을 쓰고 읽을수 있게 된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러면서 양반남자들 뿐 아니라 여성이나 계급이 낮은 사람들까지도 생각을 표현할수 있는 것이 더 자유로워진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고전을 왜 읽어야 할까요? 

고전이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고전을 통해서 시대를 뛰어넘어 재미와 감동을 느낄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무턱대고 겁먹지 말고 읽다보면 정말 재미있을 뿐더러 실제 한 시대를 산 작가의 생각과 철학을 느낄수 있답니다 그래서 당시의 샒과 생각, 철학을 통해 오늘날에 교훈을 삼을 수 있다는것!!  그것이 진짜 이유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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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얼마전에 읽은 하난설헌에 대한 책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어요 바로 "허균" 이랍니다 그래서 허균의 "홍길동전"을 제일 먼저 읽어보기로 결정!! 조선시대 여성작가인 허난설헌의 동생이죠? 그녀를 위해 그녀가 죽고난 후 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책을 낸것 만으로도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홍길동전" 도 더 자세히 알아볼수 있겠어요

연관검색어에 홍길동전, 허난설헌은 알겠는데 역적과 인목왕후는 무슨이야기일지 궁금하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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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한장의 그림으로 간추리면 이런 그림일까요? ㅎㅎ 내가 아는 이야기와 같아서 더 이해가 잘되는 그림인거 같아요 

홍길동이 살던 조선시대는 본부인이 낳은 적자와 첩이 낳은 서얼에 사이에 차별이 심했어요 홍길동은 서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대감님이라고 불러야했데요 홍길동은 비범한 능력과 재주로 백성을 돕는 착한 도둑 무리의 두목이 됐어요 그리고 평탄하고 평화로운 을도국이 왕이 되었답니다


홍길동은 이조판서 홍대감의 첩이 낳은 아들인 서얼이었어요 그래서 아주 총명했지만 과거를 볼수도 벼실길에 나갈수도 없었어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무술을 갈고 닦아 비범한 재주를 갖게되었는데요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과거를 보아 나랏일을 해야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으니 답답하구나"

"아, 대감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제 처지가 너무나 원통합니다"

​두 가지의 말에서 홍길동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수 있었어요 너무 답답하고 억울한 홍길동은 홍대감의 또다른 첩실이 보낸 자객에게 목숨까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자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게 되었답니다 


세상을 떠돌던 홍길동은 활빈당이라는 무리를 만들어 백성을 괴롭히는 못된 관리들과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불쌍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의적이 되었는데요 조정에서는 이런 홍길동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겠죠 그래서 아버지와 형을 이용해 홍길동을 잡으려합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홍길동은 형을 찾아가 임금앞에 가지만 여덟명의 홍길동으로 분신술을 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 결국 임금은 그가 되고자하는 "벙조판서"의 관직을 홍길동에게 내리며 조선을 떠나도록 합니다 이후 홍길동은 율도국의 왕이되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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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은 조선 시대 뿌리깊은 문제인 "적서 차별"의 불합리함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해요 허균은 당시 마음이 통하기만하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친구로 삼았고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적서의 문제접을 홍길동전에 담았는데요

그러면 적서 차별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조선은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고 유학은 한 남자은 한 여자와 결혼을 해야한다는 :"일부일처제"규율이 있었어요 그래서 조선 태종때 본부인은 단 한명만 얻을수 있다고 법이 제정되자 본부인 외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살면 그 사람은 부인이 아니라 첩의 신분을 살게되었고 이들은 본부인에 비해 낮은 존재로 대접받았어요 그들의 자식들마저 서얼이라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었죠 


1592년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국토는 엉망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통에 죽자 나랏일을 할 인재가 부족해지고 조정에서는 공명첩을 발금하는 방법으로 서얼에게도 관직을 주기 시작햇어요 

조선의 서얼중 가장 성공한 사람은 영조 (숙종과 무수리출신 숙빈 최씨 사이의 아들) 였어요 그는 신분에 대한 열등감때문인지 서얼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정책을 펼쳤고 서얼도 과거를 보고 벼슬길에 나설수 있게 했답니다 영조의 아들 정조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어요 >_<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여러 기록을 보면 홍길동은 양반 가문의 서얼로 태어나 무술을 익힌 것으로 보여요 집안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과거를 볼수 없어서 집을 떠나 활빈당이라는 무리를 만들었고 탐관오리로부터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되어 있다고 해요 "실존인물" 이었다는 것이 참 놀라워요 

어떻게하면 사람이 도술을 부릴수 있었을까?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참 큰 것 같아요 허균이 살던 때 문학가들은 대부분 한문으로 소설을 썼는데 그것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과는 다르게 읽고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소설을 읽지 못했어요 아마도 허균은 자신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랬나봐요


이런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는 것은 참 믿기지 않는데요 조선 선조왕부터 광해군에 걸쳐 활동한 정치가인자 문학가였어요 개혁 사상을 바탕으로 혁신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고스란히 홍길동전에서 서얼의 이야기로 담아냈지요 뛰어난 능력을 가졌찌만 역적으로 몰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정말 그가 역모를 꾀했다고 보지 않는 시선들도 많다고 해요

칠서지옥 사건으로 높은 벼슬아치의 서자 일곱명이 문경에서 은 상인을 살해하고 강탈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 은을 이용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영창대군을 왕으로 세울 역모를 준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일곱 서얼중 한명이 허균과 가까웠고 이일을 빌미로 허균은 역적의 무리로 오해받기 시작한 것이얘요

거기에는 홍길동전의 내용도 한 몫했겠죠?


홍길동전 이외에도 유재론, 호민론등의 작품이 있는데 유재론은 서얼이라는 이유로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게하는 나라는 조선뿐이라는 지적을 포함했고 호민론에서는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며 백성을 힘으로 억누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런 것들이 모이다보니 허균이 역적이라는 말에는 더 무게가 실릴수 밖에 없었던게 아닐까..해요

​마지막은 아특대 (아주특별한 대담)이었는데요 허난설헌과 허균이 사회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컨셉이예요 허난설헌도 참 슬픈 인생을 살다갔지만 누나로써 허균이 그녀의 글들을 책으로 내준것에 참으로 고마워함과 동시에 동생이 억울한 누명으로 죽은 사실은 참 안타까워했어요 

조선은 처음 세워질때부터 왕권을 아주 중요시했고 이는 어쩌면 그만큼 불안하고 어려운 왕의 자리를 보여주는 또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네요 ^^ 

이 책을 통해서 다른 소설들도 얼른 만나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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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스타실록 - 왕보다 유명한 조선 아이돌, SNS와 TV로 읽는 조선 역사 한국사 스타 시리즈
최설희 지음, 김영진 그림, 김태훈 감수 / 상상의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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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만나온 상상의집 출판사 한국사 스타 시리즈 중에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왕보다 유명한 조선 아이돌들을 SNS 와  TV 로 읽는 조선 역사를 담은 조선스타실록에 대한 소개를 해보려고 해요~

학교다닐때 우리 많이 외웠죠? 혹시 리드미컬하게 읽고 계신가요? ㅋㅋㅋ 상상이 됩니다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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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해서 사관이 왕의 이야기와 행동들을 기록하였는데요 실록은 조선의 역사로 후손들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올곧은 기록이 필요한 부분이예요 이런 부분을 귀엽게 담은 사관의 이야기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ㅎㅎ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실록은 조선의 역사이옵니다. 역사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하는 것이옵니다. 저는 후손들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조선의 역사를 올곧게 기록하는 사관이옵니다. 조선 왕실에서 일어난 일은 빠짐없이 기록해야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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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책마다 이름이 붙어있어요 (태조실록, 세종실록 등)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조선의 주요한 사건을 담아 888권의 방대한 분량이라 조선의 백과사전이라고도 해요 


왕의 곁에는 늘 사관이 붙어있고 사관이 없이는 다른 신하들을 만날 수 없었다고 해요 즉, 사관은 은 왕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꼼꼼히 기록했고 그것(사초)은 왕이 볼수 없었기에 걱정없이 객관적 사실을 기록할수 있었어요 그 기록을 모아두었다가 왕이 죽으면 그것을 실록으로 만들었어요 단, 고종실록 순종실록도 남아있긴한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쓴 것으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일본 입장에서 쓴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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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고 있었는데 이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누렸던 이들을 권문세족이라 해요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 백성을 괴롭히고 약탈했으며 북쪽에서는 흥건적이 남쪽에서는 왜구가 수시로 쳐들어와 당시 백성의 생활은 비참했다고 해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잦을때 이들을 몰아내며 영웅이된 최영 장군과 이성계장군은 백성의 지지를 받게되었죠

고려말 권문세족에 맞선 신진사대부도 있었어요 고려 공민왕은 정몽주와 정도전등의 신진사대부와 함께 원나라 편에서있는 권문세족을 몰아내기위해 노력했어요


이후 명나라가 무리한 요구를 하자 고려우왕과 최영장군은 명나라를 공격해야한다고 하였고 이성계는 국민을 돌보지 않고 이와같은 어려운 시기에 질것이 뻔한 싸움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이에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가는 길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돌아와 우왕과 최영을 몰아내는 사건이 벌어져요  그뒤로 고려를 이어가야한다는 신진사대부와 새나라를 세워야한다는 혁명파 사대부인 이성계의 의견이 충돌하게 되요

 

이성계의 승리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고 명나라도 이성계를 왕으로 인정핸 후 나라의 이름을 새로이 정해야했는데요 이성계는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뜻을 이어 조선이라 할지, 자신의 고향인 화령이라할지 명나라에 물었는데 답은 조선이었어요 (명나라의 환심을 사 명나라로부터 선진 문물과 국제정보를 얻으려 했을 것을 예상할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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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설명한 고려말의 상황에서 조선의 1대왕은 이성계가 되었는데요 연관검색어를 보니 ㅎㅎ 모두 아는 이야기라 참 뿌듯합니다 


위화도 회군 - 고려 멸망 - 조선 건국 - 최영 - 정몽주 - 정도전


키워드를 통해서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고 태조의 상황을 이해하며 내용을 읽어가는데 도움이 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주요 사건을 보면 고려의 멸망이 있네요 앞서 이야기 한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가 요동을 정벌하라는 고려 우왕과 최영장군의 의견에 불가능하다는 강한 반대를 하며 위화도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회군하여 돌아와 왕이 되었던 이야기를 표시하고 있어요


카톡방에서 이성계의 의견을 무시하는 최영! 그리고 우왕! 결국 강퇴되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이성계의 의견은 묵살되었으나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그들을 끌어내리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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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신진사대부인 정몽주를 혁명파인 이성계가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죽이게 되는데요 그때 그들이 나눈 이야기가 "하여가"와 "단심가" 두개의 시조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이 부분도 함께 언급되는 점 또한 참 마음에 들어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바친 "하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가 지은 '단심가'



이방원이 정몽주를 포섭하는 것에 실패하였지만 결국 이성계장군은 조선의 제1대왕으로 추대되어 조선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신진사대부와 마찰 중에서도 이성계의 편에서서 함께 조선을 세우는데 공을 세운 정도전도 함께 나오는데요 정도전 또한 이후 조선의 정세에 큰 가담을 하였으며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과 대결하는 인물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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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정도전과 대립관계에 있던 이방원! 그의 주변에서는 왕위를 두고 크고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아요 실제로 형제가 죽기도 하는데 이런 일들로 상처가 컸던 이성계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버립니다. 그렇다고 이방원이 바로 왕이되지는 않는데요 그 이유는 이성계가 왕위를 내려놓기 전 그가 아닌 정종에게 왕위를 줬기 ˖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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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후 제2대 왕이된 정조. 그러나 그의 시간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유는 정말 힘이 없는 왕이었기 때문이예요



이성계의 아들들은 조선의 왕이 되기위해 많은 싸움을벌였는데요 왕위라는 것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형제의 피를 손에 묻히다니요 ㅠ


1차 왕자의 난 - 이성계 여덟째 아들 이방석이 세자가 됨 - 이방원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방석, 이방번, 정도전을 죽임 - 이방과가 조선의 두번째 왕 정종이됨

2차 왕자의 난 -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이방간이 왕위를 노림 - 이방간이 이방원을 상대로 난을 일으킴 - 승리한 이방원이 왕이 됨



태조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의 두번째 왕은 정종 이방과 였는데 이는 어찌보면 이방원의 계산된 행동이었던거 같아요 조선 건국 후 왕자의 난이 일어나 이방원이 권력을 잡았지만 왕이되기 위해 형제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형이었던 이방과를 왕으로 내세은 것인데요 실제로 정종이왕이었지만 조선 최고의 권력은 바로 이방원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결국에 이방원은 제3대 태종으로 왕이되는데요 그렇다면 이방원(태종)의 시간은 어땠을까요? 궁금하시죠? ㅎㅎ 책을 통해서 더 재미있고 위트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시길 추천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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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스타실록 - 어둠을 밝힌 불꽃이 된 사람들, 독립운동가로 보는 한국 근대사 한국사 스타 시리즈
최설희 지음, 신나라 그림, 김태훈 감수 / 상상의집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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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이야기의 끝부분쯔음 근대문물이 조선에 스며들던 이야기도 함께 있었는데요 그때 서양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조선의 모습들을 엿볼수 있었어요


전기가 들어오고 전차와 기차가 들어오는 큰 변화가 생겼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학문에 대한 정말 새로운 개혁이었죠 근대식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수학 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또 여성이 교육을 받을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큰 의미를 두고 싶네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하여 단발령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았지만 이는 아마 고종이 상투를 자른 것이 일본의 압박에 의한 것이어서 더 반발을 하게된게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와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책 소개를 하다보니 어느새 포스팅의 마무리에 왔어요 아이들을 위해서 책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먼저 다양한 이야기를 배우면서 엄마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운 요즘 입니다 :D 집콕시즌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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