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쇼핑몰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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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작가님의 글은 뭔가 강렬하다. 처음 작가님의 글을 접했던 책 <개들이 식사할 시간>도 그랬고, 이번 책 《살인자의 쇼핑몰》도 그랬다.


 

 슬퍼하면 안 돼. 검은 개는 그걸 원하니까.

 대신 조용히 준비해야지.

 놈이 가장 아끼는 걸 빼앗을 준비.


 - <살인자의 쇼핑몰>, 10쪽 -


 

 

책의 시작, 조금은 평범하지 않았던 삼촌에 대한 기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성인처럼 컸던 삼촌, 덩치 뿐 아니라 이른 나이부터 탈모까지 시작되어 노안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고 정확히 20년 뒤에 돌아왔다. 지안이 태어나기 하루 전날에 말이다.

그리고 지안이 여덟 살때,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집에 남아있던 삼촌은 어떤 전화를 받고 나가서 한 달 만에 돌아와 아동일시보호소에 있던 지안을 찾아온다.

그 후 지안은 삼촌과 함께 살았왔다.

그리고 대학 진학 후 서울에서 홀로 지내던 지안에게 어느날 삼촌이 죽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삼촌의 하나뿐인 유족인 지안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지안은 삼촌의 장례식을 치른 뒤 고향 친구 정민으로부터 삼촌의 휴대폰을 받는데, 그 휴대폰으로 입금 내역이 날아온다. 무명씨로부터 3백만 원이 입금되었고, 잔액은 7억 9천여만 원이라는 것.

삼촌이 운영하던 인터넷 쇼핑몰 관련 입금 내역이라고 여긴 지안은, 컴퓨터 전공이자 삼촌의 쇼핑몰에서 알바를 했다는 정민의 도움으로 삼촌의 잡화상 'thehelp.com'의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한다. 그런데 메시지창이 뜨고 상대방은 이상한 말을 한다.

"진만이가 죽었다니 말도 안 돼. 그럼 너도 오늘 안에 죽겠네?"

 

연평균 매출이 백만 원 미만인 쇼핑몰을 운영한 삼촌의 7억 원이 넘는 통장 잔액, 알 수 없는 채팅창의 말, 삼촌의 시신에 새겨진 문신 'Murthe' 등 의심스런 정황이 가득한 가운데, 삼촌의 쇼핑몰 사이트 'thehelp.com'는 'murthe-help.circle'라는 딥웹 사이트로 바뀐다.

그리고 그 딥웹 사이트에서 채팅을 한 무명씨의 정체가 밝혀진다. 또 무시무시한 살인자들이 이 쇼핑몰을 강탈하기 위해 오늘 밤 삼촌의 집인 이 곳으로 쳐들어 온다는 것도.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지안은 알지 못하는 삼촌의 지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나타나고, 딥웹 '머더헬프닷컴'의 살인자들도 속속 집으로 온다. 잔인한 싸움이 벌어지고, 누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기에 지안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안은 그런 상황 속에서 어쩌면 무심히 넘겼던 삼촌과의 대화들을 떠올리고 자신의 편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을 포함해서 약 171 페이지 정도인 이 책은, 읽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일부러 길게 늘어뜨리는 일 없이 신속하고 재빠르게 상황들이 진행되었고, 반전 역시 너무 훌륭했다. 반전이 반전답게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달까.

 

또 재미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은 소설이었다. 쇼핑몰의 정체, 아니 삼촌의 진짜 정체, 그리고 그 동안 지안에게 일어났던 특별한 일들의 비밀이 밝혀지는 중간중간도 흥미진진했고, 삼촌을 죽게 만든 범인과 그 뒤의 반전까지 모두가 반전이라 정말 책의 마지막장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뭔가 센데, 또 경쾌한 느낌의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킬러들이 죽고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도, 이상하게 마지막엔 웃으면서 책을 덮게 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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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나무꾼
쿠라이 마유스케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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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아키라'는 겉으로는 유능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변호사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 감정없이 죽일 수 있는 사이코패스이다.

자신의 주변을 얼쩡거리던 누군가를 죽인 후 일주일 뒤, 그는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괴물 나무꾼 마스크를 쓴 괴한을 만난다. 괴물 마스크는 손도끼를 휘두르며 그를 죽이려 했지만, 때마침 등장한 이웃 사람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니노미야는 괴물 마스크가 던진 손도끼에 머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뇌 CT 영상을 보고 자신의 머리에 뇌칩이 심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과거 의료 목적으로 사람의 뇌에 심을 수 있었던 뇌칩은 윤리적 문제로 현재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니노미야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괴물 마스크를 자신이 직접 처단하기로 마음 먹고 그를 찾기 시작한다.

한편, 사람을 죽이고 뇌를 꺼내가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범인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고 보기에는 머리를 너무 함부로 다루었고, 그렇다고 뇌를 가져간 특별한 이유를 전혀 추측할 수도 없었다. 거기다 피해자들은 연령대가 비슷한 걸 제외하고는 성별, 직업 등도 현저히 달라 경찰에서는 사건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피해자들 모두 아동 복지 시설에 버려진 적이 있다는 점, 피해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범죄 전력이 있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혹은 감정이 잘 보이지 않을만큼 냉정했다는 점 등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 연쇄살인사건이 26년 전 발생한 '시즈오카 연쇄 아동 유괴 살인사건, 통칭 토무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니노미야가 퇴원한 후에도 그를 다시 공격한 괴물 마스크,

도끼를 든 괴물 마스크와 사이크패스 변호사의 대결은 어떤 결과를 맞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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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꺼내가는 엽기 살인 사건을 쫓는 경찰 '토시코 란코'와 자신을 공격한 괴물 마스크를 추격하는 '니노미야'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그런데 동일한 시간대의 사건 진행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란코의 시간과 니노미야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즉 란코는 엽기 살인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니노미야는 자신이 공격받는 시점부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동일한 시간대에 들어서고, 범인의 윤곽을 점점 잡아가면서 점점 긴장감이 더해진다.

책의 재미는 물론 '범인이 누구인가'에도 있지만, 뇌칩이 고장나면서 사람의 감정을 살짝 갖게 된 니노미야의 변화에도 있었다. 사람의 감정을 알게 되었지만, 사람 죽이는 것에 거리낌 없다는 것이 평범하지 않달까.

- p. 236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사람의 마음을 손에 넣은 내가 괴물이었던 나보다 오히려 더 무적이야. 만약 방해하는 놈이 있다면 다 죽여버릴 거야.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작이라기엔 뭔가 몇 프로 부족한 듯 싶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게 읽은 것은 사실이었다.

두께가 적당하고 가독성이 좋아 순식간에 다 읽을 수 있었고, 범인의 정체와 결말은 약간 반전이었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사이코패스 변호사'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결국엔 누가 이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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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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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방이 네 개 있었다.

내 방, 동생 질의 방, 부모님 방, 그리고 시체들의 방.


                                           - <여름의 겨울>, 7쪽 -


책의 시작부터 슬픔과 우울이 밀려왔다.

'시체들의 방'이라니...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 마음이 무거웠다.

거대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아메바 같은 어머니, 그리고 젖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사랑스러운 동생 질...

TV 속의 가족들은 함께 이야기하고 행복하게 웃고 서로 사랑하지만, "우리 집에서의 가족 식사란, 커다란 잔에 담긴 오줌을 매일 마셔야만 하는 벌과 비슷했다(P. 26)".

그래도 질과 함께 놀고 이야기를 해 주는 그런 생활들은 너무 행복했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꽃의 왈츠'가 울려퍼지며 집 앞으로 아이스크림 트럭 할아버지가 왔다. 크림을 얹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을 뿐인데, 사이펀 기계의 폭발로 우리의 눈 앞에서 크림을 뽑아내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질이 달라졌다.

아버지의 사냥 전리품이 가득찬 '시체들의 방', 그 곳에 있는 하이에나가, 혹은 그 방에 있는 어떤 사악한 것이 질의 머릿 속에 스며들었다. 그 짐승이 질의 안에서 살기 시작했다.

- p. 52

부모님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TV에 온 정신을 쏟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데 온 정신을 쏟았다.

낯선 눈빛의 질을, 예전의 그 사랑스러운 질로 되돌리기 위해 영화 '백 투더 퓨처'처럼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자신이 과학을 맡으면, 숲 속에 사는 어른 친구 모니카가 폭풍을 맡아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 예전의 질로 돌려놓고 싶었던, 결전의 날에 모니카는 슬픈 눈빛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건 그냥 놀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거 아니었니?"라고.

점점 잔인해지는 질, 소녀는 그런 질을 되돌리기 위해 과학 수업, 특히 물리학 수업에 열정을 쏟는다.

-p. 91

마치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따듯하고 포근한 짧은 시간. 그 시간만큼은 내가 삶의 여정을 능숙하게 지배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품을 수 있었다. 마치 하이에나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엔 항상, 분류될 수 없는 종이들이 있다는 것을, 연습문제도, 기하학도,곱셈도 진정 분류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그 시간을 끝난다.

삶이란 믹서에 담겨 출렁이는 수프와 같아서, 그 한가운데에서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칼날에 찢기지 않을고 애써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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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폭력적이고 공포의 대상일 뿐인 아버지, 자기 자신조차 지킬 힘이 없어 보이는 어머니, 그리고 끔찍한 상황을 마주한 후 완전히 변해버린 동생까지, 가장 그녀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살피고 안아주어야 할 가족들은 그녀의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 똑똑하고 지혜로운 소녀는 사랑하는 동생을 지켜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불태운다.

그녀의 가족들은 힘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깃털과 챔피언, 영 교수 등 그녀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어 주는 좋은 조력자들도 있었다.

첫사랑의 열병, 몸의 변화 등 자연스럽게 닥치는 일들에도 그녀는 마음을 다잡아낸다. 질을 위해서, 그리고 어머니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일들은 일어난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가족에 의해서 말이다.

아버지에 의해 낯선 타인들에게 먹잇감으로 놓이게 된 그녀,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일들을 겪어버린 그녀가 빨리 좋은 날을 맞이하기를 얼마나 바라면서 책장을 넘겼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열다섯 살의 여름 끝자락, 그녀는 더이상 두렵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인생 2막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너무나도 반짝거리는 소녀, 그래서 그녀가 너무 눈부셔서 내 눈이 조금 따끔거린다. 어느새 내 마음도 벅차 올라,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너무 잘 해 줬고, 그러니 앞으로도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이제는 정말 행복하기만을, 그리고 되찾은 질의 미소를 계속 지켜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 p. 270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열다섯 살에 내 죽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삶이 나에게 선사한 그 모든 경이로움을 보았다. 공포를 보았고,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승리했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나는 질을 영원히 잃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나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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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방 - 개정증보판
오쓰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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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구분짓지 않고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 오츠이치, 그는 작품의 장르에 따라 필명까지 바꾸며 글을 쓴다라고 한다. 얼마 전에 읽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의 작가 야마시로 아사코와 오츠이치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번 책 《일곱 번째 방》은 2007년 출간된 <ZOO>의 개정판이라고 하는데, 워낙 천재작가로 불리우는 작가에다 기존 출판된 <ZOO>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터라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작가는 책의 첫 번째 이야기 '일곱 번째 방'부터 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누나와 함께 납치되어 회색 콘크리트 방에 갇힌다. 창문은 없고 방 안의 중앙에는 악취가 나는 썩은 물이 흐르는 곳, 아침이면 빵이 제공되고 저녁 6시면 어느 방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기계 소리 등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작은 몸을 이용해 도랑을 헤엄쳐, 우리가 갇힌 방을 포함해 총 일곱 개의 방이 있고 그 곳에도 납치된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우리를 이 방에 가둔 걸까."

 

- p. 36

이 굳게 닫힌 방은 우리를 그저 가두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인생이나 영혼마저 가두고, 고립시키고, 빛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이 방은 영혼의 감옥이었다. 이 방은 이때까지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는 진짜 고독이나, 자신에게는 이제 미래가 없다는 삶의 무의미함을 가르쳐주었다.

-

누나가 무릎을 안고 웅크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인간의 진짜 모습은 이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고 습한 상자 안에서 울고 있는 듯한, 지금의 누나 같았던 건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야기인 'SO-far'도 충격적이었다.

나와 아빠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온다. 혼자서 텔레비젼을 보냐고 묻는 엄마... 분명 옆에 아빠가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아빠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지 나에게만 외식을 하러 가자고 하더니, 엄마가 남아 있는 집의 불을 끄고 문을 닫아 버린다.

나는 그 무렵 발생한 전차 사고로 엄마 혹은 아빠가 사망했고, 남아 있는 아빠 혹은 엄마의 세계가 각각 분리되었다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세계의 접점인 내가 소파의 중간에 앉아 양 옆에 앉은 엄마와 아빠의 말을 전달해주며 생활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화가 난 아빠에게 혼난 나는 엄마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그 후로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 아동학대였다. 이야기를 다 읽고난 후에 곧바로 드는 생각이 '아동학대'였는데, 아마 읽으신 분들이라면 맞다라며 손뼉을 치지 않을까... 그리고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다는 점... ^^

 

세 번째로 'ZOO'를 만났다.

100일 넘게 우편함에 옛 연인이었던 그녀의 사진이 들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죽은 그녀의 시체가 찍혀 있는 사진이다.

나는 컴퓨터에 사진을 저장해 그 사진들을 연속적으로 본다.

나와 만난 후 갑자기 사라졌던 그녀, 나는 갑작스레 연인을 잃은 여느 남자처럼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마저 그만두고 매일매일 그녀를 찾기 위해, 이제는 그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건 다 연기다.

결코 범인을 잡을 수 없다. 그녀를 죽인 건 바로 나이기 때문에...

 

- p. 120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루를 마쳐도 나는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변하는 것은 없다.

그 동물원에서 우리 안을 빙빙 돌던, 보기 흉한 원숭이와 마찬가지다. 언제까지고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아침에 되면 우편함에서 사진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렇게 되디라는 것이, 유감스럽게도 정해져 있다.

 

위 3편 외에도, 인간이 모두 없어진 세계에서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사이보그(?)가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알아가는 이야기(양지의 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력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신의 말), 사랑받는 쌍둥이 동생과는 달리 엄마에게 끔찍한 학대를 받는 여학생의 이야기(카자리와 요코), 검은 옷장 속에 죽은 남자를 숨기는 이야기(Closet), 10년 전 교통사고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혈액을 찾아라), 시체로 숲 속에 집을 짓는 남자의 이야기(차가운 숲의 하얀 집), 각자의 사정으로 비행기를 탄 남녀가 하이재킹을 당하는 이야기(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어린 시절 공원의 모래밭에서 겪은 이야기(옛날 저녁놀 지던 공원에서) 등 책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읽으면서 '이게 뭐야'라는 생각보다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었다. 아, 맨 마지막 이야기는 이해를 제대로 못한 건지 좀 애매하긴 했지만... ^^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아동학대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진짜 끔찍한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약간 씁쓸함을 준 이야기도 있었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약을 파는 남자의 모습에는 분위기의 심각함을 잊고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워낙 독특하고 섬뜩한 상상력이 결집된 소설들이라 오츠이치의 작품에는 독자들의 호불호가 나뉜다고 들었는데, 지금 이 책을 포함해 내가 지금껏 읽었던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나에게 '호'였다. 피가 낭자한 상태로 갑작스레 이야기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어서 좋았고, 무섭고 가끔은 불쾌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상상이 납득가능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도 좋았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인간, 다양한 감정을 한 권의 책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오치이치라는 이 작가를 주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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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들 스토리콜렉터 82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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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르 해안에 있는 지방 소도시 '크리스티안순', 그 곳에는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이름을 날린 '단 소메르달'과 그의 부인이자 크리스티안순 클리닉을 운영하는 '마리아네', 그리고 단의 오랜 친구이자 경쟁자인 경찰서 수사과장인 '플레밍 토르프'가 있다.

어느 월요일 저녁, 플레밍이 저녁 식사를 한 후 돌아가려던 그때 살인 사건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단이 일하는 회사 '쿠르트&코'에서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것. 플레밍은 현재 심신상의 이유로 휴직중인 단에게 피해자 신원확인 등을 이유로 동행을 요청한다. 

 

피해자는 청소업체 직원인 '릴리아나'로 확인되었지만,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을 수가 없었다. 청소용역업체에도 그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그녀의 진짜 이름도 모르고, 지문도 일치하는 것이 없고, 실종자 데이터베이스에서도 그녀에 대한 자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릴리아나의 친구로 추정되는 샐리를 찾아봤지만 그녀 역시 몇 주전부터 일을 쉬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릴리아나와 파트너로 청소일을 하는 '벤야민'은 사건 당일 릴리아나가 살해된 모습을 보았음에도 신고를 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거짓진술을 하는 등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였지만, 플레밍은 부검 결과 등을 보고 그에 대한 의심은 조금씩 거둔다.

 

 

한편, 단은 마리아네의 갑작스런 제안(혹은 거의 명령)으로 그녀의 환자였던 앨리스와 벤야민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그들이 누구로부터 도망다니고 있는지, 과거에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에 대하여 듣게 된다.

 

 

그 후 목요일, 오메루프 해변에서 행방이 묘연했던 샐리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녀는 목이 졸려 죽은 릴리아나와 달리 심한 구타로 인해 사망한 걸로 보였다.

범행수법이 완전히 다른 두 사건, 릴리아나와 샐리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절친이자 경쟁자인 단과 플레밍은 완벽한 콤비를 이루며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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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카피라이터로 승승장구하던 단 소메르달은 쉬지 믿지 못해 자신이 일을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다가 갑작스런 번아웃을 겪고 현재는 휴직으로 일을 쉬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회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관련해 친구인 플레밍에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전해주는 동시에 추리와 직관을 펼치며 사건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 p. 52

단이 쿠르트&코의 살인사건 수사에 조금이라도 관여하면 집과 회사만 쳇바퀴 돌듯 반복하던 그의 삶에 뭔가 특별한 활력을 주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단순히 오랜 친구이자 비슷한 똑똑한 능력을 가진 경쟁자로만 보였던 그 둘의 관계는 좀 더 복잡미묘했다.

바로 플레밍의 여자친구였던 마리아네가 단과 결혼했던 것!!!

두두둥~~~!!! 그러나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피한 채 오랫동안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단과 플레밍의 미묘한 심리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지에 대한 단과 플레밍의 멋진 수사와 추리도 중요한 문제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은 제목 <이름 없는 여자들>에서 보여지듯이 '이름 없는 여자들'의 사연이 가슴에 많이 남았다.

외국인 불법근로자인 살해당한 릴리아나와 샐리를 포함해서, 벤야민의 어머니 앨리스까지...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쳐 이름을 바꾸고 숨 죽이며, 마치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 p. 135

그 친구들은 전부 특정 인물이나 어떤 것을 피해 숨어 살아요. 피하는 것의 대부분은 출입국사무소나 외국인 담당 기관이지만 어떤 경우는 가족과 연관이 있기도 하죠. 폭력적인 남편이나 포주 말이에요. 아주 끔찍한 얘기들이 많아요.

 

 

이름 없는 그녀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들에게 그들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지만, 글쎄... 선의로 도움을 준 사람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그 단체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훌륭한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비록 소설속이었지만, 불리한 위치의 사람들을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건 참... 씁쓸했다.

그래도 그녀들은 그 사람들이 없다면 더 끔찍한 지옥에 던져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비록 남들보다 적은 보수나 대접에도 그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 그리고 자신에게는 사소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범인의 범행에 불을 지펴버린 그 사람까지, 착한 사람인 척 남을 돕는 척 살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내면은 참 끔찍했다.

 

 

북유럽 코지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린다는 '아나 그루에', 이 책 <이름 없는 여자들>은 코지미스터리임에도 소설 속 소재가 꽤 진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다음 작품이 또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제 완전히 프리랜서가 된 단 소메르달과 수사과장 플레밍 토르프의 다음 공동 수사도 기대가 된다.

다음 편에도 그들의 알콩달콩 캐미가 순탄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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