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방 - 개정증보판
오쓰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장르를 구분짓지 않고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 오츠이치, 그는 작품의 장르에 따라 필명까지 바꾸며 글을 쓴다라고 한다. 얼마 전에 읽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의 작가 야마시로 아사코와 오츠이치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번 책 《일곱 번째 방》은 2007년 출간된 <ZOO>의 개정판이라고 하는데, 워낙 천재작가로 불리우는 작가에다 기존 출판된 <ZOO>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터라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작가는 책의 첫 번째 이야기 '일곱 번째 방'부터 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누나와 함께 납치되어 회색 콘크리트 방에 갇힌다. 창문은 없고 방 안의 중앙에는 악취가 나는 썩은 물이 흐르는 곳, 아침이면 빵이 제공되고 저녁 6시면 어느 방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기계 소리 등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작은 몸을 이용해 도랑을 헤엄쳐, 우리가 갇힌 방을 포함해 총 일곱 개의 방이 있고 그 곳에도 납치된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우리를 이 방에 가둔 걸까."

 

- p. 36

이 굳게 닫힌 방은 우리를 그저 가두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인생이나 영혼마저 가두고, 고립시키고, 빛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이 방은 영혼의 감옥이었다. 이 방은 이때까지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는 진짜 고독이나, 자신에게는 이제 미래가 없다는 삶의 무의미함을 가르쳐주었다.

-

누나가 무릎을 안고 웅크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인간의 진짜 모습은 이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고 습한 상자 안에서 울고 있는 듯한, 지금의 누나 같았던 건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야기인 'SO-far'도 충격적이었다.

나와 아빠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온다. 혼자서 텔레비젼을 보냐고 묻는 엄마... 분명 옆에 아빠가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아빠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지 나에게만 외식을 하러 가자고 하더니, 엄마가 남아 있는 집의 불을 끄고 문을 닫아 버린다.

나는 그 무렵 발생한 전차 사고로 엄마 혹은 아빠가 사망했고, 남아 있는 아빠 혹은 엄마의 세계가 각각 분리되었다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세계의 접점인 내가 소파의 중간에 앉아 양 옆에 앉은 엄마와 아빠의 말을 전달해주며 생활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화가 난 아빠에게 혼난 나는 엄마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그 후로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 아동학대였다. 이야기를 다 읽고난 후에 곧바로 드는 생각이 '아동학대'였는데, 아마 읽으신 분들이라면 맞다라며 손뼉을 치지 않을까... 그리고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다는 점... ^^

 

세 번째로 'ZOO'를 만났다.

100일 넘게 우편함에 옛 연인이었던 그녀의 사진이 들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죽은 그녀의 시체가 찍혀 있는 사진이다.

나는 컴퓨터에 사진을 저장해 그 사진들을 연속적으로 본다.

나와 만난 후 갑자기 사라졌던 그녀, 나는 갑작스레 연인을 잃은 여느 남자처럼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마저 그만두고 매일매일 그녀를 찾기 위해, 이제는 그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건 다 연기다.

결코 범인을 잡을 수 없다. 그녀를 죽인 건 바로 나이기 때문에...

 

- p. 120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루를 마쳐도 나는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변하는 것은 없다.

그 동물원에서 우리 안을 빙빙 돌던, 보기 흉한 원숭이와 마찬가지다. 언제까지고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아침에 되면 우편함에서 사진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렇게 되디라는 것이, 유감스럽게도 정해져 있다.

 

위 3편 외에도, 인간이 모두 없어진 세계에서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사이보그(?)가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알아가는 이야기(양지의 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력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신의 말), 사랑받는 쌍둥이 동생과는 달리 엄마에게 끔찍한 학대를 받는 여학생의 이야기(카자리와 요코), 검은 옷장 속에 죽은 남자를 숨기는 이야기(Closet), 10년 전 교통사고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혈액을 찾아라), 시체로 숲 속에 집을 짓는 남자의 이야기(차가운 숲의 하얀 집), 각자의 사정으로 비행기를 탄 남녀가 하이재킹을 당하는 이야기(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어린 시절 공원의 모래밭에서 겪은 이야기(옛날 저녁놀 지던 공원에서) 등 책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읽으면서 '이게 뭐야'라는 생각보다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었다. 아, 맨 마지막 이야기는 이해를 제대로 못한 건지 좀 애매하긴 했지만... ^^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아동학대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진짜 끔찍한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약간 씁쓸함을 준 이야기도 있었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약을 파는 남자의 모습에는 분위기의 심각함을 잊고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워낙 독특하고 섬뜩한 상상력이 결집된 소설들이라 오츠이치의 작품에는 독자들의 호불호가 나뉜다고 들었는데, 지금 이 책을 포함해 내가 지금껏 읽었던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나에게 '호'였다. 피가 낭자한 상태로 갑작스레 이야기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어서 좋았고, 무섭고 가끔은 불쾌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상상이 납득가능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도 좋았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인간, 다양한 감정을 한 권의 책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오치이치라는 이 작가를 주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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