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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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쿠로쇼 요리아이'의 간병은 노인 한 명이라도 그의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자세로 시작된다. 그 사람의 혼란을 함께 겪고 환자가 처한 상황에 맞추려 한다.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맞추는 것이다. 이래저래 구속하거나 제지하는 것이 아니다. 흘러가는 강물의 속도에 맞추듯 자연스럽게 맞춘다. 자연스럽게 맞추는 이상, 이쪽 사정에 따라 흐름을 방해하면 안 된다. 흐름을 바꾸어서도 안 된다. 강 하나하나에는 다 나름의 흐름이 있다. 바다에 이르는 여정은 각자 다르다.

(60쪽)

 

 노인요양시설에는 절대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도 다른 곳에 입소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 듯했다. 현재 간병 중이라고 이야기한 가족 역시 부모님의 미래를 이미 예견하고 있는 듯했다. 사람은 누구나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끌어안고 있다. 돈에 얽인 질문이나 의견이 많은 이유는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설사 자녀가 있다고 해도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으면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수명이 늘어난다고 해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을 게 없다.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상태에서는 노후 세계에 밝은 빛이 비치기 어렵다.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늙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영역에까지 미치게 된 이후, 사람들은 두려움에 젖어 노화 예방과 치매 예방에 모든 신경을 쏟게 되었다. 특별한 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늙어서 서서히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사치라고 불러야 할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생존권에 귀속되는 간병 문제를 서비스 산업으로 자리매깁하고 민간에 위탁하여 해결하는 길을 선택했다. 결국 간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동산 회사나 건축 회사, 이자카야 체인점까지 간병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옵션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진행될 테고 향후 간병 업계에서는 그런 방식을 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다. 즉 모든 수고를 돈으로 살 수밖에 없는 서비스 제공 시스템인 것이다.

(207~208쪽)

 

책은 '다쿠로쇼 요리아이'를 설립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다쿠로쇼 요리아이'는 일본의 특별 노인요양시설이다.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요양시설에 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요양시설을 만든다는 점. 흰 바닥과 식판에 배급받는 음식, 틀에 박힌 프로그램으로 환자와 복지사의 만남이 아니라 따뜻한 나무바닥, 함께 만들어먹는 음식,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모두 늙는다. 모두가 늙는데 아프거나 정신을 잃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늙음은 아픔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아픔이 살아가는 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 격리되어야할 대상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 최근에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아픈 사람 돌보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시간에 갔는데 그 날의 주제는 '치매'였다. 일본영화 <소중한 사람>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노화는 죽음에 이르는 '병적 원인'이 아니라, 생명이 거치는 과정이고 또한 독자적인 표현을 가진다." 치매 환자 같은 경우는 병리적 현상으로 진단을 받게 된 이후로 약을 먹어도 더욱 증세가 심해진다고 한다. 불안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마치 치매가 오면 앞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 줄어들고 주체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부터 그 불안은 올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환자로만 보아서는 안 되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모두 늙는다. 늙으면서 몸과 정신이 조금씩 예전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것을 병적인 것으로만 본다면 마치 기능을 상실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게 가장 중요해보인다. 우리에겐 서로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만나 소통할 때 이해는 이루어진다.  현재의 마치 격리와도 같은 시설과 언제나 가족이 모든 것을 부담해야 하는 시스템은 차차 변해야한다. 누구나 살 수 있어야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굳이 노인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일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노인요양시설'은 그런 것입니다. 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방문했던 분이 다음에는 젊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 상황에 놓이는 노인요양시설입니다.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장소입니다. 잘 알고 있는 얼굴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낯선 세계로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그거야말로 '요리아이'가 지속적으로 실시해온 지원입니다. 특별 노인요양시설을 짓는다고 해도 우리는 역시 그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일과 다르지 않은 일을 숲 같은 장소에서도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213~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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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오랜만에 책 주문을 하는 것 같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도 깔짝깔짝 사댔으니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는 <달팽이의 별>과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봤다. 아 이것이 사랑이야. 아 이것이 삶이로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누워서 약간 눈물을 흘릴랑 말랑 했고, 어쩌다보니 거기서부터 생각난 책이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라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나올 때마다 사서 읽기 때문에 당연히 넣었고. 올해는 임현이 상을 받았는데 작품을 한 두 개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새로 읽을 작품이 기대된다. 

 

 

 

 

 

 

 

 요새는 이 책을 읽고 있다. 읽을 때마다 뭔가 시원해... 멋져... 점심 즈음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책을 펼치는데 으아 이게 이 책이라니. 어디 돌아다니면서 읽기에 참 좋은 책인데 요새 돌아다니지를 않는다. 후불교통카드 사용하는데 3월은 평소의 반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돌아다니지 않게 하는 걸까. 일을 안 하더라도 많이 돌아다닐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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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 1호 - 2017년 1호, 창간호
문학3 기획위원회 지음 / 창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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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는 다른 문예지인 게 확실하고 중계 섹션도 신선했지만 주목과 현장이 좋았다. 특히 양효실 씨의 글. 그런데 오탈자가 왜....여러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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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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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있어 보이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느끼지 않은 느낌은 말하지 않았다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고

있는, 아니 없는 그대로 당당하게 쏘다녔다

최소한의 청결 유지 말고는

물 한 방울 낭비하지 않았다.

(딱히 뿌듯하진 않다)

유일한 처세술은 정직함이었고

그래서 점점 고립되었고

마음과 주머니가 깨끗해졌으나

사람들은 주머니만 알아봤다.

 

침묵이 지루하고 물소리도 거슬린다.

정말 아무것도 없나?

한마디쯤 목청껏 외치고 싶은 말

불러보지 않곤 견딜 수 없는 이름

보고 싶은 얼굴 하나?

 

      있었다면 더 완벽했을까?

 

두고 온 개의 이름을 불러봤다.

너무 나직해서 묻히지 않았다.

 

101쪽

 

 

 

 

조루주 페렉 <잠자는 남자>가 바로 떠올랐다. 포루투갈, 사실 포르투갈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는, 비수기의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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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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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부정성이 예술에 본질적이라고 보았다. 부정성은 예술의 상처다. 이런 부정성은 매끄러움의 긍정성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거기에는 나를 뒤흔들고, 파헤치고, 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너는 네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 특별한 것 하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초과'를 만들어낸다.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 릴케Rainer Maria Rilke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이 있다는 것, 이 사실성은 또한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일체의 의미 기대에 맞서는 극복할 수 없는 저항이다. 예술 작품은 우리에게 이 점을 인정하라고 걍요한다. '거기에는 너를 보지 않는 지점이 전혀 없다. 너는 네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 특수성을 통해 일어나는 것은 하나의 타격이며, 타격으로 인한 쓰러짐이다. 모든 예술적 경험이 그런 특수성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예술작품으로부터 타격 작용이 일어난다. 그것은 관찰자를 타격하여 쓰러뜨린다. 매끄러움은 전혀 다른 것을 의도한다. 그것은 다정스레 관찰자에게 밀착하여 그로 하여금 좋아요라고 말하게 한다. 그것은 오로지 관찰자에게 만족을 주고자 할 뿐, 타격을 가하여 그를 쓰러뜨릴 생각이 없다.

17~18쪽

 

 

 

 니체는 최초의 예술이 축제의 예술이었다고 보았다. 예술작품들은 흘러 지나가는 일상적인 시간이 사라지는, 한 문화의 황홀한 순간들이 물질화된 증언들이다. (…) 예술작품들은 일상적인 시간이 효력을 상실하는 드높은 시간Hochzeit의, 고양된 시간Hoch-zeit의 기념비들이다. 고양된 시간으로서 축제의 시간은 평범한 노동시간이었을 일상의 시간을 정지시킨다. 영원성의 강휘가 여기에 깃들어 있다. "축제의 거리"가 "고통의 거리"로 대체되면, 드높은 시간은 "짤막한 도취"에 빠져드는 "한순간"으로 추락한다.

 (…)

 오늘날에는 전면화된 노동시간에 밀려 고양된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 휴식시간마저 노동시간에 묶여 있다. 휴식시간은 노동시간의 짤막한 중단에 불과하며, 노동으로부터 자신을 회복한 후에 다시 자신을 온전히 노동 과정에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휴식시간은 노동시간의 타자가 아니다. 그래서 시간의 질을 고양시켜주지 않는다.

 (…)

 걷는다는 것은 축제의 특별한 시간성을 보여준다. "어떤 것을 걷는다는 말은 걷는 자가 향하는 목표의 표상을 확실하게 제거한다. 어떤 것을 걷는다는 말은 어디에 도착하기 위해 우선 걸어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축제를 걸음으로써 축제는 언제나, 줄곧 거기에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을 걷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으로도 서로 교체되는 순간들로 해체되지 않는다는 것, 잉것이 축제의 시간성이다." 축제에서는 다른 시간이 지배한다. 흘러 지나가는 덧없는 순간들의 순차성으로서의 시간이 제거된다. 그것을 향해 걸어가야 할 목표가 없다. 어떤 것을 향해 걸어갈 때, 시간은 흘러 지나간다. 축제를 걷는 것은 흘러 지나감을 제거한다.

101~103쪽

 

 

 

 현재는 기억에 의해 만져지고, 활성화되고, 나아가 수태된다.

 (…)

 미는 이야기한다. 미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내러티브가 있는 사건이다.

  (…)

 "〔……〕작가가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취하고, 그것들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내고〔……〕그것들을 아름다운 양식의 불가결한 고리 속에 담아내는 순간 비로소 진리가 시작된다. 심지어 작가가 삶이 그렇게 하듯 두 가지 감각에 공통적인 성질을 지시할 때,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과 하나의 은유 속에 결합하고, 그것들을 단어 결합의 말할 수 없이 효과적인 끈으로 연결함으로써 그것들의 정수를 처음으로 드러낼 때 비로소 진리가 시작된다."

   (…)

 은유는 내러티브가 있는 관계들이다. 은유는 사물과 사건들이 서로 대화하게 한다.

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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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2017-03-1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뉴스특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