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X일)

 나는 내가 쓰레기 같은 여자라는 생각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했다. 거리를 걷는 여자를 볼 때면 내가 하찮게 느껴지지 않았디만, 며칠을 굶으면서 그저 옆방의 태평스러운 웃음소리만 듣고 있을 때면 나는 죽어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살든 죽든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힘들어진다. 까닭 모를 초조함. 오늘 아침 내 위장에 채소 이파리만 있었던 것처럼 내 머리에는 서러운 바람만 쌩쌩 지나갔다. 극도의 피로로 인해 그야말로 살아 있는 미라 같았다. 지난 신문을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타따미 위에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내 모습을 가만히 멀리 떨어져 남의 것처럼 생각해본다. 내 몸도 비틀어져 있고, 내 마음도 비틀어져 있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진된 육체. 아무리 굶주려도 앞으로는 까페로 달려가지 않겠습니다. 어딜 가더라도 불편한 내 마음에 번질번질 거짓 광을 내어 웃음을 보일 필요가 없는 거야. 어느 쪽에도 가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앞만 보고 굶주리면 되는 거야.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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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라하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생각이 납니다. 내용은 이제 가물가물한데 그 제목이 워낙 독특했죠. 이 책도 제목이 더 강렬했으면 더 인상깊지 않았을까 합니다. 영화 <감각의 제국>이나 소설 <성소녀>도 그렇고 일본의 강렬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끔 궁금해집니다.

이름 2015-05-18 13:15   좋아요 1 | URL
유미꼬의 <성소녀>를 읽고 후미꼬의 <방랑기>를 읽자니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에요! 이 작가들 속에는 쓰지 않고선 못 버티는 불덩이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프라하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한 번 찾아봐야 겠네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