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구광렬 지음 / 작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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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상상력은 참으로 놀랍다. 어찌 암각화 하나를 토대로 이런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까?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상상력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검색해봤다. 몇 개의 이미지들을 보았지만 나로서는 여전히 불가해하다.

 

처음 책장을 넘겼을 때에는 상당히 읽기가 어려웠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선사시대를 나타내려는 작가의 의도인 듯한 숫자 표기 방식(사람, , 땅 등), 부족에서의 역할(으뜸, 버금, 당골레, 알리미), 아래아자()와 같은 고어 표기를 사용한 이름 등이 상당히 낯설어서였다.

 

낯선 표기들이 눈에 익자 책장이 쉽게 넘어갔다. 이 책은 암각화를 새긴 이가 과연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였다는 작가의 말처럼 큰 어울림 가람이라는 부족에서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리매와 서로를 사랑하며 그리워하여 아이까지 낳지만 큰 어미로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꽃다지, 그와는 배다른 형제(?)이면서 으뜸 자리와 꽃다지를 두고 애증의 관계가 되는 큰주먹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설켜있고,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암각화는 서서히 완성된다.

 

이 책은 읽는 동안 나는 큰 어울림 가람 부족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부족이 함께 멧돼지를 사냥하는 모습이라든가 먹을거리가 없어 결국 영물로 떠받들던 떠다니는 여를 사냥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 속에 푹 빠져들어 그들과 같이 사냥에 나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 한편으론 선사시대라고 해서 현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권력을 움켜진 자리에서 자기 자손에게 그 권력을 넘겨주려고 하는 부족장 (하), 버금의 자리에서 으뜸의 자리를 노리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갈), 기회주의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하는 (작) 등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지만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큰 어울림 가람이라는 부족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권력이나 돈이나 힘에 의해 분리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하나 되는 화합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둥글어지면 사람 또한 뉘 우두머리인지, 뉘 끄트머리인지 알 수가 없을 터, 크게 잘 어울림이란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p. 111)

 

또한 화합을 위해 한 가지 시선으로만 타인을 보지 말라고 한다. 다름을 인정하라고 한다.

 

돌만... 만졌구나. 돌만... 만졌더니.... 온 누리가.... 돌로 뵌다. 너무....뽀족해 있지.... 마라. 뾰족하면... 부스러지거나... 깨진다.” (p.224)

 

그렇게 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슴은 정반대로 다뤄졌다. 저곳에서의 사슴은 가느다란 다리, 겁먹은 눈동자로써 연약과 비겁을 상징했지만, 이곳에서의 사슴은 허공을 찌르는 단단한 뿔로써 충직과 강직을 의미했다. (p.276)

 

아마도 이런 화합의 의미가 그리매와 큰주먹과의 관계, 이웃 마을들과의 연합 등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결론부와도 연결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리매와 꽃다지의 이어질 듯 말 듯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나 족장이 되기 위해 속고 속이는 수많은 군상들의 모습 등은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차고 넘치는 장면들이다. 옛 조상의 모습이 자못 궁금한 이들이라면 지금 바로 책장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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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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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방법 중의 하나는 낙서였다. 우리의 목소리는 낙서라는 형태로 화장실과 주점의 벽면에 남겨졌다. 어떤 낙서는 시대적 아픔을 담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내용이었고 다른 낙서는 화장실에서 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트릴 정도의 유머를 담은 재밌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1900년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생각을 알렸을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내었을까?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대한민보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평과 여러 신문의 3 기사를 중심으로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당시 신문의 3면에는 저잣거리의 다양한 소문, 공인의 스캔들, 사기와 도박, 절도와 살인 온갖 사건, 사고 등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어떤 기사는 현대를 사는 우리라면 도저히 상상도 없는 사생활에 관한 광고였고, 어떤 기사는 시대의 아픔을, 어떤 기사는 암울한 시대의 모습을 담은 것들이었다. 읽다보니 1900년대에 살았던 선조의 모습이 대학시절 화장실과 주점에 낙서를 남기던 우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도저히 이해할 없는 정치인들의 작태를 비웃었고, 자신의 지위나 신분 혹은 직업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탐욕의 무리들을 꾸짖었으며, 역할을 못하는 상류층 혹은 지식인들을 강한 어조로 질타했으며, 성적으로 문란한 자들을 풍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때로는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무성한 유언비어가 돌기도 하였다.

 

저자는 우리와 비슷한 생각, 삶을 살았던 1900년대 저잣거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내게는 관민공동회에 참여했던 박성춘이라는 백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은 바로 대한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매우 무식합니다. 그러나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방도는 관리와 백성이 마음을 합한 뒤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일(천막) 비유하건대, 개의 장대로 받치자면 힘이 부족하지만 만일 많은 장대로 힘을 합친다면 힘은 매우 튼튼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관리와 백성이 마음을 합하여 우리 대황제의 훌륭한 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영원토록 무궁하게 합시다. (p.123)

 

우리가 학창 시절에 낙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나 1900년대의 선조들이 외치던 목소리는 결국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자주 주권을 가진 나라, 서로가 하나 되는 나라, 모두가 사는 나라. 빈곤한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있는 나라. 대한제국이 그런 나라이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랬기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을 향해 분노의 일성을 날리고, 이익만 챙기는 통변의 무리나 변호사 무리를 꾸짖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버리고 함께 하자고. 나라, 백성이 민족, 핏줄이라고.

 

그렇지만 저자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말하지 않는다. 제목에서처럼 다른 목소리들을 들려준다. 삼십육계라는 도박에 빠져들어 패가망신한 사람들, 연극장을 성매매를 위한 장소로 이용한 사람들, 고아들을 자신의 돈벌이로 사용한 경성고아원, 을사오적 암살단의 일원이었지만 결국에 돈을 쫓아간 서창보, 사행성을 조장하는 경품행사에 빠져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삶이란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이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그래서 그런 걸까? 13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제국의 모습을 보여준 책이었지만 지금 머릿속으로는 2014년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하나씩 둘씩 겹쳐져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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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람들은 왜 피곤하지 않을까 - 피로 없이 맑게 사는 스웨덴 건강법
박민선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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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피곤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피곤의 유형을 분류해서 사례별로 보여준 파트 2는 자신의 피로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확인해보고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자세한 치료법이나 방법은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겠지만 연령별, 원인별로 구분해 놓은 자료로 피로의 원인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또한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질병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정독해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스웨덴에서 보냈던 시간을 토대로 스웨덴 사람들이 피곤해하지 않는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책을 읽자마자 내가 놀랐던 부분은 스웨덴이라는 국가와 그 국민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신뢰와 연대감이다. 생각해보라. 연봉으로 5000만 원을 받는 사람이 국가에 내는 세금이 연봉의 49-50%이고, 국가의 세금 징수율은 98.5%에 이르단다.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하는 거의 모든, 아니 모든 납세자가 세금을 낸단다. 상상이 되는가? 결코 이해하기 힘든 수치이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이 수치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내는 세금만큼 돌려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현실에서도 세금으로 낸 이상을 돌려받는다. 저자가 알려주듯이,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퇴직 후 기본적으로 200만 원 정도의 노령 연금을 국가에서 받아 생활하고, 신생아를 키우는 처음 9개월간은 월급 전액을 받고 추가 3개월은 월급의 일부를 받아 생활한단다. 단순히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만 이들의 복지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이런 복지제도를 갖춘 이들이기에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히 낮다. 스트레스가 낮다는 것은 결국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병에 걸리게 만드는 활성 산소가 적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어찌 건강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내용은 이들이 어릴 때부터 받아 온 식습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뢰다스구디스(토요일의 사탕)이다. 스웨덴 아이들은 평일에 사탕을 먹지 않는단다. 오직 토요일에만 한 번 먹는단다. 학교에서도 당분과 지방이 많은 간식이나 설탕이 들어간 음료는 팔지 않는단다. 나도 아이에게 설탕이 든 음식을 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집에서만 안 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먹어본 아이가 단 음식을 찾으며 울고불고 할 때는 난감하기도 하다. 그런데 스웨덴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당분이 높은 음식을 조절하는 방법을 함께 가르친다. 가정과 사회가 하나가 되어 어렸을 때부터 건강한 식습관을 챙긴 스웨덴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건강한 삶을 사는가보다.

 

피곤하지 않은 삶, 건강한 삶을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운동이다. 스웨덴 사람들이 피곤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운동이었다. 13-15세 스웨덴 아이들의 68%가 체육 동아리 활동을 하고 11세가 되면 누구나 200미터를 수영할 수 있단다. 또한 대부분의 유아원 아이들도 하루에 2시간 정도는 야외 활동을 한단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아마 공부하느라 학원 다니느라 일주일에 한 번도 공을 차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단순히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의 말처럼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스웨덴 사람들이 피곤을 느끼지 않는 다른 이유들도 설명했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스웨덴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사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전 사회가 하나 되어 올바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 시간을 갖게 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들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복지와 제도를 시행하면서 이루어진 복합적 결과물이다. 이런 스웨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각자의 삶에 이를 적용해보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몸을 정확히 파악하여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의 건강상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상당히 유익한 책이었다. 특히 파트 2에서 보여준 사례별로 실제 이루어진 치료법이나 생활수칙 등에 관한 정보는 건강을 위해 실생활에서 실천한다면 우리의 건강 증진에 상당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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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시대 - 중국 CCTV.EBS 방영 다큐멘터리
중국 CCTV 다큐멘터리 제작팀 (총감독 런쉐안) 지음, 허유영 옮김, 런쉐안 / 다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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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에게 기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입사해서 성공을 일궈내고 싶은 곳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억압과 탄압의 대명사로 결국 해체되어야 존재라는 이미지가 클지도 모르겠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기업은 자식과 같다. 예쁘게 키우고 싶고, 바르게 키우고 싶고, 남들보다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기업은 사람마다, 사회마다 다른 이미지와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기업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세세히 보여주는 책이 바로 <기업의 시대>이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인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자 그런 느낌이 바로 사라졌다. 일단 책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마치 기업의 성장기를 그리는 듯한 설명에다 기업과 관련된 자료 사진, 핵심용어 설명, 세계적 석학들의 설명과 인터뷰, 마지막으로 심화학습과 같은 느낌의 인사이트 리뷰 등이 어우러져 많은 분량에도 지루함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책이 중국 CCTV, EBS 방영된 10부작 다큐멘터리를 압축한 내용이기에 더욱 그러했던 같다.

 

책을 읽어보면 기업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하나의 인격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숙해지듯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기업도 세월이 흐르면서 스스로 성장한다. 이런 기업은 단순히 혼자서만 성장하지 않는다. 포드 자동차 회장 포드가 말하듯이, 기업의 목표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은 사람과 사회와 함께 성장한다. 산업혁명과 기술혁명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과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와 부의 창출 등이 이에 대한 하나의 사례이다.

 

기업이 사람과 사회에 이로운 영향만 것은 아니다. 이윤 추구라는 목표 아래 이루어진 노동력 착취, 특히 산업혁명 시대에 이루어진 아동의 노동력 착취나 노동자들의 빈곤한 , 또한 대공황 시절의 거품 경제, 다국적 기업의 도덕성 결핍 등은 기업이 어떤 목표와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회에 악영향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기업은 유익한 면도, 해로운 면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기업은 우리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없는 존재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역할이 강해지는 현실에서는 국가를 초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올바른 기업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책에서는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객관적으로 기업의 역사와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래의 기업은 어떠할지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다만 다큐멘터리 총감독인 런쉐안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있을 뿐이다.

 

기업은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되며 사회의 혁신과 진보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기업이든 정부든 어떤 조직이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진심에서 우러난 존중을 받을 없으며 생명력을 가질 없다.

 

말에 우리가 찾아야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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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 - 동학초기비사 소설 최시형
조중의 지음 / 영림카디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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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하면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인내천이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사상은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를 가진 조선의 사상을 생각했을 상당히 진취적인, 아니 너무나 혁명적인 사상이 아닌가 싶다. 이런 사상을 지닌 2 교주 최시형의 이야기에서 나는 인내천이라는 사상을 올바르게 들여다볼 있을까?

 

[망국] 15 기자로 활동하던 저자가 어쩌면 역사에 파묻혀 버린 인물, 사상인 동학의 최시형을 새롭게 조명한 역사소설이다. 조선 후기 역사에서 서학(기독교) 동학이 자주 등장하지만 동학에 대해 그리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던 나에게 책은 새롭고 신선한 소재를 풀어낸 작품으로 다가왔다. 작품의 토대는 영해성 공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 교주이자 스승인 최제우가 처형당한 영양 일원산에서 때를 기다리던 해월 최시형에게 스승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영해성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해접주 박사헌과 이길주의 전령이 도착한다. 때가 아니라며 영해성 공격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미 이길주의 선동에 넘어간 도인들의 모습을 해월은 결국 영해성 공격을 허락한다. 한편 교세를 넓혀나가는 동학의 교주 해월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은 예문관 응교 조민구는 박사헌의 신임을 얻으면서 해월에게 서서히 접근해간다. 하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꾸던 이들은 영해성 공격에는 성공하지만 곧바로 영해성을 버리고 도망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책을 읽는 동안 눈에 계속해서 아른거린 구절이 있었다. 해월의 스승인 최제우가 남긴 <탄도유심급>이라는 시가 바로 그것이다.

 

겨우 가닥 길을 찾아 걷고 걸어서 험한 물을 건넜네. 밖에 다시 산이 나타나고 밖에 물을 만났네. 다행이 밖의 물은 건고, 간신히 밖의 산을 넘어서, 비로소 넓은 들에 이르자 비로소 길이 있음을 깨달았네.(p.126)

 

인간 역사의 때를 경계하라는 최제우의 말이다. 말을 거꾸로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등과 자유의 역사는 선조들이 수많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니 아직도 우리는 그러한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여전히 극단에 치우진 빈부격차가 있으며,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상대방의 생각과 자유를 억누르려 하고, 자신의 잇속 챙기기에 바쁜 무리들이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빼앗으려 한다. 이런 현실이지만 우리는 산을 넘어 넓은 들에 펼쳐진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영해성 공격에 실패해 도주할 수밖에 없었던 최시형이 실패를 토대로 후천개벽의 시대를 향해 걸음 전진할 있었고, 그리하여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의 깃발을 올려 역사에 획을 그었던 것처럼 말이다. 해월은 때를 보며 산을 넘어갈 알았던 인물이었다.

 

소설에서 느꼈던 가지 아쉬운 점은 최시형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밀명을 받고 동학 무리에 잠입했던 조민구가 해월의 사상에 동화되는 과정이 너무 간략하게 묘사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최시형의 양천주, 상천주 사상이 개략적으로는 설명되어 있었지만 유학적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선비가 변화되는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었다. 부분을 조금 자세히 묘사했다면 해월의 사상을 보다 깊이 있게 설명할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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