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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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방법 중의 하나는 낙서였다. 우리의 목소리는 낙서라는 형태로 화장실과 주점의 벽면에 남겨졌다. 어떤 낙서는 시대적 아픔을 담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내용이었고 다른 낙서는 화장실에서 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트릴 정도의 유머를 담은 재밌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1900년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생각을 알렸을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내었을까?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대한민보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평과 여러 신문의 3 기사를 중심으로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당시 신문의 3면에는 저잣거리의 다양한 소문, 공인의 스캔들, 사기와 도박, 절도와 살인 온갖 사건, 사고 등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어떤 기사는 현대를 사는 우리라면 도저히 상상도 없는 사생활에 관한 광고였고, 어떤 기사는 시대의 아픔을, 어떤 기사는 암울한 시대의 모습을 담은 것들이었다. 읽다보니 1900년대에 살았던 선조의 모습이 대학시절 화장실과 주점에 낙서를 남기던 우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도저히 이해할 없는 정치인들의 작태를 비웃었고, 자신의 지위나 신분 혹은 직업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탐욕의 무리들을 꾸짖었으며, 역할을 못하는 상류층 혹은 지식인들을 강한 어조로 질타했으며, 성적으로 문란한 자들을 풍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때로는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무성한 유언비어가 돌기도 하였다.

 

저자는 우리와 비슷한 생각, 삶을 살았던 1900년대 저잣거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내게는 관민공동회에 참여했던 박성춘이라는 백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은 바로 대한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매우 무식합니다. 그러나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방도는 관리와 백성이 마음을 합한 뒤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일(천막) 비유하건대, 개의 장대로 받치자면 힘이 부족하지만 만일 많은 장대로 힘을 합친다면 힘은 매우 튼튼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관리와 백성이 마음을 합하여 우리 대황제의 훌륭한 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영원토록 무궁하게 합시다. (p.123)

 

우리가 학창 시절에 낙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나 1900년대의 선조들이 외치던 목소리는 결국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자주 주권을 가진 나라, 서로가 하나 되는 나라, 모두가 사는 나라. 빈곤한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있는 나라. 대한제국이 그런 나라이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랬기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을 향해 분노의 일성을 날리고, 이익만 챙기는 통변의 무리나 변호사 무리를 꾸짖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버리고 함께 하자고. 나라, 백성이 민족, 핏줄이라고.

 

그렇지만 저자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말하지 않는다. 제목에서처럼 다른 목소리들을 들려준다. 삼십육계라는 도박에 빠져들어 패가망신한 사람들, 연극장을 성매매를 위한 장소로 이용한 사람들, 고아들을 자신의 돈벌이로 사용한 경성고아원, 을사오적 암살단의 일원이었지만 결국에 돈을 쫓아간 서창보, 사행성을 조장하는 경품행사에 빠져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삶이란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이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그래서 그런 걸까? 13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제국의 모습을 보여준 책이었지만 지금 머릿속으로는 2014년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하나씩 둘씩 겹쳐져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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