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으로 인간을 읽다 - 성경 다음으로 읽어야 할 위대한 책 25
댈러스 윌라드, 리처드 J. 포스터 외 지음, 레노바레 편집위원회 엮음, 이종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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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수님을 믿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이다. 그렇기에 매년 성경 1독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가장 기본적인 매개체가 성경이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구역 모임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말씀 묵상한 부분을 나누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앞선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을 본받고, 그들이 깨달은 신앙을 따라하려고 한다.

 

<기독교 고전으로 인간을 읽다>는 바로 믿음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긴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기독교인 읽어야 할 책 25권을 추려 소개하는 책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25권의 책은 레노바레 편집위원회가 가톨릭, 그리스정교, 개신교 등 다양한 기독교 종파의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에게서 추천받은 필독서에서 추려낸 책들이다.

 

책을 읽기 전에 레노바레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레노바레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스스로 변화되고, 이를 통해 교회와 이웃을 새롭게 하는 운동으로,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외치는 기존의 통성기도와 달리 침묵기도는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내면 여행을 강조한다고 한다. 가톨릭의 관상기도(觀想祈禱)와 유사한 것이라는 설명도 보았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25권의 책을 추린 편집위원이며 레노바레 조직의 창설자인 리처드 J. 포스터, 또 다른 편집위원인 댈러스 윌라드도 관상기도, 영적 여행 등을 강조하는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보수적 교단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 조금은 조심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구성은 상당히 좋았는데, 먼저 추천받은 책의 저자와 책의 주요 주제를 요약하여 설명한 후 해당 책이 중요한 이유와 책을 읽는 요령을 알려준다. 그 후 책에서 중요한 하이라이트를 추려서 제시한 후 해당 책을 가지고 스터디를 진행할 경우에 함께 토론할만한 주제들을 선정해서 수록하였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추천하는 종교서적 베스트 5가 실려 있다.

 

25권의 추천 도서 중 일부는 교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저자의 작품들이었기에 거부감도 적지 않았다. 또한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지 몰라도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영 눈에 거슬렸다. 그렇지만 <팡세> <기독교 강요> <천로역정> 등 몇몇 도서는 기독교인으로서 한 번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이 책에서 설명한 대로 각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에 유념해서 읽어보면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25권의 책에 대한 견해는 아마 상당히 다를 것 같다. 그렇기에 출석하는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도움을 받아 읽어야 할 책을 다시 한 번 추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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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에 관하여 - 죽음을 이기는 4가지 길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3
스티븐 케이브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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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렵다. 아마 죽음 이후에 무엇이 펼쳐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두렵다 보니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죽음을 뒤로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보다 한 발 더 나간 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기 위해, 즉 불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냉동보관하기도 하고 자신의 뇌를 컴퓨터로 이전해 이를 추후에 새로운 신체에 넘기려고 하기도 한다.

 

불멸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이런 불멸에 대해 영국의 철학자 스티븐 케이브는 <불멸에 관하여>에서 사람들이 찾아낸 죽음을 이기는 4가지 길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불멸에 이르는 길 4가지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헤맸던 이유인 육체적인 불멸, 예수님이 보여주신 육체적 부활, 육체를 떠난 영혼의 불멸, 마지막으로 후손에게 남겨준 유산을 통한 불멸이다.

 

저자는 4가지 불멸의 길에 대해 설명한 후 그 속에 담긴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지혜를 이야기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불멸에 연연하지 말라고 한다. 불멸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추구가 인류가 발전하고, 문화적 진보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지만 불멸의 이야기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문명이 후퇴하지는 않는다고, 어쩌면 그런 문명이 더욱 발전된 문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혜 이야기로 지금 이 순간과 자아를 벗어난 세상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더욱 행복하고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에 당연히 부활을, 즉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육체적 부활을 믿는다. 몸의 부활과 관련해 저자가 제기한 인간적 의문 사항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 선뜻 대답할 수는 없지만 이 땅에 인간의 육체로 오신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온전히 육체적으로 다시 부활하신 그 말씀을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언젠가 내게 다가올 불멸의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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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 :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지음, 박정일 옮김 / 해나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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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어렵다. 옮긴이의 말을 모두 합쳐도 채 200 페이지가 되지 않는 책이다. 게다가 이미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도 보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만만하게 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영화와는 달리 이 책은 쉽지 않다. 아니 전공자가 아니라면 책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쉽게 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앨런 튜링의 논문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도 아닐뿐더러 이과생도 아닌 문과생인 나로서는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책에 앨런 튜링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나 생각이 형성된 과정, 혹은 누구나 궁금할 만한 이야기로, 그가 역사 속에서 이룬 업적이나 사랑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을 덮고 나서도 멍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책에서 말하는 이론적인 내용보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그가 컴퓨터, 인공 지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마 그가 짝사랑하던 크리스토퍼 모컴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튜링은 모컴의 죽음으로 신체와 영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으로 신체가 사라진 후에도 그 영혼은 새로운 신체를 찾아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결국 인간이 하는 모든 정신 활동을 기계가 모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이런 그의 생각이 컴퓨터, 인공지능이라는 현실로 이어진다.

 

그런데 영혼이 다른 신체로 들어간다는 그의 생각은 컴퓨터를 활용해 인간의 뇌를 저장한 이를 추후에 다른 신체(?)로 옮긴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약 이 과정이 성공한다면, 이를 반겨야 할까, 아니면 반대해야 할까?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존재는 인간인 걸까? 아니면 기계인 걸까?

 

개인적으로 그런 현실은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 내 모습이 아닌 기계를 거쳐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결코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기계를 생각해 낸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에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런 천재가 독을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니,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문득 그것이 너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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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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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 퀴즈를 푸는 중이라고 상상해보자. 사회자가 노자, 도교, 무위자연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선이나 도인을 떠올릴 것이다(나 같은 경우는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량이 떠올랐지만).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자연을 거니는 모습.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노자 혹은 도교에 대한 이미지이다.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연이라는 말과 무위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신선, 도인 혹은 한량이 아니라면 하는 일 없이 자연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나의 생각처럼 노자는 정말 그저 도인이나 한량처럼 살라고 말한 것일까?

 

이 책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노자의 무위 사상을 무불위 사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무위를 실천해봐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p.254)

 

노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기존의 견고한 틀이나 사고방식에 갇히지 말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하면서 세계와 직접 관계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노자는 무위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가? 당신이 알고 있던 노자의 사상과 일치하는가? 아니면 여태 노자를 오해하고 있었는가?

 

이 책은 저자 최진석 교수가 EBS <인문학 특강> 프로그램과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노자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고대 중국에서 이루어진 사상의 흐름을 보여준 후 공자의 실체론과 노자의 관계론을 비교하며 노자의 생각을 설명해 나간다.

 

노자의 사상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유무상생의 원칙, 즉 대립면의 꼬임이라는 원칙을 주장한다. 또한 기존의 생각, 개념, 사상에 영향을 받지 말라고 한다. 그렇기에 노자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바라는 일이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자는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실재가 존재하는 일상을 벗어나 이념에 빠져들고, 결국 이념이 실재를 넘어서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권의 책으로 노자의 모든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던 노자의 생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노자의 사상에 모두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노자의 생각에 반대하는 부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나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노자의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메아리가 되어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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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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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이런 말이 나도는 이유는 뭘까? 아마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새로운 신분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무리 좁은 길이었다고는 하더라도, 모두에게 열려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시대는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이 달라지고, 그 후에 이루어지는 사회적 신분도 달라진다. 오죽했으면 부가 아니라 신분을 대물림하는 시대라고 말하는 정치인도 있을까?

 

학원 강사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실제로 아이의 성적도 달라진다. 아무리 돈을 들여도 실력이 늘지 않는 아이는 외국으로 보내 학교를 마치게 한다. 물론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외국에서 영어 하나만 제대로 배워 온다면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 것이다.

 

정아은 작가의 <잠실동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잠실이라는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늘 사회적 핫 이슈가 되는 교육 이야기가 그려진다.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잠실이지만, 잠실을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장소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게 다가온다.

 

강북에서 학원 강사를 할 때 만났던 부모님들은 아무래도 맞벌이를 하거나, 중소 자영업자가 많았기에 책에서 묘사한 엄마들처럼 아이들의 교육에 쏟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저 학교나 학원 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는 정도이거나, 혹은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보니 학원에 맡기는, 마치 보육원처럼 생각하는 부모님들도 있었다. 이런 부모님들에 비해 초등학교, 아니 그 이전부터 수업 끝날 시간에 맞춰 학원에 가 아이를 다음 학원에 데려다주고, 과목마다 팀을 짜서 수업을 듣게 하고, 학원 수업만으로 모자라 학습지나 과외를 붙이는 강남(책에서는 잠실) 부모님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 강남 부모들은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는 존재일까? 글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아이가 생기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모가 되다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아이를 틀에 박힌 공부 기계처럼 만들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고, 때로는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헬리콥터맘이 되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신만의 노력으로 최정상의 위치에 올라가는 이들보다 이제는 부모의 재력으로, 부모의 신분으로, 부모의 인맥으로 너무나 쉽게 그런 자리에 오르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내 자식에게 그런 길을 열어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문제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물론 하는 행동은 사람마다 천양지차이지만). 강남에 사는 부모나, 강북에 사는 부모나, 잘 사는 부모나, 못 사는 부모나 다 자식 잘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 복합적인 해결책이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교육의 정상화, 아니 사교육을 넘어서는 공교육이 세워져야 교육의 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도 언뜻 볼 수 있듯이, 교장이 바뀌면 학교에서 추진하던 프로그램들이 대폭 변경된다. 교사들은 쓰잘데기 없는 행정업무에 제대로 수업을 준비할 시간도 없다. 학부모에게 치이고, 윗사람에게 치이다 교육자의 사명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교사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이 개선되어야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지고, 이런 환경이 이루어져야 사교육을 넘어서는 공교육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잠실동 사람들>에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 이 시대의 슬픔이 가득 담긴 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런 모습들 중에는 결코 되고 싶지 않은 내 미래의 모습이, 우리 모두가 바라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에서, 이런 사회에서 그저 도망치듯 전학을 가는 것이 결코 올바른 답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 답인지, 우리 모두 곱씹어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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