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양장) 기담문학 고딕총서 1
라프카디오 헌 지음, 심정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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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과학서적만 편식하다보니, '전설의 고향'류의 서사가 읽고 싶어졌다. 한쪽 장르만 편식하다보니 내적 균형이 깨지는 느낌, 뭔가 건조해지고 황폐해지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요괴나 귀신 등 초자연적 존재들, 여우, 너구리, 벚나무 등 자연에 속한 것들, 그리고 인간 간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시절의 서사들을 찾게 된다. 초자연, 자연, 인간 간의 연속성에 대한 문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뭔가 잊고 살았던 존재의 근원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자 라프카디오 헌은 1850년 그리스인 어머니와 아일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그리스이고, 청년기를 보낸 곳은 아일랜드, 그리고 국적은 영국이었다. 유년기에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 할머니의 손에 자랐고, 청소년기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사고로 한쪽 눈마저 잃었다고 한다. 19세에 혈혈단신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나, 극빈자 생활을 면치 못하다가 어렵사리 신문사에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고, 30세(1890년)에 일본에 갔다가 일본에 완전히 매료되어, 사무라이 집안의 딸과 결혼해 아예 눌러살게 되었고, 도쿄 대학, 와세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한다.

잔뜩 기대를 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 좀 실망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이 텍스트가 흥미있었던 것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저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파란눈의 외국인이 어떤 경위로 일본의 근대화가 본격화되던 그 무렵에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일본인으로 귀화하게 되었고, 그가 왜 일본의 구전 설화에 그토록 매료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한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책의 뒷부분에 실려있는 작가의 생애를 읽어보니 어린 시절의 외로움, 거듭된 불행, 혼종적 존재로 태어났으나 부모 어느 한쪽의 국적에 속하지 아니하고 식민지배국이었던 영국국적으로 살아가면서 느꼈을 태생적 불안감, 결국 영국, 아일랜드, 그리스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하게 된 심경 등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태생이 열등한 백인이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함께 등장한 '인종' 개념, 백인과 비백인의 이분법은 백인 내부에서도 등급화 담론으로 작용했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인들은 '백인 축에 끼지 못하는 존재'로 폄하되곤 했다. 그의 인생 전반기를 디아스포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상황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어쨌든 라프카디오 헌은 '사람도 집도, 모든 것이 요정같은 나라' 일본의 모든 것을 깊이 사랑했고,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상상컨데, 집 없는 존재, 장소 없는 존재,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그가 특히 일본의 괴담을 포함한 구전 설화에 매료된 것은 아마도 그 설화가 자연과 초자연, 그리고 인간의 연속성 혹은 연결성,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일본 영화, 소설, 만화 등을 상당히 많이 접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에피소드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귀없는 호이치], [설녀] 등은 일본의 구전 괴담 설화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서구 비평가들로부터 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는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1964년 영화 <괴담(카이단)>에서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정말 무시 무시했음). 반면, 오히려 이 책에서 [귀없는 호이치], [설녀]를 읽으면 '공포' 보다는 슬픔, 사랑, 집착, 미련 등의 섬세한 정서의 결이 읽힌다. (훨씬 정감있게 다가온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것이 시각적 매체가 아닌 활자 매체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사족. 이 정도 내용이라면 하드 커버로 만들지 말고, 소프트 커버로 냈으면 한다. 부담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워낙 50%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겉표지 종이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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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재발견 -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이 빠진 조직의 덫, 개정판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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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의 20대 대부분이 처해 있는 잔혹한 현실인 ‘88만원 세대’에서 예외적인 존재들, 즉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대기업, 공직 유관기관 등 젊은이들의 희망 직종 진입에 성공한 5%의 승자들이 만나게 될 ‘조직’의 쓴맛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포스트 포디즘 시대의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를 조직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1장은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들로서 기업에 대해 조직론으로 접근하는 다양한 경제학 이론들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 이론들은 생경하고 복잡해서 경제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단번에 이해하기엔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1장을 읽고 나서도 이 이론과 현실을 접목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어려운 경제 이론들이 장황하게 설명된 1장을 견디고 나면, 2장 “돈 장사와 사람 장사”, 3장 “위기의 한국 조직들”은 상대적으로 술술 읽힌다. 이 책에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로서 더 활용가능한 것은 1장에서 제시한 경제학의 조직 이론들이 아니라 대중적 글쓰기로 전환되어 있는 2장과 3장에서 저자가 취한 ‘이름붙이기’이다.

대중의 현실 포착력, 이것을 위해 저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전략은 ‘이름붙이기’이다. 사회 과학에서 사용하는 ‘개념’과는 달리 저자가 한국의 경제 현실을 설명할 때 붙인 ‘이름들’은 분석력 보다는 환유적 상징력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훨씬 더 빨리, 쉽게 현실을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조직론’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기업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극복해내야 할 키워드로 제시한, ‘캐비아’ 자본주의, ‘귀공자’ 자본주의, ‘마초’ 자본주의, (토호들의) ‘짝패’ 자본주의, ‘조폭’ 자본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름붙이기’는 책의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저자가 붙인 ‘딱지들’은 특정 현상에 대한 패러디나 도덕적 비판, 저자의 입장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러한 명명 전략은 매우 쉽게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준다. 우석훈 특유의 ‘명랑한 글쓰기’는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게 무거운 현실을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만들어낸 지도 속으로 들어나 그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글을 읽어가다 보면, 때로는 웃음과 통쾌함을, 때로는 씁슬한 자조감을 느끼면서 공감하게 된다. ‘이름붙이기’가 가능케 하는 통쾌함,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감각은 한편으로 함정을 내포한다. 통쾌함은 현실을 이해했다는 자신감 (자족감) 혹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래서 더 이상의 사유의 진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명명 전략이 너무 남용되면서 좀 더 상세하게 기술되거나 쟁점화되어야 하는 지점들이 간과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안성’(다양성과 안정성의 합성어)은 저자가 “국민경제의 다양한 구성요소들과 협동진화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가 지금 한국 기업들에게 던져진 절체절명의 과제 된 시대”라고 진단하면서 그 비젼으로 제시한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문제 해결의 열쇠는 기업의 '頂上性'이 아니라 '正常性'의 획득(최소한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지켜지는 정상 기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즉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기업의 정상성, 나아가 이 사회의 정상성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정상성의 구축을 위해 저자는 이성(로고스)의 힘에 기대고 있다. 한국 사회가 건강한 자본축적이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조직을 구성하는 인간들 간의 공정하고 인간적인 게임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로고스의 언어 만으로 가능할 것인가?

'영속성', '신뢰'. 책을 덮고 나서 내게 의문으로 남은 것은 바로 이 두개의 단어였다. 결국 저자의 말처럼, ‘조직론’의 핵심은 조직의 근간이 다름 아닌 인격과 감정을 가진 사람, 즉 정동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기업과 사회의 영속성은 그 사람들의 다양성과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가능하다면, 과연 이때 영속되어야할 가치는 무엇이며, 신뢰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국가도, 동료도, 가족도,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가혹한 삶의 조건 속에서, ‘인간다운 삶’의 기본은 이 신뢰의 문제에 있다. 결국 '인간다운 자본주의'에 대한 해답은 경제가 아니라 '사회' 속에 있으며, 한국 조직 위기론에 대한 해답 역시 경제학 이론 보다는 좀 더 인문학적인 사유 속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정동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필요한 ‘영속성’, ‘신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그 질문과 해답에 대한 사유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사족. 340페이지 분량을 읽어내려면 상당한 끈기가 필요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 수준에서 절절하게 혹은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던 상념과 깨달음들을 기민하고 재치있게 포착해서 언어화하는 것. 이게 저자의 능력이자 전략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저자는 대중들이 현실을 가장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사유 능력을 제공하거나 자극하는 것을 지식인의 임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한데, 그래서 대중적 글쓰기와 아카데미아의 그것을 어떻게 접합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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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 일본 정신의 고향 종교도서관 3
C.스콧 리틀턴 지음, 박규태 옮김 / 유토피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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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내용과 편집, 번역의 측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품격을 보여준다. 한 지인은 이 책에 대해 ‘아름답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극찬을 했다. 아마도 편집 기술에 관한한 한국 출판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외국 서적들은 대개 표지가 페이퍼백이고 내지 또한 허름하며, 표지의 디자인도 간결하고 소박하다. 언젠가 출판사와 함께 해외 아동 도서 번역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출판사 담당자는 소박한 페이퍼백 원서를 번역서로 내놓을 땐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반드시 하드커버로 내야 그나마 팔린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의 독자들은 책을 고를 때 내용에 앞서 외양을 중시한다는 것.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닐 듯싶다. 내용 보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것,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있어서만큼은 책의 편집과 디자인의 가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마도 원서는 이렇게까지 편집이 훌륭하지는 않았을 듯. 책의 내용 상 사진과 그림, 인용문과 해설이 본문과 함께 배치될 수밖에 없는데, 이 번역서에서 편집의 기술은 가독성과 책의 품위도 함께 높여준다. 또한 책을 만든 사람들의 정성과 그 안에 담긴 지식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저자인 C. 스콧 리틀턴은 ‘고대인도 유럽의 종교 전통, 신도를 포함한 일본 문화 전반에 관한 전문 연구가’이다. 프로필을 보니 일본의 대학에서도 교편을 잡은 바 있다. ‘신도’에 대한 그의 견해는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일본에서 살면서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낀 바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중 ‘신도’와 연관된 것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저자는 신도를 하나의 종교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역자 박규태 교수에 따르자면 이것은 서구 종교학적인 관점으로 반드시 신도의 본질과는 일치하는 이해라고는 단언할 수는 없다. 아마도 샤머니즘적 전통이 뿌리 깊은 한국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역자의 견해에 더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신도’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동일시되곤 했었다. 왜냐하면 당연히 일본의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 한국인으로서, ‘신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이고, 왕을 신이라고 믿는 일본인들의 신념이 전쟁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 전통 문화인 신도에 대한 개론서에 해당하는 이 책은 ‘신도’를 이러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수천년간 일본인의 정신 세계의 근간을 형성해 왔던 신도, 즉 저자가 ‘일본 정신의 고향’이라고 명명한 ‘신도’는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주의에 의해 새롭게 구축된 신도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국가주의와 결합된 신도는 일본의 근대가 창조해낸 '오래되지 않은 전통'이기 때문이다. 신도는 ‘인간은 본래 주술적인 존재이며, 삶의 불안을 무언가에 의지해서 견뎌내지 않으면’(130p,역자) 안되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이라는 보편성 속에서 이해되어야할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다.

120페이지 분량의 길지 않은 책 속에서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간결하고도 명료하게 전달한다. 기원과 역사, 일본 열도 창조 신화에 얽힌 이야기들, 신도의 윤리 원칙, 공간(신사), 의례(마츠리), 불교 등 타종교와 연관성 등을 설명하는 각장의 구성도 매우 잘 되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아주 좋은 책이다. 유토피아 출판사는 ‘종교도서관을 열며’라는 제목의 서두에서, ‘다문화․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상호존중과 포용의 미덕을 지닌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데 밀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쓰고 있다. 이 기획 의도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종교도서관’ 시리즈 중에서 『이슬람: 사막에 꽃핀 평화주의』, 『힌두교: 인도 사상의 뿌리』를 점찍어 두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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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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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미덕은 절반 이상이 기획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 의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브레이크 없이 치닫고 있을 때, 이 나라의 정치경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비정규직 문제, 사회양극화 현상 등이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재분배 문제나 통계적 지표로 확인될 수 있는 경제 성장에 쏠려 있을 때, 미디어 담론과 아카데미 담론 어디에서도 조명 받지 못했던 10대와 20대의 상황을 가시화하고 정치화했다.

‘세대 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이라는 다소 생경한 언표는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섬뜩하고 참담한 현실로 다가온다. 내가 이 책의 ‘기획’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기획 서적’이라는 폄하적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 사회의 ‘상식’의 경계 안에서 포착되지 않는 영역, 즉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영역. 지식인의 임무는 바로 그 사회의 상식의 경계를 확장하거나 그 지평을 바꾸어 내는 것이라고 할 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변화되거나 가시화되지 않은 영역을 포착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한민국 10대와 20대의 운명’에 대한 저자들의 이야기는 사유의 흐름을 바꾸는 지식을 했다는 점에서 그 지식 생산의 기획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 책은 10대의 동거권, 지체되는 결혼 연령, 얼핏 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로만 비춰지는 의제들을 경제학적 시각에서 해석하면서, 나아가 이것이 한국사회의 정치경제학적 현재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임을 주장한다. 문제의 출발점은 한국의 10대와 20대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세대 문제’와 관련된 다른 나라들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복잡한 지도 속에서 다층적으로 접근된다. 어찌보면 이 책은 한국의 10대와 20대가 놓인 처절한 현실에 대해 기술적 측면에서 언어화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문제를 가시화하고 직면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공동 저자 박권일은 에필로그에서,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빌리에 드 릴라당의 『희망고문』의 구절을 인용하여, 가장 잔인한 고문 중 하나인 ‘희망 고문’에 대해 언급한다. 즉 “희망을 슬쩍 보여줬다가 그걸 움켜쥐려는 찰나 다시 빼앗아 버리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10대와 20대가 질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 게임에 내몰린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오직 1사람에게만 주어진 승리를 향해 모든 사람들이 달리고 있는 ‘희망의 과잉 상태’라기 보다는, 그 게임 자체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달리는 상태가 아닐까 싶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생존을 위해, 이기냐 지느냐 보다는 죽지 않기 위해 달리는 이 게임, 책을 덮고 나서 희망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분야에 있는 저자가 만나 서로의 사유를 자극하고 확장하고 고민한 흔적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학부생과 함께 읽고 토론해 보고 싶은 책이다.

사족. 저자는 '저공비행'으로 일관된 학점을 받고 겨우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골라가며' 취직할 수 있었던 시절(1980년대 후반)이 있었다고 말한다. 1980년대 후반 캠퍼스의 풍경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386인 내가 목격하고, 직접 겪었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때 당시에도 SKY대학, 아니 적어도 in seoul의 대학 출신이 아니었으면, 직장을 골라서 선택할 수 있는 처지는 결코 아니었고, sky대학이라고 할지라도 주민번도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러했다. 학과별로 배당되었던 (당시 선망 직종 1순위였던) 대기업과 은행의 추천서를 받을 수 있는 번호표는 여학생들에겐 주어지지 않았고, 그런 부조리한 처사에 대해 아무도 끽 소리조차 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나는 부잣집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자라, 공부도 잘하고 실패나 좌절 한번 겪어보지 못한 동료들이 취업을 시도하면서 생애 최초로 좌절을 경험하고 무너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취업을 앞둔 4학년 여학생들은 거듭되는 집단적인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서 자아 감각에 대한 질적 변화를 치러내고 있었다. 젠더라는 개념을 적용해 본다면, 저자가 그려 보이는 한국의 세대들에 관한 그림은 좀더 복잡해져야할 듯 싶다. 저자의 분석이 통찰력이 있긴 하지만, 한 세대에 속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다지 동질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이 간과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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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ulemono 2008-10-2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족의 내용이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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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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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은 최근 읽었던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책 중에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경제에 문외한이었기에, 신자유주의에 관한 학자들의 논의는 내게 무척 어렵게 다가왔었다. 흔히 쉽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기획된 대중서의 경우, 논의의 깊이 없이 가벼운 포퓰리즘의 냄새가 나기 쉬운데, 이 책의 경우 내용의 깊이와 유머러스한 화법이 무리 없이 잘 결합되어 있다. 또한 논거의 명쾌함과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진지함과 성실성이 저자를 신뢰하게 만든다. 

최근 몇 년 사이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그 전개 과정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신자유주의를 역사화하는 것(historicizing) 혹은 그 전개 과정의 윤곽을 그려내는 것(mapping)은 그것의 변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둘째, 역사화 혹은 지도그리기는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가시화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그릇된 정보의 허구성을 드러내준다. 이 책은 역사화 방법이 생산해 내는 지식의 미덕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부분은 ‘자유 무역’은 생산성을 높이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견해를 역사적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뒷부분에서는 “대안이 없다”는 명제, 즉 세계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영화, 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 외국 투자 자본에 대한 규제 해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논리나 상상력으로 조목 조목 반박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세계화(1870년-1913년)의 상품.사람.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 이 시기 자유 무역을 실천했던 나라들은 (영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식민지배(난징 조약)나 불평등 조약의 결과로 자유 무역을 강요당한 약소국들이었다....(중략)...오늘날 부자 나라들이 취했던 보호 무역주의 역사는 지극히 과소 평가되고 있고, 현재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도의 전지구적인 통합이 제국주의적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장하준은 ‘시장 자유’에 대한 믿음에는 오래된 제국주의적 기반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다만 좌파 학자들과 다른 점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착취’가 자본주의에 내재된 본질적 요소라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경제적 풍요로움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켜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논의의 원동력은 정의로운 자본주의, 즉 공정한 게임의 규칙에 기반한 이윤의 축적과 분배에 대한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동기 혹은 욕망’을 그 자체로는 나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경제학자로서 그가 바라는 것은 만인의 행복을 증진시켜줄 수 있는 ‘공정한 자본주의 세상’이라고나 할까. 

또한, 그는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의 실용주의적 정책을 강조한다. 개발도상국이 부유한 국가의 대열에 진입하기까지는 국가는 자국의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보호주의적 정책을 펼쳤으며,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던 역사적 근거들을 보여준다. 경제적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개발도상국의 민족주의를 옹호하고 있는데, 일견 이러한 견해는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그의 실용주의가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예를 들어 장하준은 덩샤오핑이 중국의 경제개혁을 추동하면서 내 걸었던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이든 흰 고양이이든 쥐를 잡기만 하면 된다”)의 중국 정부의 실용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자유 무역이건 보호 무역이건 그것은 ‘부의 축적’이라는 실용적 목표에 입각한 국가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장하준은 중국 정부가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내 걸었던 실용주의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찬양이 동반되기 쉽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는 않다. 당시 중국에서는 흑묘백묘론과 함께 부동산투기 열풍과 ‘대박정신’이 유행했다. 실용주의적 자본주의와 황금만능주의, 이 둘은 별개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박정희 독재 정권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일면적일 수밖에 없는 것. 혹자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출발점을 박정희 정권으로 보기도 한다.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로 인민을 ‘경제적 주체’로 호명하면서 이뤄낸 국가의 경제적 발전, 그 이면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적 집착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았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자 나라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나쁜 사마리안들의 제국주의적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제국주의의 씨앗은 ‘돈에 대한 숭배’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사족. 이 책의 특징은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도덕적 관점을 배제한 시각 혹은 그것으로부터 중립적 시각에서 씌여졌다는 점이다. 또한 좌우의 이념적 대립각의 바깥에서 유연하게 씌여진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좌우의 이념 대립의 자장 안에서만 사유되면서 다양한 의미들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켜온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이념의 과잉은 개념의 과잉을 만들어내고, 과대 포장된 기표로서 작동하는 개념은 온갖 기의들을 빨아들이고 축적하면서 사람들의 사유 능력을 제한한다. 개념의 블랙홀. 이 거대한 질주의 드라마 속에 철저하게 무력하게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이 이념과 개념의 과잉과 범람이 야기한 사유 능력의 마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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