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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재 일본의 일상)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삶을 다룬 시리즈물 중 하나처음부터 나레이터는 눈물 닦을 준비를 하라고 일러둔다.

 

1966년 문화대혁명, 꽃다운 나이에 중국의 변방으로 하방을 갔던 수많은 젊은이들 중 하나였던 남자 주인공은 거기서 연인을 만나 결혼을 했고, 딸을 두었다.

 

일본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영상은 2000년대 중후반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는데, 이 때 남자는 일본, 아내는 상해, 딸은 뉴욕에서 살고 있다. 남자는 온갖 직업을 거치면서 재일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고, 아내는 상해의 어느 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딸은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남자는 어린 딸과 아내를 상해에 남겨두고 35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청소, 식당, 공장 등 직업을 바꿔가면서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42세가 되었다. 그간 한 번도 아내와 딸을 만나지 못했다. 하방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그는 딸이 자신의 꿈을 이루길 바란다. 그리고 딸이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자정이 넘어야 집에 들어가고 샤워 공간조차 없는 비좁은 자신의 집에서 주방에 비닐을 막아 만든 샤워공간에서 겨우 자신의 몸을 씻고 잠시 몸을 뉘인 뒤 날이 밝기 전에 출근한다. 하루에 2가지 일을 하면서, 끼니만 면할 정도로 검소한 도시락으로 지극히 아끼고 아끼며 살아간다.

 

일본의 제작진은 이런 그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상해에 있는 아내와 딸에게 보여준다. 고등학생이 된 딸과 이제 중년이 된 아내는 놀라움과 먹먹함이 뒤섞인 채 눈물을 흘리며 영상 속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가 딸, 그리고 아내를 차례차례 만나게 된 건 그 후로도 몇 년의 시간이 흘러서다. 딸은 뉴욕 주립대 의대에 합격했고, 유학을 가는 길에 남자가 살고 있는 도쿄에 잠시 머무른다. 그리고 아내는 그 후로 몇 년 후 뉴욕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역시 도쿄에 3-4일 머무른다. 아내와는 무려 15년 만에 만난 것이다. 남자가 일본으로 떠날 때 30대였던 부부는 이제 50을 넘긴 중년이 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남자의 고단한 삶은 그의 몸에 흔적을 남겼다. 50을 갓 넘긴 나이에 이빨이 여러 개 빠져버린 것이다.

 

이 영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들이 지하철에서 이별하는 장면이다. 딸과 아내는 각각 똑같은 방식으로 남자와 작별한다. 지하철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남자와 딸, 남자와 아내. 같은 공간에 앉아있지만 남자는 일터로, , 그리고 아내는 뉴욕 행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남자는 먼저 내려야 한다. 남자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가까워지자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는 대화가 없어지고 서로 마주보지 못한다. 그들의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 눈물만 흘린 뿐이다. 남자가 먼저 내리고 난 후,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에도 딸은, 그리고 아내는 감히 뒤돌아보지 못한다. , 그리고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한 느낌을 준다. 딸이 의사가 된 후, 비로소 남자는 상해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역할을 다 완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해의 아내는 이빨이 빠진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을 맞이한다.

 

차마 서로 마주 볼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 이 다큐를 보고 비로소 알게 됐다. 두고두고 오래 기억에 남을 휴먼 다큐이다.

 

영상을 볼 수 있는 곳. 중국 어플리케이션 PPS의 메뉴에서 다큐멘터리(기록물)로 들어가서 평가 항목으로 분류하면, 가장 평가가 높은 영상을 찾으면 됨. 다큐 제목은 재 일본의 일상이고, 그 중에서 이 에피소드는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이라는 제목으로 총 4편으로 구성돼 있다. 나레이션은 일본어로 되어 있고, 중국어 자막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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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개요

 

 

이 책의 목적은 “‘우리들은 인종 문제에 그다지 관련이 없으므로, ‘인종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수사와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백인성의 규범성 혹은 정상성을 문제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인종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은 혹은 스스로 그렇다고 자부하는 영국 백인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인종및 인종주의적 구조와 관계들에 의해 형성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인종과 계급, 젠더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들이 ‘doing race’하는 방식을 추적한다. 저자는 젠더에 관한 주디스 버틀러의 정식화를 전유하여 인종을 토대적 범주, 전담론적 사실이 아닌 담론과 실천들의 작동을 통해서 생산되는 수행적 개념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런던에 살면서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노동계급 및 중산층 백인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저자는 백인성이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면밀히 분석한다. 이 책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1-3, 그리고 결론에서 저자는 이러한 연구 방법론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분명히 하고 있다. , 지금까지 인종문제와 관련하여 연구 영역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을 연구 영역으로 삼는 것,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지금까지 mark되지 않았던 것을 mark하는 것은 적어도 인종이 작동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궁극적으로 백인성을 탈중심화하는 과정인 동시에,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학문적 실천, 인종'undoing'하기 위한 비판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책은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3장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저자의 이론적 계보와 포지셔닝, 연구 설계 과정과 그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4장에서 7장까지는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인터뷰 내용과 그에 대한 구체적 분석으로 이뤄져 있다. 8장 결론에서는 1-7장의 이론과 인터뷰 분석을 통합하여 요약하고 있다.

 

 

 

1. ‘백인성을 알기 (Knowing 'whiteness')

 

 

 

1장과 2장은 인종에 대한 저자 자신의 이론적 포지션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1장에서 저자는 인종에 대한 학문적 논의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논의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포지셔닝을 위해 크게 페미니즘, 백인학(white studies), 그리고 영국의 인종 연구의 계보적 지도를 비판적으로 개괄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적 입지가 우선 페미니즘 내부의 (특히 흑인 페미니스트가 제시한) 논쟁과 도전에 빚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내부의 백인 인종주의를 검토할 것을 요구했던 것에 대한 응답으로 1980-90년대 새롭게 등장한 소위 백인학의 연구 동향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저자는 우선 비백인 저자들의 지식들을 백인 연구자들이 삭제하거나 간과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맥락적이고 관계적인 분석이 아니라 자기충족적 분석 관행을 통해 결과적으로 백인성을 지적인 페티시로 만들었다는 비판에 동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영국의 학계에서 일상 속의 인종주의적 경험에 대한 연구의 흐름을 개괄하면서, 이 연구들이 주로 도시 노동 계급 젊은 남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흐름은 크게 1)인종간의 문화적 교류나 우정을 다루는 연구, 그리고 2)인종적 괴롭힘이나 인종주의 폭력 등 노골적인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 등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저자는 아마도 이러한 연구 동향 자체가 인종주의는 (중산층과 무관한) ‘노동 계급그리고 (여성과 무관한) ‘남성의 문제로 간주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보는 듯하다. 여기서 인종일탈적이고 병리학적인 문제나 폭력적 남성성의 문제에 국한된 것으로 수렴되는 정치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가 문제시 하고 있는 것은 인종주의 문제에서 여성은 예외적인 존재로 다뤄지거나 아예 제외되는 현상이다. 저자는 인종주의와 전혀 무관하다고 간주되는 중산층여성의 인종주의를 문제화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특히 유의미하게 보았던 부분은 1980-90년대에 인종적 괴롭힘이 더 증가했는데, 특히 이러한 현상이 인종적으로 더 혼합된 inner city 지역 보다는 백인 교외 지역에서 더 두드러졌다는 Back의 연구 결과이다. 영국 상류계급의 전형적인 중산층 및 좋은 삶의 이미지가 폭력, 외국인혐오증, 폭력적인 인종주의로 수렴된다는 점을 지적한 Back의 주장을 인용한 부분에서 평범하고 모범적인 백인성을 문제화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설득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1장과 결론에서 연구자가 인종개념을 사용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과 정치적 위험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백인(의 경험) 중심적인 연구 분야를 만드는 것; 2)‘흑인’, ‘아시아문화와 대조되는 단일한 백인 문화개념의 등장; 3)‘백인종개념을 승인하는 것(이는 모든 인종에 내재된 위험임). 저자는 인종개념을 둘러싼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David Goldberg, Alistair Bonnet, Paul Gilroy의 논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비판적 개념으로서의 인종 개념의 사용 자체를 포기하자고 제안한 Paul Gilroy와는 분명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 저자는 아직은 인종개념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보면서, 그 대신 인종 개념을 존재론적 지위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즉 불안정하고 문제적인(‘troubled') 범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백인성을 본질화 혹은 물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실천들, 주체 구성, ‘하얗게포지션된 사람들의 정체성이 인종화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백인성의 본질화를 피하기 위해 제안한 중요한 방법은 1)그것이 단일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2)‘백인성’, 하얀 사람들이 생산되는 다양한 방식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 저자의 관심은 젠더와 계급이 백인성과 교차하는 방식, 정체성이 특정 시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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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나의 10개의 약속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7671  

박주택, [문양]

안내견 앞서 가네, 눈을 끔벅거리며
약국 앞 지나네, 먼 길을 걸어온 듯 혀를 길게 빼물고
사람들이 비켜주는 길을 따라 토요일 속으로 걸어오네
벚꽃 피는 봄날이었네 마음이 도굴되는 봄날이었네
바람은 사랑에게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눈에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꽃가지는 흔들고 모오든 노래들이 펄럭일 때
바람들 고요에 들어 고요의 상속을 기다리네

이렇게 흰 꽃잎 들여다보는데 마음은 피고 물은 흐르는데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는 봄날
바야흐로 빛을 배워 눈 열리는 봄날
놓친 것들이 돌아오는 길목
안내견 한 마리 눈을 끔벅거리며 성자처럼
흰옷을 펄럭거리며 꽃잎 속을 걸어오시네
사람들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며
횡단보도 걸어오시네

- 출처: 『시간의 동공』(문학과지성사)

일본 홋카이도 해변 마을이 배경. 주인공은 병원일 때문에 바쁜 아빠와 그림을 그리는 엄마와 사는 중학생 소녀 아카리.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외로움을 타는 딸에게 강아지를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대신 딸에게 개와 지켜야할 10개의 약속을 들려준다. 영화는 소녀 아카리와 양말 신은 발을 닮아 Socks라는 이름을 붙여준 개(골든 리트리버)가 함께 한 7년의 시간들을 잔잔히 그려낸다.

주인공이 사는 공간은 소박하지만 단란하고 아기자기한 삶의 풍경들을 담고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당에, 조그마한 울타리, 부엌과 연결된 화사하고 아늑한 거실. Socks는 아카리에게 몇 가지 작지만 위대한 기적을 가져다준다. Socks가 가진 치유의 힘이었다. 아빠는 이런 일상을 누리기 위해 출세를 포기하고 시골 마을 의사로 남는다. 아카리네 집 마당엔 벚나무가 한 그루 있다. 벚꽃이 가득한 풍경과 선량하기 그지없는 Socks의 눈이 닮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 놓인 존재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일상을 함께 하는 존재들에게 성실해야 한다는 것. 그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지난 여름, 마음이 어지러웠을 때 위로가 되었던 박주택의 시가 떠올랐다. 우리 아파트 윗층에 어느 중년 부부는 은퇴한 맹인견과 함께 산다.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녁 10시가 넘어야 산책을 나간다. 산책길에 그 일행과 마주칠 때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누군가로부터 깊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영화 속 아카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하나, 제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주세요.
둘, 나를 믿어주세요. 전 항상 당신 편이에요.
셋, 나와 잔뜩 놀아주세요.
넷, 나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다섯, 우리 싸우지 말아요. 마음만 먹으면 내 쪽이 강해요.
여섯, 말을 안 들을 때는 이유가 있답니다.
일곱, 당신에게는 학교도 있고 친구도 있죠?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 밖에 없어요.
여덟, 나는 10년 정도 밖에 못 살아요. 그러니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열,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을 잊지 않을게요. 내가 죽을 때 부탁드려요. 옆에 있어주세요.

아카리가 강아지 Socks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면서 엄마가 들려준 10가지 약속이다. 아카리가 강아지와 했던 이 10가지 약속은 내겐 가족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내 소중한 친구들, 형제자매들, 부모님, 지금 내 가족, 함께 했던 추억만큼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들을 더욱 소중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영화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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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8502  

주말에는 어떻게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게 필요. 이 영화는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며 보기에 딱 좋았음. 일본 민담엔 상상의 동물들이 많은데, 개구리와 거북이를 합쳐 놓은 듯한 모습의 ‘갓파’도 그 중 하나. 어떤 사람은 ‘박복하게’ 생겼다고 하던데, 하는 짓이 귀여워서 그런 느낌은 상쇄된다. 더구나 갓파 쿠의 역을 맡은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 무척 사랑스럽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 어린 쿠가 아빠의 시신과 조우하고 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같이 울었음. T_T

에도 시대를 살았던 어린 갓파가 인간에 의해 아빠를 잃고 자연 재해로 인해 화석이 된다. 초등학생 고이치가 우연히 그 돌을 발견해 집으로 온다. 그것이 갓파 ‘쿠’와 고이치의 첫 만남.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자연과의 교감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 ‘자연’ 혹은 상상의 동물이나 혼을 소재로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바로 문명화된 인간과 자연 간의 간극, 불화, 그리고 교감을 잘 다루고 있기 때문.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어떤 상실감 같은 게 남는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 세계, 영화 속 갓파 쿠가 자연 속에서 누렸던 행복감, 충만함, 그리고 생명에 대한 경외감, 이런 것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

영화를 보고 나니, ‘개발 논리’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에 의해 인간과 자연이 함께 파괴되고 있는 이 현실이 새삼 부끄럽고 몸서리가 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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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방가! 

코미디 | 한국 | 110 분 | 개봉 2010.09.30 육상효 김인권(방가), 김정태(용철), 신현빈(장미), 칸 모하마드 아사두즈만(알리), 나자루딘(라자)...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2648  

결론부터 말하면, 난 참 재미있게 봤다. 요즘처럼 불쾌하게 시리어스한 일들이 천지빼까리일 때, 특히 웃음 코드가 절실하다. 매사에 진지 모드로 임하면 번아웃되기 십상. 그러니,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재주꾼들이 그 재능을 발휘해주면 좋겠다는 생각.

육상효 감독의 영화는 처음인데, 참말로 재치있는 분일세! 누구 말대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술자리를 함께 하고플 듯. 국문학 전공자답게 언어의 유희가 웃음을 자아내고, 그것이 영화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래봬도...얼굴로 먹고 살아요”라는 광고 문구도 그렇고, “방가? 방가!”라는 제목도 그렇고, 여기 저기 현실 패러디와 의미심장한 pun으로 가득하다. 현대의 한국판 인간 사냥, 역전된 추노라고 할 수 있는 ‘단속’이라는 기표마저 엉뚱하고도 발랄하게 비틀어버린다. 누군가 40자평에 ‘웃기긴 정말 웃기지만 맘 놓고 웃기에는 살짝 미안한 영화’라고 했던데,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웃으면서 미안할 수도, 속상할 수도, 씁쓸할 수도, 화가 날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재미’와 ‘웃음’이 모든 걸 압도한다. 그런데 그 웃음의 재료가 바로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말도 안 되게 천박하고 폭력적인 현실이다. 그 억압적 권력을, 부조리한 현실을 웃음거리가 되면, 그 현장은 긍정적인 정치학의 분위기로 가득하게 된다. 그래서 좋았다. 극장을 나오면서도 웃을 수 있어서. 웃음 끝에 복잡한 뒷맛이 있어서 더 짜릿하다.

주연을 맡은 김인권의 연기도 좋았다. 해운대에서도 그랬지만 ‘이 한 몸 던져서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 앞으로도 응원하고픈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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