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은 최근 읽었던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책 중에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경제에 문외한이었기에, 신자유주의에 관한 학자들의 논의는 내게 무척 어렵게 다가왔었다. 흔히 쉽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기획된 대중서의 경우, 논의의 깊이 없이 가벼운 포퓰리즘의 냄새가 나기 쉬운데, 이 책의 경우 내용의 깊이와 유머러스한 화법이 무리 없이 잘 결합되어 있다. 또한 논거의 명쾌함과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진지함과 성실성이 저자를 신뢰하게 만든다. 

최근 몇 년 사이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그 전개 과정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신자유주의를 역사화하는 것(historicizing) 혹은 그 전개 과정의 윤곽을 그려내는 것(mapping)은 그것의 변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둘째, 역사화 혹은 지도그리기는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가시화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그릇된 정보의 허구성을 드러내준다. 이 책은 역사화 방법이 생산해 내는 지식의 미덕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부분은 ‘자유 무역’은 생산성을 높이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견해를 역사적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뒷부분에서는 “대안이 없다”는 명제, 즉 세계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영화, 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 외국 투자 자본에 대한 규제 해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논리나 상상력으로 조목 조목 반박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세계화(1870년-1913년)의 상품.사람.돈의 ‘자유로운’ 이동은 대부분 시장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 이 시기 자유 무역을 실천했던 나라들은 (영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식민지배(난징 조약)나 불평등 조약의 결과로 자유 무역을 강요당한 약소국들이었다....(중략)...오늘날 부자 나라들이 취했던 보호 무역주의 역사는 지극히 과소 평가되고 있고, 현재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도의 전지구적인 통합이 제국주의적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장하준은 ‘시장 자유’에 대한 믿음에는 오래된 제국주의적 기반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다만 좌파 학자들과 다른 점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착취’가 자본주의에 내재된 본질적 요소라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경제적 풍요로움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켜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논의의 원동력은 정의로운 자본주의, 즉 공정한 게임의 규칙에 기반한 이윤의 축적과 분배에 대한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동기 혹은 욕망’을 그 자체로는 나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경제학자로서 그가 바라는 것은 만인의 행복을 증진시켜줄 수 있는 ‘공정한 자본주의 세상’이라고나 할까. 

또한, 그는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의 실용주의적 정책을 강조한다. 개발도상국이 부유한 국가의 대열에 진입하기까지는 국가는 자국의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보호주의적 정책을 펼쳤으며,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던 역사적 근거들을 보여준다. 경제적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개발도상국의 민족주의를 옹호하고 있는데, 일견 이러한 견해는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그의 실용주의가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예를 들어 장하준은 덩샤오핑이 중국의 경제개혁을 추동하면서 내 걸었던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이든 흰 고양이이든 쥐를 잡기만 하면 된다”)의 중국 정부의 실용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자유 무역이건 보호 무역이건 그것은 ‘부의 축적’이라는 실용적 목표에 입각한 국가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장하준은 중국 정부가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내 걸었던 실용주의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찬양이 동반되기 쉽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는 않다. 당시 중국에서는 흑묘백묘론과 함께 부동산투기 열풍과 ‘대박정신’이 유행했다. 실용주의적 자본주의와 황금만능주의, 이 둘은 별개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박정희 독재 정권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일면적일 수밖에 없는 것. 혹자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출발점을 박정희 정권으로 보기도 한다.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로 인민을 ‘경제적 주체’로 호명하면서 이뤄낸 국가의 경제적 발전, 그 이면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적 집착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았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자 나라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나쁜 사마리안들의 제국주의적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제국주의의 씨앗은 ‘돈에 대한 숭배’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사족. 이 책의 특징은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도덕적 관점을 배제한 시각 혹은 그것으로부터 중립적 시각에서 씌여졌다는 점이다. 또한 좌우의 이념적 대립각의 바깥에서 유연하게 씌여진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좌우의 이념 대립의 자장 안에서만 사유되면서 다양한 의미들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켜온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이념의 과잉은 개념의 과잉을 만들어내고, 과대 포장된 기표로서 작동하는 개념은 온갖 기의들을 빨아들이고 축적하면서 사람들의 사유 능력을 제한한다. 개념의 블랙홀. 이 거대한 질주의 드라마 속에 철저하게 무력하게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이 이념과 개념의 과잉과 범람이 야기한 사유 능력의 마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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